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부짖는 사람들 - 행동하는 평화활동가가 되었으면 좋겠다
꼬뮨 현장에서 2009/11/27 01:41돕님의 [같은 아픔, 같은 상처, 같은 희망] 에 관련된 글.
우리는 모두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보통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우리 안에 자리잡는다.
2005년 12월 내내 '평화, 부끄럽고 슬픈 축제'를 열었다.
그때도 역시 매일 거리에 나가서 노래를 불렀는데, 2003년부터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활동을 했으면서도 이라크 파병을 막지 못한 부끄러움과 슬픔을 그저 노래하면서, 2005년 연말에 또다시 파병을 하려는 자들의 후안무치함을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았었다.
길바닥평화행동을 하던 친구들과 함께 매섭게 춥던 12월의 겨울을 하루도 빠짐없이 서울 광화문 거리에 나가 보냈었다.
당시는 이미 국회에서 이라크 파병연장동의안의 통과가 확실시되던 상황이라서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것 같은데, 상황이 절망적이라기보다는 도무지 희망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던 분위기였다.
그럼에도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무엇이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자괴감이 매일 영하의 추위를 견디게 해주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면서 2005년이 저물어 갔고, 4년이 흐른 뒤 그때의 기억은 약간의 고통이 되어 남아있다.
즉, 너무 추운데도 날마다 바깥에 나가서 듣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기타를 쳤고, 그런 고통스런 경험이나마 끊어버릴 수 없었던 이유는 그것말고는 폭탄이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이라크의 밤하늘을, 손과 발이 잘린 채 울부짖는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을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용산참사 현장에서 다시 1인시위음악회를 매일 한다고 했을 때 길바닥평화행동 사람들은 평화, 부끄럽고 슬픈 축제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때의 아픔을, 고통스런 기억을 말이다.
하지만 사람도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광화문 휑한 거리 한복판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노래로 들이밀던 4년 전 겨울의 상황과 지금의 용산은 다르다.
사람들의 호응이 있고, 관심이 뜨겁다.
길거리에 나가 5분만 노래를 해보면 금방 안다.
용산참사는 여전히 핫이슈인 것이다.
그래서 겨울 내내 이렇게 버틸 생각이다.
다행히 노래실력도 아주 천천히이지만 늘고 있다 --_--
오늘은 민가협 목요집회에 가서 노래했는데, 몇 년만에 내 노래를 들은 민가협 활동가(예전에 양심에따른 병역거부를 주제로 한 목요집회에서 노래를 했었다)가 예전에 비해 내 목소리가 나아졌다고 말해줬다.ㅎ
앞으로 한 10년이 지나면 지금보다 좀더 노래실력이 늘 것 같다.
오늘은 CBS 시사쟈키라는 프로그램에서 나와 현장 공연을 녹음해갔다.
라디오로 언제 방송이 된다고 하는데, 날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민가협 목요집회에서 돌아와 남일당에서 저녁밥을 용산 식구들과 같이 먹는다.
가족은 싫지만 식구는 좋다.
내 옆에 오두희 선배가 앉아 밥을 먹는다.
그처럼 행동하는 평화활동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05년 추운 겨울에 버티던 고통스런 나날들이 4년이 흐른 지금 고스란히 힘이 되어 지금 나의 행동을 지지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같은 아픔, 같은 상처, 같은 희망을 안고 오늘을 살아간다.
정영신 님이 혼자 레아에 앉아 눈물을 훔치며 편지를 읽던 모습도, 김영덕 님이 남편 양회성 열사와 작년 말 용산4구역 식구들과 함께 삼호복집에 모여 망년회를 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울던 모습도, 지금 나에게는 가슴 아린 고통으로 다가오지만 앞으로 또 4년이 흐른 뒤, 10년이 흐른 뒤 지금의 고통이 켜켜이 썩어 내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줄 것임을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