왕비호가 사랑스러운 이유

행인님의 [천정배씨, 좀 남새스럽지 않우??] 에 관련된 글.

티비 연예 오락프로그램은 아예 들여다 보지도 않는 행인이지만, 개콘 봉숭아학당은 왠지 보고 싶어지는 이 심정. 다른 개그맨들에겐 미안하지만 그건 순전히 왕비호 때문이다. 남들 험담하는 것을 즐기는 것도 일종의 도착증인지 모르겠지만, 왕비호의 까대기는 묘한 재미를 선사한다. 물론 그 나름대로 숱한 검열을 거친 후에 나오는 이야기일 터라 더 센 뭔가를 기대하긴 힘들다만-예를 들어 그가 비판하는 연예인들이 생산되어 나오는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 같은 거- 어쨌든 그의 언중유골을 들여다보면 나름 생각해볼 거리들이 있다.

 

 

이 친구가 왕비호다. 컨셉 자체가 비호감을 유도하지만 행인에게는 왕호감이다.

 

전국의 모든 시청자를 안티팬으로 만들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하는 사람인만큼 실제 안티팬클럽도 활성화되어 있고, 게다가 왕비호의 미니홈피에는 수시로 악플러들이 찾아와 악플로 도배질을 하기도 한다. 악플이 거의 그렇지만, 외부인이 보기에도 눈쌀이 찌푸려지는 악플들이 많기도 하다.

 

그러나 왕비호는 끝내 당당하게 매주 안티를 끌어 모은다. 굳굳한 자세다. 하긴 그 속을 어찌 알까? 악플러들 중 상당수는 대상 개인만이 아니라 대상의 주변인물들까지 끌어들여 욕지거리를 한다. 그런 악플들을 보면서 왕비호라고 해서 속이 상하지 않을 수는 없을 거다.

 

연예인 하나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그것이 악플러들 때문이라고 난리가 난 세상이다. 그리하여 망법개정을 비롯해 소위 "사이버모욕죄"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빗발친다. 행인이 악착같이 "나경원 법"이라고 하자고 주장하는 그 법도 그렇다. 이 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권력에 의한 온라인 상시감시를 합법화해준다는 거다. (최근 이 문제로 어떤 똘아이에게 교육을 시켜준 일이 있다. 물론 그 똘아이는 지가 똘아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이 행인에게 경찰서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당연히 현명한 행인은 그 똘아이의 똘추짓에 앞으로 쌩까는 것으로 대응해주려 한다.)

 

만일 이런 법률이 생겨서, 혹시라도 모를 악플로 인해 고생할 수 있는 연예인들을 검경이 계속지켜준다고 가정해보자. 예컨대, 안티팬을 모으고 그들의 악플을 감수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살아가고 있는 왕비호의 홈피를 검경이 24시간 연중 무휴, 골목길 편의점 간판처럼 눈에 불을 켜고 왕비호 홈페이지의 일거수 일투족, 아니 일키보드 일아이피까지 감시한다고 해보자. 이거 왕비호를 위해서 좋은 일인가?

 

"사이버모욕죄"는 반의사불벌죄로 하겠다고 한다. 현행 형법에서는 친고죄다. 즉, 현행 형법대로 하자면 본인의 처벌의사가 선행되어야 수사가 진행되고 처벌이 가능해지는데, 신설되는 사이버모욕죄에 따르면 검경이 먼저 혐의를 포착한 후 본인에게 "처벌해드릴까용?"하고 문의하게 된다는 거다. 찬성론자들에 따르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데도 처벌될 사람이 없으므로 하등 문제가 안 된다고 한다. 문제는 바로 이런 아메바류 사고방식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문제로 삼는 것은 왜 검경이 씨잘데기 없이 모든 온라인을 감시하도록 허용하냐는 거다. 쉬운 예기로, 내 집 안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왜 검경이 상시 들여다 보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이 부분에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데도 찬성론자들은 이 원초적 문제를 건너뛰어 딴 얘기만 한다.

 

검경의 수고로움 덕분에 왕비호에 대한 사이버공간의 악플들이 완전 제거되었다면, 그 때부터 왕비호는 자기 캐릭터를 바꾸지 않는 한 현재 캐릭터의 효용성을 상실한다. 그런데 왕비호라는 캐릭터를 버리고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 활동하면 지난날 왕비호의 악행(?)을 기억하고 있는 악플러들이 걍 조용히 닥치고 사라져 줄까? 오히려 그 때부터는 현존하는 실재와 사라진 과거가 혼재하면서 왕비호를 궁지로 몰아갈 것이다.

 

악플러들이 제정신 차리고 살 수 있도록 뭔가 조치를 해야 한다면, 사이버공간에서 악플다는 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회복 시킬 수 있는 보건프로그램이 먼저 만들어져야 할 거다. 연예인 사생활이나 파고 다니는 여의도 찌라시, 그리고 그 찌라시의 근거 희박한 정보를 소스로 삼아 기사쓰는 언론사들, 그 언론사들 기사를 공공연히 노출함으로써 접속자 수 늘리는 포털들도 역시 관리대상품목에 먼저 집어 넣는 것이 바람직하고.

 

이런 차원에서 볼 때, 악플은 결국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존재가 바로 왕비호다. 악플 올려봐야 올린 넘만 손해라는 것은 지금 법률체계만으로도 충분히 인식하게 해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망자에 대한 애도와 함께 굳건히 할 말 다 하고 있는 왕비호에게 박수를 보낸다. 왕비호, 참 정이 가는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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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8 15:58 2008/10/0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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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8/11/07 00:45

    왕비호에 관한 행인님의 포스팅을 보고 ["사이버 모욕죄, '국민 통제' 정치적 야욕 결정판"] 기사를 보며 문득 드는 생각이... 친구들과 서로 인터넷 통제 비웃기 놀이, 일명 악플달기 놀이라도 해볼까하는 생각도 든다. 남성들의 경우는 정말 오랜 친구들과 욕(그것의 반여성적, 폭력적 성격은 잠시 차치하고)과 육두문자 쌀짝 넣어주며 이야기하는게 보통인데 서로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대놓고 한번 그렇게 한 다

  1. 왕비호.. 좋은 예시(?)네요.ㅎㅎ
    나경원 법은 딱 그 사람들 수준에서 나온 뻘짓이죠.-_-

    근데 태그에서 왕비호가 찌질이랑 똘아이 사이에 끼게 되서 죽 이어 읽으면 묘하네요.ㅋㅋㅋ;

  2. ㅋㅋ 적절한 예시올시다. 저도 이 얘기 나오면 왕비호 써묵어야겠어요.
    그런데 행인님이 왕비호가 까대는 대상들에 대해 얼마나 아시는지 그게 궁금해요. ㅋㅋ

  3. xarm/ 흠... 태그를 만들 때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했네용... ^^;;;

    새벽길/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시는 군요... ㅠㅠ

  4. 잘 보고 갑니다 시간 되시며 제 카페도 들려 주세요 http://cafe.daum.net/ppp8

  5. 저런 왕비호가 사이버 모욕죄를 지지하는 의사를 표명했다면? ㄲㄲㄲ 세상 참 재밌게 돌아가는군요

  6. Rin4/ 이너뷰를 죽 보니 개인적으로는 많이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문제는 자신의 발언이 자신의 캐릭터를 완전히 죽여버리는 발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 같구요. 만일 인식을 하고 있었다면, 자신을 띄워주게 된 그 캐릭터의 생명력을 버리더라도 악플을 없애고 싶다는 더 큰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왕비호에게 드디어 비호감을 느끼게 되었다기 보다는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는 연민이 드네요. 에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