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은 장벽을 만들고 평화는 길을 만든다
평화가 무엇이냐 2011/10/21 10:15한국여성민우회 소식지 '함께 가는 여성' 2011년 9,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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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은 장벽을 만들고 평화는 길을 만든다
조약골
강정마을은 평화의 섬 제주에서도 보석과도 같은 곳이라고 불린다. 구럼비 해안가에서 인근 범섬에 이르는 바다 속에는 천연기념물 연산호 군락이 천연 수를 놓은 듯 펼쳐져 있으며, 붉은발말똥게, 맹꽁이, 제주새뱅이 등의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으면 유네스코가 생물권보존지역, 세계지질공원,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을 했을까. 한 번이라도 구럼비 바위의 넉넉함에 잠시나마 몸을 맡겨본 사람이라면 유네스코의 3관왕 타이틀이 절대 과장이 아님을 알 것이다. 제주도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해 개발을 제한하려 했던 이유도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곳이 지금 해군기지 건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9월 2일에는 강정마을 중덕해안가로 가는 삼거리에 결국 가로막과 철조망이 설치되어버렸다. 이제 그곳은 국방부 소유의 부지로 전락해버려 해군의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그 천혜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조차 없게 됐다. 매일 들락거리며 슬픔과 즐거움을 나누던 곳에 어느 날 문득 거대한 장벽이 들어서고, 그곳이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하는 그 통렬한 심정을, 나는 과거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새만금 갯벌에서 생합을 캐내며 살아가던 계화도 어민들이 그랬다. 방조제 공사가 완료되며 드넓은 갯벌을 살리던 해수 유통이 차단되자,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며 수많은 생명을 잉태하던 그 보드라운 터전이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그곳이 죽기 전 맨손어업에 종사하던 여성 어민들은 매일 갯벌에 나와 무수한 생명과 호흡하며 슬픔을 위로받곤 했었다고 토로했다. 억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었던 친구를 잃고만 것이다. 자식과도 바꾸기 싫다던 평택 대추리 황금들녘도 그러했다. 노을이 지는 황새울 들녘에 서서 일상의 고단함을 녹여내던 농민들은 어느 순간 미군기지 건설로 막혀버린 그 논밭을 보며 한국 경찰과 군대가 합작하여 자신들을 때리고 땅을 빼앗아버린 국가의 폭력을 저주했을 것이다. 불행히도 군사주의와 안보가 휘두르는 폭력은 평택이 끝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금 힘을 내 해군이 빼앗으려 하는 이 보석 같은 강정마을에서 평화활동가로 살고 있다. 주민들의 절절한 호소를 귀담아 듣기 위해서다.
마을의 중심이랄 수 있는 코사마트 사거리에서 기지 건설 예정지인 중덕삼거리를 지나 강정포구 쪽으로 자전거를 타거나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이내 해군이 쳐놓은 높다란 담장이 나온다. 그곳에 누군가 다음과 같은 길귀를 적어놓았다.
“해군은 장벽을 만들고 평화는 길을 만든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나는 평화가 가장 위협을 받고 있는 강정마을에서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본다. 왜 군대는 장벽을 만들 수밖에 없는가. 그리고 평화운동이 만들어가는 길은 무엇인가. 강정마을에 오면 누구든 사거리에 있는 ‘할망물다방’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가볍게 찾아와 커피 한 잔 마시고, 돈을 내지 않아도 괜찮은 곳, 주민과 활동가들이 어울려 수다도 떨고 사랑방처럼 모여 앉아 서로 회의도 하고 고충을 나누는 곳이다. 그 할망물다방에 며칠 전 서귀포 해양경찰관 한 명이 찾아왔다. 하루 바리스타를 하던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별 일 아닌 듯 그에게 커피 한 잔을 내놓았다. 마침 옆에는 마을 할망도 앉아 있어서 자연스럽게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대화가 이어지게 됐는데, 그 주민이 "저 바당이 누구네 바당입니까, 왜 우리들은 못들어갑니까?"라고 하소연하듯 따져 묻자 그 해경은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그 경찰도 알 것이다. 바다가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 땅이, 이 바다가, 이 하늘이 모두가 골고루 공유하는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해군은 국가안보를 위한 사업이라며 그곳에 장벽을 치고 말았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문제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데, 최근에는 알자지라 방송에서 두 명의 기자가 찾아와 마을에 보름 동안 머물면서 밀착 취재를 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 그 기자들은 왜 지구 반대편 변방 조그만 나라에서도 본토도 아닌 섬, 섬에서도 가장 남쪽 끝에 있는 조그만 마을까지 찾아온 것일까 궁금했다. 한국의 지배자들은 애써 숨기려 하고 있지만 제주 해군기지는 초강대국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패권유지와 신흥 강대국 중국의 견제가 맞물리는 예민하고도 복잡 미묘한 문제이며,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대만의 이해관계도 얽히게 되는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이 그들의 대답이었다. 이는 결국 세계의 문제라는 것이다. 단순명료한 대답이다. 그 알자지라 기자들이 고권일 주민반대대책위원장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나는 통역자로서 그 모든 대화를 중계했다. 인터뷰 끝 무렵 기자들이 물었다, 당신은 이 싸움이 이길 것 같으냐고. 이 투쟁이 성공할 것 같으냐고. 어려워 보이는 질문에 고권일 위원장은 주저하지 않고 답변을 해나갔다.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이 싸움에 있어서 성공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이다. 우리가 국가안보라는 것의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으면 이 투쟁은 성공한 것이라는 것이 그가 한 답변의 요지다.
