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후기 1편 ^^

잡기장
[여행담은 천천히] 에 관련된 글.

내가 너무 욕심을 내고 있었나 봅니다. 고작 열흘, 그 중 6일반을 런던, 하루 반을 파리에서 보낸 주제 얼마나 많이 그곳들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충분히 느끼고 올 수 있었겠어요? 게다가 3일반은 회의와 관련된 일로 정신을 뺏기고 있었고, 나중에는 몸이 지쳐 맘의 여유가 없었구. 근데 머리 속으로 그리던, 쓰고 싶은 글은, 마치 거기서 사는 사람이 찬찬히 묘사하고 느낌을 말하는 듯한 것이었습니다. ㅎㅎ 역시 이 "뭐든지 잘하고 싶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야 할텐데.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제가 가져간 디카 뱃더리를 제때 충전할 수가 없었어요. 사진을 찍으며 그 장면만 담는게 아니라 번뜩하고 그 장면과 관련된 스토리가 함께 찍힌다고 생각되거든요. 근데 사진을 나중에 못찍게 되면서 "스토리" 구성도 잘 못하게 되더군요. 기억에 의존하려니 이거 다른 일들이 정신을 못차리게 해서 잘 안되고.. ㅋ


"놋북원정대" 포스팅에서 썼듯, 출국이 코앞에 닥쳐왔을때 이래저래 준비할게 많아 정신이 없었습니다. 개인적인 준비는 거의 못했죠. 런던과 파리에 대한 사전조사를 하고, 어디 어디 갈건지 미리 그려보고, 간단한 회화를 연습해 둔다던가, 시간을 어떻게 안배할지, 같이 가는 사람들과 뭐하며 재밌게 놀지 뭐 이런걸 전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결국 출국하는 날까지 지각생은 "지각"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날은 "환전"이 복병이었죠. 제가 돈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

공항에 가서도 여전히 정신이 없었습니다. 채식라면을 한 박스 사서 들고 갔는데요, 짐의 수를 줄이기 위해 그걸 뜯어 각자의 가방에 나누어 넣었습니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조PD가 빌려준 캐리어에도 조금 넣을 공간이 있었죠. 그래서 캐리어를 열고, 라면을 넣고, 다시 닫는데..? 어랏, 이게 닫히지가 않습니다. 우잉 읏차~ 씨름을 해봤는데도 도무지 이게 안 닫히는군요. 아놔 -_- 시간이 많지 않아 발권을 하고 짐을 실어 보내러 갔습니다. 거기에 테이프라도 있으면 둘러 붙여 가려고 했던 거죠. 며칠 동안 계속 정신없었고, 당일도 늦어 서둘러 간거라 빠진건 없나..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 약~간 더 붕 떠 있었습니다. 껌을 씹으라고 줘도 땅에 떨어뜨리고 (물론 다시 주워 씹었습니다. 아, 껌이 아니었나? ㅋ) 하여간 거기서도 슬랩스틱 코미디를 한참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엔 테이프가 없더군요. 포장하는 곳으로 가서 묶어야 한답니다. 캐리어를 들고 달렸습니다. ;ㅂ; 쌩돈 3천원을 주고 벤딩머신으로 둘러 묶어와, 짐을 실었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것은 두번째입니다. 작년에 홍콩에 갔었죠(Down! Down! WTO!) 그때와 같은 항공사입니다. 런던으로 바로 가는건 더 비싸서 조금 더 싼 항공사로, 3군데를 거쳐 돌아가는 경로입니다. 타이페이, 방콕을 거쳐 파리로 가고, 거기서 더 저렴한 항공을 이용해 런던에서 좀 떨어진 루턴 공항으로 갑니다. 런던에만 간다고 생각했는데, 대만, 태국, 그리고 프랑스도 가게 된 셈입니다 :) 물론 공항을 못 벗어나는 거지만요. 4명이 2명씩 나뉘어 자리가 나왔습니다. 전 창가 바로 옆.

