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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기 위해
별로 남기고 싶지않은 이야기지만 이런 나도 나니까.
연휴 기간 중에 dk가 집에 놀러왔다.
아들의 입시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나보고 다음엔 전임이 되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기는 힘들 것같다고
전임이 되기 위해서는 예술적 성취가 있어야 하는데
7년 전 영화를 마지막으로 작품활동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교육을 다니느라 너무 바쁘다, 그리고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야기를 쭉 듣던 dk는 그럼 영화를 만들면 되는 거 아니냐고 다시 물었고
나는 "통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예전에 서울에서 혼자 아이들을 돌볼 때에도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편집만 할 때에도
통으로 사흘만, 하며 안타까워했으니까. 편집이란 그런 거야"
그런 이야기들을 하다보니 정말 지금의 나는 심각하구나 싶었다.
연휴가 끝나고 내가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모임에 갔다가 불편한 상황을 만났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이렇게 써놓고 보니 곳곳에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구나.....ㅠㅠ)
새로이 거기에 결합한 상황이다.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는 영토주의자이기 때문이다.
편의상 W라 부르자. 이름조차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영토주의자는 내가 만든 말이다.
어디든 자기가 있는 곳을 자기 영토로 만드는 사람.
생색내고 욕심부리고 주도하려는 W의 모습을 보노라면
저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호흡이 섞이는 것조차도 싫다는 생각이 든다.
경은 투병 중에 자신의 상태를 알리지 말라고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나는 영상활동가들도 다 믿지 않아.
명예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으니까.
내가 그나마 믿는 사람이 하루랑 I야.
믿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알리고 싶지가 않다...."
경의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할 때 투병기간 중에 내내 곁을 지켰던 M이
내게 전화를 했다.
장례위원을 꾸리는 것을 함께 해달라고.
경이 영화인들 중에서는 당신을 가장 신뢰하니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다고.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끊다가 경의 죽음을 알았고
서울대병원으로 갔다.
갔더니 한독협의 이사장이 와있었고 내가 두번째였다.
그리고 곧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 W가 왔다.
생전에 경은 W를 참 싫어했는데(나랑 비슷한 이유로)
영화인 실행위원으로 나랑 그 사람이 거론되었다.
그 사람은 이름 올리는 걸 좋아한다.
나는 얼른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 사람이 자기의 장례와 관계된 뭔가를 맡으면 경이 싫어할 것같아서
마지막 가는 길은 내가 그래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어야할 것같아서
얼른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 순간을 돌이켜보면 내 자리를 알게 된다.
일찍 도착한 나는 아직 차려지지 않은 장례식장,
부의금 받는 자리에 혼자 앉아있었다.
속속들이 도착한 사람들이 장례식장 안쪽에서 회의를 시작할 때
나는 부의금 받는 의자에 앉아서 새로이 오는 사람들에게
저쪽으로 가시면 된다고 안내를 하고
조화가 도착하면 받고 사인을 하는 등등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내게 와서
"저 안에서 영화인들 회의하는 것같은데 여기 있지 말고 참여해야지." 했다.
그리고 가보았더니 실행위원이며 호상이며 이런 저런 역할들을 정하고 있었다.
내가 함께 했던 경은 생각보다 높고 큰 사람이었는지
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 자리에서 실행위원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자리를 맡을 수 있었던 것도
그 회의에 가까스로 참여했기 때문인 것같다.
그 W가 내 모임에 새로 참여하게 된 거다.
따지고 보면 반갑고 고마운 일일텐데
나는 W가 너무 싫어서
저 인간은 또 이 곳에서 우리가 3년동안 열심히 모아놓은 것들을
다 자기 것인양 가져가겠지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이런 마음은 너무 힘이 든다.
나는 그래서 W랑 함께 있는 것을 피하고 싶은 거다.
모임 회원들과 MT를 하고 나서
단체 대화방에 사진들을 올렸는데
주로 까페 사진들이었다.
경의 49재에서 W는
"감독님 집 엄청 좋더라.
인생 성공했네.
그래서 서울에 안나오는구나"
이런 저런 말을 했다.
니 남편은 청주의 소문난 유지의 아들이라며.
그런 의미라면
서울에서 아파트를 갖고 있는 너는 더 성공한 거겠네
라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나는 그냥
그 사진들은 우리 동네 커피숍 사진이라고.
우리 집은 아직 준공허가도 안나고
그냥 짐들이 마당에 수북히 쌓여있고 그래서 사람들이 사진도 안 찍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애써 웃었다.
그리고 생각했지.
아, 얘랑은 이래서 말을 안 섞는데 또 잊었구나.
사실 그 모임의 엠티를 할 때
남편은 W도 오냐고
그런 사람은 괜히 오면
집이 좋네 어쩌네 말들을 막 하고 다닐 거라고
조심하라고 그랬는데
다행히 W는 안왔다.
그런데 49재에서 그런 일을 겪은 후
남편에게
"네 말이 맞았어. 그런데 그 사람은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지?
그 사람이랑 말하고 나면 늘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인데
그 사람은 그걸 의도하는 건가, 모르고 그렇게 말하는 건가?"
물었더니 남편이 말해주었다.
다 알고 말하는 거야. 그 사람은 너를 질투하고 샘내는 거고.
그리고 우습게 보는 거지. 그러니 말 섞지 마라.
했다.
