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싸움평화가 무엇이냐 2005/04/24 22:36 나는 안 나가요
여기서 엎어져 죽어도 안 나가요
자동차가 오면 깔려 죽는 한이 있어도 안 나가요
- 평생을 살아온 집에서 쫓겨날 판인 어떤 할머니의 절규 -
여기저기서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활발하다.
새만금에서, 평택에서, 공장에서, 재개발 지역에서, 길바닥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힘을 다해 버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국에서 강제추방을 당하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고 결집한 이주노동자들.
공장에서 언제 해고될 지 몰라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면서도 힘들게 일하면서 턱없이 낮은 임금으로 고통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비장애인과 자동차 운전자 중심의 차별적 교통체제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길바닥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싸우는 장애인들.
재개발을 한다며 달려드는 포크레인 앞에 자신들이 살던 집에서 쫓겨날 수 없다며 생존권을 요구하는 철거민들.
희소해지는 자원을 모조리 점령하고, 세계를 비롯해 동북아 지역을 호령하려는 야욕을 숨기지 않는 제국, 미국의 군대가 총집결하려는 평택에서 자신들이 살아온 터전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팽성의 농민들.
그리고 새만금 갯벌을 지키기 위해 소리 없는 몸부림을 하고 있는 뭇 생명과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온 어민들.
이들이 벌이는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싸움들은 무엇을 더 얻어내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 그저 '이겨도 본전'인, 모든 것을 빼앗기느냐 아니면 최소한의 삶의 조건을 유지하느냐의 싸움인, 참으로 절박한 싸움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질기고 절박한 싸움을 새만금 어민들은 진행하고 있다.
4공구 방조제가 완성되어 바닷물을 막는 방조제 공사는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고, 이에 따라 새만금 갯벌은 오늘도 죽어가고 있다.
드넓은 갯벌과 바다가 펼쳐져 있던 전라북도의 부안, 김제, 군산 지역은 바닷물이 막히면서 그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오만함을 뽐내기라도 하듯 바다 한가운데를 칼로 두부 자르듯 자르며 지나가는 방조제는 이제 2.7km만을 남겨두고 새만금 갯벌의 숨통을 조인다.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점점 담수화가 진행되고 있는 새만금 지역에 살던 수많은 생명들과 어민들은 삶의 터전을 완전히 빼앗길 지경에 놓인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4공구 방조제를 터서 바닷물이라도 활발히 들어왔다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겨야 본전인 싸움.
이겨야만이 그대로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데, 그것조차 쉽지 않은 힘든 상황이다.
요즘 새만금 갯벌에는 도요새를 엄청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한 무리의 도요새 떼가 날아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한번이라도 눈여겨보았다면 우리는 갯벌을 없애고 그들을 내쫓으려는 생각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갯벌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많은 생명들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농지를 조성하려고 갯벌을 메웠다. 그런데 이제 계획이 바뀌어서 항구도 만들려고 하고, 공항도 지으려고 하고, 그럴싸한 복합산업단지도 만들고, 골프장도 만들려고 하니까, 소수의 가진자들 배를 불리려고 하니까 말 못하는 생명들은 새만금 갯벌을 포기하고 나가라, 다수의 어민들도 어업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라'
이런 말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지 않나?
그냥 이대로 어민들은 고기를 잡고, 백합과 농발게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방조제를 허물고 갯벌을 내버려 두어라고 그렇게 외치건만 오늘도 민중의 삶의 터전을 빼앗으려는 가진자들의 땅빼앗기는 그칠 줄 모른다.
새만금 갯벌을 살리려는 싸움은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싸움이다.
어민들만의 외로운 싸움으로 끝나도 안 되고, 말 못하는 조개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그쳐도 안 된다.
우리의 소중한 삶의 터전을 힘있는 자들이 마음대로 주무르게 놓아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쫓겨나지 않기 위해 각자의 영역에서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모든 이들, 빼앗기고 소외된 사람들이 나서서 서로 손을 맞잡고 어깨를 걸고 함께 싸울 때 우리는 비로소 본전이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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