고권일 위원장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발표한 최종진술서에서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안보인가? 누가 결정하는 안보인가? 두려움 없이 편하게 일상을 살아간다는 의미에서 안보는 해군이 지금 건설하려는 군사기지를 통해 지켜질 수 있는 것인가? 그 기지에 들어올 최첨단 이지스 군함이 강정마을 주민들을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만들 것인가? 왜 안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모든 것들이 칼날처럼 마을 주민들을 할퀴고, 찬성과 반대로 나눠 서로 몇 천 년간 이어 내려온 유대관계를 철저히 짓밟아 놓고 있는가? 강정마을에 국가가 들어와 안보를 설파하고 군사기지가 필요하다고 강변한 뒤부터 마을에서의 삶은 지옥이 돼버렸는데, 그런 고통을 호소하는 주민들에게 국가는 다시 육지로부터 경찰을 내려 보내 감옥에 가두고 2백명이 넘는 사람들을 사법처리하고, 5천만원이 넘는 벌금을 때리고, 지금도 마을 곳곳에 전투경찰을 배치하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행복추구권, 집회와 시위와 표현의 권리, 자유롭게 이동한 권리 등을 깡그리 무시하고 흡사 계엄령과도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데, 과연 누가 누구를 무엇으로부터 지켜준다는 말인가? 80%의 주민들이 매일 같이 촛불을 들고 비폭력의 방식으로 여전히 반대하고 있는 곳에 극소수의 권력자들이 결정한 새로운 군사기지 건설 사업이 그대로 진행되도록 내버려둔다면, 과연 그렇게 해서 튼튼히 지켜진다는 평화는 누구의 평화인가?
어느 날 깡패가 찾아와 마을 한복판에 진을 치고서 정신적으로 마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강탈해버린 뒤 매일 협박을 하며 ‘내가 시키는 대로 말을 들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한다면 그 말을 듣는 내 심정은 어떨까 상상을 해보게 된다. 단 한 명이라도 격렬히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의 말에 곰곰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를 지켜준다며 사업을 강행하는 자들이 그 목소리를 한 번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안보는 기만이고, 그들이 군대를 통해 지킨다는 것은 소수의 이익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조그만 남쪽 마을에서 커다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진다.
군대는 세상을 갈라놓는다. 다양한 사람들을 두 집단으로 갈가리 찢어놓는다. 나와 적으로 억지로 나눠버린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 언제 어디서건 만나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 문득 나와는 반대선상에 놓인 단일한 집단으로 묶여 적이 되고, 견제의 대상이 된다. 적이, 잠재적 안보의 위협이 없다면 군대는 존재할 필요가 없어진다. 적이 존재해야 아군도 존재하므로, 본질적으로 군대가 존재하는 한 적의 위협은 제거되지 않는다. 이것이 군사주의의 역설이자 함정이다. 이런 것에 한 번 빠지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군사주의는 아예 뿌리를 뽑아야 한다.
나는 매일 저 장벽을 넘어 군사기지가 없는 구럼비 바닷가로 가는 꿈을 꾼다. 강정마을에 와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일을 하다 고개를 든 순간 구럼비 바다 앞에서 돌고래 떼가 헤엄치던 모습, 그리고 길에 불을 밝히고 날아다니는 수십 마리 반딧불이들을 보았을 때. 강정은 보석이다. 이곳에도, 그리고 더 이상 이 땅 어느 곳에도 군사기지는 필요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