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을 시작한지 이제 한달이 됐다. 아직 요리를 거의 안해보고(채식라면 끓이는 정도 ㅋ) 음식에 대한 고찰?도 충분히 안돼서 힘든점이 많다. 평소에 고기를 많이 먹은 것도 아닌데, 이 연비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신진대사 탓인지, 밥을 더 많이 먹게 되고, 계속 배가 고프다.
그래도 이제 조금씩 몸에 배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 대견스럽다. "육식의 종말"등 책도 읽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조금씩 조금씩 보고 듣는 내용 주워담는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해서. 그럴 수록 채식을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이제 그렇게 되면 당연한 수순일, "함께 해요~"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나보다 먼저, 오랫동안 채식을 해온 주위, 불로그 사람들의 말씀 마냥, 채식을 한다는 건 그 자체만의 어려움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피곤함을 많이 겪게 되는 것 같다. 함께 밥먹으러 갈때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것(어제 만난 사람이 "적대적으로 협박을 받았다"는 말까지 들었다.), 괜히 미안해 하는 것들. 그럴때마다 "괘얀아, 신경쓰지 말고 먹어. 내 먹을 건 내가 알아서 챙길께"하고 사람들 맘 편하게 해 주기 위한 감정노동을 부차적으로 해야 한다. 지금까지 채식하며 가장 편안하게 먹은 것은, ㅎㅎ 우습게도 "기내식"이었다. 총 8번(9번이던가?)의 식사를 하면서, 미리 채식을 한다고 말을 해놓은 덕에 그냥 나오는 대로 받아 먹기만 하면 됐던 것이다. 뭘 먹을지, 어떻게 먹을지 고민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 신경쓸 일도 없었다 :)
사실 나도 그랬다. 채식을 한다는 사람이 있고, 같이 밥을 잘 안먹게 되거나, 먹으러 가서도 다른 사람과 확연히 구분되는 모습들을 볼때는, 살짝 당황하며 그 사람을 뭔가 특이한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 취급했었다. 어디 밥먹으러 가면 행복해 하며, 시원시원하게 고르고,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분위기에 익숙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먹는데 까탈스러운 것"은 성격 문제거나, 먹고 사는게 힘든지 모르는 것이거나 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그냥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알아서 하셩" 하곤 그가 정말 왜 채식을 하는지, 어떻게 먹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채식을 하기 시작하니 그런 입장에 내가 처하게 됐다. 내가 채식을 하게 ㅤㄷㅙㄴ 것은 물론 계란 등 특정 동물성 음식이 몸에 안 받는게 분명하다는 걸, 그런게 많아진다는 걸 깨닫게 된 것도 있고, 또 채식하는 사람들 중에 좋은 사람이 많았다던가 하는 *^^* 이유들도 있지만, 분명 어떤 정치적인 것을 포함해 여러가지 이유로 의식적인 선택,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한번 시작한 것에 대한 합리화 경향까지 있고 하니 점점 그런 생각이 굳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걸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어렵다. 역시 많이 나온 말마따나 그 "말함" 자체가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누군가의 익숙한 것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행위는 - 운동하는 사람이 사실 그런 걸 하는 것이지만 - 일단 그것이 한 세력을 이뤄 표면에 드러나기 전에는 개인적으로 일차적인 충격을 감내할 수 밖에 없으니까.
어디선가 본말인데 "100명의 채식주의자에게는 100가지의 채식주의가 있다". 그만큼 다양한 이유와 방법으로 채식을 한다는 것인데, 나도 마찬가지로(합리화를 위해 갖다 붙이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4~5가지의 이유로 채식을 한다. 정치적인 이유가 분명히 있고. 그래서 그것이 도덕적인 강요(생명), 별 색다를 것 없는 유행(건강), 먹고 사는 고민이 좀 한가로워(웰빙)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싶지 않고, 그렇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내 채식의 이유를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고, 그래야 "괜히 미안하고 불편한" 상황도 더 빨리, 부드럽게 정리될 것 같다. 동의하던 안하던, 실천으로 옮겨지던 안되던 뭔가 얘기 자체가 됐으면, 불편해하거나 미안해할 것 없이, 공격이 될까 의식할 것 없이 편하게 화제 거리로 삼아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1달 밖에 안됐고, 사무실에서 밥을 같이 해먹거나, 사람들과 그리 많은 접촉을 가진 것이 아니긴 하지만) "넌 왜 채식하는데?"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그리고 그런 질문이 나오지 않으니 정말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것 같아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지 못한다.
