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발렌타인데이라는 걸 일어나서야 알았다. 뭐 이런 말을 블로그에 올리면 사람들이 날 보고, 참 세상 힘들게 사네,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어제 늦게까지 과음을 한 탓에 늦게 일어났다. 나처럼 태평스런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남들은 새벽부터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는 데, 새벽까지 술 퍼마시고 늦게까지 자빠져 자고 오전도 아니고 오후에 TV채널 이리저리 돌리며 아침도 아니도 더구나 점심도 아닌 밥을 먹겠다고 앉아있다니.(이건 다른 누구의 말도 아니고 내가 나에게 항상 하는 잔소리다)

TV를 켜고 YTN으로 채널을 돌리니 이멍박 씨 이야기가 튀어나오기에 얼른 채널을 돌렸다. 마치 예전의 땡전 뉴스처럼 생각되어 이젠 뉴스 채널을 기피한다. 분명 낯익은, 어디서 본 듯한 여성이 나오는데, 이름이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군. "이프 온리"라는 제목을 보니 "제니퍼 러브 휴잇"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그렇게 미인은 아닌데, 묘하게 귀여운 얼굴과 작은 몸매를 가진 여배우. 이 영화는 현대적 의미의 "사랑의 이념"을 보여준다. 뭐 당연하게도 사랑의 이념을 가장 완전하게 구현하고 있는 작품은 누가 뭐래도 "로미오와 쥴리엣"이다.

"이념" "Ideal" "Idee" "Idée". 이념을 갓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에게 정확하게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종종 비유를 드는 데, 이를테면 사랑의 이념이 있다면 아마 그건 "로미오와 쥴리엣"의 사랑이 아니겠느냐는 식이다. 그런데, 또 쉽지가 않다. 이유는 요즘 학생들은 고전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거다. 읽지 않는 게 아니라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수도 있고, 사실 요즘 세상에는 책보다 흥미를 끄는 게 더 많다. 그럼에도 "로미오와 쥴리엣"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중학생이 되면 부모들은 "중고생을 위한" 세계명작전집을 한 질씩 사다 집에 갖춰 놓는다. 그런데, 이 중고생을 위한 전집이라는 게 펼쳐보면 글자도 큼지막하고 행간도 넓고 더러 군데군데 컬러풀한 그림도 곁들여 읽기가 여간 좋은 게 아니다. 그러나 이런 다이제스트 판은 내용 파악에는 좋은데 문학 작품만이 가질 수 있는 문자 표현의 묘미를 그대로 살리지는 못한다.

하나 더, 우리나라 중고등학생은 몸과 정신의 발전이 불균형하게 이루어진다. 몇몇 특수한 학생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사춘기가 훨씬 지났는데도 이성 친구가 없다. 중학생의 경우 이런 불균형 상태는 너무 심각하고 어떤 경우에는 왜곡되어 있기도 하다. 고등학생이라고 다를까? 수입을 위해 매년 특정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고3학생들을 아주 가까이에서 접하게 되는데, 이들도 예외 없이 이성친구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은 이성친구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한다. 안을 들여다보면 입시 공부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이 피가 끓고 살이 타는 젊은이들은 이성을 만나고 이성과 청춘을 즐길 여유도 없고 그럴 환경도 조성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가 어느 새 빠른 속도로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 중학교는 대다수의 학교는 아니지만 남학생 반과 여학생 반이 구분되어 있는 경우가 있다. 고등학교는 대다수의 학교가 그렇다. 심지어 고등학교는 층간으로 남녀 반이 구분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남녀공학은 말 그대로 남녀 학생들이 단지 동일한 학교를 다닌다는 의미 이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렇게 남녀 학생들을 인위적으로 떼어놓은 데는 여학생들이 남학생보다 성적이 뛰어나기 때문에 내신 성적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사실이 아니기를.

사정이 이런데 어떻게 강의시간에, 그것도 수강생의 반 이상이 신입생인 교양 과목 강의에서 사랑의 이념을 논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건 어디 까지나 그들 문제고 나는 어떤가? 나는 그들보다 형편이 나은가? 그런가? 나는 요즘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살아가면서 그렇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일까. 나는 아직도 무슨 무슨 ‘데이’에 선물을 줘본 적이 없다. 그런 건 단지 허식일 뿐이라고 외면하면서. 나는 얼마나 선물에 인색한 놈이었던가.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아, 이젠 정말,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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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4:20 2012/01/09 14:20

GM대우 부평공장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며 현재 공장 옆 CCTV타워 위에서 41일째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전 이멍박 씨가 법을 어기는 민주노총과는 만날 수 없다며 바로 이곳을 방문해 외국인 사장과 이곳 부평공장 노조지부장과 "환담"을 가졌단다. 참 어처구니 없는 건 인수위 대변은 이곳을 방문한 이멍박 씨가 "외국인 사장과 노조위원장이 통역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것을 보고 씁쓸해 했다"고 전했다. 바로 이멍박 씨가 영어교육에 올인하는 까닭이란다.

