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를 꿈꾸다
분류없음 2010/11/19 17:19꿈을 꿨다.
어디엔가 내동댕이쳐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본정리 부근이었다.
꿈에서도 나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열심히 페달을 굴렸다.
어두워서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여기가 팽성 주민들이 촛불집회를 열던 본정리 농협 부근이란 것을 알았고, 자전거를 타고 함정리, 도두리, 신대리 쪽으로 가려고 했다.
날이 심하게 어두웠고, 가로등 같은 것은 없었다.
갑자기 앞에서 성 같은 것이 나타났다.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대분에 미군기지라는 것을 알았다.
그곳을 피해 돌아가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내가 가는 길 위에 버티고 서서 날 막았다.
검문소 같은 곳을 통과하나 싶었는데, 군인들 2명이 서서 나를 막지 않았다.
한 명이 제지하려고 했는데, 또 한 명이 괜찮다면서
"내비둬, 어차피 지역 주민일텐데... 지금 이 시각에 여기 자전거 타고 돌아다닐 사람이 주민밖에 더있겠어."
하면서 날 무사통과시켰다.
나는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고 싶었다.
실은 너른 황새울 들판을 가로질러 대추리에 가보고 싶었다.
그 마을이 꼭 거기 다시 있을 것만 같았다.
길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본능적으로 함정4리를 지나 도두2리 방면으로 가고자 했다.
이제 도두2리를 지나면 곧 문무인상이 나오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직진의 좁은 길, 내가 도두리와 대추리를 왔다갔다할 때마다 지나던 바로 그 길, 자전거로 가면 10분이 걸리고, 오토바이로 가면 5분이 걸리고, 걸어서 가면 20분, 지는 노을을 보며 천천히 산책이라도 할라치면 30분이 걸리던 그 길을 따라 가면 곧 대추리 4반뜸이 보이고, 그 언덕 위 지킴이네 집과 바로 옆 내가 살던 '철조망을 불판으로' 옆집이 보일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일단 물을 길어오고, 생태화장실에서 쓸 왕겨를 좀 구해오고, 겨울이 다가오니 추위에 대비 구멍난 유리창을 비닐로 메우고, 부탄가스 버너에 저녁에 먹을 야채라도 좀 볶아야 할 것이며, 아무리 연탄난로를 피워놓아도 실내 기온도 0도에 가까울 것이니 빈집들을 돌며 혹시 누가 버리고 간 전기장판이나 전열기구는 없는지, 누가 버리고 간 두껍고 깨끗한 이불은 없는지, 누가 미쳐 챙기지 못하고 남기고 간 오리털 파카 같은 것은 없는지 홈쇼핑을 해야 한다.
얼론 밥을 먹고는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열리는 팽성주민촛불행사에 가야 할테고, 오랜만에 지킴이들과 노래라도 하려면 다만 10분이라도 연습을 해야 하는데, 지킴이들은 촛불행사에 안오고 다들 뭘하고 있나...
고민이라도 하는 순간 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웅장한 성같은 구조물이 길 끝에 서있다.
너무나 어두워서 그 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슨 글씨가 씌여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그 안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없다.
길을 돌려 돌아오는데, 내가 살던 기숙사가 나왔다.
방들이 여러 개 있는데, 도무지 내가 몇 호에 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보고 기억상실증이라고 했다.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 푹신한 침대에서 편히 쉬고 싶었는데, 방 호수가 기억나지 않았다.
사람들을 붙잡고 묻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두 외국인들 같았다.
아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제프였다.
내가 몇 호에 살았는지 기억하느냐고 물었는데,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다들 나를 몰랐다.
기숙사 2층에는 방들이 약 10개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각 방마다 호수가 적혀 있는데, 내가 살던 방은 몇 호였을까?
방마다 일일이 들어가 본다.
남여가 같이 사용하는 혼숙의 방에는 널찍한 침대가 3-4개씩 있는데, 어떤 방의 침대는 이불이 깨끗하게 개켜져 있는가 하면 다른 방에는 좀전까지 누가 누워 자다가 막 일어난 듯 이불이 심하게 엉켜 있기도 했다.
나의 흔적을 찾으려고 해보았으나 실패.
기숙사를 돌아다니다 사람들이 모여 간식과 음료수를 사먹는 간이매점엘 갔다.
그곳에서도 역시 날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집으로 가고 싶은데, 갈 수가 없었다.
고향은 사라지고, 고향으로 가는 길은 미군기지 같아 보이는 정체 모를 웅장한 구조물에 막혀버렸고, 어쩌다 내가 살던 곳으로 오긴 했으나 나는 다시 기억상실증에 걸려버렸다.
막막하다.
나는 앞길을 헤쳐나가려고 했는데, 또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었다.
공사중 삐져나온 굵은 쇠심들과 철사들과 콘크리트 구조물과 온갖 가시들이 길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길을 가려면 그런 것들을 요리조리 통과해서 몸을 빼내야 하는데, 너무 좁았다.
철사에 걸리고, 쇠심에 걸렸다.
갈고리가 튀어 나와 나를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저냥 피해가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나만 버둥대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그건 옛날 대추초등학교가 무너진 자리에 생겨난 콘크리트와 쇠심 잔해물 같았다.
난 그곳에서 아직도 허우적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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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보니 그건 옛날 대추초등학교가 무너진 자리에 생겨난 콘크리트와 쇠심 잔해물 같았다. 난 그곳에서 아직도 허우적대고 있었다. http://blog.jinbo.net/dopehead/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