창가엔 캐나다인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 재밌는 친구더군요. ㅋㅋ 회의때 발표 자료가 덜 완성되서 비행기에서도 놋북을 틀고 작업을 해야했는데요, makker의 자료에서 "No APEC"을 흘깃 보고는 우리의 정체?를 눈치채버렸습니다. 그리곤 저한테 불쑥 묻더군요. "너 APEC 반대해?" 놀라긴 했지만 신기해서 "응, 어케 알았어?" (이 정도는 저도 영어로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 그러니 그거 보고 알았다고. 그러면서 자기도 싫어한다네요. 우리가 미디어,정보통신 활동가라고 그랬더니 (심심해서였을까?ㅎ) 한동안 정치적인 얘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캐나다.. 하면? 그쵸, FTA 얘기를 안할수 없죠. 그 얘기도 조금 했습니다 (잠깐, 얘기를 했다는 것이지 말을 다 이해하고 잘 표현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 그리고 좋은 정보도 주더군요. 전세계 어디 가던 잠자리를 구할 수 있는 방법.

저만 빼고 다 담배 피는 우리 일행은 타이페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흡연실을 찾았습니다. 이때 그 캐나다인도 같이 갔습니다. 떨어져 앉아 있던 jonair 와 같이 가면서 아 글쎄 우리가 jonair 가 부시 지지자라고 말했다며 농을 하는 겁니다. ㅎㅎ 첨 보고 인사만 한 사람한테 그렇게 심한 말을 하다니. 타이페이 공항에서 쉬고 있는데 눈에 띄는 말이 있습니다. "마약을 소지한 자는 뒤진다" -_- 그리고, 다시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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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5 02:25 2006/10/25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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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군 2006/10/25 03:56 URL EDIT REPLY
음 선수쳤네. 점점 쓰기 귀찮아지네요. ㅋ
지각생 2006/10/25 04:07 URL EDIT REPLY
ㅎㅎ 글쵸? 나중에는 더 쓰기 싫어질것 같고, 일도 안되고 해서 걍 시작했삼 :) 이 시간까정 밀린 일을 하고 계셨던 모냥이군요..
ScanPlease 2006/10/25 18:37 URL EDIT REPLY
부실 후기 2편은 언제나와요? ㅋㅋ
(이맘때쯤에 이런 글 한번쯤 적어줘야, 힘을 받고 계속 쓰시지..ㅋㅋ)
지각생 2006/10/26 00:04 URL EDIT REPLY
앗, 오늘은 아닙니다. 내일 써줘야 할 글이 2개라.. 오늘 이거 쓰고 있다간 산채로 묻혀버릴지도 ㅋ
re 2006/10/26 01:45 URL EDIT REPLY
배터리~~ 그거 참 중요합죠. 그래도 찍은 사진들도 함께 올려주세요. 히히 글고 메일 보냈슴다~
지각생 2006/10/26 20:10 URL EDIT REPLY
네.. 조만간 올릴께요. ^^ 주말에 뵙겠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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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야해

잡기장
회의가 끝나니 어느새 12시가 다가오고, 하루를 늦게 시작한 탓에, 그리고 열흘간 외유(?) 탓에 생긴 업무 공백을 메꾸느라 아직 집에 갈 수가 없다. 출출하다.. 사 놓은 땅콩도 다 먹었고, 생각해 보니 저녁도 안먹었다. 이 시간에 밥을 하는 곳은 뻔하다. 그리고 뻔한 것을 먹을 밖에. 비빔밥을 먹고 왔다.

시차 적응이 덜된 탓일까? 주말과 월요일에는 일찍 일어난 편인데 오늘은 정오가 넘어 잠을 깼다. 원체 자율적인 출근인데다, 밤샘이 잦고 늦게 출근해 버릇해서 이때 일어나도 큰일이 났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혹 부러운 사람 있나요? 새벽 4시에 서버 죽었다고 전화 받고 일어나 작업하고 다시 자야 한답니다 -_-) 그 전 같으면 깜짝 놀라 일어나 부랴부랴 준비하고 나왔겠지만, 오늘은 그러려다 문득 그럴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가만히 엎드린 채로 있다가 천천히 씻고 밥을 차려 먹고 나왔다.

