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거리"는 얼마만큼일까.
물론 이건 정해진 값이 있을 턱이 없다.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다르고, 또 계속 변할 것이니.
물가에서 흐르는 물을 관찰하는 것, 높은 곳에서 전체 줄기를 바라보는 것, 물 속에 몸을 담궈 느끼는 것, 그 안에 헤엄치고 노닐며 인식조차 못할 정도로 하나가 되는 것. 다 다른 이해를 안겨주겠지.
지금 나는 얼마만큼의 거리가 필요할까.
물가에서 바라보다 살짝 발을 담궈 보려했지만 물은 너무 차갑고 빠르게 흘러갈것만 같다.
더 담궈볼까. 그냥 더 있어볼까. 아님 계속 물가에서 바라만 볼까. 산으로 올라가볼까.
분명한 것은 있다.
무작정 가까워지려고만 하다가, 다시 살짝 거리를 두기로 하니
그동안 못보던 것, 알았다가 잊은 것이 다시 발견된다.
지금은, 역시 이 정도의 거리에서 좀 더 있어보는게 나을까. 그럴지도.
정답은 없겠지만,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는 마음가짐은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이끌기 마련이다.
억지로 계속 뭔가 하는 것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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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비유하는 건 좀 그럴 수 있다.
내가 지금 은유하는 건 사람의 마음이니까.
물은 ... 말하지 않잖아. 사람은 말할 수 있고.
물은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듣는 이의 귀가 문제가 있었을지도.
물가에서 오래 바라만 봤더니 발이 저리다. 집에 가자.
결국 난 깊은 곳의 온도는 느껴보지 못했구나.
난류 - 그 안에서 서로 부대끼며 제각각 흐르는 것들을 느낄 순 없었구나.
내일은 다시 오겠지. 다른 일이 없다면 다시 물가에 와 있어도 될테고.
일단은 집안을 정리하고 한숨 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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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그럼에도. 다시 시간이 된다면, 나는 그 물가로 다시 갈 거다. 난 그 물을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하도 기분이 까라앉아서 드라마 다운 받아 보고 있다.
띄엄띄엄 본 커피프린스 1회부터 다시. 기분 좋아졌으~
은찬 완전 내타입이야. 열심히 사는 사람 좋더라.
가끔 식당에 갈때나, 거리를 걷다가 종종 눈에 보이는 일하는 사람들을 관심있게 보곤 한다.
저 사람은 어떤 사연이 있을까. 어떻게 살고 있나. 얘기해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근데 잘못하면 불쾌한 느낌, 모욕감을 줄 수 있어, 바쁘게 지나치는 대부분의 시간에서는 그런 얘길 시도하지 못한다.
껍데기뿐인 관심과 동정어린 시선은 나처럼 다른 이의 동정심을 잘 활용하는 사람말고는 분노를 자아내겠지.
어쩌다 여유가 있으면 - 혼자 자전거여행을 간다거나 - 잠시 머물며 천천히 자연스럽게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결국은 바쁜게 문제야.
6회 대사 중 꽂히는 부분이 있네. 전엔 이 장면 놓쳤었는데.
은찬 : "짝사랑인 거 알고 포기하는 거랑, 짝사랑인 줄 알면서 계속 좋아하는 거랑. 어느쪽이 더 힘들까?"
한결 : "두개 번갈아 하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