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청 농성장에서

나의 화분 2010/07/31 17:48

살아오면서 미안한 일이 많았지만, 내 몸에 대해 제일 미안하다.

내 몸을 함부로 대하기도 하고 멋대로 착취하기도 했다.

시간이 부족할 땐 아예 잠을 재우지 않았고 항상 돈 걱정에 맛있는 것 한 번 제대로 먹여보지 못했다.

 

두리반 단전에 항의하는 마포구청 농성이 6일째에 접어든다.

 

전기없이 당신은 얼마나 살 수 있는가?

두리반 사람들은 이 폭염에서 전기없이 11일째 버티고 있다.

사람들은 여름 휴가 언제 가냐고들 서로에게 묻는다.

 

폭염속에서 가해진 단전이라는 인권말살, 촬영장비를 부수겠다는 구청 직원들의 위협, 형법에 나오는 공무집행방해와 불법점거라면서 경찰을 불러 강제연행하겠다는 압박도 끊임없이 가해졌고, 두리반 안종녀 사장을 향해 한전 측에서는 '범죄자에게는 전기를 줄 수 없다'고 소리를 치며 범죄자라는 낙인까지 뒤집어씌웠다.

힘들게 번 돈을 모두 쏟아부어 2005년 두리반 식당을 열고 누구보다 힘들게 열심히 살아온 그에게 악마와도 같은 토건자본가들이 몰려와 재건축을 한다며 쫓아냈고, 가진자들만을 위한 법 때문에 알거지로 쫓겨나게되자 세상에 이런 법은 없다면서 바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농성을 시작한 것이 2009년 12월 25일 밤 아니던가.

2009년의 크리스마스날 밤.

난 무거운 공기가 현장을 짓누르던 그 날을 명확하게 기억한다.

용산참사 현장 레아에 앉아 기쁘다 구주오셨네라는 캐롤이 저 멀리서 울러퍼지는 아련한 소리를 들으며 또 누군가가 고통을 당하고 있을까, 이 시대의 비극은 언제 끝나려나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지금 우리는 이곳에서 목숨을 건 농성투쟁을 하고 있다.

잠자리는 불편하다.

직원들의 불편하고 따가운 눈치도 괴롭다.

밤새 살점을 물어뜯으며 달려드는 모기들에도 지쳤고, 쇠귀에 경읽기처럼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며 자기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드는 자들에게도 지쳤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항의농성의 먹먹함에도 솔직히 지쳤다.

모든 것이 불편하고, 초인적인 인내심을 요구하는 농성장에서의 하루가 또다시 지나간다.

불이 꺼진 암흑같은 두리반에서 오늘도 땀을 흠뻑 흘리며 자도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을 선잠을 자야할 친구들에게, 그나마 선풍기도 쐴 수 있고 인터넷도 할 수 있고(그래서 업무량은 치명적인 수준까지 올라갔지만) 시원한 물도 설사병 걱정 없이 마음껏 마실 수 있는 마포구청 농성장에서 진한 애정을 담은 연대를 보낸다.

같이 노래하고, 촛불을 보내 암흑의 두리반을 하나하나 밝혀주고, 지지방문으로 응원으로 이 천박한 토건자본주의가 선사한 치명적인 고통에 동참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도 일일이 표현할 수는 없지만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식사시간에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해서 배도 고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 내가 해본 적도 없었던 모든 일, 내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모든 일을 하며 이곳을 지켜왔기에 나는 정신적으로 무척이나 고무되어 있다.

벼랑끝 절벽으로 밀려나게 되면 자신도 알 수 없었던 잠재된 힘이 솟구치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어느때보다 튼튼하다는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이 요즘 나를 보고 말하는 바, 아마 잔뜩 독기가 올라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야만의 시대를 하루속히 끝장내는 독침을 날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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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31 17:48 2010/07/3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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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씨앗(산길) 2010/07/31 20:45 Modify/Delete Reply

    너무 편하게 대해온 내 몸이 부끄럽습니다. 몸이 많이 상하지 않아야 할 텐데... 어쩌면 좋을까요 휴..

    • 2010/07/31 21:46 Modify/Delete

      나는 이런 일에 이골이 나서 괜찮아. 그래도 나름 잘 지내고 있어.

  2. 설영 2010/07/31 22:42 Modify/Delete Reply

    곳곳에서 저질러지는 강제철거와 재개발...그리고 버림받는 사람들...비록 멀리있지만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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