아들이 채식한다고 안 먹는 반찬이 많으니까 요즘 부쩍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채식반찬을 많이 해 주신다. 감사히 먹으며 생각하길.. 보관이 어렵고 손이 더 가는 채소로 반찬을 하려면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건데.. 내 개인적 실천이랍시고 다른 사람에게 실제적인 부담을 안기는게 아닌가.. 역시 밥을 직접 해먹을 각오 없으면, 다르게라도 어떻게든 가사노동 참여 비중을 높이지 않으면 그것도 껍데기일 뿐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치만 여전히 일에 치여 사는 내가 요리를 많이 하게 될지는 의문이다. 귀찮다. -_-

비빔밥을 먹고 걸어 오며 생각한다. 즐겨 먹던 우유를 두유로 대체했다. 난 원래 두유를 싫어했다. 값도 더 비싸다. 이제 어느정도 맛들이긴 했지만 역시 두유를 마실때 우유 생각이 난다. 이래저래 개인이 감내할 고통이 지금 당장은 분명 커졌다. 당장 실제로 다가 오는 여러 어려움. 그러나 이게 얼마나 내가 원하는 것에 기여를 하는지. 이게 혼자만의 자기만족 혹은 자학으로 끝나지 않고, 뭔가 흐름이 만들어져야, 가시적인 움직임으로 번져 나가야 할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더 익숙해지고, 직접 해 먹게 되고 해야 할텐데. 채식 공동체나 세미나가 있으면 참여해 볼까.. 지금의 작업, 생활 패턴을 바꾸기 전엔 다 어렵지 않을까..

개인적인 실천, 조용한 목소리, 꾸준히 번져나감, 스며듬.. 이런 방식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효소"를 작용시킬 필요는 있을 것이다. 아직 공부도 부족하고, 먼저 채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뭔가 그들이 공동으로 목소리를 모아 낼 수 있는게 있으면 좋겠다. 다양한 "채식주의"들.. 그 중에 분명 공통분모가 있을 것이고, 그것을 함께 밖으로 표출해 내면 어떨까. 혹 지금은 흩어진 개인이, 저마다의 특수한 상황에서, 계속 스스로를 방어하며 (물론 지금 내 모습을 가지고 다른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유추하는거임) 힘을 소진하고 있지는 않을까? 개인적으로 하면 공격이고, 상처가 될 수 있지만 공적 영역에 함께 말하는건 그런 부담이 적지 않을까?

예를 들면, 생명을 해치지 않기 위해, 아예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있고, 생태적인 이유로 남기게 됐을때만 고기를 먹는 사람, 직접 키우고, 죽일 수 있는 것만 먹겠다는 사람, 계란, 유제품, 생선 등 특정한 선을 그어 먹는 사람, 채소도 생명을 해쳐서는 안된다고 아예 과일만 먹는다는 사람, 남성지배문화의 상징, 강화라고 거부하는 사람, 사막화등 환경 파괴의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 다양한 주장과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리고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도, "육류의 (잔혹한) 대량 생산"이 문제가 있다는 건 폭넓게 동의할 수 있는게 아닐까?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곡물로 대량 생산하는 육류..

그래서 이런 식으로 슬로건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대량 생산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맙시다)". 특히 잔혹한 수난을 겪는 3대 동물 - 소, 닭, 돼지. 그냥 "난 채식을 합니다" 보다는 이런 구체적인 이유를 적시한 문장이라면, 소극적으로, 방어적으로가 아니라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내걸고, 평소에도 사람들에게 권하기에 적당할거라고 생각된다. "소보다 굶주리는 사람에게 곡물을" 이런 것도 가능하겠지만, 이건 다양한 채식의 이유중 한 가지에 집중한게 되서 앞의 것보다 조금 그렇다.

