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A Twenty-Year Legacy of Ultra-Leftism”, Confronting Reality/Learning from the History of Our Movement, San Francisco, April, 1981.
Bay Area Socialist Organizing Committee
✮ 1. ‘좌경적’ 또는 우경적 오류
✮ 2. 모험주의
✮ 3. 좌익 종파주의
✮ 4. 좌익 경제주의
✮ 5. 초좌익주의의 기초
✮ 6. 데자뷔
✮ 7. ‘좌경적’ 경향의 시정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 미국과 전 세계의 공산주의 운동은 급진적인 방향 전환, 분열, 재편성 과정을 들어섰으며, 이 과정은 이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조직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에서 생겨난 신공산주의(new communist) 조직과 단위는 미국공산당(CPUSA)이 결코 성공적인 혁명을 이끌 수 없는 절망적인 수정주의 조직이라는 입장을 공유했다. 당의 방향과 실천에 대한 수년간의 불만이 쌓인 후, 중국과 알바니아의 공산당이 소련 수정주의를 공격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거부는 구체화되었다. 국내 운동 내부의 분열은 한동안 지속되어 왔지만, 이러한 국제적 발전으로 인해 이 흐름은 이념적 명확성과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1970년대, 특히 지난 5년간 반수정주의 “신공산주의 운동”에 접근했거나 참여했던 많은 사람은 운동에서 초좌익적 오류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인식하고 “반수정주의, 반(反)초좌익적 경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자기 정의에도 불구하고, 초좌익주의의 본질은 우리 경향 내에서 지속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러한 일탈의 중심 요소인 독단주의의 특징과 국제적 노선의 중요성에 대한 논쟁이 그 중심을 이루었다.
우리는 신공산주의 운동뿐만 아니라 반초좌익 경향도 심각한 ‘좌경적’ 오류를 범하는 경향이 그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현재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개괄적으로 해명한다. 초좌익주의에 대한 예비적 정의를 내린 다음, 이러한 오류의 주요 형태를 검토할 것이다. 우리는 종파주의와 경제주의라는 두 가지 형태에 초점을 둔다. 종파주의는 공산주의 조직들을 서로 고립시키고 군중으로부터도 고립시키며, 개량 투쟁과 혁명 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다른 오류들과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우경적 오류인 경제주의는 우리 운동에서 종종 ‘좌경적’ 형태를 띠어 왔는데, 이에 대해서는 글에서 해명한다.
이러한 개념을 규정한 후 우리는 그것들의 이념적 토대인 관념론, 주관주의, 교조주의와 그것의 조직적 지지대(支持臺)인 초중앙집권주의(ultra-centralism)를 살펴볼 것이다. 그다음 미국의 투쟁 수준, 공산주의 운동의 구성, 국제적 맥락 등 초좌익주의를 조장하는 몇 가지 지배적인 조건을 드러낼 것이다.
우리는 초좌익주의가 반복되는 경향이 쉽게 시정될 수는 없겠으나 그것을 진지하게 다루면 변화할 수 있다고 낙관한다. 우리는 이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단계적 처방을 제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반(反)-‘좌익적’ 경향의 발전, 특히 초좌익주의의 분석이 지닌 취약성과 초좌익주의 경향 자체의 위험성에 대해 간략하게 살피고 이 글을 마무리할 것이다.
1. ‘좌경적’ 또는 우경적 오류
초좌익적(또는 ‘좌경적’) 오류는 일반적으로 한 나라에 혁명이 임박했다고 과대평가하는 것을 포함한다. 전형적으로, ‘좌경적’ 구상은 노동계급의 자연발생적 저항을 혁명적 계급의식의 표출로 묘사한다; 고립된 전투적 행동이나 개별 선진 노동자가 대표성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초좌익주의자들은 노동계급 내부의 모순─인종주의, 성차별, 동성애 혐오─이나 노동계급의 잠재적 동맹 세력 간의 모순을 과소평가한다. 공산주의자들(혹은 이 분석을 수행하는 특정 조직)의 영향력이 과장되는데, 즉 노동계급 내 공산주의적 세포, 군중으로부터의 신뢰, 혁명적 강령의 발전, 검증된 지도력, 헌신적인 간부 등이 모두 과대평가된다. 혁명으로의 길은 비교적 순탄한 것으로 상상된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혁명의 굴곡은 경멸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일부 초좌익은 스스로를 혁명가의 대담한 행동만을 기다리는 영구혁명적 조건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다른 초좌익은 천재적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혁명적 봉기로 전환될 수 있는 자연발생적인 군중 저항 행위를 고대한다. 이 관점의 다양한 변형은 모두 우리가 “작은 불꽃이 들판을 태울 수 있다”는 상황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동일하다.
이러한 ‘좌경적’ 전망과 대조적으로, 우경주의자들의 분석은 혁명적 상황의 가능성을 무시하고 혁명 운동을 구축할 수 있는 잠재력을 과소평가한다. 초좌익이 모든 장애물을 무시하거나 변명하는 반면, 우익은 명백한 어려움에 겁을 먹는다. 그들은 인민에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신뢰하지 않으며, 혁명가의 역할─[마르크스-레닌주의적] 분석을 그들에게 주입하는 것─을 미룬다. 이들은 개량을 표방하는 기존 단위에서 일하며 인민이 더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임을 합리화하고,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인민을 준비시킬 책임을 지지 않는다. 최악의 일탈인 수정주의는 혁명 자체를 개량주의로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미화하며, 평화적 의회를 통한 사회주의로의 전환을 예언한다.
우경주의자와 초좌익의 차이는 객관적 조건과 주체 역량에 대한 견해를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객관적 조건은 본질적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조건으로, 예를 들어 지배계급 내부의 모순이나 특정 국가의 정책이 있다. 주체 역량에는 공산주의자와 군중의 의식, 행동 의지, 상황에 대한 이해가 포함된다. (이 구분은 절대적이지 않다. 예컨대 노동계급의 주관적 투쟁성은 부르주아의 안정성과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초좌익은 혁명이 공산주의자들의 욕망에 따라서만 계획되고 조직될 수 있는 것마냥 객관적 조건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우경주의자는 공산주의자(와 군중)가 사태의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으로 객관적 조건을 절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무엇이 가능한지 보지 않고 무엇이 실재하는지만 보려는 반면, 초좌익은 무엇이 가능한지만 보고 무엇이 실재하는지는 보지 않는다. 두 편향 모두 현실에 대한 일면적인 견해를 보여준다.
많은 사람에게 ‘좌경’과 우경적 오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형태상 좌익, 본질상 우경’이라는 공식 때문에 복잡해져 왔다. 이 표현의 요점은 ‘좌경’과 우경적 오류 모두 혁명에 후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우경적 오류는 혁명 운동의 잠재적 발전을 늦추는 반면, ‘좌경적’ 오류는 군중을 혁명적 사상과 행동으로부터 소외시킨다. 이 공식은 ‘좌경적’ 오류가 우경적 오류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견해에 대한 반론이다. 그러나 우경과 ‘좌경적’ 오류를 너무 성급하게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기원이 다르고 결과가 다르며, 이를 시정하는 방법도 다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특정 노선이 ‘좌경적’ 오류인지 우경 오류인지를 두고 빈번히 논쟁한다. 서로 다른 분석은 운동 내 서로 다른 관점을 반영한다. 어떤 노선이나 조직을 ‘좌경’으로 볼지 우경으로 볼지는 객관적 조건에 대한 평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이해, 그리고 전략과 강령에 따라 달라진다.
