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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소비에트 계획과 관리 이니셔티브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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α. 소비에트 계획의 기초
첫 장에서는 소련에서의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목표가 처음부터 다른 나라와의 평화로운 관계에 대한 적극적이고 매우 실질적인 관심을 형성하는 데에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우리는 소련의 계획이 수행되는 방법─특히 필요한 자원이 축적되는 방법─이 경제 각 분야의 책임자들이 대외적 모험에의 관심을 발전시킬 여지를 남기는가의 여부를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5개년 계획 하 국민경제에 있어 중앙집중화된 자본투자는 2,500억 루블을 상회할 것이다. 그러한 지출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사회주의적 경제관리방식과 경제체제, 전반적인 원가계산을 발전시켜야 하고, 경제관리에 있어 비효율성을 단호히 제거해야 하며, 인력의 과잉과 높은 생산원가를 청산하고, 내부 자원과 축적의 모든 예비들을 국민경제의 복구와 발전의 필요에 맞게 동원해야 한다.”
즈다노프(공산당 서기 중 한 명)는 1946년 11월 6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1917년 혁명 기념 연설에서 이 발언을 했다. 이는 당시 많은 사람이 5개년 계획 달성의 수단으로 여기던 ‘관료적 명령에 대한 기계적·획일적·경직된 복종’을 요구하는 성격이 결코 아니었다.
소련의 경제계획이 실제로 어떻게 수행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련의 경제 토대의 몇 가지 필수적 요소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모든 토지와 광물 자원 및 광산, 철도 · 항공 및 사실상 모든 도로 교통수단, 모든 항구와 대부분의 선박(어민들의 개인소유 어선은 제외), 대외무역 및 모든 산업(소규모 개인수공업자들은 제외되며, 이들은 대부분 생산자협동조합으로 통합되었음)이 국유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국내 무역 또한 국유 혹은 협동조합 소유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둘째, 모든 국영 기업체 및 기관은 이른바 "경영자율성" 또는 "독립채산제(원가회계)"를 기반으로 운영되었다. 이는 지출의 최대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가가 기초 자본과 운전 자본을 제공하며, 해당 산업의 계획 생산량과 원가한도, 품질기준, 그리고 기존의 노동법 규정 범위 내에서 관리자에게 창의적 주도권을 부여하는 제도였다.
최근의 한 저자는 이 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립채산제(원가회계)”는 기업조직이 국가로부터 할당받은 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이를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활용할 것을 요구한다. 기업조직은 자신들이 초래한 손실에 대해 물질적 책임을 지며, 흑자 운영을 통해 물질적 · 금전적 이득을 얻는다. 이는 생산비용의 절감과 축적의 증대의 측면에서 국가적 의무의 이행을 촉진하는 시스템이다."1
셋째, 농업의 대부분(경작면적의 약 90%, 생산량의 약 85%)은 집단농장(콜호즈)이라고 불리는 농민들의 생산자협동조합이 관리한다. 이들은 농업의 거의 나머지 전부를 담당하는 국영농장과 구별되는데, 국영농장의 장비, 가축 및 생산물은 모두 국가 소유인 반면, 집단농장은 자신들이 경작하는 토지만 국가 소유로서 임대료 없이 사용하며, 그 밖의 모든 자산은 전적으로 집단농장 자체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집단농장은 구성원이 선출한 관리위원회가 운영하는 반면, 국영농장은 공장과 유사하게 정부기관이 임명한 관리자가 운영하며 임금제 노동을 활용한다. 집단농장은 생산물의 일부를 국가에 고정가격으로 공급하고, 세금 및 기타 부과금을 납부한 후, 비축량과 구성원간 분배량을 결정하면 여분의 잔여 생산물을 자유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다. 집단농장의 개별 농민들은 또한 자신의 몫으로 배분받은 생산물로 가구수요를 충족시키고 나면 잔여분과 개인 텃밭에서 나온 물품을 자유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다.
넷째로, 이 체계의 효율적 운영에는─해외에서 여전히 광범위하게 믿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화폐의 사용이 필수적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생산수준은 아직 필요에 따른 생산물의 분배를 보장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 생산력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선 여전히 노동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노동의 양과 질, 각 개인의 소비량을 측정하는 데에는 화폐가 필요하며, 산업 및 상업기관의 관리자들이 낭비를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등의 성과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도 화폐가 필요하다. 또한 기술장비수준이 서로 다른 산업 또는 공장─즉, 생산 과정의 기계화 정도나 사용하는 기계 에너지원이 다른 경우─의 효율성을 비교하는 데 있어서도 화폐가 요구된다.