채식을 한다고 하면 깜짝 놀라고 어떻게 함께 밥을 먹으러 가나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데(심지어는 술 안주 먹을 게 없지 않냐며, 그렇다고 나만 빼놓고 갈 수 없으니 술자리를 아예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_-) 먼저 저런 주장을 한다면, "소, 돼지, 닭 등 말고는 먹어도 쟤가 나를 이상하게 볼 일은 없으려나?" 정도로 "한숨 돌리"진 않을까? 그리고 먼저 얘기하기도 쉬울 것 같다. (지금 생각난거라 아직 안해봤음)

하여간, 내가 아직 모르는 그런 움직임이 "이미" 있었다면 누가 알려주면 고맙겠다. 어려운 실천을 함께 하자는 게 아니라, 작은 실천을 제안하는, 그리고 많은 채식주의인들과 채식선호?인들이 함께 외칠 수 있는 그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면, 거기에 함께 하련다. 그리고 없거나 지금 주춤하다면, 내가 그런 제안을 하고 싶다. "당장 모든 고기를 먹지 말라는건 아니고, 소, 닭, 돼지 등 심하게 수난당하는 대량 생산 고기는 조금이라도 덜 먹자" 다음에 언제 불로거들이 모여 집회에 나가거나 하면 이런 슬로건을 함께 걸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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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5 01:36 2006/10/25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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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lrady 2006/10/25 10:38 URL EDIT REPLY
즐겨 먹는 우유-> 역시 우유를 많이 먹어서 키가 크셨던 건가요
OTL 한 20살 될때까지 우유를 잘 못 먹었던 라디 ㅠㅠ
그 결과.........
지각생 2006/10/25 11:37 URL EDIT REPLY
제 키를 키운건 팔할이 우유와 콩나물 :)
아마 그것말고도 농구가 도움이 됐을지 몰라요. 중학교때까정 키가 반에서 젤 작은 편에 속했는데 (키순으로 2번까지 -_-) 어쩌다 체육시간에 농구파에 끼게 됐지요. 보통 나 같은 스타일은 가드(게임 풀어가는, 패스위주)나 슈터가 되기 쉬운데, 전 "리바운더"였습니다. 키 큰 애들 사이를 비집고 가서 "내꺼야~" 하고 달려들어 공을 낚아채는.. ㅋ 거의 로드맨이었죠. 그래서 하늘을 오래 쳐다보고 있다가 목 뒤 성장판이 자극을 받지 않았을까 합니다 :D
지각생 2006/10/25 11:51 URL EDIT REPLY
아.. 혹시 누가 "대량생산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를 이미지로 만들어주실 분 안계실까요? 배너로 달고, 버튼으로도 만들고.. 그러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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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를 물어줘

잡기장
채식을 시작한지 이제 한달이 됐다. 아직 요리를 거의 안해보고(채식라면 끓이는 정도 ㅋ) 음식에 대한 고찰?도 충분히 안돼서 힘든점이 많다. 평소에 고기를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이 연비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신진대사 탓인지, 밥을 더 많이 먹게 되고, 계속 배가 고프다.

그래도 이제 조금씩 몸에 배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 대견스럽다. "육식의 종말"등 책도 읽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조금씩 조금씩 보고 듣는 내용 주워담는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해서. 그럴 수록 채식을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이제 그렇게 되면 당연한 수순일, "함께 해요~"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나보다 먼저, 오랫동안 채식을 해온 주위, 불로그 사람들의 말씀 마냥, 채식을 한다는 건 그 자체만의 어려움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피곤함을 많이 겪게 되는 것 같다. 함께 밥먹으러 갈때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것(어제 만난 사람이 "적대적으로 협박을 받았다"는 말까지 들었다.), 괜히 미안해 하는 것들. 그럴때마다 "괘얀아, 신경쓰지 말고 먹어. 내 먹을 건 내가 알아서 챙길께"하고 사람들 맘 편하게 해 주기 위한 감정노동을 부차적으로 해야 한다. 지금까지 채식하며 가장 편안하게 먹은 것은, ㅎㅎ 우습게도 "기내식"이었다. 총 8번(9번이던가?)의 식사를 하면서, 미리 채식을 한다고 말을 해놓은 덕에 그냥 나오는 대로 받아 먹기만 하면 됐던 것이다. 뭘 먹을지,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 신경쓸 일도 없었다 :)

