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하게 그때그때 대처하는 삶은 언뜻 그럴싸해보이긴 하지만
뭔가 해보려고 할때, 특히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보려고 할때는 그런 자세가 그닥 좋은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좀 바꿔봤다. 뭔가 세련된 방법을 찾다가 시작도 못해왔기에, 우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가기 위해, 얼마나 그렇게 될지 모르지만 "단단해지기"로.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다시 마음이 약해지네.
일이고 뭐고 다 뭐냐... 지금이 기로인것도 같다. 점점 더 힘들어질지도 모르지. 아직은 뭔가 기대지 말고 스스로 힘을 내보자구.
서로에게 힘을 주는 것을 부드럽게, 능숙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난 부담스럽게, 서툴게 주는 사람인가봐. 받는것도 그렇고.
내가 알아채지 못해서일뿐 많은 사람들이 계속 내게 힘을 주고 있을거야. 내가 원하는 한가지 형태만 생각하니 그런 것을 많이 놓치고, 전해져 오는 힘을 많이 흘려보내는 걸지도.
편한 관계라는 건 정말 어떤거지.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아.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일 순 있어도 "편한" 사람, "친근한"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까.
근데 모르겠어. 난 내가 편한 사람 같은데. 알고보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만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더 나가지 못하는 나.
뭐 그게 나쁘진 않아. 나도 거리두기를 좋아해. 우리는 그동안 너무 "침범"당하고 살아왔으니까. 예의가 부족하니까.
그래도 어쩔때는, 우스개 잘하고 수다 잘 떨고 금방 금방 서로 친해지는 듯한 사람들 보면 많이 부럽지. 물론 그게 정말로 친해지고 가까워지는게 아닐진 몰라도, 그래도 요즘은 그렇게들 친해지는 거 아닌가. 결국. 난 언제나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머무는" 사람.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자리를 만들고 뒷받쳐 주지만 결국 그들이 나란히 걷는 한 발짝 뒤에서 따라가는 사람. 내 옆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싶어 계속 스쳐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혹시 외로워하지 않나 싶어 다가가고, 함께 가자고 하지만 역시 보면 내 가장 가까운 자리는 비어 있는 사람. 채워지지 않는 갈망. 마실수록 목마름. 가끔은 그래서, 내 앞에서 가는 사람을 원망하기도 하지. 물론 그들이 날 밀어낸 게 아니라는 건 알아. 내가 선택한 거리지. 나쁘진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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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 헤어져 집에 혼자 자전거 타고 돌아오며 종종 이렇게 속으로 말하곤 하지.
나도 사실 사람들하고 우스개도 잘하고, 주책도 떨고 재밌는 사람인데. 이었는데. 어째 점점 그렇게 못하는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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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가 그닥 좋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내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면 나도 경계해.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어. "이 사람 왜 이래?" 그러며 뭔가 몸이 뒤틀리는 것 같고 두드러기가 날 것 같기도 하고.
나도 생각보다 그리 친절하거나 많이 잘해주는 사람은 아냐. 원하지 않는 친절과 일방적인 배려는 폭력일 수 있다는 거 알고 나도 싫어해. 나를 좋아해줘 대신 너무 가까이 오진 마. 내가 말할때까진. 뭐 나도 그런 생각해. 나도 결국 이기적이야.
그런데 왜 난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오버하는 걸까. 나의 "오버"가 내 방식의 "거리 두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뭐 그렇다해도 서로 뾰족하게 쏘며 거리 두는 것보단 이런 "호의적인" 아우라로 나를 감싸 거리를 두는게 더 낫지 않겠어? 적어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가능성은 적겠지. 내가 싫고 부담스럽고 역겹고 해서 날 멀리하겠다면 그건 막지 않아. 차라리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는 것보단 낫지. 그런데 그렇다고 상처를 안 주고 산 것 같진 않고.
그렇게 사는것도 나쁘진 않았는데, 가까워지던 멀어지던 일정 거리를 유지하던, 그냥 그렇게 살았는데, 그래도.. 어떤 사람들하고는 좀더 가까워지고 싶단 말야.