아래 글은 지난 1월 29일 GM대우 부평공장 비정규 노동자가 쓴 글이다.


천막을 친지도 3개월이 넘었고 지회 동지가 고공농성을 벌인지도 34일가 되었습니다. 짧은 투쟁기간이지만 오늘처럼 마음이 불편한 것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오늘 부평공장에 이명박이 왔다갔습니다. 민주노총 일정을 취소하고 대신 '노사화합 모범기업 GM대우'로 온 것입니다. 와서 한다는 말이 법을 지키기는 노조는 존중할 것이며, 5년 무파업 대자지부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대자지부 지부장은 대의원대회도 중단한 채 이명박을 영접하며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사진들을 연출했더군요. 민주노총을 엿먹이기 위해, 이곳으로 왔는데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업장 지부장이 환대를 하는 웃지못할 상황. 과연 엿먹은 민주노총은 뭐라고 할까, 금속노조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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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노동운동 내에 건강한 비판이 사라지고 어용 짓거리가 일반화되어버렸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현자 이상욱집행부의 류기혁열사 관련 논란 이후로는 이러한 비판이 완전 사라진 것 같습니다. 사실 어느 하나 자유로운 자 없으니 다들 공범이 되어 침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현실이라고 해야겠죠. 금속노조에서도 더 이상 중앙파니, 현장파니 하는 구분은 무의미해진 것 같습니다. 이해를 같이 하는 기업지부들이 우파니 좌파니 상관없이 한통속이 되어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대공장 정규직노조의 현실적 한계와 엉망진창 노동운동의 현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정말 열이 받습니다.


관련 기사는 여기=>"GM대우가 죽든 내가 죽든 결판을 보고 내려가겠다."(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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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4:15 2012/01/09 14:15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학부생일 때 아벨 페라라 감독의 "바디 에어리언"(Body Snatchers)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원래 B급 영화를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경우였다. 지난해에는 니콜 키드먼 주연으로 "인베이젼"이라는 제목의 리메이크 영화가 개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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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지구의 어느 마을에 침입한 외계인들이 지구인의 신체를 강탈하여 마을 사람들을 모두 외계인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다. 최근 민주노동당 사태를 보면서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애초 당을 만든 건 PD(지금은 평등파라고 불린다) 진영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NL(자주파) 진영의 활동가들이 하나 둘 당에 들어왔다. 몇 년 전부터 거의 당을 장악하더니 지방의 지역위원회에서는 PD진영의 활동가들이 하나 둘, 자의반 타의반 당을 떠나는 상황에 이르렀다.

민주노동당을 창당할 즈음 NL 진영의 대세는 "비판적지지론"이었다. 물론 그 대상은 김대중이다. 이 사람들의 이념에 따르면 당이 이미 존재하는데(북쪽에) 또 무슨 당을 만드느냐는 것이었다. 그런 논란이 있었다. 지금도 그래서 남한의 당은 북쪽의 당을 보위하는 전술적 차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알고 있다.(뭐 아직도 있을라나? 그래서 "신체 강탈자들"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전위당은 오직 하나로 족하다!

뭐 자주파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이런 사태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 민주노동당을 만든 세력의 다수가 사민주의자들이었고,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은 아주 소수였다. 그런데 이 다수의 사민주의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하면, 그야말로 얼치기 사민주의자들인데다, 애초 갈 때까지 간 패배주의들이었으며 현실을 핑계로(당시 좌파의 현실은 USSR의 몰락이었다) 노무현이 주창하고 요즘은 이멍박 씨가 계승한 실용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의 실용주의는 한마디로 나에게 좋으면 다 좋다는 생각을 실제로 실현시키는 것을 말한다. 아마 제대로 된 사민주의자들이었다면 민주노동당이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며, 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자본을 중심으로 사회가 운영된다. 이 사회에서 인간은 자본의 이윤을 창출하는 수단으로만 고려된다. 사실 자본가들은 인간보다 기계가 훨씬 더 이윤 창출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진보라는 명제는 자본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이윤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 단순한 진리를 부정했던 것이다. 새로운 진보는 없다. 현실의 자본주의가 전혀 새로운 자본주의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자주파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그러니 이참에 통일을 대비하는 민족민주정당을 만들자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냥 이참에 북쪽으로 올라가서 그곳에서 사는 게 남한 인민들을 위해서는 더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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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4:11 2012/01/09 1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