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구마가 좋다식물성의 저항 2005/11/30 03:49 아직 아랫집 2층에 있다.
오늘은 아마도 밤을 새서 일을 해야 할 듯 싶다.
끝내야 할 일들이 쌓여있는데, 절박한 시국에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묘한 무기력감 때문에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6시간을 보냈다.
2층엔 평화인권연대의 쏜과 나 둘 뿐이다.
쏜도 밤을 샐 모양이다.
배가 고파진다.
뭔가 먹을 것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다가 피자매 사무실에서 보물을 발견했다!
비닐 봉지 가득이 내 똥보다 굵은 고구마가 들어있는 것이다.
이것이 도대체 누가 갖다 놓은 것이람.
하늘에서 선물이 떨어진 기분이다.
누군지 피자매 사무실에 고구마를 가져다 놓은 자 복을 받으리!
당장 부엌으로 달려간다.
황토흙이 두껍게 묻어있는 밤고구마들을 아이 발을 씯기듯 찬물로 정성스레 씻긴다.
쏜에게 물어보니 밤참으로 자기도 고구마 좋단다.
얼른 물을 올리고 고구마들을 넣는다.
고구마를 다 삶으면 두유랑 먹어야겠다.
생각만해도 배가 부르다.
지난 토요일 새만금 갯벌살판에서도 풀꽃세상의 풀씨 한 분이 정말 맛난 고구마를 한아름 삻아오셨다.
난 그 고구마 덕에 힘이 나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쳤었다.
빠쳄네서 먹은 고구마도 달고 맛이 좋았더랬다.
고구마 덕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하루종일 막혀 있던 것들이 조금씩 풀리는 것 같다.
다홍이가 컴퓨터를 고쳐달라고 일전에 부탁했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더이상은 미룰 수가 없어서 지금 손을 보고 있는 중이다.
하드디스크를 새것으로 달고, 램도 더 달고, 아예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모조리 새로 깔고 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이것이 끝나면 이제는 수감되어 있는 병역거부자 염창근의 판결문을 영어로 번역해야 한다.
이것도 예전에 부탁받은 것인데, 지금껏 미루다가 이제서야 달려들게 되었다.
지금 감옥에 있는 친구를 생각해보면, 이렇게 밖에서 편하게 일을 한다는 것이, 이렇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린다는 것이 죄스럽다.
감옥에서 겨울을 보냈던 친구 하나는 동상에 걸렸다고 말했다.
난 그 말을 가슴에 새겨넣고, 그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 겨울이면 가능한 보일러나 히터를 켜지 않고 얼음장 같은 곳에서 지내려 한다.
물론 내 몸이 따뜻한 편이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명확히 알고 있다.
다만 마음으로나마,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친구들과 가까이 있고 싶은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염창근의 1심, 2심, 그리고 대법원 판결문을 열심히 영어로 옮길 것이다.
법조계에서 사용하는 생경한 단어들이 튀어 나와 내 머릿속을 흐트려놓는다.
판결문에서 '주문'은 식당에서 무엇을 시키는 행동이 아니라, 수리수리마수리 거는 그런 주문이 아니라 '주된 판결문'을 뜻한다는 것을 난 모르고 있었다.
밤이 깊어간다.
어서 고구마를 먹고 힘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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