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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소처럼 밤 9시에 잠을 자려고 누웠습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는데 옆에 있는 펜션에서 관광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 소리에 신경을 쓰지 말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명이 큰소리로 떠드는 소리는 좀처럼 잠을 자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밤 10시쯤에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었습니다.
펜션으로 가서 정중하게 “잠을 자야하니 좀 조용히 해주시겠습니까?”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들은 알았다고 했고, 잠이 달아난 저는 편의점에 가서 맥주 2개를 사들고 왔습니다.
맥주를 마시며 마음속에 올라온 짜증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습니다.
시간이 11시가 넘어가자 다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펜션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여전했습니다.
최대한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침대에서 계속 뒤척였습니다.
그들은 술기운들이 올랐는지 목소리의 톤이 더 높아진 것 같았습니다.
심지어 누군가 밖으로 나왔는지 창밖으로는 남녀의 대화소리마저 들리더군요.
더 이상 참지 못해 다시 일어났습니다.
시계를 봤더니 12시 30분이었습니다.
밖으로 나왔더니 남녀 한 쌍이 펜션에서 떨어진 저의 하우스 앞에서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다가가 “잠 좀 잘 수 있게 부탁합니다”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자 분이 “아니 큰 소리로 떠든 것도 아닌데 그걸 갖고 그러냐?”면서 시비를 걸어오더군요.
다행히 옆에 있던 여자 분이 말리면서 싸움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제 잠은 완전히 달아나버렸습니다.
방으로 들어와서 마음을 누그러트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잠을 자는 것은 어렵겠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켰습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소음과 머릿속을 떠다니는 심란한 생각들을 잊으려고 영화도 보고 재미있는 영상도 찾아봤습니다.
그들은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즐겁게 떠들며 놀았고, 새벽 3시쯤 주위가 조용해지니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자리에 누웠습니다.
겨우 잠이 들었지만 제 몸은 평소처럼 새벽 5시가 되자 깨어나고 말았습니다.
그대로 침대에 누워 tv를 보고 있노라니 밖이 밝아오기 시작하더군요.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후에 사랑이와 함께 산책을 나섰습니다.
제 몸과 마음은 무겁고 피곤했지만 주위는 더없이 조용하고 상쾌하더군요.
하우스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데도 몸과 마음이 너무 무겁고 힘들어서 얼마 하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또다시 영화와 영상을 보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 상태에서 자버리면 밤에 잠을 자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자지 않으려고 버텼습니다.
그렇게 버티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밤처럼 힘들지는 않더군요.
그렇게 무거운 몸과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나서 사랑이와 함께 저녁 산책을 나왔더니
펜션에는 차와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서 조용한 적막만이 감돌았습니다.
그 적막이 어의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2
그날 이후
몸의 피곤함이 사라지는 데 이틀이 걸렸습니다.
마음 속 불쾌함이 사라지는 데는 사흘이 걸렸지만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불편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더군요.
요가와 명상으로 몸과 마음을 정돈도 해보고
사랑이와의 산책을 자주 하며 여유도 찾아보고
하우스에서 일을 하며 나무와 교감도 해보고
감귤나무 그늘 아래 앉아 책을 읽으며 타인의 얘기에 집중도 해보고
몇 년 만에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며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 넣으려고도 해봤지만
마음속의 부정적 기운들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하고 제 마음을 들여다봤더니
제 마음 속 불편함은 그날의 일로만 생겨난 것이 아니라
감정의 찌꺼기들이 쌓이고 쌓여서 눌러 붙고 있었기 때문이더군요.
뜨겁고 길었던 여름이 지나 선선한 가을이 왔고
고민과 땀으로 바빴던 나날이 지나 가장 여유로운 시기가 된 요즘
제 마음 속 감정의 찌꺼기들이 하는 얘기를 가만히 들어봤습니다.
3
제 마음의 하는 얘기들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일상 속에서 처리해야 될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조잘거리고 있었고
주변에서 저를 불편하게 했던 사람들에 대해 투덜거리고 있었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미래의 일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해야 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가볍게 툭툭 던져놓는데
쉼 없이 이러쿵저러쿵 거리면서
괜히 머릿속을 번잡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불편했던 사람들의 기억들은
이미 예전에 지난 일인데도
심심하면 끄집어내서
부풀리고 비틀고 하면서 마음을 어지럽히더군요.
미래에 대한 상상들은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어지러운 마음의 틈바구니에서 마이크를 잡고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며 불안을 살찌웠습니다.
제 마음이 하는 이런 얘기들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그냥 가만히 들어주고 있으면
한참을 떠들다가 제풀에 지쳐서 스르르 입을 다물곤 합니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을 때 제 마음의 주변을 둘러봤더니
온통 자기 얘기 밖에 없더군요.
언제부터 제 마음속에서 타인에 대한 연민이 사라져버렸을까요?
외톨이로 살아가는 삶이 길어지면서 이렇게 변해가는 것이 당연한 걸까요?
세상이 그렇게 변하고 있어서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걸까요?
음...
이유를 어디에서 찾든
타인에 대한 연민이 사라지고
자신에 대한 걱정들만이 가득한 자리에서는
불편함과 불쾌함이 생명력 강한 잡초처럼 쉼 없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지긋지긋한 이 잡초들을 매일같이 뽑아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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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Darling & The Adagio Ensemble의 ‘Clear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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