사실 나도 그랬다. 채식을 한다는 사람이 있고, 같이 밥을 잘 안먹게 되거나, 먹으러 가서도 다른 사람과 확연히 구분되는 모습들을 볼때는, 살짝 당황하며 그 사람을 뭔가 특이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 취급했었다. 어디 밥먹으러 가면 행복해 하며, 시원시원하게 고르고,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분위기에 익숙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먹는데 까탈스러운 것"은 성격 문제거나, 먹고 사는게 힘든지 모르는 것이거나 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그냥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알아서 하셩" 하곤 그가 정말 왜 채식을 하는지, 어떻게 먹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채식을 하기 시작하니 그런 입장에 내가 처하게 됐다. 내가 채식을 하게 ㅤㄷㅙㄴ 것은 물론 계란 등 특정 동물성 음식이 몸에 안 받는게 분명하다는 걸, 그런게 많아진다는 걸 깨닫게 된 것도 있고, 또 채식하는 사람들 중에 좋은 사람이 많았다던가 하는 *^^* 이유들도 있지만, 분명 어떤 정치적인 것을 포함해 여러가지 이유로 의식적인 선택,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한번 시작한 것에 대한 합리화 경향까지 있고 하니 점점 그런 생각이 굳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걸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어렵다. 역시 많이 나온 말마따나 그 "말함" 자체가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누군가의 익숙한 것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는 - 운동하는 사람이 사실 그런 걸 하는 것이지만 - 일단 그것이 한 세력을 이뤄 표면에 드러나기 전에는 개인적으로 일차적인 충격을 감내할 수 밖에 없으니까.

어디선가 본말인데 "100명의 채식주의자에게는 100가지의 채식주의가 있다". 그만큼 다양한 이유와 방법으로 채식을 한다는 것인데, 나도 마찬가지로(합리화를 위해 갖다 붙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4~5가지의 이유로 채식을 한다. 정치적인 이유가 분명히 있고. 그래서 그것이 도덕적인 강요(생명), 별 색다를 것 없는 유행(건강), 먹고 사는 고민이 좀 한가로워(웰빙)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싶지 않고, 그렇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내 채식의 이유를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고, 그래야 "괜히 미안하고 불편한" 상황도 더 빨리, 부드럽게 정리될 것 같다. 동의하던 안하던, 실천으로 옮겨지던 안되던 뭔가 얘기 자체가 됐으면, 불편해하거나 미안해할 것 없이, 공격이 될까 의식할 것 없이 편하게 화제 거리로 삼아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1달 밖에 안됐고, 사무실에서 밥을 같이 해먹거나, 사람들과 그리 많은 접촉을 가진 것이 아니긴 하지만) "넌 왜 채식하는데?"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그리고 그런 질문이 나오지 않으니 정말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것 같아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 못한다.

인천 공항에 내린 후 서울로 돌아오면서, 한국말로 많이 떠들지 못해 입이 근질근질했던 나는, 원래 잘 안하던 채식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듣는 사람이 불편해한다는 걸 느끼면서도, 약간 조절을 해가며 왠만큼 얘기를 더 한 후에야 화제를 돌렸다. 그 사람이 어떻게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채식주의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면 조금 줄이는데 도움이 됐을 거라고 믿는다. 더 오랫동안 해서 몸에 배고, 더 깊은 고민이 쌓히고, 사람들과 더 협력하고 얘기해보고, 부드럽게 얘기하는 재주까지 익힌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채식에 대해 말하고, 동의와 실천을 이끌어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채식"을 한다는 것이 "단절"이 되서는 안되겠다. 채식을 하는 행위가 뭔가 특이한, 혹은 뛰어난(생명에 대한 감수성 등) 사람이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대중적이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그 정치적 의미, 일상의 실천이라는 의미가 감추어진 상태로 되어서는 안되겠다. 어떻게 보면 운동하는 사람이 대중을 대할때 겪는 어려움이랑 같은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왜?"라는 질문을 끌어내어, 일단 "얘기"가 되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이것이 자신도 해당될 수 있는 일이며, 기꺼이 거대 담론에 못지 않게 에너지를 쏟아가며 실천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그것이 생각만큼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것을 자연스럽게 인식될 수 있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게 필요한게 아닐까? 사실 채식의 취지에 대해 들었을때 "절대 동의 못해!" 그럴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없을 거라고 보이니, "너무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안드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채식을 결정하고, 선언할 정도의 상황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부분적으로라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 예를 들면 "매주 하루는 채식의 날"로 정해 사람들과 채식을 하며,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채식을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육류의 대량 생산"이 큰 배경이라고 하면, 그렇게라도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으면서, 그걸 통해 채식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그래서 좀더 즐겁게 채식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고민할 수 있게 되는 계기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미 그런 "채식의 날"을 실시하고 있는 단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곳도 이런 걸 해보면 어떨지. 불로거들이 함께 하거나. "진보 불로거 채식의 날". 주 1일이 어려우면 월 1일도 상관없겠다. 중요한건, 하루 정도는 누구나 채식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날은 "왜 채식을 하는가"에 대한 얘기가 나올 수 있겠다는 것.

