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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다

2010년의 키워드는 독립이다.

2009년 12월 30일에 남편의 강화 발령 소식을 들었다.

몇 년 전의 철원이주계획에 대해서는 당연히 '전원이주'였지만 이번엔 그러질 못한다.

10년동안 이 곳에 살았다는 게 특별한 거고

남편은 앞으로도 5년 간격으로 발령을 받을 것이라 한다.

단 한 번의 전학으로 뿌리가 흔들리는 경험을 했던 나는

5년마다 뿌리를 걷는 일이 탐탁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터전을 지키기로 했고 남편 또한 같은 생각이다.

 

앵두와 하돌은 이제 적응이 끝났고

하늘은 학교-공부방의 조화 속에서 환상적인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올해 작품 완성을 목표로 열심히 작업에 몰두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화이주는 모두에게 폭탄같은 일이다.

그래서 결국 남편 혼자 강화로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30일부터 며칠동안 뻐꾸기님에게 연락을 해볼까 고민만 하다가

어제 아침, 하늘 공부방 선생님과의 긴 상담끝에 우리는 남기로 했다.

공부방 선생님이 권했던 건 유목민 정신으로 살으라는 것, 가족은 흩어지지 말아야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의견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나라는 사람은 유목민 정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고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 강화로 이주하게 되면

지금도 팍팍한 내 작업은 훨씬 더 팍팍해질 거라는 것.

연말연시를 같이 보낸 엄마는 당연히도 가족우선 원칙을 내세웠다.

4년이 미뤄진 나의 작업은 오직 나 혼자의 고민일 뿐.

그래서 나는 결국 아이들과 이 곳에 남기로 했다.

 

강화에 같이 살면서 허우적대는 나의 상황은 누구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직업, 나의 작업은 무형의 것이며 나의 고민 또한 그저 배부른 타령으로만 들릴 것이다.

차라리 농부처럼 일찍 일어나서 아이들을 건사하고 8시간을 꼬박 집중해서 일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을 건사하는 것이 몸은 힘들더라도 마음은 나을 것이다.

최소한 사람들은 내가 힘들 것이라는 걸 겉모습으로라도 인정할 것이다.

 

나의 자리는 그렇게 항상 외롭다.

나는 씩씩하게 이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나의 뿌리, 봉천동 내 제2의 고향에서 좀더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2010년 나의 키워드는 독립이다.

나는 더 부지런해질 것이다.

어제 저녁, 욕실의 곰팡이 때를 벗기며 어깨가 뻐근해질정도로 일을 하고 나니 상쾌했다.

그런 식으로 살면 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끙끙대느라 내 하루를 침식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방금 1년을 미뤄뒀던 메일을 보냈다. 내 공간과 시간을 침해하는 불청객에 대해서 경고를 했다.

예의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진흙탕의 개가 될 지라도 싸울 것이다.

나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사택을 나가게 되면 어쩌면 층간소음같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상다반사들을 주로 고민할 것이고

남편없는 여자에 대한 시선을 받을지도 모른다. 움츠리지 않고 받아칠 것이다. 

 

할 일이 많다.

이제 집을 구해야 하고

이사준비를 해야 한다.

어쨌든 내 마흔의 키워드는 독립이다.

정말로 나는 이제서야 세상으로 나아간다.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황석영 <바리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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