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아름다운 세상이 되면
경계를 넘어 2007/02/28 02:26마침내 한글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어.
서울을 떠나온지 일주일이 된 것 같은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모든 것이 소용돌이에 휘말려 뒤죽박죽 섞이게 된 것 같아.
실마리를 하나씩 풀면서 평정을 되찾아야지 했지만 쉽지가 않더라.
그동안 잘 지냈지?
나도 몸은 아주 좋아.
여기는 기후가 좋단다.
아침과 밤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선선해.
낮에는 덥지만 그래도 불쾌하지는 않아.
지금으로부터 한 백년쯤 지나서 완전히 아름다운 세상이 되면, 그래서 내가 할 일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되면 한번쯤 와서 살아보고픈 곳이기도 해.
이곳 국제회의에는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농민활동가들이 아주 많이 모여 있어.
이들에게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우리 팽성 농민들의 투쟁을 잘 이해해주기 때문에 좋아.
토지가 농민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보다도 더 깊이 몸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니까.
수백명이 모인 국제회의에서 두 번 발표를 했단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하겠지만 모인 사람들로부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어.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팽성 농민들의 싸움이 참 감동적이라고, 자랑스럽다고 하는 격려를 아주 많이 받았어.
지금도 사람들이 날 보면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그러면 나는 또 열정적으로 농민들과 인권활동가들과 평화지킴이들과 또 많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투쟁을 설명하고 있어.
3월 6일 저녁 촛불집회에서 대추초등학교 정문을 성공적으로 지켜낸 인권활동가가 그런 말을 했잖아.
이제야 밥값을 한 것 같다고.
나도 그런 기분이 들었단다.
나는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심히 투쟁하자, 그래서 밥값을 하자고 말야.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어.
우리의 투쟁은 이토록 슬프고도 아름답구나.
이곳에서 너를 생각하면 눈물도 나고, 힘도 나고, 웃음도 나고, 기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용기도 생기고 그래.
복잡하지?
오늘은 세계 여성의 날이야.
이곳에서 얼마나 감동적인 투쟁이 벌어졌는지 아니?
새벽 2시 30분부터 행동이 시작되었어.
특히 브라질은 토지 없는 농민들의 운동이 아주 강한 곳이야.
너도 알겠지만 브라질의 영토는 얼마나 넓니.
그 넓은 토지를 아주 극소수의 자본가들이 소유권을 장악한 채 놀리고 있는 곳이 많아.
가난한 사람들이나 토지가 없는 농민들이 경작하게 해도 좋을텐데, 그들은 차라리 땅을 놀릴지언정 농민들에게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고 있어.
그래서 브라질의 농민들은 `토지개혁`을 주장하고 있어.
땅이 없는 사람들에게 땅을 주자는 것이지.
말은 토지개혁이지만 실은 토지혁명이야.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차로 2시간을 달려서 간 곳에는 브라질의 거대 펄프기업 아라크루즈 셀룰로오스(Aracruz Celulose)가 운영하는 임업연구원이 있어.
그런데 그곳에서 실험하고 있는 나무는 보통 나무가 아냐.
유칼립투스(eucalyptus)라고 불리는 죽음의 나무야.
유칼립투스는 성장속도가 아주 빨라서 파종한지 1년이 지만 10미터 가까이 자라고 5년만 되면 바로 벌목을 해서 종이를 만들고, 목재를 만드는데 사용할 수 있는 나무야.
벌목을 할때도 밑둥만 남기고 잘라내면 그 자리에서 또 나무가 솟아올라서 이렇게 4번을 더 잘라낼 수 있데.
5번을 벌목을 하고 나면 그 나무를 불태우는데, 그러면 그 자리에 씨앗이 들어가서 가만 놔두어도 다시 자란다는 거야.
그런데 이 나무는 자라면서 나무 자체에서 독을 뿜어내는 특징이 있어.
그래서 이 나무가 자라는 지역의 땅에서는 아무런 다른 식물이 자라지를 못해.
오로지 이 나무만 급속도로 자라는 거야.
그러면서 땅의 영양분을 모조리 빨아들이고, 땅의 수분도 모조리 빨아들이는 괴력을 이 나무는 갖고 있어.
특히 브라질의 자본가들은 유칼립투스를 좋아해.
쉼없이 종이를 만들고, 목재를 만들어낼 수 있고, 따로 관리를 해주지 않아도 저혼자 스스로 자라나니까 돈이 들지 않는거야.
그래서 땅을 가진 브라질의 지주들은 이제 이 나무를 브라질 전역에 심을 태세야.
농민들은?
목숨을 걸고 이 나무가 확산되는 것에 저항하고 있어.
녹색 사막을 만드는 유칼립투스는 다른 생물은 자라지 못하도록 토양을 철저히 파괴하고 독을 뿜어내서 결국 이 작물의 '단일경작'만 이뤄지게 되니까 말야.
그런데 이미 그곳에는 브라질 전역에서 모인 1500명의 여성농민활동가들이 수백만 그루의 조그만 묘목들을 모조리 망치고 있었어.
우리도 이 비밀택을 받고서 함께 이 직접행동에 참여하려 간 것이지.
우리들도 닥치는대로 그곳의 조그만 묘목들을 뽑아냈단다.
생각해봐.
새벽이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인데, 모두가 똑같은 모자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 드넓은 농장 같은 곳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그 죽음의 묘목들을 벌떼 같이 달려들어서 뽑아내는 장면을.
아무 것도 보이지는 않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모습을.
충분히 감격적이란다.
우리들은 버스로 돌아와서 흙으로 시커매진 손바닥을 모두 모아놓고 사진을 찍었어.
기쁨에 들떠서 말야.
브라질의 자본가들에게 여성농민들의 분노를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 셈이니까.
이 창조적이고 상징적인 행동을 여성농민들이 주축이 되어서 치밀하게 계획을 하고 실천에 옮기는 모습을 보면서, 아, `당신처럼 멋진 친구들은 세계에 꽤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진심이야.
전날 밤 12시까지 일정이 이어졌는데, 바로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바로 여성농민들의 행동이 시작된다는 말을 듣게 되었어.
왜냐하면 처음에 내가 듣기로는 많은 여성활동가들과 함께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서 브라질의 토지개혁 관청 건물을 점거하는 행동을 한다고 했거든.
그것도 멋진 일이 될 것 같아서 잠을 자는 듯 마는 듯 하고 새벽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달려갔는데, 가서 보니 더 멋진 일들이 기다리고 있더구나.
깜깜한 밤인데, 별들은 정말 쏟아질 듯 빛나게 반짝이더라.
대추리에서 보는 밤하늘 별들과 비슷했어.
아주 반짝이는 별 하나가 있길레, 난 그 별을 보면서 네 생각을 했단다.
네 이름을 불러 보았어.
그래봤자 1500명이 있는 곳에서 한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니까.
그 행동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포르투 알레그레로 돌아와서 아침 9시부터 여성의 날 행진을 2시간 동안 했단다.
조그만 도시인데 만 명도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여성의 날 행진에 참여했어.
각각의 주장을 내걸고, 깃발과 나뭇가지와 옷과 모자와 각종 시위용품들을 몸에 두르고 걸고 들고 행진을 했지.
그렇게 이곳에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단다.
해야 할 이야기가 많지만 이제 한 백분의 일 정도를 한 것 같다.
또 편지를 쓸게.
건강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