그나저나,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채식을 해도 살이 쪘으면 좋겠다. 요즘은 보는 사람마다 살이 더 빠진다고 하고, 원래 마른 사람이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그래서 울아부지는 "지금 니가 채식하는 건 불효야. 부모 마음을 아프게 하는거라구"라고도 하셨으니. 하지만 내가 지금 살이 빠지는 이유는 분명 스트레스와 고민때문일거야. 살이여 붙어라~! 제발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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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3 00:53 2006/10/2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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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 2006/10/24 03:02 | DEL
지각생님의 [이유를 물어줘] 에 관련된 글. 뭐 길게 쓰긴 그렇고...암튼. 저도 한 두 달 쯤 된 거 같습니다. 뭐 중간에... 소고기도 한 번 먹었고... (아버지 생신에 고기집에 갔는데... 차마 커밍아
Tracked from | 2006/10/24 11:06 | DEL
지각생님의 [이유를 물어줘] 에 관련된 글. 배추가 무가 알타리가 쪽파가 시금치가 상추와 쑥갓이 허브들이 잘 자라고 있다. 밭 고랑에는 심지도 않은 비름나물이 가지를 치며 자라고 길가
ScanPlease 2006/10/23 01:07 URL EDIT REPLY
저의 살을 좀 가져가삼~^^
저는 채식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조금 천천히 물어보고 싶었어요. (나도 채식을 결심하게 된다면..ㅋ)
제가 채식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함께 밥먹으러 갈 때, 채식인의 존재로 인하여, 한번더 채식을 생각해보는 게, 그래서 같이 채식모드로 전환할 가능성의 존재가,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거든요. 특히 술마시러 갈때, 진짜 채식안주만 먹어보고 싶기는 해요.
re 2006/10/23 01:13 URL EDIT REPLY
제 살도 기증하겠삼~^^(책이랑 같이 보내드릴까요? 주소 알려주세요)

전.. 워낙..... 고기를 넘 좋아해서.. ㅤㅎㅡㅋ... 채식관련된 책 읽고나도 몸이 전혀 움직여주질 않아서... ㅤㅎㅡㅋ... 채식얘기는 아직 넘 멀어요..

근데요, 먹는 거를 조절하려면 일상생활이 편안하고 맘이 안정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심신이 고단하면 먹는 것부터 흔들리더라니깐요.
지각생 2006/10/23 01:46 URL EDIT REPLY
ScanPlease// 커헉~ 조직검사부터 받읍시다 :) "채식안주만 먹기" 이것도 괜찮네요. 어떻게든 육류 소비를 조금은 줄일 수 있을테니. 뭐든지 조금씩이라도 실제로 해나가면 좋겠삼. 글고 환영파뤼 감사~ ^^

re// 정말 책이랑 같이 보내주시나요? 몸과 마음을 다 살찌워주시는군요 ㅋㅋ 맘의 안정, 그거 정말 필요한 듯 합니다. 근데 저도 사실 별로 안정되지 못했는데 일단 시작했어요. 채식이 정신 안정에도 도움되지 않을까 해서 ^^ 주소를 어케 알려드리면 좋을까나. 여기다 적으면 팬레터가 봇물일거고.. (허기에 착란증상이 -_-/) 멜 주소를 알려주시면 멜로 쏘겠삼.
re 2006/10/23 01:59 URL EDIT REPLY
새벽불질쟁이들이.. 다시 모였구만요. ㅋㅋ

