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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에 보낼 마지막 글을 쓰려는 중이다.
보통은 마감날부터 쓰기 시작하여 마감 다음날 보냈는데
이번에는 마감 전날 부터 쓰
기 시작한 건 아니고 관련 자료를 모아서 프린트를 하고 깊이 생각하는 중이다.
마지막은 좀 달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인권영화제 때문에 알게된 편집장님이 글을 부탁하셨을 때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난 '인권이야기'를 할 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세상 연재를 시작할 때 움츠렸던 것처럼
인권오름 또한 내겐 짐같은 굴레같은 어떤 것이다.
참세상에 글을 보내지 않은 지 2년이 더 되었다.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뭔가를 주장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항상 "앞으로는 잘해야겠다"는 식으로 글을 맺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도 글을 쓰는 일도
세상에 나의 것을 내보내는 데에는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를 취재해서 대신 전하는 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말을 하는 사람이다.
그 나의 세계는 좁고 얕다. 좁고 얕은 세상에 살면서 그 우물 바깥의 이야기를 하는 건 힘들다.
tv도 없앴고 신문은 읽지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도 또 누군가의 구속이나 석방도 항상 한 다리 건너서 전해듣는다.
대부분은 진보넷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을 훑어보다가 알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인권을 말할 수 있겠냐고....
그렇게 말을 했으나 편집장님은 저번에 인권영화제 때 글처럼 쓰면 된다고 했다.
인권영화제 글은 기억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의 기억들은 '내가 떠나온 그 푸른 바다가 가장 빛나던 곳은 아닐까'라는 노래가사처럼
떠나온 어느 시간의 기억들에 오래 멈춰있었다.
현재를 말하라고 하면 나의 현재는 예쁜 아이들과 그 아이들과 함께 있느라 멈춰진 영화 뿐이다.
결국 나는 절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인권에 대한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으로
흘러가는 시간 중간중간마다 내 삶과 인권이라는 단어가 연결되는 지점을 찾느라 머리를 싸맸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이다.
첫번째 글에는 몇 개 달렸던 덧글들이 두 번째 글에는 한 개, 세번째에는 한 개도 안 달렸다.
나는 덧글을 좋아한다. 덧글 때문에 글을 쓴다고 해도 될 정도로.
나는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글을 쓰고 또 영화를 만든다.
그런 나에게 무플은 정말 지옥같다.
세번째 글을 올린 후 일주일 정도가 지나서 어떤 모임에 갔는데
누군가가 "인권오름에 글 쓰시죠?" 하고 물었다.
네, 써요.
하는데 그 뒤로 말이 없다.
나는 그 때부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뭘까, 이 반응은.
맞은 편에 앉은 또다른 분이 "저도 봤어요" 했다.
그리고 또 별 말이 없다.
불안해진 나는 안절부절 못하다가 물었다.
제가 인권이야기를 쓸 자격은 안되긴 하는데....그런데 갈수록 덧글이 안달려서 좀 불안해요.
글 보니 어떠셨어요?
이 정도면 애원이다. 그래도 글에 대한 이야기는 좀체 나오지 않는다.
듣고 있던 분이 가만히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셨다.
"전 좀 놀랐어요. 저는 영화 이야기 할 줄 알았는데 영화 이야기는 하나도 없더라고요."
아, 그런가? 영화이야기를 했어야 했을까?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사람들에게 나는 영화감독이니까 영화이야기를 했어야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영화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저 내 생활과 인권에 대한 연관을 찾는 데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웠을 뿐.
그래서 마지막 글은 영화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래. 사실....
각계각층의 소리를 듣는다는 취지에서
나에게 청탁이 온 건...
내가 영화감독이기 때문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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