용기가 필요한거 같아. 누구 말마따나 (그는 다른 맥락에서 한 말 같지만) "버릴 수 있는 용기".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반자동으로 나오는 "접촉의 방식"을 버릴 수 있는 것. 상대와 상황에 맞지 않게 그것만 고집하지 않는것. 완전히 버릴 필요는 없겠지. 버린다기 보단 그걸 습관이 아니라 "깨어 있는" 상태에서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거 겠지. 그래 그거야. 중요한건 내가 두려워하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천천히 선택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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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계속 단단히 살거다. 뭐, 언제나 그래왔듯 난 잘 해내고 있어. 하지만 자꾸 생각나긴 하네.
얍! 힘내기. 사람들이 보내는 힘 놓치지 않기. :)
정보통신활동가 공용 메일링을 제안해놓고 답장을 기다리는중. 지금까지 세 곳다섯 곳에서 답장이 있었다. 느긋이 기다리기로 하면서, 뭔가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메일링을 같이 했으면 하는 사람은 꼭 홈페이지 담당같은 기술 실무자뿐이 아니라, 상근활동가만이 아니라, 꼭 관계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정책 활동을 하는 사람이던, 자원활동가던, 그냥 관심만 있고 다른 걸 하는 사람이던 상관없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얘기들을 주고받게 될까? 내가 생각하는 것을 조금더 얘기하는게 좋겠다. 아니, 내가 생각하는 게 아니고 같이 생각하고, 얘기해보고 싶은 것들. 장기적인/지속적인 정보통신활동을 위해, 밀도 있게 협력해 당면 문제를 함께 해결해가기 위해.
덧. 이런 얘기를 메일링리스트에서 한다는 말은 아님. 쓰고보니 -_- 평소에 사람들 만나면 얘기하고 싶다는 거.
* 정보통신기술 활용능력, 혹은 기술력과 정보통신활동의 관계.
뭔가 전문적인 기술력이 있거나, 흐름에 대한 통찰이 있는 사람들만이 정보통신활동을 할 수 있는가? 내 잠정적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정보통신활동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활동"은 포괄적이고 범위가 넓다. 직접 뭘 만들거나, 시스템을 유지/관리하진 않더라도, 어떤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 매뉴얼을 만들거나 교육을 하면 좀 더 분명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의 활동에 정보통신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은 정보통신활동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난 그렇게 스스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풀이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어렵고 복잡한 기술과 주제에 대해 다루는 것도 필요하지만, 휴대폰 문자 보내기, 전통적인 게시판 글 올리기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주 쉬운 것, 모두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스스로 인식도 못하는 것을 더 "정보소외"된 사람들에게 퍼뜨리는 것도 지금 어쩌면 가장 절실한 역할일지도 모른다. 빈곤, 젠더 등 다양한 문제로 생기는 정보격차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사실 누구나 대부분 할 수 있는게 아닐까. "특출나지 않은" 사람들의 정보통신활동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난 생각한다.
이런 걸 함께 얘기하고, 공유하고 싶은 이유는 내 추측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고(특히 이쪽으로는), 그걸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더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대개 정보통신 관련한 주제로 얘기가 나오면 최신 기술, 신기한 것들에 대한 얘기, 전문적인 주제로 가는 경향이 많아 더 그렇다. 그래서 실제로 자신이 주변에서 쉽게 할 수 있고, 하면 좋은 다양한 정보통신활동이 있을텐데 스스로 그런 것을 거리 두는 경향이 있진 않을까? 이런 것을 서로 얘기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것을 스스로 알고 있고, 할 수 있는게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 정보통신활동과 다른 활동과의 관계
환경 단체에서 홈페이지를 만들고 관리하고, 웹자보등을 만드는 사람은 분명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몇년동안 그 일을 하고 다른 곳에 갔을때, "나는 과연 환경운동을 한게 맞는가" 싶어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정보통신만이 아니라 사무 회계 일만 오래 한 사람이라던가, 실제 사람들을 조직하고 물건들을 만드는(행동 실무를 준비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비슷하게 이런걸 느끼지 않을까 한다. 이건 "정책 중심의 활동"의 한계이기도 하다. 혹은 정보통신활동을 별도의 전문 노동으로 한정지어 생각하는 영향이라고도 할 수 있고.