주소는 imho@jinbo.net 으로 보내주세요. 한시간 전 허기진 배를 겨우 '고기'만두로 달랬슴다.쩝.. 김치만두 먹을 걸 그랬나? ㅎ
ScanPlease 2006/10/23 02:00 URL EDIT REPLY
커헉. 조직검사씩이나... 저는 그저 제 살을 잘라서 갖다가 붙여주려고 했는데..ㅋ
우리는 새벽불질쟁이들 룰루랄라~
사실 저도 세시간 전에 순대볶음 먹었어요. -_-
지각생 2006/10/23 02:08 URL EDIT REPLY
고해성사 신앙고백 무드? ㅎㅎ 불질은 새벽에 해야 맛 :D
ScanPlease 2006/10/23 02:13 URL EDIT REPLY
채식신님의 용서를 바라는 바입니다.~^^
dalgun 2006/10/23 04:44 URL EDIT REPLY
음.. 채식에 대해서는 아직도 할말이 제대로 안터져 나옴,
목구멍에 걸려서...어제도 가족들이랑 잠시언쟁이있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가족들이랑 이야기하는게 더 잘안되더구만요..
정화 2006/10/23 08:50 URL EDIT REPLY
이제 주변사람들과 어느정도의 소통이 되어서 그런지 측근들은 채식에 대해 묻지 않고, 식사 때도 혼자 꼼꼼히 챙겨먹도록 배려받고 있어요- 아무래도 채식 커밍아웃과 함께 그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을 줄여주고, 그리고 육류의 대량생산과 불필한 섭취에 대해 약간은 인식 시켜줄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정화 2006/10/23 08:51 URL EDIT REPLY
아 하지만 정말 관건인 인스턴트를 줄이지 못하는 빈곤한 자취생의 상태라 참 안타까울 뿐이라는 거죠.. 흠.. 이게 참 딜레마예요
지각생 2006/10/23 15:07 URL EDIT REPLY
달군// 혹 또 체하신건 아닌지. 정말 가족들과 민감한 얘기하기 힘들어요. 더 상처주기 싫거나 상처받기 싫거나.

정화// 네, 말하기 거시기해도 어떻게든 말을 해서 인식을 계속 확장해 나가야겠삼. 채식공동체가 필요한것 같습니다. 빈곤한 자취생들이여 단결하라!
디디 2006/10/23 15:17 URL EDIT REPLY
스캔이 조만간 채식요리의 달인으로 거듭날것 같으니 기다려보삼. 아참, 나도 채식요리 잘하는데 -ㅅ-); 육식도 잘먹는 채식요리사로 활동해볼까. 쿠헱헱- (게다가 육식도 현저히 줄이고 있어용;;;)
ScanPlease 2006/10/23 17:21 URL EDIT REPLY
헉... 조만간이라니... 저는 아직 작정하지도 않았는데..ㅋㅋ
달군 2006/10/23 19:48 URL EDIT REPLY
그들은 먹고 나는 안먹고 있는 상황이었음..-_-; 통닭시켜서 먹는데, 난 암말도 안했는데 시비를 걸더라구요.ㅋ
ScanPlease 2006/10/23 23:35 URL EDIT REPLY
달군 // 그게요. 흡연자가 비흡연자에게 담배펴보라고 시비거는 것 같은 느낌일 것 같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
지각생 2006/10/24 00:28 URL EDIT REPLY
-_- 피곤하셨겠삼. 그래도 먹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체하진 않았겠군요 :)
지음 2006/10/24 02:27 URL EDIT REPLY
나도 오늘 채경이 물어봤는데... 우물쭈물 하고 말았음. 암튼 이번 기회에 나도 커밍아웃을... ㅋㅋㅋ
abby 2006/10/24 13:42 URL EDIT REPLY
정말로 이유가 묻고 싶어졌어요. 그러니까 뭐랄까 조목조목 얘기가 듣고 싶어졌달까요. 살이 찌고 싶으시면 초콜렛의 꾸준한 대량섭취를 권합니다. 뭘 먹든 설탕과 기름도 팍팍 치시고요. 언제나 한 손엔 빵을!! 유제품을 드시는지 잘 모르겠는데, 만약 유제품을 섭취하신다면 버터와 치즈를 역시 대량 섭취하시길. ;;
가족 얘기를 잠깐 하자면 부모님이 불교 신도라서 '나도 그러고 싶지만 못 하는데, 넌 훌륭하구나' 뭔가 이런 반응을 받았습니다. 동기 자체는 다르지만, 얘기를 시작하고 계속하기에는 굉장히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 돌아가면 부모님과도 채식에 관해서 얘기 많이 하려고요.
지각생 2006/10/24 15:34 URL EDIT REPLY
지음// ㅎㅎ 드디어. 자, 이제 계란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가 되셨삼? ㅋ

