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을 개방하라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7/06/14 14:3210만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단속추방이 시작되었다. 이주노동자가 합법이나 불법이냐를 따지는 기준은 한국이 일방적으로 정한 4년이라는 기간인데 이 나라는 어째서 이주노동자들을 쓰고 버리는 일회용 젓가락처럼 대하는 것일까. 한국인 사장들의 임금체불과 폭행은 말할 것도 없고, 은행거래와 휴대폰 사용 제한 등 각종 제도적 차별도 부족해서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4년 이상 체류한 이들한테 모조리 본국으로 돌아가라고 협박한다. 이 현실에 맞서 두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더 많은 이들은 지금 절박한 요구조건들을 내걸고 집단농성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소수자 집단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의 배후에는 혈통주의와 결탁한 강한 국가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국가주의는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공동체 의식을 강요하며 다른 집단에 대해 특히 배타적인 특성을 보인다. 한국 국적을 따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그 단적인 예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이민가는 한국인의 숫자는 매년 1만5000명에 이른다. 그런데 한국으로 귀화한 사람의 숫자는 1957년 귀화 합법화 이후 지금까지 모두 합쳐 1500명 정도일 뿐이다. 한 마디로 한국의 국경은 밖으로는 꼭꼭 닫혀있는 셈이다.
현행 귀화법에 따르면 결혼 등을 통한 방법말고 일반 귀화의 경우 한국에 5년 이상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은행계좌에 3000만원 이상이 있는 등 돈이 많아야 일단 귀화신청이 가능하다. 정부는 귀화인이 한국에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예금액수가 증명해준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예금액이 없다고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꾸준히 일하는 노동자라면 예금액이 얼마 없어도 충분히 자신을 부양할 수 있지 않은가. 이것은 한마디로 중산층 이상의 외국인에게 한하여 한국 국적을 부여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가난한 외국인이 물밀 듯 밀려들어와 한국인의 순수한 혈통이 훼손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인가. 하지만 실은 한국인의 혈통적 순수성이란 예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존재하지 않는 허구적 개념이다. 귀화는 이미 예전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어서 고려시대가 되면 성행했다고 한다.
나는 순수한 한국인 또는 단일 민족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의 권력층이 원활한 통치활동을 위해 조작해낸 것이다. 하나로 뭉쳐있는 사람들은 그만큼 손쉬운 지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3년이 지난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 국적을 허용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며, 계속 머무를 수 있도록 노동비자를 주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다. 왜냐하면 낮은 임금을 받으며 묵묵히 일하고 있는 수십만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 기여한 것을 절대 과소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소득 전문직종의 사람들에게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만들어진 것이 현행 한국인 귀화제도이다. 단순히 다양성의 옹호가 아니라 3년 이상 한국에서 일하면서 한국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이주노동자들의 노고를 정당히 인정하는 차원에서 원하는 이주노동자에게는 모두 한국 국적을 부여해야 한다.
* 2003년 11월에 쓴 글입니다. 한겨레라는 매체에 올라간 글인데요, 찾아보니 http://www.hani.co.kr/section-001065000/2003/11/001065000200311242234215.html 에 원문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