흔히 하는 실수는 특정 노선을 역사적 ‘맥락’ 밖에서 우경이나 ‘좌경’으로 단정짓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혁명 세력을 이끄는 조직화된 당의 중요성을 폄하하는 것은 우경적 오류로 간주된다. 포퓰리스트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위에서’ 투쟁을 지도하는 당이라는 개념을 비판하며, 대신 군중적 혁명 조직을 옹호한다. 그러나 이 노선이 언제나 우경적 오류인 것은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이 입장을 취한 독일 공산주의자들은 레닌에 의해 ‘좌경적’ 오류를 범하는 것으로 평가받았다. 1970년대 미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처럼, 독일의 ‘좌익’ 공산주의자들은 지도부의 역할을 없애고 군중의 자연발생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이런 자연발생성은 개량주의적·자유주의적 성향을 띠는 반면, 1919년 독일에서는 노동계급 일부가 벌써 급진화되어 있었다. 이 계층만을 의존한 독일 ‘좌익’들은 전체 군중으로부터 고립되어 ‘좌경적’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한 노선─이 경우 조직적 지도력보다 자연발생적 활동에 의존하는 것─이 서로 다른 맥락과 조건에서 우경적 및 ‘좌경적’ 형태를 띨 수 있는 사례다. 반대로, 표면적으로는 정반대로 보이는 노선들도 같은 ‘좌경적’ 관점에서 비롯될 수 있다. 이 글에서 우리는 최근 몇 년간 종파주의와 경제주의가 취해 온 ‘좌경적’ 형태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이러한 오류들은 ‘좌경적’ 형태일 수도, 우경적 형태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초좌익주의와 흔히 연관되는 종파주의는 우경적 그룹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1980년 베이에어리어에서 CPUSA는 혁명공산당(RCP)처럼 백인 중심 교외지역에 거주하는 흑인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적 공격에 대항해 가구 방문 캠페인을 벌이면서 자신들의 신문을 홍보했다. CPUSA는 RCP와 마찬가지로 해당 지역 사회와 피해 가족들을 적대시하고 그들의 반인종주의 활동을 훼손하는 데 효과적─비록 두 신문의 내용은 매우 달랐지만─이었다. 반면, 경제주의는 일반적으로 우경적 오류로 간주된다. 우리는 우리 운동 내 최근 오류들이 ‘좌경적’ 형태의 경제주의로 나타났다고 보며, 이에 대해서는 후반부에서 더 자세히 논의할 것이다.
우리의 분석은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좌경적’ 오류만을 범한 공산주의 조직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조직은 때로는 올바른 노선을 추구하기도 했고, 때로는 우경으로 기울기도 했다.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확고히 정향되지 않은 조직들─극단에서 극단으로 크게 흔들리는 경향이 있는─에게도 해당되며, 기본적으로 건전한 관점을 가진 그룹들─필연적으로 특정 실수를 하고, 이를 시정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보상(補償)하며,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접근법을 시도하며 고군분투하는─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글에서 우리는 개별적인 이러저러한 오류에 대해 논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초좌익주의적인 틀 안에서 운용되어 하나의 공고한 골격으로 간주될 수 있는 상황을 논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간혹 발생하는 우경적 오류는 조직의 전반적인 초좌익주의적 성향에 비해 중요도가 떨어진다.
일부 동지들은 지난 20년간의 다양한 정치적 활동에 압도되어 사건들의 표면 아래에 존재하는 패턴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그들은 17세기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냉소적 관점과 유사한 태도를 취하는데, 홉스는 “역사란 그저 엉망진창인 사건들의 연속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태도는 역사적 변화의 근본적인 구조와 방향을 탐구하는 마르크스주의와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운동은 물론 계급 투쟁의 역사 전반을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2. 모험주의
모험주의는 가장 직관적이며 쉬이 인식되는 초좌익주의의 형태이다. 좌경 모험주의자들은 혁명의 임박성을 과장하고 비현실적인 형태와 수준의 정치 투쟁을 투사한다. 영웅적인 사례는 군중을 각성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그 논리적 귀결은 테러리즘 정치이다.
역사적으로 좌경 모험주의는 웨더 언더그라운드(Weather Underground), 혁명연합(RU)에서 분리된 벤세레모스(Venceremos), 몇 년간의 흑표당, 그리고 후기의 프레리 파이어 조직 위원회(Prairie Fire Organizing Committee)를 지배했다. 아마도 가장 충격적인 최근 사례는 1979년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즈보로에서 쿠 클럭스 클랜(KKK) 반대 시위를 주도한 공산주의노동자당(CWP)의 사례일 것이다. “KKK에게 죽음을!”이라는 도발적이고 투쟁적인 구호를 내걸었지만, 시위 자체에 대한 공격에 대비한 준비는 전혀 없었던 결과 비극적 결과를 초래했다. 물론 KKK는 그린즈보로 살해 사건에 전적인 책임이 있으며, 그들의 무죄 선고는 부르주아 사법 과정의 끔찍한 사례였다. 그럼에도 공산주의노동자당의 역할은 적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모험주의는 높은 ‘탈진(burn-out)’ 비율을 보인다. 모험주의적 실천은 단지 힘들 뿐만 아니라, 성공 가능성도 희박하고, 침습(侵襲)을 자주 겪으며, 탄압을 초래하기 쉽다. 반면 공산주의 활동이 더딜 때면 모험주의는 여전히 매력적으로 보이곤 한다. 레닌은 『공산주의 운동에서 ‘좌익’ 소아병』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이미 혁명이 발발해 절정에 달했을 때, 모두가 혁명에 가담할 때 혁명가가 되는 건 어렵지 않다 … 훨씬 더 어렵고 가치 있는 것은 직접적이고 공개적이며 진정한 군중적·혁명적 투쟁 조건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을 때, 혁명적 행동 방법의 필요성을 즉각 깨닫지 못하는 군중 속에서 혁명가로 남는 일이다.“ 너무 많은 자칭 혁명가는 진정한 혁명을 향한 점진적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임박한 혁명이라는 환상에 빠져들곤 한다.
3. 좌익 종파주의
종파주의는 본질적으로, 군중의 이익과 전체 혁명 운동의 이익을 특정 조직의 관점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아나키스트적 극단으로 치닫는 모험주의까지는 이르지 않더라도, 좌경적 형태의 종파주의는 여전히 현실에 대한 왜곡된 평가를 수반한다. 이는 조건이 허용하는 것보다 빠르게 진전되기를 바라는 주관적 욕망에 물들어 있으며, 그 결과 대중적 실천과 이론적 실천 모두에서 조급함을 수반한다.
