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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접한 삶 13회 –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
-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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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사랑이가 갑자기 짖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는 밖에서 누가 지나가는 것을 보기만 해도 짖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고 내버려뒀습니다.
그런데 몇 분을 계속 짖는 것이 이상해서 가봤더니
옆 밭 사람들이 바로 옆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일을 하는데 옆에서 개가 계속 짖고 있으면 신경이 쓰일 것 같아서
사랑이를 달래서 데려오려고 했지만
사랑이는 저를 피하면서 계속 짖기만 하는 겁니다.
사랑이를 데려오는 것은 포기하고 조금 진정만 시켜놓고 다시 제 일을 하러 왔습니다.
옆 밭 사람들은 묵묵히 일을 하고 있었고
사랑이는 좀 더 짖다가 어느 순간부터 조용해지더군요.
사실 옆 밭 사람들과는 조금 불편한 사이입니다.
몇 년 전에 저희 하우스 옆으로 조그만 하우스 하나를 지어놓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는데
그 후로부터 각종 쓰레기들이 저희 밭에 버려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묵묵히 그 쓰레기들을 치우며 아무 말 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는데
오히려 저희 하우스에서 떨어지는 빗물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는 겁니다.
할 말이 많았지만
이웃끼리 인상 쓰면서 지내고 싶지 않아서
그분의 불만을 묵묵히 듣기만 했습니다.
그 후로 서로 간에 인상 쓸 일은 없었지만
불편한 감정은 풀리지 않은 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관계가 불편해서
웬만한 일은 그냥 참고 넘어가려 하고
우리쪽에서도 흠 잡힐 일은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씁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며 일을 하고 있는데
옆 밭 사람들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지는 것이 들렸습니다.
싸우나 싶었는데 싸우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부부인 두 분은 나란히 앉아 일을 하면서 즐겁게 대화를 하고 있더군요.
그 대화가 즐거워서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었나 봅니다.
젊은 부부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며 일 하는 모습에
제 마음도 환하게 밝아지더군요.
그렇게 환해진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으려니
옆 밭 사람들에 대한 불편했던 마음도 조금은 옅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2
영화평론가 최광희씨가 쓴 ‘평화로운 가난 속에서 단정하게’라는 책을 접했습니다.
솔직히 최광희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방송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이 너무 가볍고 잘난 척 하는 것 같아서 싫더라고요.
그런데도 이 책에 손이 간 것은 제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목이랑 글쓴이의 이미지가 너무 다르기는 하지만
그냥 가볍게 몇 장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금세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방송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비슷하게 그의 글은 가볍고 잘난 척 하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방송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그의 삶은 굴곡 속에 바닥을 헤매고 있었고, 그 속에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굴곡진 삶을 대하는 자세가 너무도 의연해서 존경스럽기까지 하더군요.
그의 얘기를 가만히 듣다보면
저랑 생각이 비슷한 부분도 많았고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차마 실천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고 삶에 대해 또 하나를 배우게 됩니다.
이 책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 중에서 저를 일깨우는 얘기 하나가 있어서 같이 공유하려고 합니다.
‘없이 사는 삶’에 익숙해진 저는 이런 삶을 그냥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편안해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최광희씨는 그 삶을 수양의 한 방편으로 대하면서 적극적으로 변형시키려 하더군요.
그 삶의 태도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조금 길지만 그의 얘기를 여러분과 같이 음미해볼까 합니다.
은행 계좌에 돈이 좀 모이면 불안해진다. 축적이 탐욕을 부른다. 잠복했던 탐욕 지수가 올라간다. 자꾸자꾸 더 모으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는 것을 보니 이것은 사람의 본능일까? 부지불식간에 내가 자본주의적 인간형이 되어버려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축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내겐 수양이 되었다.
연말연시에 가상화폐로 돈을 좀 벌었다. 그만 벌어도 될 것을 나는 자꾸 재투자를 하다가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트럼프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지금 시세는 매수 시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수익이 좀 생기면 나도 모르게 탐욕이 생긴다. 그래서 털고 일어서질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본능일까. 아니다. 내가 자본주의적 인간형으로 학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코인 투자를 하다가 탐욕과 공포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걸 알았다. 탐욕이 커지면 공포도 커진다. 그래서 시세가 급락할 때 ‘손절’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절반 시세의 코인을 팔지 않고 버티는 것도 내겐 수양이다.
