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고구마, 웬철거
꼬뮨 현장에서 2009/11/07 17:02베짱쓰님의 [고구마판매개시-가격조정(택배비급협상ㅋ)] 에 관련된 글.
디디와 홍진이 고구마 한 박스를 보내주었다.
수진과 최교가 땀흘리며 정성껏 키운 맛있는 호박 고구마가 레아에 도착하던 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이 고구마를 어떻게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며칠 간 고민했다.
유가족분들 그리고 철거민들과 나눠 먹긴 해야 할텐데, 좀 짱인듯 나눠 먹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러다 어제 한 분이 용산현장에 군고구마 만드는 통과 수레를 후원해주셨다.
그걸 보고 우린 무릎을 탁 쳤다.
군고구마!!!
마침 레아 미술관에 새로운 작품을 설치하러 온 미술가들도 있었다.
바로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디디가 홍진과 수진과 최교가 보내준 맛난 호박고구마!! 레아 바깥에선 군고구마 만들 준비가 한창이다.
일단 불을 때서 군고구마통을 달군 다음에 고구마를 넣기로 했다.
불을 구해야 하는데, 용산 4구역 철거지역에 널려 있는 나무조각들을 쓰기로 했다.
생각이 미치자 마자 나는 달려가서 나무를 해오고, 미술가 이윤엽은 군고구마 통을 재료로 삼아 미술작품을 만들고 있다.
고구마가 있는 것을 보더니 재우 아저씨가 '웬 고구마?' 한다.
군고구마 이름을 뭘로 정할까 이윤엽 씨와 고민을 하다가, 웬고구마로 하기로 한다.
윤엽 씨가 웬고구마, 웬철거라고 통에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우리는 나무를 해오고, 군고구마를 준비한다.
통이 어느 정도 데워지자 고구마를 넣는다. 활활 타는 장작불에서 고구마들을 잘 돌리면서 구우면 얼마 후 따끈따끈한 군고구마가 된다.
재우 아저씨는 예전에 군고구마 장사를 해보았다고 한다.
만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거, 잘 팔릴 것 같다.
남일당 앞에서 추워지면 사람들과 불도 쬐고, 군고구마도 만들어서 나눠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흐뭇하다.
완전 대박 아이템이다!
군고구마통에서 올라오는 매캐한 장작불 연기가 용산4구역 온동네에 퍼진다.
연신 눈이 따끔거리면서도 우리는 군고구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재밌고, 신나는 하루다.
주변에 널린 나무를 가져와 불을 때는데, 이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MDF나 합판 같은 것은 태우면 유독가스가 나오기 때문에 좋지 않다.
철거지역에는 집이나 건물을 부수면서 나온 나무조각들이 많다.
난 나뭇꾼이 되고,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레아 앞은 다시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튼실한 나무들로 장작불을 만드니 이젠 겨울이 와도 끄떡없다는 자신감이 솔솔 생긴다!
고구마가 구워지는 향기에, 매운 연기에, 흥미로운 광경에 지나가던 사람들도 모여들기 시작한다.
군고구마 통 자체가 우리의 입이고, 우리의 선전물이다.
판화가 이윤엽 씨는 멋진 그림도 잘 그리는 팔방미인인데, 이번 웬고구마통을 하나의 설치미술 작품으로 완성시키고 있다.
이렇게 완성된 군고구마를 제일 먼저 유가족 분들 가져다 드리고, 계속 나오는대로 우리도 나눠 먹다 보니 어느새 수진, 최교, 디디, 홍진이 보내준 한 박스의 고구마가 동이 나버렸다.
고구마를 또 구해야겠다.
밤 늦은 시간까지 군고구마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참 신나고 즐겁고 피곤한 용산참사 현장의 하루가 또 이렇게 지나간다.
토요일, 일요일은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는 여의도에 가서 용산참사 해결을 위해 군고구마를 팔기로 했다.
혹시 고구마를 레아로 보내주실 분이 계시면 후원 진심으로 고맙게 받겠습니다.
용산 현장에서 '식구들'과 나눠 먹기도 하고, 팔아서 생긴 수익금은 전액 용산참사 해결하는 투쟁에 사용하겠습니다.
모두들 고마워요!
(140-875)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2가 197-1 레아 1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