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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로만 바라보던 1970년대
일본의 뇌성마비장애인들이 푸른잔디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듯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놓다가
서로를 격려하며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갖게 되기 시작하자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직설적이고 거칠어졌습니다.
자신들은 더 이상 ‘집안에서나 사회에서나 쓸모없는 짐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고 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인간’임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당시 뇌성마비 장애아를 둘이나 돌보던 엄마가 너무 힘든 나머지 어린 장애아동을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일본 사회에서는 “그 엄마가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면서 동정여론이 일었고 그 엄마의 감형을 위한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그에 푸른잔디회 회원들은 “우리는 힘들다고 죽여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면서 감형운동에 격렬히 반발했습니다.
거기서 나아가 “장애를 가진 자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것들을 가로막는 일차적 주체는 바로 부모다”라며 자신들을 ‘불쌍해서 돌봐야 하는 존재’로 바라보지 말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좀 더 거침없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주장과 행동을 이어갔습니다.
“장애인도 보호자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버스를 타겠다”며 거리로 나와 투쟁을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나 버스회사만이 아니라 노동조합과도 대립하며 사회적 지원세력이 없었지만 그들은 결연하게 싸워나갔습니다.
또한 우생보호법이라는 것을 통해 ‘태아에게서 선천적인 장애가 발견될 경우 낙태를 허용한다’는 조항을 넣으려하자 “장애인은 태어나서도 안 되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아니다”면서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여성계와의 갈등이 있기도 했지만 그들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장애아동도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특수학교를 의무화하자’는 법안에 대해서도 “우리를 어릴 때부터 지역에서 격리하고 배제하려는 것이다”며 통합교육을 주장하며 전국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세상의 온갖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높였고
지원세력이 별로 없는 가운데도 성과들을 만들어나갔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장애인도 인간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급진적으로 넓혀갔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쟁취해나간 그들은
“인간으로 사랑을 나누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살아가겠다”며 당당하게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평생 돌봐야 하는 불쌍한 존재’로만 바라봤던 부모와 가족들은 가장 격렬하게 반대를 하고 나섰습니다.
장애 당사자들이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할 때 부모와 가족이 제일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줬죠.
그런 반대 속에도 그들은 장애인공동체를 이뤄 서로 도우며 결혼과 출산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존재가 사회에서 조금씩 인정받고 삶이 자리를 잡아가던 중
그들의 공동체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결혼과 출산을 통해 얻은 자식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자식이 비장애인으로 태어나고 자라기 시작하자 그들은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처럼 장애인들과 어울려 지낼 것인가? 비장애인들과 함께 하면서 더 많은 경험과 능력을 쌓아갈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그들은 자식을 위해 장애인공동체를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급진적인 주장을 펼쳤던 그들도 성(性)의 문제와 자식의 문제에서는 그들이 그렇게도 비판했던 부모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던 겁니다.
이 이야기는 아라이 유키씨가 쓴 ‘장애인 차별을 다시 생각한다’라는 책에서 알게 됐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울산에서 들려왔던 소식이 떠올랐습니다.
오랫동안 비정규직 투쟁을 열심히 해왔던 이들이 결국 정규직화를 이뤄냈습니다.
그들의 오랜 투쟁을 같이 했던 이들은 모두 축하를 해줬습니다.
하지만 정규직이 된 그들은 더 이상 비정규직의 투쟁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군요.
2
BG와 PT간의 계투가 활성화되면, 투쟁 속에서 획득되는 적대의식들이 쌓여 즉자적 계급의식에서 대자적 계급의식으로서의 전환이 이뤄진다. 그렇게 노급의 투쟁은 점차 R적 인식으로 상향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하셨나요?
‘계급’이니 ‘투쟁’이니 하는 단어가 있는 걸로 봐서 운동권들이 사용했던 말이라고 생각되시나요?
정답입니다.
옛날에 제가 학생운동을 했을 때 사용했었던 상투적인 표현들이죠.
