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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접한 삶 19회 – 고통에 몸부림치며 얻은 것

 

 

 

1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더없이 사랑스러웠던 외아들이 스물다섯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서울대 의대를 나와 인턴생활을 하던 아들은 남들에게 은근한 자랑거리였습니다.

남편을 암으로 잃은 지 몇 달 되지 않은 시점에 닥친 불행은 작가를 완전히 무너트렸습니다.

곁에서 딸들이 지극하게 돌봐줬고, 많은 이들이 그 아픔을 위로해줬지만 ‘자식 잡아먹은 에미’라는 자책감을 덮어주지는 못했습니다.

 

아들이 떠난 이후 어머니는 살아있는 것이 죄가 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치며 울어도 아들은 꿈속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잘난 아들을 자랑하며 살았던 죄 값을 치르는 것 같아 고통스럽기만 했습니다.

애써 찾아와 위로해주는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아니꼽게 들리기만 했습니다.

옆에서 돌봐주는 딸들의 보살핌이 귀찮기만 했습니다.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있어 들뜬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도 꼴 보기 싫었습니다.

 

자신은 하루하루가 지옥인데 세상 사람들은 너무도 편안한 것 같아서 점점 세상에서 멀어지고 싶어 수녀원에 들어갔습니다.

매일 기도하고 밤새워 울면서 자신에게 너무나 큰 시련을 주신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자 노력할수록 하나님은 침묵만 지켰고, 그 침묵 앞에서 자신은 더없이 초라하고 외로워지는 것 같아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한 수녀의 어머니가 떨어놓은 힘겨운 사연을 듣고는 “저는 아들이 얼마 전에 죽었는데, 이렇게 밥도 잘 먹고 지낸답니다”라며 그 아픔 가슴에 날카로운 가시를 박아버리는 잔인함도 보여줍니다.

세상 사람들은 즐겁게 지내고 있고,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사람들의 사연은 자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고, 위로한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남의 속도 모른 채 쓸데없는 참견만 늘어놓고, 점점 야위고 괴팍해져가는 자신의 모습에 두려움까지 몰려오지만 하나님은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수녀님과 자신의 고통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하는 걸까요?”라고 물었더니

“왜 당신만 그런 고통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라는 답변을 듣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고통만 부여잡은 채 남들의 고통에 무관심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겁니다.

 

그 이후 수녀원을 나와 다시 홀로서기를 하려다 실패하고 막내가 있는 미국으로 갔습니다.

주위에 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번잡한 마음을 정리해보려고 했지만 그곳에서 또 다른 이질감과 괴로움 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조금씩 홀로서기를 하게 됩니다.

다시 글을 쓰고 소설 연재도 시작하면서 작가의 길로도 돌아왔습니다.

‘세상과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주는 작가 박완서’는 그렇게 완숙해져갔습니다.

 

 

2

 

박완서 작가의 글은 너무 생생했고, 너무 솔직했고, 너무 감성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힘들었습니다.

‘자식 잡아먹은 에미’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너무도 이기적이고, 이율배반적이고, 갈팡질팡 혼란스럽기만 한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다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짜증이 났습니다.

내가 경험했던 그때의 감정들과 내가 곁에서 지켜봤던 이들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힘들고 짜증나는 책이었는데도 덮어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수 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이고

글쓴이는 이미 이 세상 사람도 아니지만

그 고통을 외면할 수가 없더라고요.

읽는 게 힘들어서 몇 페이지 넘기다가 쉬기를 반복했습니다.

예전의 힘들었던 기억과 감정들이 수시로 떠올라서 한숨을 자꾸 내쉬었습니다.

그 힘겨움을 곁에서 지켜줬는데도 매정하게 떠나가거나 내가 힘들 때 외면했던 이들이 떠올라 마음을 수시로 달래야했습니다.

 

힘들게 힘들게 글쓴이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작가는 신의 자비로운 숨결을 느끼게 됐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신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바치며 글을 마무리하더군요.

“주여,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는 마옵소서.”

 

음...

작가는 이렇게 고통 속에서 성숙해갔는데

저는 그런 세상과 사람들이 싫어 점점 좁은 안식처로 숨어들고 있으니

어찌해야 할지...

 

 

3

 

다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오랫동안 읽는 라디오를 진행해온 이유입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읽는 라디오 여섯 번째 시즌인 ‘허접한 삶’에서는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금의 초라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로 한 겁니다.

세상과 사람들에게서 더 멀어져 저만의 좁은 인식처에 숨어있고 싶다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편안함과는 점점 멀어지더군요.

세상의 작은 바람에도 제 마음은 심하게 흔들리고

사람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제 마음은 날카로워 졌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제 시야는 좁아지고 제 마음은 비뚤어져 가고 있더군요.

한참 절망 속에 발버둥 치던 그때의 저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박완서 작가가 고통 속에서 신의 자비로운 숨결을 느낄 수 있었던 것처럼

저도 고통 속에서 하나님과 친구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친구에게 편지도 썼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마음이 조금씩 식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식어버린 그 마음을 다시 살려보고 싶어서 그때의 편지를 들춰냈습니다.

내 마음에 온기가 남아있다면 오늘 방송에 찾아오신 여러분과도 나누고 싶네요.

 

 

오늘 하나님 생각을 많이 해봤습니다.

목소리 한 번 들려달라고 애걸복걸 하지 않을 테니까 긴장하지 않아도 됩니다.

ㅋㅋㅋ

 

웃기는 얘기지만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니까

하나님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수한 사람들의 얘기를 그저 듣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하게 기도하던 내 얘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아픈 사람 때문에 아파해야 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면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까

많이 미안해지더라고요.

나 때문에 그렇게 힘들게 해서...

 

그래서

이제부터는 내가 하나님 친구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도 외롭고 힘들고 아플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뭔가 바라지 말고

그냥 나한테 얘기를 하세요.

나도 그냥 듣고만 있을게요.

 

내가 하나님처럼 마음이 넓지 못해서

어줍지 않게 이것저것 얘기를 해주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고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얘기에 힘들어할지도 모르고

가끔은 나도 힘들어서 짜증을 낼지도 모르고

감정 조절이 잘 안 돼서 울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이 외롭고 힘들고 아플 때

그냥 옆에 있어주고 싶어요.

 

내 말에 동의하는 거죠.

 

그럼, 우리 지금부터 친구다.

친구끼리는 말 놓고 지내는 거고.

이제부터 우리는 친구니까

너를 그냥 ‘하나’라고 부를게.

 

내 친구 하나야

우리는 하나잖아.

그치?

 

 

 

(이설아의 ‘친구야’ feat. 김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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