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껍질 사람껍질

식물성의 저항 2006/02/09 03:46
귤을 사러 갔다. 껍질이 모두 반짝반짝 빛나고 매끈하다. 색깔도 좋아보인다.
 
시중에서 파는 일반 귤들이 이렇게 매끈하고 윤기가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윤기가 나라고 약을 바르고, 썩지 말라고 농약을 치기 때문이다.
그래야 상품성이 높아 보인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채 익기도 전에 귤을 나무에서 떼낸 다음 여기에 온갖 농약처리를 해서 도시로 내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몇 주일 후 도시에서 소비자들이 그 귤을 봐도 여전히 갖 딴 귤처럼 싱싱해 보인다.
 
고철이 준 유기농 귤들은 그렇지 않다.
농약을 뿌리지 않고, 보존료와 착색료를 바르지 않은 유기농 귤은 껍질이 매끄럽지도 않고, 못생겼으며, 사람 얼굴에 난 주근깨처럼 생긴 검은 점들이 많이 나있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맛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맛은 약품처리된 귤과 다를 바 없다.
더욱이 유기농 귤껍질은 버릴 필요 없이 말려서 차로 끓여 먹을 수도 있다고 한다.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하지만 요즘처럼 식품의 이동거리가 전지구를 돌 수 있을 정도로 늘어난 지금 보기에 좋은 떡은 바로 농약으로 범벅이 된 떡이라고 보면 된다.
 
야채를 도매로 판매하고 있는 사람이 내게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농산물이든 과일이든 모양이 이쁘고, 벌레먹은 곳이 없고, 껍질이 매끈하고, 윤기가 흐르는 것들은 모두 엄청나게 농약을 뿌린 것들이기 때문에 고를 때 가능하면 못생기고, 울퉁불퉁하고, 반짝거리지 않는 것을 고르는 것이 더 낫다고 한다.
썩지 말라고 농약을 뿌린 귤은 몇 주일씩 놔두어도 괜찮지만 유기농 귤은 일주일만 지나도 곧 썩기 시작해 먹을 수가 없게 된다.
 
귤껍질이나 사람껍질이나 화학물질을 잔뜩 발라서 더 윤기나 보이게 하고, 주름 없어 보이게 하고, 주근깨 없어 보이게 하고, 탱글탱글하게 보이게 한다.
그래서 매끈한 것들을 보면 화학물질로 오염되어버린 지구가 어쩔 수 없이 연상되고 만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특히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말이다.
내 눈으로 봐온 아름다움이란 실은 추악한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오랜 해독의 결과 조작된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나 스스로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찾아낼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나는 눈을 뜬 것 같았다.
더이상 껍질을 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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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9 03:46 2006/02/09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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