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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우스에서 일을 하다가 시간을 확인하려고 바지에 손을 넣었는데 휴대폰이 없었습니다.
방에 놔두고 나왔나 싶어서 방에 가봤지만 그곳에도 없었고
일을 하다가 흘렸나 싶어서 움직였던 동선을 따라가 봤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 안과 하우스 안과 주변 텃밭까지 몇 번을 살펴봤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가 가장 난감합니다.
옆에 누군가 있었다면 “내 폰으로 전화 좀 걸어봐”라고 한마디만 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제 곁에는 사랑이 뿐이고, 주변에는 이웃도 없습니다.
5분쯤 걸어가야 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부탁을 할 생각으로 밖으로 나서는데
때마침 옆에 있는 펜션에서 청소를 하시는 분이 도착했더군요.
그분에게 다가가서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요즘에 다른 사람에게 휴대폰을 잘 빌려주는 게 아닌데...”라며 난색을 표하더군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정중하게 “휴대폰을 빌려달라는 게 아니라 제 휴대폰으로 전화 한 통만 걸어주셨으면 합니다”하고 부탁을 드렸죠.
그분은 마지못해 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면서도 멀지 감치 떨어진 채 거리를 유지하시더군요.
다행히 제 휴대폰은 금방 찾을 수 있었고, 그분에게 다시 한 번 정중하고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작은 소동이 있은 후 제 마음은 불편한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난처한 상황을 설명했는데도 그렇게 거리를 두면서 조심스럽게 대할 것 까지는 없는데 말이죠.
제 삶을 돌아보면 이런 경험이 너무 많아서 새삼스럽지는 않습니다.
내가 요청하는 도움이 사소한 것이든 절박한 것이든 상관없이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외면하거나, 귀찮은 티를 내거나, 변명하거나 하는 일이
무지 무지 무지 많았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읍사무소에 볼일이 있어서 가고 있는데
초등학교 4~5학년 정도로 보이는 한 소년이 제게 다가와
“마트에서 엄마를 잃어버려서 엄마한테 전화를 해야 하는데 휴대폰 좀 빌려주실래요?”라고 하더군요.
소년의 표정은 절박해 보였고, 목소리는 울기 직전이었습니다.
얼른 휴대폰을 그 소년에게 건냈고, 엄마와의 통화는 금방 이뤄졌습니다.
통화를 마친 후 사정 얘기를 들었습니다.
엄마와 같이 마트에 갔다가 엄마를 놓쳐버렸다고 하더군요.
소년에게는 휴대폰이 없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아무도 빌려주지 않았답니다.
한 시간 넘게 집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에 만난 사람들에게도 부탁을 해봤지만 역시나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더군요.
그 얘기를 들으니 제가 괜히 미안해지더라고요.
우리네 삶이 왜 이렇게 돼 버렸을까요?
2
사랑이와 둘이서만 지내는 하우스에 활력이 넘칠 때가 있습니다.
감귤을 수확할 때입니다.
동생들이 휴가를 내고 와서 도와주고
감귤을 따고 나르시는 분들도 와서 도와주니
사랑이랑 둘이서만 지내던 곳이 왁자지껄해집니다.
일당을 받고 오시는 분들은
그룹으로 같이 움직이는 분들이기 때문에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즐겁게 일을 하십니다.
저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면서 조금 과한 덕담을 하실 때는
쑥스럽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일행 중에 베트남에서 오신 분도 보입니다.
그분들은 대화에 끼지는 못하지만
눈치를 살피면서 주어진 것 이상으로 일을 열심히 하시는데
그 모습을 보면 짠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일하시던 분 중에 파치를 조금 사겠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일하시는 분이라서 싸게 드리려고 가격을 불렀더니 조금 더 깎아달라고 하더군요.
소량이어서 흔쾌히 깎아드렸습니다.
동생이 “너무 싸게 준다. 양을 좀 줄이라”고 했지만
“일하는 사람들에게 박하게 구는 거 아니다”며 정리를 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다 마치고 나서 골라놓은 파치를 건네는데
그 분이 파치의 상태를 보시더니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사지 않겠다”더군요.
‘싼 가격에 일부러 양도 넉넉하게 넣어서 고마움을 표하려고 했던 농부’의 마음이
‘형편없는 것들을 골라서 팔아먹으려고 하는 파렴치한 상인’이 돼 버린 꼴이었습니다.
순간 기분이 확 나빠져 버렸지만
하루 종일 고생하시다 가시는 분들에게 인상을 쓰고 싶지 않아서 웃으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일하는 동안 시키지 않은 일까지 열심히 해주신 이주노동자분에게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감귤을 조금 넉넉하게 담아서 드렸더니
진심이 충분히 느껴질 정도로 “고맙습니다”라는 한마디를 전해주시더군요.
그 한마디로 인해 하루의 고단함과 마지막의 씁쓸함이 모두 날아가 버렸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
알랑방귀를 뀌며 비위를 맞추면서 자기 계산을 하면 뒤끝이 찝찝해지지만
눈치를 살피면서 성실하게 대하면 뒷맛이 화사해집니다.
물론 그렇게 살다보면 이용도 당하고 상처도 입겠지만
속 좁은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것은
순박한 이주노동자였음은 분명합니다.
3
마트에서 장을 보고 버스를 타러 가고 있었습니다.
장바구니를 들고 열심히 걸아가고 있는데 길 건너편 차에서 누군가 저를 부르더군요.
같은 동네에 사시는 분이 저를 발견하고는 태워주신다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날씨도 더운데 짐도 있고 버스 시간도 애매하던 차였는데 뜻밖의 횡재였습니다.
생각지 못한 호의에 연신 고맙다고 하면서 집까지 편안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그분 하고는 그리 친하게 지내는 사이는 아닙니다.
사랑이와 산책을 하다가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입니다.
사실 조금 불쾌한 기억이 있기도 합니다.
몇 년 전에 감귤을 수확하고 있을 때 찾아와서는 조금 팔아 달라고 하더군요.
같은 동네에 사시는 분이라서 싼 가격에 드리려고 했는데
은근히 저를 장사치처럼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선의가 또 한 번 무시되는 것 같아서 불쾌했지만 웃으면서 헤어졌습니다.
그 이후에도 동네에서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를 나눴고
가끔은 텃밭의 채소를 나눠드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 마음 속의 불쾌했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동네사람끼리 좋게 지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오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가볍게 나눴습니다.
가볍게 오가는 얘기들 속에
은근히 정이 있는 분들이라는 것을 느끼게 됐지만
계산적이고 속물적인 부분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동네사람끼리 인사하며 지내고, 나눌 것이 있으면 나누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도와주는 것으로도 즐겁기 때문입니다.
어느 유튜브 채널에서 봤던 나이든 식당 사장님의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삶의 철학이었는데
그 평범함이 오늘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
그분의 말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봅니다.
사람한텐 절대 나쁘게 해를 끼치면 안 돼. 내가 나쁘게 해도 그 사람을 어딘가에서 만나고, 좋게 해도 어딘가에서 또 만나.
‘남편 잃고 30년째 제천에서 혼자 오뎅 팔아 자식들 키운 72세 사장님 (유튜브 채널 할매식당)’ 중에서
(NbNew의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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