소련에 사회적 소유의 두 가지 형태─국가소유와 협동조합적 소유(집단농장)─가 있다는 사실은, 산업 노동자의 노동과 집단농장 농민의 노동 사이에 여전히 상당한 경제적 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을 뜻한다. 후자는 국가의 관리를 비교적 덜 받으며, 노동생산물의 처분 방식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집단농장 농민의 생산물 중 일부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반면, 공업생산물의 가격은 모든 단계에서 국가에 의해 관리된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국영공업의 생산물과 집단농장의 식량 및 원자재 생산물 간의 계획적 교환도 오직 화폐의 도움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소련에서 화폐가 자본―즉 투자나 주식의 보유를 통해 타인의 노동력을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점2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소련에는 국영 대출 채권을 제외하고는 주식, 증권 또는 유가증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국채는 공공 소유 기업의 자본 건설을 촉진하기 위한 보조 수단으로 발행되며, 시민들의 개인소득에서 모금된다
다섯째, 소비에트 계획경제의 핵심목적은 “다음의 요소들, 즉 1. 노동자와 농민 대중의 소비 확대와 2. 전체 국민경제의 확대재생산에 기초한 국영공업의 확대재생산(축적), 3.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빠른 국민경제의 발전속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4. 프롤레타리아의 전체 경제정책에 있어서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요소인 우리 경제의 사회주의적 부문의 상대적 중요성을 체계적으로 증대시키는 것의 가장 최적의 조합을 이루는 것이다.”3 이 정식은 제1차 5개년 계획 수립의 토대로서 1927년 12월 소련 공산당 15차 대회에서 최초로 규정되었다. 스탈린의 정식 중에서 마지막 부분은 “사회주의적 부문”이 소련 경제의 거의 전부를 차지함에 따라 현재로서는 다소 구식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다른 모든 측면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마지막으로, 소련의 경제계획은 정부와 근로인민의 협력에 따른 산물이다. 국가계획위원회의 위원인 J. 요페(Joffe) 교수는 이에 대해 영어로 완벽하고 정확한 설명을 제공했다. 다음의 인용문은 그 핵심적인 요점들을 정리한다:4
(i) “연간계획의 수립을 위한 작업은 새로운 해가 시작되기 6개월 또는 7개월 전에 시작된다. 인민위원회[현재의 성(省); 저자] 부처들과 국가계획위원회가 제출한 자료들에 기초하여 정부는 현행년도계획의 이행결과를 종합한다.”
(ii) “정부는 또한 향후 수년 동안 수행해야 할 핵심과제들을 결정한다. 이러한 과제는 계획 수립을 위한 ‘지침’[때때로는 ‘지령’으로 불린다; 저자]에 명시된다. … 계획수립지침에서 정부는 계획이 포괄하는 기간동안 중요한 쟁점들을 제시하고, 계획수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산업분야를 명시하며, 해당 분야의 기본과제를 수립한다.”
(iii) “다른 모든 산업부문에 대한 계획의 이행은 핵심 산업의 계획달성을 보장하는 정도에 따라 평가된다. … 인민위원부 부처들이 정부의 계획수립지침을 접수하면, 관할 산업별로 예비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한다. 해당 산업의 차상위 관리기구는 소속 기관별로 세부계획을 정의한다.”
(iv) “해당 기관의 경영진, 노동조합, 기타 공공기관들은 이러한 예비계획에 대해 논의한다. 생산회의에서 육체노동자와 사무직 근로자는 모두 … 해당 기관의 특수성과 잠재적 역량을 고려하여 상정된 계획에 대해 수정안을 제시한다.”
(v) “수정과 보완을 거친 일련의 모든 예비계획들은 해당 인민위원부회로 회신된다. 인민위원회는 이를 검토한 후 전체 위원회를 아우르는 통일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정부에 승인을 요청한다. … 정부에게 제출된 모든 계획은 국가계획위원회의 심사를 먼저 거치며, 위원회는 각 계획에 대한 검토 의견을 첨부한다.”
(vi) “정부에서 채택된 계획은 법적 효력을 가진다. 단, 5개년 계획의 경우 소련 최고 소비에트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vii) “정부는 계획의 이행여부에 대해 지속적으로 감독함으로써, 계획의 시의적절한 실행을 보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독은 국가기관만의 역할이 아니다. 노동자 대중도 직접 참여한다. 핵심 산업의 계획이행현황은 신문에 매일 게재되며, 일반 대중이 확인할 수 있다.”[1947년에는 월간 및 분기별 상세보고서의 출판에 관한 제도가 도입됐다; 저자]
이러한 핵심 사항들을 고려할 때, 제4차 5개년 계획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첫 번째 목표는 독일군에 의해 파괴된 자본을 대체하는 것이었다. 이 피해규모는 상술한 국가위원회 보고서에서 6,790억 루블, 즉 1,280억 달러 또는 점령지 내 국유재산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보즈네셴스키[N. A. Voznesensky]에 따르면, 1940년 소련의 전체 기본자본은 1조 460억 루블이었다.5 이 끔찍한 피해 중 일부는 당시의 생산량으로 보상하고, 극히 일부는 독일의 배상금으로 충당될 예정이었으나6, 국가는 이를 위해 자체 자원에서 1,150억 루블을 지출할 계획이었다. 이 수치는 스탈린이 1946년 10월에 ”모든 피해를 복구하는 것은 5년보다 더 길게 걸릴 것"이라 언급한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준다.