좌익 종파주의 조직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 이러한 조직은 지도부와 간부들이 혁명의 핵심이며, 그들의 강령이 유일하게 올바른 것이라고 여긴다. 파업을 주도하거나 시위를 조직하는 것과 같은 작은 성과들도 과장되어 평가된다. 예를 들어 1977년 10월 연맹(October League)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지난 몇 년간 노동계급 운동에서 공산주의 사상과 지도력의 영향력은 크게 증대되었다. … 공산주의자들은 파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모든 민족의 노동자들을 성장하는 저항 운동과 당 건설 운동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 공산주의 세포와 분파의 초기 형태가 여러 공장과 노조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삽화에는 공장 문 앞에서 《부름(The Call)》1이 판매되는 모습이 나와 있으며, 소책자에는 애틀랜타에 있는 미드 패키징 코퍼레이션(Mead Packaging Corporation)에서 “매우 중대한 파업”이 있었다는 논의로 이어진다.2
한편으로 종파주의 조직은 자신들의 공헌을 과장하면서도, 다른 공산주의 그룹들을 폄하한다. ”10월 연맹은 온갖 기회주의자들 … 반당 세력 … 책상물림 혁명가들과 끊임없이 투쟁해 왔다 … “ 그 결과는 서로 싸우는 파벌들의 증식으로 이어진다. 각 조직은 미국에서 혁명을 이루고자 하는, 어려운 과업에 대한 자신들의 불충분한 이해를 과장하여, 전체 운동을 위한 용인될 수 있는 “총노선”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려 한다. “선도적” 역할을 잃을까 두려워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각 조직은, 그리하여 불충분한 가정, 잘못된 정책, 거의 쓸모없는 일반론들을 고집스럽게 고수한다. 이 “소(小)서클적 사고방식”이 원칙적이고 엄격한 투쟁, 이들 그룹 내부의 및 상호 비판을 대체해 버린다.
모든 조직은 실수를 저지른다. 그러나 좌익 종파주의 조직은 다른 이들의 경험과 비판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함으로써, 자신의 실수에 갇히고 만다. 만약 실지 실수를 인식하고 시정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그룹은 자기비판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경우가 드문데, 이는 종파주의 집단들이 운동 내 다른 구성원들에게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대중 운동의 활동가들에게 있어, 이러한 그룹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부르주아를 공격하는 것보다 서로를 더 격렬하게 비판하는 습관이다. 일반적으로 종파주의 그룹들은 상호 간에 논쟁을 벌이며 미조직된 개인의 지지를 얻거나 서로의 일반 구성원들을 차지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기력을 소모한다. 이러한 논쟁들은 통일성을 무시하고, 차이점을 과장하며, 타당한 비판을 인정하지 않으며, 체계적인 분석을 희생하면서까지 비꼬는 표현과 인신공격에 빠져든다. 좌익 신문 지면에서도 문제가 심각한데, 이러한 ‘투쟁’ 방식은 대중 운동 현장에서 적용될 때 재앙적 결과를 낳는다.
자신들에게 있어 무의미한, 난해해 보이는, 그리고 자신들을 멍청하게 느끼게 하는 토론에서 비당파적 진보주의자들이 이탈하면서 얼마나 많은 유망한 그룹이 사소한 존재로 전락했는가? 예를 들어, 샌프란시스코의 호텔·식당 노동조합은 몇몇 일반 조합원 모임을 발전시켰으나, 초좌익주의로 인해 퇴보했다. 노동자들은 계약서를 여러 언어로 인쇄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민족 문제”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과도한 논쟁으로 소외감을 느꼈다. 초좌익주의자들은 이러한 쟁점에 대해 높은 “통일성 수준”을 고집함으로써, 해당 문제에 새롭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교육하기보다는 배제해 버렸다. 종종 조직의 철저함과 “정확성”에 대한 욕구는 투쟁 자체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들의 패권을 확립하는 수단이 되곤 한다.
결국 다른 좌익 그룹들에 대한 종파주의적 태도는 근본적으로 군중에 대한 종파주의적 태도이다. 군중이 직면한 투쟁들은 단지 모집 활동과 좌익 내부 논쟁을 위한 무대로만 여겨진다. 좌익 종파주의자들은 군중이 더 관심을 가지고 투쟁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안들에 혁명적 관점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 실지 그러한 접근 방식은 종종 “꽁무니주의자”, “자연발생성에의 굴복”, 또는 “후진성에의 영합”으로 낙인찍힌다. 만약 군중이 공산주의로 모여들지 않는다면, 공산주의자들이 매개적으로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군중에 대한 이러한 경멸은 개량 투쟁을 폄하하거나 심지어 부정하려는 반복적인 경향에서 드러난다. 진보노동당(Progressive Labor)은 반전·흑인해방·노동조합 투쟁에서 물러나면서, 공산주의자의 활동은 즉각적인 혁명적 목표를 가져야 하며 개량 투쟁은 공산주의자의 할 일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최근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CP-ML)은 철강노조 사들로스키(Sadlowski) 지도부 캠페인에 대한 악명 높은 보이콧으로써 “개량주의자들에게 주된 타격을 가하는” 것을 지지했다. 샌프란시스코 호텔·식당 노동자들의 일반 조합원 모임이 노조 선거에 진보적 후보를 내세우자고 제안했을 때, 여러 공산주의 그룹은 오히려 선거 보이콧을 주장했다. 그러나 진보세력이 당선되자 그들은 즉시 모임으로 돌아왔지만, 부패한 노조 체제에 대한 지속적인 투쟁에 그 어떠한 지침도 제시할 수 없었다.
다른 경우에서 ‘좌익들’은, 만약 개량이 실제로 성사된다면 군중이 “매수당할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이러한 태도는 명백히 군중에 대한 신뢰 부족을 반영하며, 아마도 자본주의가 진정으로 스스로를 개혁할 수 있어 혁명의 필요성이 객관적 조건과 더욱 동떨어질 수 있다는 근본적인 신앙을 드러낸다. 부분적 승리의 가능성은 투쟁과 그 한계에 대한 교육의 기회가 아니라, 피해야 할 위험으로 간주된다.
4. 좌익 경제주의
수많은 마르크스-레닌주의 그룹은 공산주의 활동의 영역을 좁히는 시각을 지녀왔고, 거의 전적으로 산업 노동계급의 고용주와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투쟁에만 노력을 쏟아왔다. 이 경향성은 산업 노동계급이 사회주의 혁명의 핵심 요소라는 고전적 분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인구를 무시하면서 경제적 문제들이 노동계급을 급진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투쟁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레닌은 ‘경제주의’─프롤레타리아의 생계형 투쟁을 찬미하는 사상─를 광범위하게 비판했다. 그의 시대에 ‘경제주의자들’은 정치적 투쟁이 경제 투쟁에서 저절로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레닌은 차르 체제의 학정이 이미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인구의 다른 계층들까지 자극하고 있으며, 그러한 정치 투쟁들이 노동계급의 경제 투쟁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자본주의에 대한 더 풍부한 교훈을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02년 러시아에서 경제주의는 우경적 오류였다: 경제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이 광범위한 정치적 시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정도와 다른 계층들과 연대해 다양한 요구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
오늘날 우리 운동 안에는 ‘공장 조직화’를 지역사회 노력이나 다른 부문의 노동력에서의 활동보다 더 공산주의적이거나 더 혁명적인 것으로 보는 유사한 경향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것이 경제주의의 ‘좌경적’ 형태라고 생각한다. 이는 노동계급의 발전 수준과 노동조합 투쟁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데서 비롯된다. 우리 운동의 경제주의자들은 경제 투쟁이 저절로 정치적 문제로 발전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정치적 문제들을 제기하는데, 실제로 종종 이를 시기상조적으로 혹은 독단적으로 행한다. 그리고 많은 그룹의 경우에서 작업장에의 집중이 다른 투쟁 영역들에 대한 무시를 동반하는데, 이런 영역들은 본질적으로 ‘개량주의적’이며 혁명적 잠재력이 없다는 이유로 경멸당한다. 이것 또한 ‘좌경적’ 오류인데, 왜냐하면 투쟁들이 상상적이고 비현실적인 투쟁성 기준에 따라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룹 중 상당수는 노동계급에 합류하려는 움직임 속에서 노동자들을 희화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PL과 RU가 처음 공장 조직화를 시작했을 때, 그들의 간부들은 결혼하고, 머리를 자르고, 맥주를 마시도록 요구받았다. 그러나 당시 현장의 노동자들은 연인과 동거하고, 긴 머리를 기르고, 대마초를 피우고 있었다. 노동자의 피상적 특성─혹은 노동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모방하려는 이런 경향은 그들로부터의 거리감이 낳은 산물이며, 필연적으로 과도한 일반화와 왜곡을 수반한다. ‘노동자주의(Workerism)’는 바로 이런 노동계급의 ‘외형’을 미화하는 태도를 일컫는 용어다. 노동자주의는 비록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접근법을 가진 사람들은 반동성애적이거나 인종주의적인 감정과 같은 노동자들의 편견에 영합하는 경향이 있으며, 노동계급과 그 변화 능력에 대해 비(非)변증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 프롤레타리아 내의 후진적인 사상들을 제대로 식별하거나 그것에 도전하지 못한다.
