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가 정말로 있는 것일까
꼬뮨 현장에서 2009/12/25 22:19오늘도 1인시위음악회를 이어갔어요.
오전 11시에 미사가 열렸고, 오후 3시에 예배가 열렸는데, 각각 1,000여명이 참석했던 것 같아요.
이래저래 오늘 크리스마스 하루 동안 용산참사 현장을 찾은 사람들이 총 이천 명이 넘는다는 계산이 나와요.
오후 5시 무렵이 되어서 사람들이 돌아가고나니 마치 폭풍우가 몰아친 듯 다시 이 지역은 고요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정신없이 바쁘다가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 허무함에 허우적대지 않도록 그리고 크리스마스날 저녁에도 용산참사 현장에 사람의 온기를 피우기 위해 노래를 했어요.
길바닥평화행동 사람들이 와서 같이 연주하기로 했는데, 약간씩 늦는 거에요.
그래서 양군과 둘이서 준비를 시작하고, 양군이 오카리나를 불고 내가 기타를 치면서 사람들을 기다리기로 했어요.
어둠이 내려오고 사람들이 가고 나니 용산현장은 참 춥더군요.
게다가 날씨도 흐린 것이 곧 눈이라도 내릴 기세였어요.
아니나 다를까 곧 눈발이 날리고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서 계속 노래를 하고 있으려니 길바닥평화행동 멤버들이 하나둘씩 모여듭니다.
마침내 밴드의 모양이 갖춰지고 우리는 추운 길거리에서 오랜만에 다시 모여 마치 고향집에 온듯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했어요.
눈은 계속 내리고, 오늘이 크리스마스인지 아닌지 느낄 겨를도 없이 음악에 집중을 했어요.
그래야 추위에 포섭되지 않으니까요.
노래를 하는데, 저멀리서 용산4구역 철거민들이 우르르 오시네요.
아마도 단체로 어디 갔다가 다시 용산 현장으로 돌아오시는 것 같아요.
철거민들은 우리를 너무나 반가운 마음으로 격려해주시고, 우리 역시 뜨거운 마음으로 이분들을 맞이했습니다.
베이스 기타를 치면서 저는 철거민 한 분 한 분과 악수를 하고, 뜨거움을 나누었지요.
1시간쯤 지나서 노래를 마칠 무렵이 되니 정말 거의 눈보라 수준의 바람이 불어서 세워둔 통기타도 넘어지고, 길바닥에 가만히 서있기조차 힘들었어요.
그런 와중에서 꿋꿋이 노래를 하면서 우리는 중간중간에 "용산참사 해결하라" "철거민 생존권 보장하라"고 외쳤습니다.
정말이지 이렇게 사람을 죽여놓고 1년간이나 방치하는 가혹하고 포악한 정부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용산참사 1주년을 얼마 앞둔 크리스마스날에, 철거민들과 눈보라가 휘날리는 용산 남일당 현장에서 추운 줄도 모르고 노래를 부르고 있으려니, 지금까지 버틴 힘으로, 그리고 더욱 굳어진 의지와 결연한 마음으로 앞으로 얼마가 될지 모르는 긴긴 참사의 세월을 이겨나가겠다는 다짐이 절로 샘솟더군요.
이곳은 필시 마음의 온천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을거에요.
모금함을 앞에 두고 공연을 했는데, 오늘은 무려 17만원이 모였습니다.
11월 중순부터 거의 매일 1인시위음악회를 해왔지만, 하루에 모인 금액으로는 오늘이 최고였어요!
모금함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지지와 후원의 손길들을 보면서 산타가 정말로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들었어요.
그래요.
망루 안에서 철거민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용산참사를 잊지 않고, 그 진상을 규명해서 유가족들이 상복을 벗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모든 사람들이 산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옥에 구속되어 있는 철거민들은 모두 무죄에요.
법이 부자들만을 위해 재개발을 밀어붙여도 좋다고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죄 판결을 받았을 뿐이죠.
그분들이 하루속히 감옥문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염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산타입니다.
용산참사 현장에는 오늘 이천 명이 넘는 산타들이 다녀간 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