다음으로, 1,350억 루블 가량의 국가자본이 피해지역 외부에서 국민경제의 확장을 위해 투입될 예정이었다. 이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제1차 5개년 계획 당시에는 2,400개의 신규 공장과 기업소가 건설되거나 완전히 개건(改建)됐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는 4,500개의 공장과 기업소가 건설되고 가동되기 시작했으며, 1938년부터 40년까지 3년 동안에 그 숫자는 3,000개에 달했다. 1950년에 끝나는 제4차 5개획 기간에 지어지는 공장과 기업소들의 숫자는 5,900개가 될 터였다.
이러한 제 조치의 결과로 연방 전체의 공업생산량은 전전(戰前) 수준 대비 48%로 증가할 예정이었고(피해지역에서는 15%로 계획됐다), 노동생산성은 평균 36% 이상 증가할 예정이었다. 농업생산량은 전쟁 이전보다 25% 높게 증가할 터였다. 연평균 소득은 전전 수준 대비 48%로 증가할 것이었고, 교육 및 각종 문화봉사부문에 대한 지출도 대폭 증대될 예정에 있었으며, 배급제도도 다시 한번 폐지될 예정이었다.7
이러한 광범위한 변화를 실현하기 위해 소련은 주로 자체적인 축적원천을 통해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소련은 차관을 이용할 수 없었고, 그러한 가능성을 기대할 수조차 없었다. 과거에는 여러 국가로부터 공업용 설비들의 구매를 위한 적당한 신용을 이용했지만, (전쟁 당시에 미국에 주문했으나 미인도된 잔여 물자 획득를 제외하면) 전후에는 이러한 금융 지원이 대규모로 약속되지도 않았고, 1947년 당시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도 이용할 수 없었다.
자원은 국민소득에서 조달되어야 했으며, 이러한 조치가 가능했던 근본적 이유는 소련에서 국민소득을 창출하는 생산수단이, 해당 생산수단을 운용하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공동체[국가공동체]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소련에서 계획경제가 시작된 초기부터 국민소득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 의식적으로 할당됐다. 국민소득의 비율은 대체로 유지되었지만, 국민소득 자체의 급격한 확장─1927년 수립된 목표에 따라 계획적으로 자원을 운용한 결과 가능해진 성과─으로 인해 투자규모도 크게 증가했다.
관련 통계는 아래와 같다:8
연도 | 국민소득 (단위: 10억 루블) | 자본 축적, 자본 예비에 할당된 비율 |
1928년 | 25.4 | 29.7% |
1932년 | 45.5 | 26.9% |
1937년 | 96.3 | 27.1% |
1940년 | 128.3 | 29.6% |
1950년 | 177 | 27% |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소련이 제정러시아보다 외국자본의 원조 측면에서 훨씬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1917년에 러시아 산업자본의 총액에 해당됐던 전체 50억 루블(5억 파운드 이상) 중에서 외국자본의 투자액은 3분의 1을 다소 상회했다. 그러나 외국자본의 유입은 러시아 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높은 이윤율을 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외국기업들은 러시아의 석탄총생산량 중 50%를, 철광석 생산량의 60% 이상을, 같은 비율의 구리 생산량을, 남부의 주요 금속공업지대에서 선철 총생산량의 67%를, 석유총생산량 중 절반 이상을 통제했다. 러시아 제국의 6대 은행자본 중 절반 이상도 외국자본의 소유였다.9 러시아 주요 산업의 연간 증가분은 대부분 러시아에서 빠져나와 투자국들의 경제로 흘러 들어갔다. 소련은 정치적 이유로 해외로부터 원조를 못 받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이상으로 자국의 노동의 성과를 경제적 이해에 따라 운용할 능력을 얻었다.
번역: 김의진 | 사무위원
2025년 4월 20일
- Sotzialislichtskoe Planirovanie Narodnogo Khoziaistva SSSR, 1946, 81-2.
- 전후의 비정상적인 공급 부족의 상황에서 소규모 무역 자본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는 존재할 수 없으나, 이조차도 제한된 기간과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기능한다.(제5장을 참조하라.)
- Rczolutsii i Postanovlenia XV Syezda VKP, 1929, 47.
- USSR Speaks for Itself, 1943, 64-73.
- Report on the Five Year Plan, London, 1946, 9, 28.
- 보즈네셴스키는 Voyennaya Ekonomika SSSR, 163.에서 독일로부터 배상금으로 받은 산업장비들의 총가치가 파괴된 재산의 0.6%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 Law on the Five Year Plan, London, 1946, passim.
- 1928년도 통계는 고스플란의 Kontrolnye Tzifry na 1929-30, 467.에서 가져왔다. 1932년도 통계와 1937년도 통계는 Dohody Gosudarstvennogo Biudzheta SSSR, 1945, 8.에서 가져왔다. 1940년도 통계는 USSR Speaks jot Itself, 24에서 가져왔고, 1950년도 통계는 Voyennaya Ekonomika SSSR, 22-3.에서 가져왔다.
- P. Ol, Inostrannye Kapitaly v. Rossii, 1922, pas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