경제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노동조합 업무에 불과한 것에 과장된 중요성을 부여한다. 그들은 오늘날 미국의 선진 노동자들의 투쟁성을, 공산당의 중추를 형성할 준비가 된 선진 노동자들의 투쟁성과 사회주의적 이해를 혼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요한 파업이 종종 단지 중요한 파업에 불과할 때에도, 그것은 혁명의 전주곡 또는 최소한 노동계급 운동 발전의 이정표로 선전된다. 이는 예를 들어 1977년 서부 버지니아 탄광 노동자들의 파업 이후 분명하게 드러났다. 공산주의 그룹들은 이 특수한 전투적 저항 사례의 그 구체적 특징들에 대해 연구하기보다는, 그것을 노동계급 내 새로운 고양의 신호로 간주했다. 그러고 나서 이 낙관적 분석은 야심찬 당 건설 프로젝트들의 기초로 활용됐다: 이렇게 좌익 경제주의는 좌익 종파주의를 위한 도구가 되었다. 예를 들어, 필라델피아 노동자 조직 위원회(PWOC)는 광부들의 “국가 권력에 맞설 준비성”3을 찬양하며, 이 분석을 이데올로기 센터 조직 위원회(OCIC)의 당 건설 시도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다.
우리가 이러한 형태의 경제주의를 ‘좌경’이라 간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러한 오류를 범하는 그룹들이 일반적으로 정치적 요구를 최소한의 노동조합 수준─유구한 우경적 오류로서─으로 축소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들은 종종 진보적이거나 관련성 없는 정치적 요구들로 노동조합 투쟁을 방해한다. 노조 내부 모임에서 ‘좌경’ 그룹들은 국제적 또는 민족적 정치 문제들을 끌어올려, 이미 합의된 모임의 업무 진전을 희생시키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로써 관계 노동자들은 스스로가 조종당했다고 느끼게 된다. 언제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문제들을 제기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소수 공산주의 그룹만이 성공적으로 해결한 문제이다. 다른 문제들에 관해 정보에 입각한 입장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정치 교육에는 너무 적은 관심이 주어지며, 그러한 정치 교육 일환으로서 노조 모임 활동의 역할 또한 과소평가된다.
더욱이, 이러한 초좌익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을, 인구를 구성하는 제 계층과의 잠재적 연계로부터 고립시킨다. 초좌익적 시각은 계급 투쟁에 대한 단순화된 관점이 특징이다. 노동자들이 한편에, 사장들이 다른 편에 서면, 다른 사회 세력들의 역할은 거의 남지 않는다. 이러한 시각은 계급 내 분열과 계급 간 연대 같은 실제 계급 투쟁의 복잡성을 부정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좌경’ 그룹들은 통일전선의 과업들을 보존하거나 심지어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모든 노동조합 간부에 대한 거부─때로는 선출된 작업장 대표들까지도 범주적으로 포함하는─, 흑인 교회들에 대한 경멸, 민주당 내 진보 세력들에 대한 무관심은 이러한 터널 시야(tunnel vision)의 몇 가지 특징이다.
많은 좌익 경제주의자는 더 광범위한, 계급을 넘나든 의제들과 운동들, 특히 여성, 동성애자, 그리고 민족 및 인종적 소수자들의 민주적 권리 의제들에의 회의적 시각을 가졌다. 노동계급은 이미 이러한 투쟁들에서 패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개량주의적 지도부와 관점이 이미 확립되어 있을 수 있으며, 계급 억압과의 관계가 명시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지도부와 맞서 싸우고 그들의 정치적 관점을 위해 투쟁하는 대신에, 초좌익들은 이 운동들과의 접촉을 그들의 혁명적 순수성을 더럽힐 것이라도 되는 듯이 여기며, 이러한 운동들을 일축해 버린다.
이런 종파주의적 경향이 민주적 권리 투쟁을 경시하는 사례들로는 RCP의 흑인 및 기타 소수자 투쟁 청산, 특히 보스턴의 버스 통합 정책에 대한 반대, 그리고 ‘협소한 민족주의’라는 이유로 이들 운동을 거부한 PL의 사례 등이 있다. RCP는 다시 말해 극단적인 경우로, 평등권 수정안(ERA)에 공개적으로 반대했으며, OL은 CPUSA가 참여한 국제 여성의 날 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고, 여성 전용 위원회나 레즈비언 참여 문제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게이 투쟁은 일반적으로 혁명 이후에 모든 문제─그 존재까지 포함하여─가 해소될 것으로 추정되는 집단의 민주주의 권리에 대한 사소한 문제로 여겨져 왔다.
말할 필요도 없이, 노인이나 장애인의 투쟁, 생태 및 반핵 운동, 사회복지 예산 삭감 반대 운동 등 최근 몇 년간 가장 첨예한 사안 다수가 좌익 경제주의자들에 의해 회피되어 왔다. 이러한 협소한 시각의 다소 다른 사례로는,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의 ‘인터내셔널 호텔’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강제 퇴거를 막기 위한 투쟁 방향을 놓고 민주 필리핀인 연합(KDP)과 갈등을 빚었던 아이 워 쿠엔(I Wor Kuen)4의 입장이었다. KDP는 철거될 위기에 처한 아시아인들을 지지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전역에서 동맹자를 규합하려 했다; 이 단체는 도시의 많은 이들이 주거권 필요성에 연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IWK는 공산주의자들이 제기해야 할 유일한 문제는 중국계 공동체의 민족적 억압 문제라고 보았다. 강제 퇴거 반대 지지 운동은 차이나타운을 기반으로 해야 하며, 퇴거에 반대하는 다른 이들도 중국인의 권리 지지라는 기반 위에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IWK에 의하면 주거권 문제는 ‘개량주의적’ 의제에 불과했으며, 피억압 민족은 ‘혁명적인’ 요구를 하였다.
