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마을 사람들과 함께 오전에 서둘러 서울에 올라왔다.
김지태 이장님의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고, 살인과 고문, 투옥, 납치 등을 견디며 힘들게 투쟁하고 있는 와하까 민중들에게 한국 민중들이 힘찬 연대를 하고 있음을 선포하는 날이기도 했다.
주한 멕시코 대사관 앞에서 오후 2시가 약간 넘은 시각 기자회견을 가장한 항의행동을 시작했다.
색색깔의 피켓과 붉은색 펼침막이 외국 대사관들로 들어찬 한남동 고개를 수놓았다.
사람들이 모여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니 콘크리트로 굳어버린 육체에 새로 빨간피가 도는 듯 하다.
와하까 국제공동행동의 날을 맞이해 급하게 조직된 행동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우리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와하까 민중들에 대한 일종의 미안한 감정 같은 것들을 씻어내고, 앞으로 더욱 굳건하게 국경을 넘어선 풀뿌리 민중들의 연대 활동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겨났다.
'철조망을 불판으로' 팀도 왔다.
멋진 스페인 어 구호가 적힌 피켓들도 들고 왔다.
불판팀 한 명은 "국가폭력을 넘어서 자치꼬뮨을 일궈 나가는 대추리와 와하까의 민중들이 손을 잡고 혁명으로 나아가자"고 발언을 했다.
규탄발언과 항의는 계속 이어졌다.
와하까 민중들의 투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독립미디어 활동이다.
따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도 없는 와하까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언론의 필요성을 절감하고서는 마침 길거리에 쏟아져나와 시위를 하던 김에 방송국으로 몰려가 그곳을 장악해버린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2006년 8월 1일 그렇게 길거리에 나온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 '방송국으로 갑시다. 거길 점령합시다'고 외쳤을 때 그들은 '그래, 맞아. 바로 거기로 가자'고 하면서 그렇게 텔레비전 방송국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미디어 활동가들의 교육을 받으며 자신들의 고된 이야기를 당당하게 담아내게 된다.
독립미디어 활동의 존재의의와 자립적인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감동적인 대목이다.
1980년 한국의 광주에서 공수부대원들이 대검을 꽂은 총을 들고 시민들을 무차별로 학살하고 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먼 나라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의 군부독재정권을 비판하며 광주의 민중항쟁이 정당하다고 말을 해주었더라면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군부악마들이 그렇게 발광을 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대추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는 해외에서 사람들이 이 조그만 마을로 찾아올 때 마을 주민들이 얼마나 큰 힘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 2006년 한국의 민중들이 모인 것이다.
경계를 넘어, 국경을 넘어 연대하고 투쟁하기 위해서.
주한 멕시코 대사관은 세콤과 경찰병력의 보호를 받고 있다.
국가와 자본의 비호 속에 가진자들은 FTA를 추진해 절대 다수의 민중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다.
지금 멕시코 와하까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은 1994년 시작된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멕시코 간에 맺은 FTA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치아파스 주에 근거지를 마련한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이 활동을 시작한 것이 바로 그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서부터 아닌가.
그리고 이제 투쟁은 와하까 주 전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우리는 이대로 우리의 미래가 이윤의 이름으로 팔려나가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와하까의 민중들과 함께 하고 있지만 내일은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의 민중들이 연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한국의 양심적 민중들이 멕시코 정부에 보내는 항의서한을 낭독한다.
항의행동이 끝난 후 우리가 함께 낭독한 항의서한은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 한국지부 활동가(바로 위 EZLN 티셔츠를 입은 사람)가 직접 멕시코 대사관 참사관에게 전달했다.
와하까 민중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며, 정의와 평화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투쟁 역시 계속될 것이다.
멕시코 정부에 보내는 항의서한
한국의 양심적인 민중들은 멕시코 와하까 주를 자치지역으로 선포하고, 부패한 와하까 주정부에 맞서 민중들이 벌이고 있는 목숨을 건 투쟁을 지지한다.
제도혁명당 소속의 율리세스 루이스 오르티스는 광범위한 부정선거를 통해 지난 2004년 12월 와하까 주지사에 취임한 이래 온갖 부패와 부정의를 저질러왔고, 와하까 주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농민들과 원주민들 그리고 교사들과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져 갔다. 인권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와하까 주민 가운데 거의 80%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와하까 민중들은 이대로 살 수 없다며 하나로 뭉쳐 정부에 항의하기 시작했고, 2006년 5월부터 교사들을 중심으로 와하까 시내에서 총파업 투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는 2006년 6월 14일을 기점으로 8월 22일, 10월 18일, 10월 27일, 11월 2일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도 멕시코 연방경찰과 군대까지 동원하여 민중을 탄압하는 가운데 살인과 납치, 고문 등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되는 극심한 국가폭력을 저질러왔다. 와하까 주에서 '정의'와 '인권' 그리고 '민중의 생존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총을 든 준군사집단과 경찰이 휘두른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납치를 당하고 있다. 10월 27일 벌어진 탄압에서도 미국인 독립미디어 활동가 Brad Will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는데,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영상자료를 통해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은 멕시코 경찰 간부이거나 제도혁명당의 당직자들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멕시코 정부는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민중들의 목숨을 건 투쟁을 최루탄과 경찰폭력을 통해 막아보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양심적인 민중들은 멕시코 정부가 앞장서서 저지르는 이와 같은 탄압과 폭력을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멕시코 정부는 즉각 민중들에 대한 살인과 납치 등 폭력행사를 멈추고, 와하까 민중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또한 절대다수의 와하까 민중들이 반대하는 부패한 주지사 율리세스 루이스 오르티스를 즉각 파면해야 한다. 나아가 와하까 민중들의 실질적인 대안권력체인 와하까 민중의회(APPO)에 의한 자치를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민주주의는 민중들의 뜻에 따라 이뤄진다. 지금 와하까의 민중들의 뜻은 무엇인가? 길거리에 나아가 들어보라. 오늘도 와하까에서는 수십만 명이 목숨을 걸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의 양심적인 민중들은 와하까의 민중들과 연대해 다음과 같은 요구조건들이 관철될 때까지 함께 싸울 것임을 멕시코 정부에 똑똑하게 밝혀둔다.
1. 고문, 구타, 살인, 납치, 투옥 등 와하까 민중들에 대해 멕시코 정부가 자행하고 있는 끔찍한 인권유린을 즉각 중단하라.
2. 와하까 주에서 멕시코 연방경찰(PFP)와 멕시코 군대는 즉각 철수하라.
3. 감옥에 갇혀 있는 모든 양심수들을 즉시 그리고 아무런 조건 없이 석방하라.
4. 와하까 민중들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고, 이들의 요구인 부패한 주지사 율리세스 루이스 오르티스(Ulises Ruiz Ortiz)를 즉각 축출하라.
5. 와하까 민중들의 실질적인 대안권력체인 와하까 민중의회(APPO)에 의한 와하까 주의 자치를 인정하라.
2006년 12월 22일 와하까 민중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국제공동행동의 날에 한국의 민중들이 멕시코 정부에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