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조약골인가?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5/10/09 19:011998년부터 나는 조약골이었다.
이것은 내가 새로운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그 전의 나에서 새로운 나로 탈바꿈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조약골을 보며, 그에게는 기존의 이름이 있고 그것이 본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조약골이 본명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조약골은 내 본명이다.
내 예명이나 내 가명이거나 내 별명이 아닌 내 본명이 바로 조약골이다.
물론 국가가 관리하는 장부에는 나는 다른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다.
내가 부여받은 정체성을 대표하는 이름이 바로 그 국가기관에 등록되어 있는 이름이다.
이것을 본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즉 국가의 영역 그러니까 공적인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조약골은 예명, 가명, 별명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나키를 지향하면서 내 삶의 모든 측면에서 철저하게 '비국가화'를 실천하려 노력했다.
개인적 삶에서 그것은 국가의 영역에 관련된 부분들을 모두 잘라내거나 떼어내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으로 내 자신을 세워내는 작업이기도 했다.
내가 조약골이 된 과정은 개인적 실천의 과정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회적 실천의 과정이기도 했다.
이에 관해서는 이 글 제일 마지막 문단을 읽으면 이해가 될 것이다.
먼저 내 이름은 약골이다.
약골은 몇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몸이 약하다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나는 약골이다'고 말하는 것, 나는 약골이라고 고백하는 것, 나는 약골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사실 많은 한국 남자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강한 남자가 되도록 교육받는다.
약한 남자는 수치로 여겨진다.
특히 한국사회를 망쳐놓은 군사주의의 핵심에는 바로 강한 남자 이데올로기가 있다.
즉 강한 남자들이 약한 여성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인데, 나는 스스로를 약골로 설정함으로써 그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려는 것이다.
즉 나는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전하고, 약골인 것을 자랑스러워함으로써 군사주의 사회에 작은 파열구를 내려는 것이다.
'그래 나는 몸이 약하다, 그래서 어쩔래?'라고 되물음으로써 정상적 육체/비정상적 육체의 근대적 이분법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약골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강자가 아닌 약자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경쟁의 원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자는 남을 밟고 오르는 사람이다.
약자들의 희생위에 버티고 선 강자에 반대하고 약한 사람들과 손을 맞잡겠다는 뜻이다.
우월한 위치에서 약자를 동정하는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약자가 됨으로써 삶의 매순간 약자의 입장에 서겠다는 것이다.
약하고 물러터진 약골이어서 지고, 지고 또 지겠지만 결코 영원히 쓰러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육체적으로 날 정복할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 벌어질 약골들의 반란을 멈추지는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약자들에 대한 강한 신뢰에 의해 아예 스스로 약골이 되어버린 것이다.
약골은 또 다른 뜻도 있다.
즉 '약에 중독된 자'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한자어에서 '-골'은 중독자라는 뜻인데, 예를 들어 색골이라고 하면 색에 빠진 사람을 일컫듯이 약골하면 약에 빠진 사람을 지칭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마약에 관한한 특히 획일적이고 국가주의적인 담론이 지배하는데 약골은 스스로 자기는 마약중독자라고 선언함으로써 역시 '모든 마약은 나쁘다'는 국가의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명령을 재고할 여지를 남긴다.
나는 무엇이든 중의적인 단어들을 선호하는데, 이를 통해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단순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이것은 대화적이다.
그리고 약골이 조약골이 되면 또 '조약돌'과 비슷하게 들린다.
이것이 내가 성을 조라고 붙인 이유다.
사람들은 언뜻 들으면 '조약돌'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조약돌은 다윗이 골리앗에서 던진 것으로서 약한 사람도 강한 자를 거꾸러뜨릴 수 있다는 뜻도 담긴다.
부모성함께쓰기 또는 아예 성을 쓰지 않기 운동(겸이라는 친구도 부모성 쓰지 않기 운동을 하는 친구다)이 있는데, 나같은 경우에는 이렇다면 새로운 성 쓰기 운동이 되는 것이다.
이런 운동들이 강고한 가부장제의 폐해를 알리고 그것을 없애는데 함께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보지만 새로운 성 쓰기 운동은 이보다 한걸음 나아가 국가에 등록되어 관리되는 이름을 거부하는 것으로서 가부장제와 국가주의를 동시에 넘어서는 운동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 이름 약골은 영어로는 dopehead 라고 쓴다.
dopehead 역시 중의적인 말이다. 왜냐하면 단어 dope은 일단 크게 3가지 뜻이 있고, 이것에 head가 결합했으므로 그 뜻은 더 늘어나는 것이다.
dope은 '멋있는', '바보', '마약' 등의 서로 다른 뜻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head가 붙으면 '어떤 것을 반복해서 행하는 사람'이 되는데, 그래서 dopehead라고 하면 '멋진 행동을 계속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마약쟁이'가 되기도 하며 '바보'가 되기도 한다.
영어권 사람들은 이름을 줄여서 부르는 경향이 많은데, 그래서 내 이름 dopehead를 dope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한국어 발음으로 '돕'이다.
돕은 그래서 내 애칭이 되기도 하는데, 한국어에서 돕은 동사 '돕다'의 어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은 날 '돕'으로 소개하고 '서로 돕자'는 뜻이 담겨있는 말이 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름 하나에 무슨 이런 장황한 설명이 필요하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 아나키가 자연스럽게 체화된 삶의 원리이자 동시에 사회를 바꿔나가는 운동인 것처럼 나의 이름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를 나타내주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으로 의미를 가진 관계망들을 만들어내는 내 실천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조약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