이런 접근 방식은 특정 사안으로부터 계급 투쟁에 대한 더 광범위한 이해에 이르는 정치적 의식의 발전을 부정한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단번에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비약하기를 기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은 개량주의적 투쟁에서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능력을 스스로 불신한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우리 운동 내 좌익 경제주의의 네 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산업 노동계급과 그 노동조합 투쟁들의 [과도한] 미화; 부적절한 방식으로 외부 정치적 문제들을 제기함으로써 이러한 투쟁들을 ‘정치화’하려는 성급한 시도; 다른 계급 세력과의 통일전선에 대한 불신; ‘개량주의적’이라는 이유로 작업장 외부의 투쟁들을 회피하는 태도. 이 모든 현상은, 자본가에의 대치를 위해 노동자를 동원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투쟁을 거부하고 노동자들이 공산주의 조직들의 포근한 품으로 저절로 안기리라 예상하는 초좌익적 분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5. 초좌익주의의 기초
α. 이념적 요인: 지난 20년간 초좌익주의는 관념론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이러한 그룹 중 많은 경우를 보면, 외부자는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관념론이란 구체적 현실에 대한 분석(유물론)보다는 자신의 사고, 공상, 소망으로부터 출발함을 뜻한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관념론의 몇 가지 특징, 특히 제 조직이 자신들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고 노동계급의 투쟁성을 과장하도록 만드는 객관적 조건에 대한 오판을 언급한 바 있다. 많은 그룹은, 자신에 대해서든 자신이 아닌 동류에 대해서든 무관하게, 사회적 실천을 총괄하는 데 실패해 왔다. 현실은 분석되기보다는 무시되거나 얼버무려져 왔다.
몇 년 전 진보노동당의 내부 분열로 10년간 이 단체에서 활동해 온 일부 활동가가 이탈했다. 이들 중 많은 이는 자신들이 노동자 조직화를 수행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지도부의 지시를 무시하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PL의 정치적 방향을 책임진 이들은 진행 중인 투쟁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으므로, 그들의 지시는 따랐더라면 재앙적 결과를 초래했을 것이다. 그룹은 더 이상 불복종이 용납되지 않자 결국 분열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한 관계자는 현실과 당 노선이 어긋날 때마다, PL의 대응은 현실을 차단하고 오직 PL이 승인한 출판물만 읽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공상의 세계에서 운영되는 조직은 결국 자신이 조직하고자 했던 군중들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다.
소망적 사고, 즉 주관주의는 또한 이러한 그룹들이 군중의 생각을 자기들의 생각으로 대체할 때 작동한다. 그들은 일반 군중이 좌익적인 전문 용어에 익숙하다고 가정한다. 예를 들어, OL과 IWK는 노조 일반조합원 모임에서 'TUBs'(노동조합 관료들)라는 용어를 마치 그 의미가 자명한 것처럼 사용하곤 했다. RCP 신문 사건은 초좌익주의자들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한 행인이 신문 판매원이 건네는 신문을 보고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이건 공산주의자들의 신문이잖아"라고 그녀가 항의하자, 공산주의자는 "아, 당신은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우리는 반수정주의자들입니다"라고 답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실은 수정주의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생각─혹은 투쟁적 파업이 혁명의 서막이라는 생각─은 초좌익주의자들이 얼마나 고립과 절박한 희망적 사고가 만들어 낸 공상 속에 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간단하고 빠른 해결책의 갈망, 종종 느리고 순탄치 못한 현실 흐름(pace of real life)에 대한 인내가 부족한 태도는 주의주의(主意主義)로 이어진다. 주의주의는 실제 사실이 아니라 자신이 진실이길 바라는 것을 바탕으로 한 행동이다. 주의주의는 행동으로 나타난 관념론이다. 이는 종종 조급한 당 건설 시도와 연관되지만, 대중 운동 속에서도 많은 경솔한 행동들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된다. 주의주의는 모험주의로 고착될 수 있다.
관념론은 흔히 권위자들의 말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유지되는데, 대개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인용된다. 공산주의 운동의 경험에는 가치 있는 요소들이 많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르크스나 레닌이 어떤 주제에 관해 적은 내용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실지 위대한 혁명 지도자들은 모두 마르크스주의가 교조가 아니라 행동의 지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산주의 운동은 교조적 해석으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받아 왔다. 결국 적혀 있는 내용을 따르는 것이 문제를 끝까지 사고해 내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레닌은 마르크스의 인용문을 오용한 사례를 들어 이러한 경향을 해명했다. 러시아인들의 운동에서 이론적 수준을 절실히 높여야 할 시기에 일부 그룹은 실천적 과업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신문은 마르크스의 “현실 운동에서 마디마디의 걸음은 열두 개의 강령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을 인용하여 실용주의를 정당화했다. 이에 대해 레닌은 “이론적 혼란의 시기에 이 말을 반복하는 것은 마치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에게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것과 같다”고 반박했다.
이러한 인용의 남용은 우리 운동에서 지속되는 경향이다. PWOC와 프롤레타리아 통일 연맹(PUL) 간 당 건설 논쟁은 우리 경향 내에서 유물론보다는 중세 스콜라 철학을 더 닮은 인용에 의한 논증 방법의 사례를 제공한다.5
교조주의는 투쟁의 조건과 독단으로 만들어진 사상의 성격에 따라 우경적 오류 또는 ‘좌경적’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교조주의는 초좌익주의의 자연스러운 구성 요소인데, 이는 단순화되고 추상적인 해결책을 선호하는 이들이 ‘원칙’과 ‘역사적 경험’으로 자신들의 비유물론을 지지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미국에서 교조주의는 빈번히 초좌익주의를 선호하는데, 이는 혁명적 문헌들에 기술된 조건들이 우리가 활동하는 조건들보다 더 발전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책자의 다른 부분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그 고전적 사례는 [그들이 정의한] ‘선진 노동자’를 레닌이 “선진 노동자”라고 칭한 헌신적 사회주의자들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문건화된 권위에의 의존과 더불어, ‘선도적인 국제 중심지’라는 동시대 권위에 대한 복종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반수정주의 운동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은 이러한 역할을 수행했는데, 중국공산당이 공식 인터내셔널을 구성하려는 시도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이러한 모방의 결과로서 등장한 것은 중국 정치의 모든 변동을 맹목적으로 따르려 했던 단체들의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는데, 이들은 종종 자신들이 충실히 모방하는 변화들을 이해하지도 못했다. 더 나쁜 것은 중국의 대외 정책을 이 나라 혁명가들을 위한 총노선으로 사용하려는 시도였는데, 마치 혁명을 수입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했다. 최근 중국이 미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으로 전환하고 군사 동맹의 초기 단계를 시작한 것은 비판 없이 스스로의 사고 없이 지도자를 맹종하는 위험성을 더욱 명백히 보여준다.
β. 초중앙집권주의: 1960-70년대 수많은 공산주의 조직은 차르 치하 러시아에서 비합법적 혁명 활동을 위해 개발된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주의 조직 모델을 채택했다. 우리가 제출한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주의」 논문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전 운동이 미숙하고 공개적 토론과 상호 비판이 필요한 시기에 중앙집권주의 필요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일관된 경향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많은 그룹은 도전받을 수 없는 위계제를 확립했으며, 모든 오류는 간부들의 탓이었지 결코 조직의 노선이나 지도부의 책임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RU 내에서 소수 의견을 가진 지도자들은 전체 당원에게 자신들의 견해를 전파할 수 없었으며, 소수 의견을 공유하는 당원들끼리의 모임도 금지되었다. 이러한 관행의 결과, 비판적이거나 반대적인 시각들은 철저히 공개적으로 제출될 수 없었다.
이러한 구조는 최근 몇 년간 초좌익주의를 더욱 공고히 했다. 노동 군중 조직화와 동떨어진 지도자들은 최근의 구체적인 경험보다는 문헌과 폐쇄적 추론에 기반해 노선을 수립한다. 이러한 정책들이 부적절하다는 피드백은 억압되거나, 전략·전술의 변화로 이어지기보다는 비판을 제기한 간부들에게 역으로 돌아오곤 한다. 이러한 관행들은 공산주의 운동이 이 나라의 현실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가일층 심화할 뿐이다. 과도한 중앙집권주의는 공산주의 조직 내부에서 ‘좌익’ 교조주의와 종파주의의 꾸준한 동반자이다.