그런데 이제 정기적으로 회의자리에서 만나야한다니.
학생 하나가 최근에 돌고 있는 소문을 전해주었다.
지금 내가 수업을 나가고 있는 학교의 대학원을 만학으로 졸업한 W가
K선배가 그만둬버린 공석을 노리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 어떤 일을 꾸몄고
그 일을 유능하게 해결하는 자신의 모습을 각인시키며
교수가 되려고 하고 있다....
그래 W라면 그럴 수 있지.
모임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이 모임에서 추진하는 영상물이
극장개봉까지 염두에 두는
큰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라는 것.
그런 건 모두가 알고 있다.
나는 이번에도 글을 쓰고 돈을 모으는 일을 한다.
연출에게 영광이 간다는 것을 모르진 않지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자리가 아니더라도
그냥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으면 좋다 생각하며 일해왔다.
그런데 W가 결합하면서 마음이 복잡해지고 있다.
학교에서 교수를 뽑는다.
이번에는 드라마 부문이다.
학교 홈페이지에 갔다가
"4년 이내 작품"이 심사내용에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냥 지금처럼 학생들 졸업작품을 도우면서
내가 다니는 많은 교육 중에서
가장 위로가 되고 에너지를 받는 이 교육,
이 날 하루만 아이들을 만나면 된다고 생각을 해왔었다.
그런데 갑자기 K선배가 그만 둬버려서 공석이 된 그 자리를 둘러싸고
이런 저런 계획들이 시도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나는 한 번도 그 자리가 내 것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전이 없었다.
그만큼 K선배와 나의 거리는 멀었으니까.
그런데 새로이 외래교수로 온 선배감독이
나를 견제하고 있는 것같다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그를 참 좋아하는데. 그가 교수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영화도 못 만들고 있는데 왜 저러나
생각하다가
아, 내가 가장 오랫동안 이 학교에 머물면서
학생들이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것을 도와온 사람이었구나,
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학생들이 잘한 것일 뿐이지만
어쨌든 그 학생들의 영화에 지도교수로 이름이 올라가는 사람이 나니까.
사람들과의 교류가 없는 채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학교에 가서 수업을 하고
다른 날은 검단, 파주, 서울, 그리고 강화를 다니느라
영화도 못 만드는 동안에
소문들이 돌고 있었던 거다.
내가 불편한 건 사실 나 자신 때문이다.
학생 하나가 W에 관계된 소문을 내게 전해주고
얼마 후 사무실 S가 또 그와 비슷한 소문을 전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k감독님이 거기를 그만 두면서 '하루가 거기 있으면 좋은데' 라고 했다"고.
뒤이어 MOON도 내게 말했다.
"K감독님이 누나가 그 자리를 이으면 좋은데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그러면 그렇게 할 수 있게 좀 힘 좀 쓰지 훌훌 던져버리고 나와버리냐.
학생들이 "선생님, 선생님이 교수하면 좋은데"라는 말을 할 때마다
그런 애기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진지하게 말한다.
2011년 대학원에 다니면서 교수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다는 몰라도 조금은 봤으니까
학생들은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존재.
교수사회는 우리가 모르는 힘들과 기준으로 움직이는 곳.
학생들은 지도교수에 따라서 우루루 몰렸다가 또 하루 아침에 우루루 떠나간다.
2009년에 정말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사랑하고 헌신했었으나
나의 자리는 그저 시간강사일 뿐, 그러니까 잠시 아이를 맡은 어린이집 교사일 뿐이라는 것.
지난 7년? 8년 동안 내가 알게 된 사실은 그런 차가운 자기인식이었을 뿐.
나는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너희들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족하니까
그런 얘기 하지 말아줘....
극소수라도 나를 열렬하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정교수들이 경계해....부탁해..
나는 이런 말들을 하곤 했다.
이 시간, 이 자리만 있으면 돼....라고.
그런데 소문이 돌고
경계심이 섞인 대우를 받고
그러다보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나도 영화를 만들어야하는 거 아닐까.
올해 드라마부문 전임을 뽑으면
내년이나 후년 쯤 다큐부문 전임을 뽑을 텐데
그걸 위해 W는 저렇게 애를 쓰고
또 선배감독님은 저렇게 자기 존재를 각인시키고 있는데
나도 그 바람에 몸을 맡겨야하는 건 아닌가
이런 조바심이 생기는 거다.
현장에서 영화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내 강의를 좋아하고
내가 하는 말들대로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노인교육은 특히 그렇다.
보청기를 써도 잘 안들린다는 어떤 교육생의 말을 듣고 나서는
그 분 표정을 보면서 수업을 하곤 하는데
끝나고 나면 목이 잠겨있다.
그래도 그 분들이 주름깊고 두꺼운 손으로
카메라를 조심스럽게 만지는 모습을 보다보면
내가 그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감읍하게 되는 거다.
그렇게 살다가
갑자기 W를 만나고
W의 원대한 계획에 대한 소문을 떠올리게 되고
그러면
나도 쟤처럼 움직여야하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스산해지는 거다.
내가 지금 선 자리는 적절한가.
나도 그들처럼 움직여야 하는 건 아닌가.
나도 영화제에 자주 찾아다니고
영화인들이 모이는 자리에 다녀야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참 싫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 혼자 변방에 홀로 남겨져있다는 생각이 들거든.
이래서 이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기 싫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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