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이들의 기쁜 축제
꼬뮨 현장에서 2010/09/03 05:549월 2일 두리반 단전 44일째, 마포구청 앞에서 1인시위를 했다.
지나가던 분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주변엔 특히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많았는데, 관심을 많이 보여주었다.
마포구청 직원들은 항상 그렇듯 별 관심 없이 힐끗 보고 그냥 지나친다.
나는 그냥 웃어주기로 한다.
오늘은 MBC 뉴스후플러스에 두리반 이야기 '쫓겨난 이들의 슬픈 축제'가 방영되었다.
1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2층에 모여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두리반 옥상에 설치된 몇 대의 태양광 발전패널을 통해 만들어진 전기는 축전지에 저장되고, 그렇게 모인 전기를 두리반에서는 알전구와 선풍기 그리고 전자모기향 등을 켜는데 사용한다.
지난 6.2 지방선거 개표방송 이후 두리반에 사람들이 모여서 텔레비전을 같이 본 것은 처음이다.
아무래도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를 켜거나 하면 아침이 되기 전에 모아둔 전기가 소진돼버릴 것이기에 두리반에서는 거의 강박적으로 모든 전자제품의 플러그를 뽑고, 최소한으로 사용을 한다.
그래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다른건 몰라도 이런 TV 프로그램은 같이 봐야 한다.
꼬뮨 현장을 함께 일궈가는 사람들과 같이 이런 프로그램을 본다는 것은 참 특별한 경험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전국 공중파 방송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모두들 눈과 귀를 쫑긋 세운다.
우리의 이야기를 어떻게 다룰까.
부족한 부분이 없을리 없다.
나 같으면 이렇게 처리했겠다 라는 부분도 눈에 띄기 마련이다.
그런데 빼앗긴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공중파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기쁘다.
세상이, 우리의 절규를 들어준다는 느낌을, 오랜만에 받게 되기 때문이다.
뉴스후플러스 팀은 용산참사와 두리반의 투쟁 그리고 이 재개발 문제와 철거민들에 대해 나름의 애정을 갖고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 같다.
정성이 느껴진다.
그래, 최소한 왜곡하지 않고라도 내보내는 것이 어디냐.
거기다 단순히 두리반의 문제만이 아니라 용산참사와 재개발의 문제가 구조적 측면에서 다뤄지고, 현재 법체제의 한계상 어쩔 수 없이 세입자들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긴 채 철거민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삼성물산이나 GS건설 같은 대기업 건설자본의 폭력과 횡포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못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세입자들이 현재의 체제상 철거민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사회가 용산참사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안고 살고 있다.
이것은 2009년 이후 지금 이 시각까지 내가 화두로 안고 있는 지점이며, 두리반에서 지내며 항상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용산참사는 그 본질에 있어서 대기업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 국가가 가장 무도한 폭력을 사용해 이익실현에 방해가 되는 철거민을 살해한 사건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2009년 한국이라는 국가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자본가들을 위한 사냥개 정도가 돼버린 국가를 가만 내버려둘 경우 용산참사 같은 사건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언제든 다시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용산참사 현장에 상주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이 국가는 철거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워 감옥에 가두고, 공권력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딱 잡아떼는 식으로 용산참사를 해결하려고 한다.
터져 나오는 불만은 돈을 적당히 주어 억누르면 되고, 아예 자본권력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경찰력을 비롯한 공권력을 강화해 철거민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 지금 한국이라는 국가가 용산참사를 해결하는 방식인 것이다.
두리반은 이렇게 억눌려터지고 있는 용산참사의 또다른 얼굴이다.
자본가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짜여져 있는 개발관련 법제도를 그대로 두고 공정사회를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두리반 투쟁은 널리 알리고 있다.
지배계급을 구성하는 권력자들은 오늘도 위장전입과 땅투기로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부자들이 대다수의 세입자들 재산을 가로채는 것을 법으로 허용하는 지금의 부동산왕국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용산참사를 제대로 풀기 위해 두리반에서 그리고 또다른 철거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 왕국을 허물기 위해 온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법은 가진자들의 편이다.
우리는 그 가진자들의 편인 법을 허물기 위해 오늘도 이를 악물고 투쟁을 한다.
힘들지만, 나는 그 투쟁의 일상을 생명력으로, 재미로, 자율성으로 그리고 해방감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일사불란한 조직의 위계질서를 통해 하달된 명령을 이행하는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창조적 힘을 깨워 스스로 주체가 되고, 다른 동지들과 언제든 수평적으로 연대해 거대한 그물을 만들어나가는 자신감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고되지만, 나는 행복하다.
내가 막장과도 같은 철거운동 현장에서 오래 버텨나가는 비결은 여기에 있다.
가장 잔인한 국가의 폭력, 그리고 그 뒤에 버티고 서서 역겨운 이윤을 취하는 자본가들의 폭력에 맞서서 비폭력직접행동을 통해 차츰 세상을 바꿔나가는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힘내자, 조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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