γ. 객관적 조건: 왜 이러한 특정 문제들이 미국 좌익 내에서 이토록 흔한 것인가? 우리는 우리 운동이 활동하는 조건들이 특정한 유형의 실수들을 조장한다고 생각한다. 이 소책자의 전반부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는 상대적으로 군중 정치 활동이 적은 시기를 살고 있다. 이 세대의 공산주의자들은 급진적 정치로부터 군중이 소외된 상황을 물려받았으며, 지금까지 이 추세를 크게 뒤집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 및 다른 억압받는 집단에서 정치적으로 의식적인 대중 운동이 부족한 것이 1970년대의 특징이었다. 이는 계급 투쟁 속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검증할 기회를 제한하므로, 운동이 정치적 방향을 찾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좌경적 논쟁들은 전진하지 않는 대중 운동보다 더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함께 투쟁할 다수의 선진 노동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공산주의자들은 [분석되어야 했을] 인민의 실지 사상을 자신들의 공상으로 대체한다. 활동의 어떤 불꽃이라도 매우 반가워 과대평가되기 쉽다. 초좌익주의의 수많은 특징은 혁명적이지 않은 상황에 닥친 혁명가들의 문제들과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조건들이 ‘초좌익주의’의 가장 중요한 추동력이며, 변화시키는 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릴 요인이다.
또다른 불리한 조건은 운동의 경험이 부족한 지도부에 있다. 예를 들어 PL과 공산주의노동당(CLP)의 일부 구성원을 제외하면, 공산주의 그룹 중 CPUSA와의 개인적 연속성을 가진 이들은 거의 없으며, 그들의 긍정적·부정적 경험의 풍부함도 없다. 최근에 당 건설, 대중적 노동자 계급 투쟁, 다양한 형태의 정치 투쟁에 경험이 있는 지도자들이 상대적으로 적게 배출되었다. 소수만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과업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를 활용한 경험을 지녔을 뿐이다.
반수정주의 운동의 역사적 뿌리 또한 이를 초좌익적 방향으로 추동한다. 1960년대는 국제혁명적 고양의 시기였다. 당시 급진화된 많은 이들에게 있어 임박한 혁명이라는 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조건에 맞는 새로운 전술을 고안하는 데 적응하기는 어려웠다. 일반적으로도, 역사적 경험에 의존해야 할 필요성은 운동으로 하여금 군중적 저항과 동원이 더 활발했던 시기에 쓰인 문헌들을 참조하도록 이끌었다. 이는 더 혁명적이었던 시대에 형성된 원칙들을 무의식적으로 남용하게 하는 유혹으로 이어진다.
현대 마르크스-레닌주의 제 조직은 소부르주아 지식인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상당수는 노동 군중과의 직접적 접촉 없이 학생운동에서 배출된 이들이다. 전체 인구 대비해 이들 그룹의 구성원과 지도부는 지식인 계층에서 불균형적으로 추출되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혁명 조직의 초기 단계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반수정주의자들은 운동의 계급 구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노동계급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프롤레타리아로부터의 고립이 조장하는 ‘노동자주의’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더욱이 이 글에서 기술한 이데올로기적 오류 다수는 소부르주아 지식인의 세계관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태도, 성급함, 그리고 스콜라적 학구주의는 물론 특정 계급에 국한되지 않으며 동일 계급의 모든 구성원에게서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실지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공교육과 대중매체가 체계적으로 노동계급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주입한다. 그럼에도 계급·계층은 계급 분열 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의 경험과 생활 방식에 의해 형성된다. 특정 계층에 기반한 정치 운동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마찬가지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지식인의 특정 약점들은 신공산주의 운동 전체에서 예상될 수 있는 현상이다.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이해와의 동일시는 많은 지식인에게 쉬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초기 교육과 생활방식에서 형성된 개인주의, 경쟁심, 문제를 오직 관념의 영역에서만 해결하려는 시도, 개인적 출세 욕구 같은 ‘짐’을 떠안고 있을 수 있다. 역사를 통해 볼 때 혁명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은 이러한 성향들과 끊임없이 투쟁해 왔다. 수많은 초좌익적 오류는 이러한 계급 기반의 약점들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대부분 35세 미만의 청년으로 구성된 운동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들 중 다수는 대학 교육을 받았지만, 또래의 다수가 그렇지 않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경제적 안정을 누려온 배경을 지니며, 과거의 혹은 잠재적 특권과의 관계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있다. 장기적인 직업, 공동체, 가족에 대한 헌신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이들도 많다. 이러한 요소들은 우리의 세계관과 정치적 과업 방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특징들이다. 더욱이 사회적 불안정성은 지식인들의 전형적 약점들을 식별하고 변화시키기 어렵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사실상 그들이 지닌 강점조차 인지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어렵게 만들었다.
이 절에서 제기된 논점들을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 운동을 형성하고 특정 경향을 띠는 오류를 조장하는 제 요인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운동이 ‘객관적 조건’에 전저그로 좌지우지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조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강력한 정치 운동을 건설하고, 경험 많은 지도부와 간부를 양성하며, 우리 시대에 적합한 분석을 발전시키고, 노동계급과 그 동맹 세력의 모든 부문에서 인재를 인입하며, 군중 전체의 이익을 반영하지 않는 사고 방식을 혁파할 수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는 장기적인 과제이다. 우리는 이러한 장애물들을 압도당하지 않으면서도 식별하고 맞서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특히 오늘날 우리가 과업 조건들은 운동에서 초좌익주의 성격을 부추겨 왔다. 이는 우리가 초좌익적 오류가 숙명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초좌익주의의 문제들을 이미 이해하고 해결했다고 가볍게 가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δ. 국제적 맥락: 우리 작업의 맥락은 미국에서 저조한 투쟁 수준뿐만 아니라, 민족해방투쟁들, 유로코뮤니즘의 대두, 공산주의 운동의 분열 등 전 세계적 상황을 포함한다. 초좌익주의 문제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중국이 우리 운동에 미친 영향이었다.
현시대의 수많은 공산주의자는 중국 혁명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마오쩌둥의 글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배웠다. 누군가는 이러한 경험과 분석을 자체 비판이나 미국의 상황을 고려한 개작 없이 우리 과업의 모델로 삼았다. 예컨대 RCP의 1975년 강령 초안은 미국의 “노동자와 농민”을 대상으로 했다.
1960-70년대 중국 정치의 발전은 미국에서 초좌익주의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하였다. 지금의 수많은 공산주의자는 문화대혁명을 승인했고, 현재 중국 지도부가 그 10년을 전면 부인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에는 우리 운동에서 ‘좌경적’ 성격을 강화한 초좌익적 오류가 분명히 있었다. 이러한 오류는 식별·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또다른 주요 발전은 ‘삼개세계론(三個世界論)’에 기반한 국제노선이었다. 이 입장이 정교화되면서 국내 운동에서 기이한 경향들이 나타났다. 미국 공산주의 그룹들이 국내외적으로 자신들의 지배계급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오히려 혁명 투쟁을 억압하는 군국주의를 조장하는 모습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소련 사회제국주의’에 대한 공격이 모든 정치 운동에 끌어들여져, 사회주의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이를 해명하는 과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반공주의적 편견만 강화하는 모습은 분노를 자아냈다.
