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진보정의당의 사민주의, 허상에 불과하다!
1월 말부터 지금까지, 노회찬 공동대표를 필두로 한 진보정의당의 일각에서는 ‘사민주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한국형 사민주의를 정립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민주의 논의는, 통합진보당 사태가 상징적으로 드러낸 의회주의 진보정당 운동의 파산이라는 현실을, 2011년 무상급식 돌풍 이후 관심을 모으고 있는 복지국가 또는 스웨덴식 사민주의 모델을 통해 극복해야한다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노회찬이 “진보세력의 이미지는 실추하고 신뢰는 저하되었지만 진보적 가치의 사회적 실현을 향한 시민들의 요구는 날로 커가고 있다”고 밝힌 것처럼 말이다.
사민주의자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이들의 논의가 가지는 문제는 첫 번째로, 사민주의를 노선으로 정립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가 초래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0년 이후, 진보정당들의 노선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그들의 노선이 일종의 ‘사회주의’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민주노동당 이후의 진보정당들이 자본주의 철폐를 노선으로 내걸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산별노조는 경제투쟁, 진보정당은 정치투쟁’이라는 양날개론에 근거해 의회진출과 집권전략을 통한 사회개혁을 일관되게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이미 사민주의자였다.
사민주의에서 한국형 사민주의로
두 번째로, 대체 무엇이 ‘한국형’ 사민주의 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들이 말하는 ‘한국형’ 사민주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한 형태로서의 사민주의조차도 될 수 없다.
박정희의 ‘한국형 민주주의’가 민주주의가 아니고,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가 사회주의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형 사민주의’ 역시 사민주의가 아니다.
그 유명한 독일사민당의 수정주의 논쟁과 함께 등장한 사민주의가 밟아나갔던 역사적 우경화의 과정을, 그들은 민주노동당 건설 이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난 총-대선에서 ‘야권연대’였고, 또한 통합진보당의 창당 및 진보정의당의 창당으로 드러난 자본가 정당과의 공존이었다.
결국 이들이 말하는 ‘한국형’ 사민주의의 실체는, 거대 산별노조를 세력기반으로 한 의회주의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으로서의 사민주의조차 될 수 없다. 이미 진보정의당의 다른 일각에서는 안철수와의 연합을 주장하는 목소리조차 나오고 있는 상황 아닌가. 자본가 세력과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는 이들이 말하는 ‘한국형 사민주의’란 2000년 이후의 민주노동당의 이념보다도 훨씬 더 오른쪽의 이념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사민주의조차도 아니다.
개량 없는 개량주의
세 번째로, 역사적으로 사민주의는 2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의 호황기에 성장해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08년 이후 불황의 한복판으로 걸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급이 가질 수 있는 조그마한 성과조차 투쟁을 통해서 얻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08년 이후의 경제적 조건과 뻥파업조차도 벌여내지 못하는 종이호랑이 산별노조라는 주체적 조건을 감안한다면, 현 시기 그 노사정 합의기구는 그것이 작동하기 위한 물적 기반을 가질 수가 없다.
사민주의는커녕 케인즈주의조차 경험하지 못한 채, 권위주의 정부에서 신자유주의 정부로의 이행을 경험한 한국에서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들의 사민주의가 결과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개량 없는 개량주의’일 것이다.
백종성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