abby// 히익, 갑자기 긴장되네요. "조목조목" ㅋ 덧글로 달기보다는 더 생각을 정리해서 포스팅을 하는게 낫겠습니다. 일단 한가지 이유는 고기 대량생산을 위해 굶주리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곡물을 소에게 먹여 먹이사슬의 효율성이랄까 그런걸 떨어뜨리는 것도 있고, 또 그렇게 키워진 소는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이 먹게끔 되는 것이 아니죠. 결국 굶주리는 사람에게 갈 수 있는 음식을 엄청 낭비해가며 도시 혹은 잘 사는 사람들의 만족을 위해 돌린다는것.
사실 전 귀가 얇아, 여러 가지 이유들을 듣다 보면, "그래 나도 동의해" 하며 다 제 이유로 삼아 버립니다. 다 삼켜버린달까요? ㅎㅎ
유제품도 대량생산 문제와 연결되어 있어 안먹으려 하는 입장이에요.. 초콜렛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지만 유제품이 안들어간다면 많이 먹어야겠군요(누가 좀 알려주심 감사)
제 부모님도 기본적으로는 채식이 좋다는 입장인데 다만 제 건강을 해칠것을 걱정하는 편이라 얘기하기 불편한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고기를 평소에 워낙 못 먹는 형편이다 보니 가끔 삼겹살 구워 먹는 걸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상황이라 조금 문제가 됩니다. 일단 일하면서 먼지를 많이 뒤집어 쓰시는 아버지는 삼겹살이 그럴때 좋다는 말을 들으신후 예찬론자가 되셨고, 다같이 모여 앉아 구워 먹는 분위기를 좋아하시는 어머니, 평소 고기를 먹고 싶지만 잘 못먹어 그때 열심히 먹는 형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 모두 날씬하죠 ^^
abby 2006/10/25 11:57 URL EDIT REPLY
초콜렛에도 유제품이 들어가는군요. 털썩. 웬만한 라면 스프에도 고기 분말이 들어가는 거 같습니다. 제가 확인한 건 '튀김우동, 김치사발면, 짜장범벅' 어제 받은 소포에 있는 라면 중 먹을 게 하나도 없군요. 어흑.
초희 2006/10/25 12:19 URL EDIT REPLY
채식하는 사람들 중에 좋은 사람이 많았다던가 하는 *^^*
>>저 말씀이시죠[...;;; 파닥파닥]

[...수습수습] 시중에 파는 초콜렛은 모두(!) 유제품이 들어갑니다ㅠ만 초콜렛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깨작깨작 먹어 오다가[퍽] 어제 카카오100%가루를 사서 조청[무설탕 인생에도 도전하겠습니다>ㅅ<]과 바닐라향과 두유와의 배합 비율을 어떻게 해야 먹을 만한-_- 핫초코를 만들지 연구하기 시작했는데.....시판하는 코코아가 왜 우유와 설탕 범벅인지 알 만하겠더군요;ㅁ;
지각생 2006/10/26 00:07 URL EDIT REPLY
abby// 아.. 아쉽군요. 괜찮으면 초콜릿 많이 먹어볼까 했는데 ㅋ 라면을 끊은 것도 제 식생활의 크나큰 변화 중 하나랍니다. 아, 채식라면이 있죠. 이번에 런던가서 맛있게 먹었어요 :)

초희// 강하시군요. ㅎㅎ
먹을 만한 핫초코를 만들면 꼭 한번 맛보게 해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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