이러한 발전들이 아무리 심각하고 우려스러웠더라도, 우리는 이것이 우리 운동에서 초좌익주의의 핵심 특징이나 주춧돌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이는 반(反)초좌익주의 경향을 보이는 대부분 조직의 입장이며, 행진선(Line of March)의 기관지에서 가장 강력하게 주장돼 왔다. 비록 앙골라 문제를 둘러싼 경계선 설정이 중요헀음에도, 우리는 1975-6년 앙골라에서 일어난 사태를 반초좌익주의 운동의 ‘분수령’으로 보는 것이 이 경향의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수많은 초좌익 그룹은 중국공산당의 국제노선을 거부한 후 훨씬 더 ‘좌경화’되었다. 예를 들어 PL의 중국 비판은, 베트남의 7개항 평화 계획 타협안을 포함해 즉각적인 혁명에 전념하지 않는 모든 운동을 거부하는 순수주의적 전환의 일부였다. 마찬가지로 RCP은 ‘5인방(Gang of Five)’을 옹호하면서 점점 더 극단적인 초좌익주의로 치달았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중국공산당은 실제로 이러한 미숙한 집단에 어느 정도 정치적 닻을 제공했다. 이에 대한 분석을 포기한 그들은 더욱더 방향 감각을 잃었다. 더욱이 국제 문제에 대한 초좌익의 통일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은 오류이다. 예컨대, 이는 덩샤오핑, 엔베르 호자, 4인방의 견해를 한데 묶는 결과를 낳는다.6 이러한 노선 사이의 상당한 차이는 초좌익주의가 단순히 중국공산당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개입했을 때, 미국의 초좌익주의자들은 다양한 분석을 제시했다.
반면에 많은 이들은 앙골라 위기 훨씬 전부터 초좌익주의를 거부해 왔다. 실은 좌익 종파주의자들이 공산주의의 미명 아래에 그러한 형편없는 실천을 보여줌으로써, 수많은 진보세력이 수년간 혹은 영원히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 사회민주주의의 영향력 확대는 부분적으로 ‘신공산주의 운동’의 ‘좌경적’ 과오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6. 데자뷔
RU은 PL이 초좌익주의로 퇴보한 것을 인식하며 결성되었다. 그러나 1972년부터 RU는 경제주의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는데, 인종차별 반대 투쟁을 “분열적”이라며 거부하고 노동조합 업무를 포기한 채 자신들만의 “혁명적 노동자 조직”을 추구했다. OL 역시 생산적인 노동 군중 조직화의 시기를 거쳤지만, 1975년이 되면 “수정주의자들과의 통일적 행동 금지”라는 슬로건을 채택함으로써 사실상 모든 광범위한 연대 작업을 차단했다. 이러한 그룹들에 대한 반동으로 발전한 반초좌익주의 경향 또한 초기에 비판했던 오류들을 곧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OCIC의 역사는 귀에 익숙한 초좌익주의적 성격을 드러내는데, 종파주의에 반대하는 것으로 시작해 결국 스스로도 종파로 전락했던 그 이전의 그룹들과 수많은 측면에서 유사하다. OCIC은 하나의 조직적 과정으로 이 경향을 통합하려는 본래 계획의 실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보다 큰 통일을 구축하기 위한 공동 작업을 위해 새로운 과정과 다른 구조들을 개발하기보다, OCIC은 단일 중심이라는 자기 인상에 집착하며, 자조직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을 맹렬히 공격했다. 이 조직은 다른 그룹들이 OC에 합류하지 못하게 한 바로 그 정치적 차이점들에 대해 어떠한 타당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특히 마르크스-레닌주의 클럽 전국 네트워크(NNMLC)와 같은 그룹들을 ‘소조직적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OCIC 자신이 점점 더 ‘소조직’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으며, 자신들의 성과에 대해 점점 더 과대평가하는 태도를 보였다. OC의 ‘선도적 역할’에 대한 첫 해 결산은 이 그룹의 종파주의적 경향성을 암시했으며, 해당 문건은 OC의 문제들을 단지 “약간의 흠”으로 치부할 뿐이었다.
OCIC은 원래 해당 조직의 창설 주체 중 하나였던 PWOC의 노동조합 업무로부터 상당한 권위를 얻었다. PWOC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OCIC은 전국적 차원의 지도력을 제공하려 시도했으며, 다시 한번 당 건설 계획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통일보다 조직적 통일을 우선시했다. OCIC 후원 아래 설립된 노동 군중 조직화 제 부문은 노동계급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에 대한 전형적인 종파주의적 평가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7 부문 회의에서 각 지역의 상황에 대한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산업 전체에 대한 분석도 없었고 참가자들의 실천에 대한 종합 평가도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OCIC 세력은 민주주의적 중앙집권적 규율로 당원들의 산업 현장 작업을 통제하는 전국적 단체의 설립을 요구했다. 이러한 절박함과 자기 중심성에 대한 감각, 분석 대신 이를 소망으로 대체하는 행태는 최근 몇 년간의 ‘좌경적’ 접근법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비판 세력은 OCIC의 기본 노선이 실용주의적·경제주의적이라고 분석한다. 노동계급의 융합의 강조와 공산주의 이론의 경시는 우경적 오류로 간주된다. 그러나 우리는 융합 접근법이 특수한 맥락에서는 우경적 오류일 수 있으나, 싷은 OCIC이 주로 좌경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공표되지 않은 융합 노선은 그들의 좌익 종파주의적·좌익 경제주의적 접근법의 핵심 요소이다. 이 노선은 공산주의자들의 주관적 의지를 강조함으로써, 영구히 유리한 조건이라는 신화를 지속시킨다. OCIC의 관점에서 노동계급은 공산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 관점은 선진 노동자들의 역할과 전투적 조합주의의 중요성에의 과대평가에 기반한다. OCIC의 경제주의는 ‘좌익’ 경제주의로, 총노선 개발보다 OC 조직화를 강조하기 위한 정당화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맥락에서의 융합 전략은 종파주의, 주의주의, 교조주의와 함께 OCIC의 초좌익주의 성격의 일부를 이룬다.
OCIC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들─마르크스-레닌주의의 독자적 정립, 반초좌익주의 경향의 통합, 노동계급에서 공산주의 흐름의 창출─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음이 명백해졌을 때, 이러한 목표들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들은 재평가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OCIC은 오히려 전형적인 ‘좌경적’ 입장을 취했다: 간부들을 탓한 것이다. OCIC은 “백인 우월주의”와 “소부르주아 쇼비니즘”, “부르주아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운동으로 인해 분열되었다. 죄의식에 기반한 이 마녀사냥은 OCIC의 실패가 지도부의 잘못된 노선과 객관적 조건에 대한 과대평가 때문이 아니라 일반 구성원들의 부족한 능력 때문이라는 가정에 근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OCIC은 초좌익주의가 이 경향에서 최대 위협이라고 계속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좌익주의”는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반면 비판 세력들은 이 경향의 주요 위협을 우경으로 보며, 이를 OCIC과 동일시한다. 행진선 그룹은 진지한 이론 작업을 진행 중인데, OCIC은 이에 비견할 만한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행진선이 주최하는 월례 포럼에서는 아예 제출되지 말았어야 했거나, 최대한 잠정적인 형식으로만 제출되었어야 할 일부 입장들이 발표되기도 했다. 예컨대 마오쩌둥의 통일전선 작업 및 폴란드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은 매우 의심스러운 분석이었다. 특히 교훈적인 것은 노동조합 업무에 관한 포럼이었는데, 이는 경제주의에 대한 전형적인 ‘좌경적’ 두려움과,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경제주의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진부한 교조적 접근을 보여주었다. 당시 노동조합 업무의 구체적 문제들에 대한 분석도, 수정주의나 다른 경향 조직들의 노선과 실천에 대한 비판도 전혀 없었다.