일반인들은 무슨 뜻인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줄임말, 영어 표기, 철학적 수사, 현학적 표현 등으로 도배되어있었죠.
이런 표현을 밥 먹들이 쓰면서 격렬한 논쟁들을 벌였는데 운동권끼리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소위 ‘문건’이라고 불리는 운동권 내부 팸플릿에서만 이런 표현을 썼던 것이 아니라 학교 교지 같은 대중매체에서도 이런 표현들이 공공연히 등장했습니다.
운동권이 아닌 일반 대중이 이런 글들을 읽으며 얼마나 의해를 했을지는 모르지만...
은폐된 조직에서 사용되던 그들만의 폐쇄적 언어의 표본이죠.
물론 이런 표현들 쓸 수밖에 없었던 데는 군사정권의 폭력적인 탄압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좀 더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혁명적 전위가 앞장서서 노동자계급을 지도해야 한다”는 엘리트주의가 강하게 작용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노동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혁명적 인텔리겐치아들의 기괴하고 고상한 표현들로 권위를 만들려고 했던 겁니다.
새롭게 만들어진 로고와 브랜드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바탕으로 2025년, 사콜 크루이자 디자이너 다연이 브랜드 비주얼 시스템을 만들었다. 해당 시스템은 사이드 뉴스레터와 커뮤니티, 사이드 센터, 인스타그램 등 사이더들과 만나는 여러 접점에 적용되며 사이들의 이야기를 통일된 하나의 시각 언어로 전달한다.
이 말은 어디까지 이해를 하셨는지요?
“정형화된 선택지 대신, 자기만의 길을 찾아 고민하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를 표방하는 곳에서 나온 문장입니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옛날 운동권 표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가요?
넘쳐나는 영어식 표현들을 걷어내면 문맥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그 ‘넘쳐나는 영어식 표현들’이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는 점입니다.
가만히 뜯어보면 고급 영어들은 아니어서 한번 곱씹으면 얼추 이해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이 짧은 문장만이 아니라 잡지 안에 실린 상당수 글들이 이런 식으로 쓰였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나, 특정 직종들에서는 이런 식의 ‘넘쳐나는 영어식 표현들’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어서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안 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처럼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고,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신경을 곤두세워서 두 세 번은 곱씹어야 합니다.
이분들도 ‘틀에 박힌 세상의 상식을 걷어내서 좀 더 자유롭고 진취적으로 나아가자’는 강한 의지에서는 과거 운동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소통과 연결을 강조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경험과 언어를 공유하고자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과거 운동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주류가 얘기하는 대중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고 ‘더 자유롭고 진취적인 마이너’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과거 운동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이분들의 자유로움과 진취적 도전도 엘리트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운동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3
유명인들이 살아왔던 얘기를 풀어놓는 유튜브나 책을 보다보면
어릴 때부터 그들 주위에는 나중에 유명해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구누구랑은 같은 동네에서 자랐다거나
누구누구랑은 학교 동기라거나
누구누구는 선배나 후배라는 식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줄줄이 늘어놓지요.
그런 이들은 대부분 서울 출신이거나 명문대학 출신이거나 사람들이 많이 아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유명한 운동가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 분이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었습니다.
대학시절 얘기를 하면서 그때 동기와 선후배들의 이름을 쭉 늘어놓는데
전부 쟁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분이 다녔던 학교도 명문대학이었죠.
물론 그런 학벌과 인맥을 자랑하려고 하는 얘기는 아니었겠지만
“역시나 유명한 사람은 유명한 사람들과 어울리나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이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지방 출신이고, 3류 대학 출신인데다가(더군다나 졸업도 못했습니다), 하는 일도 변변치 못한 저 같은 사람 주위에는
유명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한 두 다리 건넌 인연까지 애써 뒤져보면 조금 알려진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별 볼일 없는 제 인생을 화려하게 비춰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이 더 별 볼일 없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제 주위 사람들이 보입니다.
유명하거나 부자이거나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어도
그분들은 제 삶을 풍부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줬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The Warning의 ‘Animo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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