여성, 노동 기타 부문도 마찬가지. 그 안에서 분명 계속 노동을 하고 활동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몸이 축나고 에너지가 소진됐을때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지 않겠는가. 나는 뭐하고 있나.. 이쪽 활동하는 사람도 점점 줄고, 조직에서도 그런 사람을 확충하려는 노력을 점점 소홀히 한다. 하지만 분명 어디던 정보통신활동은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하면 했지 줄일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매 순간, 이슈마다 "정보통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행동하는 건 늘 필요한 일이다.
애시당초 정보통신활동이라는게,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그런 성격이 있다보니, 한 부문/조직의 틀에 갇혀서는 제대로 할 수 없는게 아닐까 한다. 정보통신활동은 별도의 무언가로 따로 조직되서 이뤄지고, 그런게 계속 각 부문/조직과 연결되서 적용되는 그런게 필요한건 아닐까. 더 깊이 알고, 관여하고 싶어 각자 그 조직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물론 좋은 것이고, 그 안에서 연결고리가 되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정보통신활동가들이 어디에 있던, 별도의 흐름을 만들어가는게 좋을 것 같다.
* 기술 활용 능력과 상상력
- 사람들의 기술 활용능력이 늘어난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상상할 수 있는 지평이 열릴 것이다. 전에는 아예 생각도 못하던 것을 이제 익숙하게 사용하게 됐을때, 좀 더 개선된 무언가를 원하게 될 수 있다.
- 더 많은 사람이 상상한다면 누구나 좀 더 쉽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지금 있는 기술들을 보급해서 새로운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과
상상하고, 실현해서 지금 막혀 있는 지점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을 만드는 것. 그니까 쉽게 말해서, 물론 둘 다 하긴 해야겠는데, 한정된 역량 안에서 "지금 있는 기술"을 교육해 전체적인 요구수준을 늘리고, 많은 상상이 일어나게끔 저변을 넓히는 것과, 지금 이대로도 "쉽게 쓸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것 중 선택해야한다면 뭘 우선시 할건지. 후자로 간다면 조금 더 숙련된 정보통신활동가가 필요하거나, 일반 IT인들과의 협조가 강화되거나..
한가지 분명한 내 생각은, 상상력은 기술활용능력과 밀접한 관계는 있을지 몰라도 절대적이진 않다는 것이다. 기술을 몰라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넘고(이것도 충분한 한 주제군) 되던 안되던 엉뚱한 상상을 해보도록 조장하면 좋겠다. 실제로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한 것은 대부분 전문적인 기술자가 아니라 "컴맹"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진게 아닌가? 운동하는 사람들의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기술 활용 교육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럼 역시 교육에 올인해볼까?
그외... 뭔가 더 있는데 딱히 잡기가 어렵네. 정보통신활동이 뭐지? 그 용어 자체를 계속 써야되나? 정보통신기술을 어찌해야 할까
계속 변해가는 기술을 습득해 전문성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급하고, 지금 필요한 것들을 해결하며 새로운 상상을 하고.. 절대적으로 부족한 정보통신활동가들. 그런걸 따라가기에도 벅차다. 하지만 사실 따라가는 것으로 부족하고, 기술의 흐름을 다시 "사람을 위한"것으로 가져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애초에 기술이란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발전하는 거였다. 손으로 못을 박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망치가 절실하지 않고, 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면 톱 없이 나무를 자를 수 있을 거고, 슈렉처럼 튼튼한 사람은 수레바퀴가 "있으면 좋은" 정도이겠지만, 힘없고 약한 사람에게 기술은 스스로의 한계를 넘게 해주는 절실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기술이 어디 그런가. 힘 있는 자들이 주도해서 계속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것만 만들게 하는 방향으로 되고 있다. 로봇이 지금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가? 그걸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 아냐? 로봇을 어떻게 만들까보다 "지금 우리가 로봇부터 만들어야돼?"라고 물어봐야하는게 아닐까.
우리가 할 일은 현란하고 복잡하고 값비싼 기술이 아닌 절실하고 단순하고 값싼 기술이 더 고안되고 보급되도록 하는 일이다. 기술이 발전할때 소수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도록 개입하는 것이다. 기술활동과 정책활동은 떨어질 수 없는 것이고, 활동가만이 아니라 자유소프트웨어 운동가같은 "열린" 기술자들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더 많은 교육활동이 필요하다.
아.. 이제 중구난방. 시작할 땐 뭔가 나올 것 같았는데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