OCIC와 비판 세력 양측의 이러한 특성들로 인해, 우리는 초좌익주의가 여전히 우리의 당 건설 경향 내 주요 위협이라고 판단한다. 우리는 다른 공산주의적 흐름이 초좌익주의에서 얼마나 중요한 전환을 이루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최근 발전 상황에의 연구는 하지 않았다. 다만 1980년 10월호 《조직자(The Organizer)》에서 주장된 바와 같이 CP-ML과 다른 그룹들이 우경 기회주의로 기울었다는 분석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초좌익주의 입장의 자연스러운 귀결로서, 비교적 온건한 견해들이 우경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더욱이 반수정주의 운동의 역사를 살펴보면, ‘좌경적’ 오류의 근본적 경향이 해결되지 않은 채 일시적으로 노선이 역전된 사례들이 있었다. 만약 CP-ML과 다른 그룹들이 현재 우경으로 기우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이는 표면적 현상에 불과할 수 있다.
7. ‘좌경적’ 경향의 시정
우리는 국내 공산주의 운동을 지배하는 종파주의와 경제주의의 ‘좌경적’ 형태들, 그리고 이러한 오류들의 이념적·조직적 토대를 분석했다. 운동 내부와 세계적 정세를 살펴볼 때, 초좌익주의가 변화하기 어려운 이유는 당연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노동계급이라는 기반으로부터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며, 자신들의 정치노선을 검증하고 개선하기 극히 어려운 조건 아래에서, 혼란스러운 국제정세 속에서, 국제적으로 더 경험 많은 공산당들의 지도 없이 출발한 새롭고 미숙한 운동이라면─그러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운동의 지배적인 성격은 우리의 경우처럼 초좌익주의로 기울기 쉽다. 지난 5-6년 동안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반교조주의 또는 반종파주의를 표방하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이는 우리가 활동하는 근본적인 조건을 바꾸지 못했다. 그러므로 초좌익주의와의 투쟁은 장기적이고 어려운 과정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운동 방향이 시정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가 직면한 장애물의 심각성을 강조해온 이유는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 바로 그 문제의 규모를 인식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현시기 우리 운동은 초좌익주의를 최대 결함으로 규정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뿐이 아니라, ‘좌경적’ 오류의 본질에 대한 공통된 이해도 없다. 이러한 분석을 발전시키는 것이 명백히 첫걸음이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해만으로 운동이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좌경적’이고 관념론적인 오류일 것이다.
초좌익주의에 대한 공통된 견해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우리 운동과 국제 공산주의 운동에 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 글에서 제시된 요점들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의 일부 측면에 대한 잠정적인 개요일 뿐이다. 이 주제에 관해 다른 중요한 연구들도 진행되었다.8
우리의 [역사적] 배경을 검토하는 것과 함께, 우리 운동은 스스로를 성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편으로, 이는 서로 다른 조직 간에 의견을 공개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뜻하며, 우리 운동의 전통적으로서 그 격렬했던 논쟁 방식보다 더 우호적인 비판/자기비판의 방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동일하게 중요한 것은 내부 비판/자아비판이다; 우리는 이미 과도한 중앙집권화가 변화의 추진력을 억누르는 방식에 대해 논의한 바 있다. 운동은 의도가 아닌 구체적인 효과를 빛으로 삼아 자신의 작업을 평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우리의 활동에 대한 다른 사람의 반응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다른 관점을 가진 공산주의자들과 비공산주의자들 모두를 포함한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 운동이 관념론과 교조주의라는 초좌익주의의 이념적 관행을 깨뜨리는 이론적 실천 및 궁극적으로는 총노선을 수립할 능력일 것이다. 갱신된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써 정치적 상황을 정확히 평가한 총노선은 장기적으로, 그러한 노선에 기반한 군중적 실천으로써 운동 자체의 구성이 변화함에 맞춰 우리 운동의 초좌익주의 경향을 바꿀 수 있다. 운동가들이 더 경험을 쌓고 투쟁으로써 계급적 입장을 갱신해 가는 것─더 많은 노동계급 투사가 [이 경향이] 자신들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음에 이끌려 이 운동에 합류함에 따라, 초좌익주의가 번성했던 조건들은 변모할 것이다.
동시에 우경의 위험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시기 과업의 더딘 진전에 대한 좌절감과 초좌익 정치에 대한 과도한 반응은 당 건설이라는 우리의 공산주의적 과업에 대한 냉소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우경적 형태의 경제주의 위험─공산주의적 통일이나 이론에 대한 고려 없이 대중 운동에만 몰두하는 것─은 우리 운동에서 이탈한 이들 사이에서 관찰되며, 반드시 맞서 싸워야 할 경향이다. 더욱이 중국공산당의 노선 변화가 국내 공산주의 운동 전반에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 또한 우리 운동의 일반적인 사회적 구성은, 많은 이들이 학계나 기성 정치 기관에 합류하며 적극적인 투쟁에서 물러날 선택지를 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경적 오류를 분석하고 발생 시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운동의 주된 위협이 ‘좌경’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초좌익주의 전통은 철저히 비판된 바 없으며, 우리가 활동하는 구체적인 조건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미국 인민을 조직하여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하도록 이끌기 위해 우리가 수행해야 할 고된 장기적 투쟁에는 지름길이 없다. 우경적인 회피나 ‘좌경적’인 공상은 노동계급과 그 동맹세력에게 필요한 혁명 의식, 전략, 결의를 심어주지 못할 것이다. 이 과제를 현명하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초좌익주의 유산을 파악하고 이를 털어내야 한다. 초좌익주의에 대한 심대한 비판은 우리의 여러 과제 중 하나일 뿐이며, 미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강령을 개발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면 수정주의도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중요한 과제들이 있는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들이 우선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과업의 경중을 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바로 이러한 정신으로 우리는 초좌익주의와의 투쟁이 지속적인 정치적 우선성을 가진다고 강조하는 바이다.<끝>
번역: 한동백 | 집행위원
2025년 4월 7일
- 〔역자 주〕 10월 연맹의 기관지.
- October League, “Building Class Struggle Trade Unions”, 36 ff.를 참조하라.
- Organizer, Sept. 1980, 18.
- 〔역자 주〕 1969년 뉴욕시 차이나타운에서 결성된 아시아계 미국인 마르크스주의 조직.
- 이에 대한 예로 PUL의 “On the ’Progressive Role’ of the Soviet Union and Other Dogmas”를 참조하라.
- Line of March, 1 (3), 125-6.
- 교육노동자 부문을 위한 ‘호소문’ 초안에서: “지난 몇 년간 노동조합에서 우리의 공산주의 과업은 꾸준히 진전되어 왔으며, 여러 도시의 지역 과업에서 진정한 마르크스-레닌주의 흐름의 시작을 볼 수 있습니다”고 하였다. 이는 이를 앞서 인용한 OL의 발표와 비교해 볼 만하다.
- 우리는 PUL의 “Two, Three, Many Partys of a New Type?”, 행진선의 창간호, 그리고 『이론 평론(Theoretical Review)』 제13호·제14호, 그리고 제15호에 수록된 “Leninist Politics and the Struggle Against Economism” 등 여러 논문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