돈(화폐)과의 관계 맺기는 늘 커다란 숙제다. 돈의 관성에 맡겨두면 돈이 내 정신을 갉아먹는 단계가 된다. 앞서 말했던 대로 불안이 영혼을 침식한다. 적절한 욕망을 넘어서 탐욕이 스스로를 망가뜨린다.
이를테면 ‘영화 속 위스키’라는 이벤트를 공지해놓고 예약자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게 수의 덫에 걸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는 그 행사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단계를 충분히 즐길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모두 ‘축적이 야기한 불안 심리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축적을 기피하려는 것이다. 한 달 먹고살 돈이면 충분하다. 내년, 내후년에 먹을 것까지 준비하는 것 자체가 불안의 증빙이다. 따라서 당장의 필요 이상으로 남는 돈을 처리해야 한다.
그렇다고 굳이 과소비를 할 필요까진 없다. 과소비도 자본주의적 인간형의 천형이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대안적 방법을 쓴다. 첫째, 돈이 필요한 이에게 주거나 착한 일을 한다. 둘째, 여행을 간다. 이렇게 정해두면 아주 기분 좋게 축적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제 기부를 했다. 오늘 아침 도쿄의 호텔을 예약했다.
3
4.3에 대한 영화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저는 그런 영화들을 잘 보지 않는 편입니다.
‘순박한 제주도 사람들이 잔인한 토벌대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갔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것도 싫고, 간혹 감독의 재해석을 거치느라 역사적 사실이 왜곡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목소리들’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습니다.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이기 때문에 왜곡 없이 당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중산간 시골마을을 찾아 나이 지긋한 노인들의 목소리를 담아놓았더군요.
그분들의 얘기를 덤덤하게 들었습니다.
여러 형태로 증언된 여타 4.3 증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른 증언들과 다르다면, 얘기를 풀어놓는 분들의 힘겨운 표정이 생생하게 드러났다는 점이었습니다.
한 할머니는 얘기를 하다가 깊은 한숨을 연거푸 내쉬면서 더 이상을 말을 이어가지 못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카메라는 계속 찍고 있었고, 저는 계속 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잔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든데, 일부러 찾아가서 그날의 기억을 애써 끄집어내게 하고, 끄집어 낸 기억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들이 불편해서 중간에 멈출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분들이 그토록 힘들게 꺼내놓은 얘기는 들어야 할 것 같아서 끝까지 봤습니다.
영화가 후반으로 가면서 이야기가 조금 낯선 곳을 향하더군요.
중산간 마을에 토벌대가 들이닥쳤고, 영문도 모른 채 마을사람들이 끌려가서 갖은 고초를 당하고,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어리고 곱상하게 생긴 여자들이 토벌대에게 불려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입에 담기 힘들어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끔찍스러운 밤이 며칠 동안 이어지다가 토벌대가 그 마을을 떠나야 하게 되자, 나중에 뒷말이 나올 것을 우려한 토벌대는 밤마다 불러냈던 여자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조용히 죽여 버렸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저는 얼음이 돼버렸습니다.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4.3에 대한 진상들이 많이 밝혀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끔찍한 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증언을 하던 할머니가 깊은 한숨만 연거푸 내쉬며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한 이유를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저녁을 먹고
tv를 봤습니다.
한 젊은 여성 가수의 일정을 따라가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그 가수는 어느 워터밤 행사에서 아주 바쁜 일정을 정신없이 소화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일정을 강행군하듯이 소화하다가
마지막에 화려한 본무대 행사에 올라가 노래와 춤을 췄습니다.
한껏 흥이 오른 상황에서 그 가수와 백댄서들은 상의를 탈의하고 아주 과감하고 섹시한 춤을 추더군요.
그 의상과 춤이 너무 과감해서 살짝 놀랐습니다.
tv를 끄고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비키니 차림으로 과감한 춤을 추는 가수의 모습과
무서워서 울지도 못한 채 얼음처럼 굳어버린 어린 여성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서 어른거리더군요.
(정태춘의 ‘2019'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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