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조 원 국방비가 평화를 가져온다고?"
평화가 무엇이냐 2008/10/01 13:05"30조 원 국방비가 평화를 가져온다고?" | ||||||
[기고] 국군의 날 무기 퍼레이드를 반대하며 | ||||||
2008-10-01 오후 2:3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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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국방부가 제출한 예산은 약 29조 원에 이른다. 이는 올해 예산보다 8.8%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 새로 도입되는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한 대에 83억 원을 호가하는 흑표 전차 그리고 일일이 거론하기도 골치 아픈 무기들의 구입에 드는 '방위력 개선비'가 무려 약 9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세금을 들여 새로운 무기를 구입해야 하는 것일까? 미국발 금융 위기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는 공황 상태로 치닫고 있고 국제 유가는 엄청나게 오르고 있는데, 이명박 정권은 극소수 부자들을 위해서는 세금을 깎아주겠다며 나서고 있다. 그러나 국방예산은 꼭꼭 매년 8% 이상 증가하고 있다. 결국 신형 무기 구매에 따른 부담은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가는 셈이다. 즉, 노후된 장비를 교체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국방비가 방위력 개선 사업에 들어가고 있지만 실상을 알고보면 한국의 안보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국민들에게 두려움을 조성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신형 무기 도입을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무기를 사용하는 군인들의 입장에서야 기왕이면 신무기를 사용하고 싶어할 테고, 무기를 팔아서 장사하는 군수업체 입장에서도 국방 예산을 늘리기 위해 로비라도 할 것이다. 이런 지점에서 국방부와 무기 산업은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한다. 이들이 말하는 '윈-윈 전략'이란 자주국방이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내세워 무기 판매를 늘리고, 컴퓨터 부품을 업그레이드하듯 꾸준히 무기를 업그레이드하는데 성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오히려 이로 인해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고, 서민의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없는 적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얼마 전 교과서 개정 문제를 놓고 텔레비전 토론회에 나온 한 교수가 탄식을 하며 지적한 것이 있다. 요즘 입대하는 젊은이들에게 '우리의 주적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75%가 '미국'이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오른쪽 편에 앉아 있던 그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토론 내내 젊은이들에게 올바른 주적 개념을 심어주기 위해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역사 교육이 잘못되어서 젊은이들이 그렇게 대답하는 것도 아니고, 뉴라이트가 주장하듯이 반미좌파들이 판을 치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물든 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주적이라는 개념을 들이밀어야 하는 사회적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적이라는 개념 자체에 거리를 두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없는 적을 만들어내서 적대시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군대라는 집단은 적이 존재해야 자신의 존재가 정당화된다. 그래서 때로는 없는 적이라도 만들어내거나 또는 적수가 되지 않는 집단의 위협을 호적수로 끊임없이 가공해내야 스스로 생존의 의미가 생긴다. 이는 나아가 국가 조직이라는 것 자체에도 본질적으로 적용된다. 즉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왜 국가가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국가 조직의 담당자로부터 돌아온다. 이런 사실을 냉전이 끝난 미국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 소련이 붕괴하고, 공산주의 진영이 몰락하자 더 이상 가시적인 적의 위협이 없어진 미국은 새롭게 '테러리즘'이라는 적을 만들어냈다. 테러라는 위협이 있어야 미국의 엄청난 국방 예산을 유지할 명분이 생기고, 그래야 시민들이 거부감 없이 세금을 내게 되고 국가를 자신보다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는 애국심을 요구할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과거 공산주의가 확산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전쟁을 벌여온 미국이 지금은 테러의 확산이라는 위협을 막는다는 명분을 세계 각지에 군대를 파견하는 이유로 내걸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맞이한 미국에서는 다시금 이라크 전쟁의 정당성을 놓고 후보들 간에 논란이 되고 있다. 