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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하고 9시 넘어서 일이 끝나고 횟집을 갔어요. 배고프니까. 그런데 주문을 안 받으러 오더라고요. 노숙자인줄 알고...
그런데 떳떳해요. 하고 다니는 건, 사람들이 쳐다봐도 떳떳하더라고요.
‘다양한 인생이 모이는 고물상 속 3일의 기록(kbs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영상을 보고 있는데, 어느 고물 수거업자의 인터뷰가 제 마음을 꼭 건드리더군요.
저도 살면서 그와 비슷한 경험들을 많이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울산에서 살 때, 영세민 전세자금 지원금을 신청하러 동사무소와 은행을 찾아갔었는데 가져간 서류가 조금 꾸겨졌다고 짜증을 내는 걸 묵묵히 듣고 있어야 했습니다.
경기도 일산신도시에서 살 때, 머리카락을 자르려고 미용실에 들어갔는데 직원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묻는 황당한 경험도 했습니다.
제주도에서 농사지으면 살고 있는 요즘, 작업복 바지를 수선하려고 수선집을 찾아갔는데 바지가 지저분한다고 퇴짜를 맞기도 했습니다.
고물 수거업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저 분도 나처럼 이리저리 치이는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치이고 무시당하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허접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삶의 비루함과 당당함을 공감할 수 있게 해준 그 분은
제 삶의 스승이자 동지입니다.
2
제주 실종사건이 연일 난리입니다.
뉴스를 잘 챙겨보지 않아서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기저기에서 막 거론되더군요.
그리고 얼마 후에 실종됐던 분의 시신이 발견됐는데
제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조금 황당하고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냥 무덤덤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뉴스에서 이상한 소식들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제주도 가기를 두려워한다면서 떠도는 괴담들을 소개하더군요.
그런 뉴스들이 황당하던 차에 한 유명인이 sns에 올린 글이 또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제주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지만 절대 쉽게 보면 안됩니다. 자전거 타고 구석구석 쏘다니다보면 한라산 깊숙히 올라가지 않아도 마을 곳곳에 아무도 없는 으슥한 길을 흔히 지나게 됩니다. 오름이나 올레 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고함쳐도 아무도 듣지 못할 곳을 만납니다. 대낮이라도 또 포장된 길이라도 혼자 쏘다니는거 추천하지 않습니다. 여성은 물론 건장한 남성도 마찬가지예요. 7년차 제주살이 도민으로서 충고입니다.
- 홍혜걸님의 페이스북에서
하... 제주도에 대한 무수한 얘기들을 들어왔지만 이런 얘기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언제부터 제주도가 이렇게 오싹한 동네가 돼버린 걸까요?
저는 중산간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각에 개랑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 뉴스에서 난리가 난 동네와도 멀리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똑똑하고 유명한 분이 조심하라고 충고하시니
미국처럼 총기라고 마련해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는 걸까요?
이 분은 왜 이런 글을 올리셨을까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이 분이 사시는 곳도 제가 사는 곳이랑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동네에 사는데 저를 포함해서 제 주위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두려움을
어떻게 해서 이 분은 이렇게 민감하게 느끼시는 걸까요?
제주도에서 7년을 살았다는데 이 분의 민감함은 제주도에 뿌리내려 살아가는 우리랑 왜 다를까요?
어느 분이 “어떤 연유로 이렇게 제주를 혐오스럽게 만드는 글을 올리냐”고 댓글을 달았더니 홍혜걸씨는 “외진 길을 조심하라는 것이 애향심을 버리는 것인가. 국민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고 답글을 다셨더군요.
아, 이 분은 국민 전체를 생각하시는 분이어서 제주도민만 생각하는 저 같은 사람과는 사고의 폭이 달랐나 봅니다.
굳이 이 시점에 제주의 위험성을 알리시는 그 폭넓은 시야는 이곳에서 농사짓고 살아가는 저처럼 허접한 농부들과는 차원이 다른가 봅니다.
제주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위험을 느낄 수 있는 그 민감함은 박학한 지식과 폭넓은 인맥, 인플루언서로서의 뛰어난 감각 등이 결합하여 만들어졌을 겁니다.
즉, 이 분에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뜨거운 현안과 휑휑하는 괴담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서 내놓는 자기 목소리’가 더 중요했던 겁니다.
많이 배우고, 인맥도 넓고, 잘 생기고, 돈도 많고, 영향력도 많은 이들이 세상일에 반응하는 방식은 항상 이런 식입니다.
3
아직도 폭염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인터넷에서는 흉흉한 소식들이 잦아들지 않고
우크라이나와 이란에서의 전쟁은 끝을 보이지 않고
네팔에서는 빙하가 녹아 내려 홍수가 덮치고
사람들은 조그만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 살짝 떨어진 이곳에서는
여름철 풍성했던 텃밭을 정리해서 겨울 작물을 심을 준비를 하느라 바쁩니다.
점점 커지고 있는 감귤을 열심히 매달아 주고 있는 와중에 뒤늦게 귤꽃들이 화사하게 피기도 했습니다.
사랑이와 나선 저녁 산책길에는 겨울농사를 위해 깔끔하게 갈아놓은 밭들과 보드라운 뭉게구름이 어우러진 모습을 풍경화처럼 감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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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누구는 ‘낭만과 환상의 섬’이라 부르고
누구는 ‘중국인 장기밀매조직이 활개 치는 공포의 섬’이라 부르고
누구는 ‘통곡의 역사를 품고 있는 저항의 섬’이라 부르지만
제게는 그저 이런저런 고민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터일 뿐입니다.
이곳에서의 삶에 부끄러움이 있다면
“너무도 편안한 나머지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에 둔감해지지 않을까”
“내가 상처 줬던 이들을 너무 쉽게 잊은 채 행복에 도취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루시드 폴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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