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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노동조합과 노동운동론에 대한 강의를 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그 밑에 어떤 분이 이런 댓글을 달았더군요.
“이런 건 나도 좀 가서 배우고 그래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겨우 따라갈 수 있을 텐데, 4일 모두 다른 일정이 있네.”
이 댓글을 다신 분은 아주 오랫동안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상담과 교육을 해오셨고, 지금도 대학에서 교수로 관련된 교육을 이어오고 있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하시는 이 얘기가 제 뒤통수를 때리더군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겨우 따라갈 수 있도록” 이렇게 노력하시는데 저는 너무 편하게 제 삶에 안주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됐습니다.
“알고도 짓는 죄가 클까요, 모르고 짓는 죄가 클까요?”
한 종교 교리 수업에서 어느 강사가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삼분의 이 가량의 학생이 “알고도 짓는 죄가 더 크다”라고 답했습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죄를 지은 것이 문제라며 말입니다. 그런데 강사는 “모르고 짓는 죄가 훨씬 크다”라고 답합니다. 사실 대부분이 모르고 지은 죄에는 어느 정도 면책의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형법 제16조에서도 “자기의 행위가 죄가 되지 않은 것으로 오인하고 저지른 행위에는 벌하지 아니한다”라는 규정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럼에도 이 강사는 왜 이러한 결론을 내린 것일까요?
강사는 앎의 여부보다는 각각의 경우가 초래할 결과에 더 초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무지로 인해 벌어진 일일지라도 죄는 죄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지요. 사실 우리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미리 명확하게 알았더라면 대부분의 죄를 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살면서 배움을 멈추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옥현주씨가 쓴 ‘제가백가, 인생 불변의 지혜’라는 책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이 얘기를 듣고 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경험들 속에 세상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확고하게 가졌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면서 가끔 세상의 소란스러움과 어지러움에 대해 한마디씩 내뱉으며 제 관점의 올바름을 확인하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새로운 변화들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는 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무지가 쌓여가고 있습니다.
그에 비례해서 저의 고립과 고집만 깊어지는 것이라면, 저는 ‘모르고 짓는 죄’가 쌓여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2
저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물정에서 동떨어져있다는 점을 가끔 느낍니다.
카카오 톡을 써본 적이 없어서 “개편 때문에 난리가 났다”는 소식이 해외뉴스를 보는 느낌입니다.
시골에서 급하게 움직일 때는 콜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카카오 T로 불러야 하기 때문에 택시를 부르지도 못합니다.
돈을 이체하려고 할 때도 자전거를 타고 근처에 있는 은행에 가서 ATM기를 이용해야 하고, 인터넷으로 뭔가를 주문하려고 하면 동생에게 부탁을 해야 합니다.
집에 조그만 노트북이 있어서 인터넷 사용을 할 수는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트렌드를 쫒아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AI가 대세로 자리잡혀가고 있지만 AI를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남들이 AI에 대해 하는 얘기를 듣기만 합니다.
OTT로 전 세계의 다양한 볼거리를 즐겨보기도 하지만, 넷플릭스 같은 핫한 OTT는 사용하지 않다보니 요즘 뜨는 영화나 드라마는 접할 기회가 없습니다.
그나마 유튜브를 통해 최신 소식과 트렌드를 접하기는 하지만, 알고리즘이 올드한 제 취향에 맞는 것들을 주로 소개해주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한 발 떨어져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에서 조금 떨어져서 지내다보면
번잡한 것들에서 멀어질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겨 좋기는 하지만
가끔 “내가 세상의 변화를 너무 모르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세상과 동떨어진 자기만의 작은 왕국에서의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에 안주한다면
엄청난 세상의 변화 앞에서 저는 점점 작고 초라한 존재로 전락해버리겠죠.
그렇게 서서히 세상에서 잊히고 지워지는 것은 상관없는데
그렇게 나이가 들다보면 ‘자신만의 작은 왕국만을 굳게 부여잡은 꽉 막힌 늙은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걱정입니다.
예전에 범민련 어르신들이 성소수자들에 대해 “미 제국주의 쓰레기문화에 오염된 자들”이라며 거칠게 비판했다가 진보진영의 거센 비난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살벌한 군사정권 아래서 굳건한 신념을 단단히 지키면서 죽음을 넘나드는 모진 시련을 견뎌냈었습니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과 동떨어져 오직 자신의 신념만을 붙들고 있다가 새로운 세대와 조응하지 못한 채 외면당해버렸던 겁니다.
앞으로의 저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겠죠.
3
세상은 상상 이상의 속도로 무섭게 변하고 있고
사람들은 그 변화를 정신없이 따라가고 있고
그 흐름에 올라탄 사회는 점점 미쳐가고 있는데
저 혼자만 세상에서 떨어져 고고한 척 해봐야
세상물정 모르는 꼴통으로 늙어갈 뿐입니다.
그렇다고 젊은 사람들을 찾아가서 같이 어울리자고 들이밀 수도 없고
예전에 알고 지냈던 이들에게 연락을 해서 실없는 관계들을 다시 살려낼 수도 없고
무작정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얻어들을 것을 찾아다닐 수도 없고
되든 안 되든 잡다한 정보의 바다에 빠져들어 온갖 것들을 섭렵할 수도 없으니
꼴통으로 늙어가지 않을 방법이 딱히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밀고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 책 읽기 : 남는 시간을 여유롭기 즐기기 위한 소일거리에서 세상을 좀 더 넓고 깊게 바라보기 위한 학습의 시간
- 동영상 보기 : 가볍게 시간 때우는 볼거리에서 세상의 트렌드와 젊은 세대의 호흡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의 시간
성찰하기 :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세상과의 소통방법을 이해하고 찾아가기 위한 노력의 시간
교감하기 : 식물과 개들과의 교감에서 더 들어가 세상과 우주와의 교감을 위한 노하우를 찾는 시간
음, 이렇게 말하고 보니 거창해보이기는 하지만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조금 멋있게 정리했을 뿐입니다.
다만, 그 속에 좀 더 정성을 담아서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흘러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는 것이죠.
(류금신의 ‘또 다시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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