즉 9·11 테러와 아무런 직접적인 연관도 없었던 이라크에 미국이 먼저 침공해 들어간 실수와 그 과정에서 초래된 엄청난 손실을 놓고 정치적 공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이라크는 미국의 적이 아니었는데, 왜 적으로 둔갑하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미국 경제가 석유와 무기 산업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또한 군사 작전을 일으켜 새로운 무기 획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미국이라는 경제의 안정성이 유지되기 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했던 것이다.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우리의 무기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얼마전까지 주적은 명확했다. 별로 논쟁도 되지 않았다. 북한이라는 '안보 파트너'가 있었기에 군수 산업과 징병제를 축으로 한 한국의 군사주의가 수십 년간 작동했던 것이다. 그 결과 박정희 정권 때에는 연평균 국방 예산 증가율이 놀랍게도 42%였고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 때에도 국방 예산은 매년 10% 이상씩 성장할 수 있었다. 이 많은 돈을 쏟아부어 미국의 군수 산업도 섬기고, 한국의 군수 산업도 동반 발전시켜온 것이다. 예외가 있었다면 한반도 평화 체제를 위해 노력한 김대중 정권이었는데, 당시 국방비는 겨우 연 평균 3.5% 증가했을 뿐이었다. 북한을 적이 아니라 동반자로 보았기에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우리는 쏠 상대도 없는데 괜히 총을 들고 설치지는 않는다. 결국 징병제가 유지되고, 첨단 무기들을 계속 돈을 들여 사오게 되는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매년 새로 입대하는 젊은이들의 손에 총과 대포를 쥐어 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의 머리에 주적이라는 개념을 새로 입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가는 왜 내가 지금 총을 들고 밤새 보초를 서야 하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침략당한 한국의 역사만을 유독 중요한 사실로 배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이 계속해서 새로운 무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 위협을 계속해서 강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독도의 영유권 분쟁이 일었을 때 막강한 일본 해군이 독도를 침공할 수도 있으니 한국 해군은 이지스함을 2대 더 도입해야 한다거나, 구축함을 추가로 건조해야 한다거나 하는 주장이 이어지게 되고, 중국의 동북공정이 있을 때는 역시 그들의 침입에 대비해 사정거리가 늘어난 자주포와 막강한 공격용 헬리콥터와 반경 10㎞ 이내의 적기를 섬멸할 수 있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국방비가 늘어나는 이유는 주변국의 군대가 우리보다 더 성능이 강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구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지스함과 사거리 278㎞의 공대지미사일과 국산 대공미사일 천마, 자주대공포인 비호 그리고 새로운 흑표전차 등을 끊임없이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주변국에 더많은 탱크와 미사일과 전투기 등이 있기 때문이다. 남북한 군사력 비교표가 제시되고, 단순 수량 비교 방법으로 병력의 수와 탱크와 장갑차와 잠수함과 전투기의 수가 비교된다. 한국에서 징병제가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계속해서 국방비가 8% 이상 매년 증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을 비롯한 우리의 잠재적 적이 군사적 위협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우리가 도입하는 첨단 무기들이 바로 우리의 잠재적 적을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보자. 북한이 병력을 지금의 10분의 1로 줄인다면 우리는 그들을 선제 공격할 의사가 있는가? 극소수 북침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이런 망상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진정 평화를 가져오려면… 북한의 선군정치가 유지되는 데에는 한국도 한 몫 거들고 있다. 국군의 날 일반에게 처음 선을 보인다는 24종 84대의 신무기들을 북한 정권은 자신의 억압적인 군사 체제를 유지하는 근거로 활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의 칭찬과는 달리 새로 시범을 보이는 무기들의 강한 화력을 보며 대부분의 국민들은 든든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불안감이 더 클 것 같다. 노무현 정부 이후 다시 8% 이상의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며 늘어나고 있는 국방비가 정말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올지 아니면 군사적 대결을 유지하는 구실로 작용하지 않을지 걱정이다. 우리가 먼저 무기를 내려놓고 군축을 하는 용기를 내어야 하지 않을까. 매년 8%씩이라도 국방비를 줄여나가야 한반도 평화 체제가 탄력을 받지 않을까. 총을 든 사람들과 무기를 제조하는 사람들을 시민이 나서서 제어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무기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결국 국방비 30조 원 시대를 만들었다면,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국방비를 20조 원으로, 10조 원으로 줄여나가야 한다. 총을 들고 마주 선 사람들 사이에는 침묵과 공포만이 있을 뿐이니까. |
조약골/평화활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