인천 공항에 내린 후 서울로 돌아오면서, 한국말로 많이 떠들지 못해 입이 근질근질했던 나는, 원래 잘 안하던 채식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듣는 사람이 불편해한다는 걸 느끼면서도, 약간 조절을 해가며 왠만큼 얘기를 더 한 후에야 화제를 돌렸다. 그 사람이 어떻게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채식주의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면 조금 줄이는데 도움이 됐을 거라고 믿는다. 더 오랫동안 해서 몸에 배고, 더 깊은 고민이 쌓히고, 사람들과 더 협력하고 얘기해보고, 부드럽게 얘기하는 재주까지 익힌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채식에 대해 말하고, 동의와 실천을 이끌어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채식"을 한다는 것이 "단절"이 되서는 안되겠다. 채식을 하는 행위가 뭔가 특이한, 혹은 뛰어난(생명에 대한 감수성 등) 사람이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대중적이지 않다고 생각되거나, 그 정치적 의미, 일상의 실천이라는 의미가 감추어진 상태로 되어서는 안되겠다. 어떻게 보면 운동하는 사람이 대중을 대할때 겪는 어려움이랑 같은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왜?"라는 질문을 끌어내어, 일단 "얘기"가 되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이것이 자신도 해당될 수 있는 일이며, 기꺼이 거대 담론에 못지 않게 에너지를 쏟아가며 실천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며, 그것이 생각만큼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것을 자연스럽게 인식될 수 있도록.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게 필요한게 아닐까? 사실 채식의 취지에 대해 들었을때 "절대 동의 못해!" 그럴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없을 거라고 보이니, "너무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이 안드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채식을 결정하고, 선언할 정도의 상황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부분적으로라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 예를 들면 "매주 하루는 채식의 날"로 정해 사람들과 채식을 하며,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채식을 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육류의 대량 생산"이 큰 배경이라고 하면, 그렇게라도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으면서, 그걸 통해 채식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그래서 좀더 즐겁게 채식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고민할 수 있게 되는 계기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물론 이미 그런 "채식의 날"을 실시하고 있는 단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곳도 이런 걸 해보면 어떨지. 불로거들이 함께 하거나. "진보 불로거 채식의 날". 주 1일이 어려우면 월 1일도 상관없겠다. 중요한건, 하루 정도는 누구나 채식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그날은 "왜 채식을 하는가"에 대한 얘기가 나올 수 있겠다는 것.
그나저나,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채식을 해도 살이 쪘으면 좋겠다. 요즘은 보는 사람마다 살이 더 빠진다고 하고, 원래 마른 사람이 무리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그래서 울아부지는 "지금 니가 채식하는 건 불효야. 부모 마음을 아프게 하는거라구"라고도 하셨으니. 하지만 내가 지금 살이 빠지는 이유는 분명 스트레스와 고민때문일거야. 살이여 붙어라~! 제발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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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 2006/10/24 03:02 | DEL
지각생님의 [이유를 물어줘] 에 관련된 글. 뭐 길게 쓰긴 그렇고...암튼. 저도 한 두 달 쯤 된 거 같습니다. 뭐 중간에... 소고기도 한 번 먹었고... (아버지 생신에 고기집에 갔는데... 차마 커밍아 |
Tracked from | 2006/10/24 11:06 | DEL
지각생님의 [이유를 물어줘] 에 관련된 글.
배추가 무가 알타리가 쪽파가 시금치가 상추와 쑥갓이 허브들이
잘 자라고 있다.
밭 고랑에는 심지도 않은 비름나물이 가지를 치며 자라고
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