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에는 노랑어리연꽃이 가득 차있었다. 꽃은 피어있지 않았고 잎만 가득한 것을 별달리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칼라 사용이 유난히 촌스럽다고 느껴진 책 <야생화>를 몇 장 넘기다보니 연못에 어지러운 노랑어리연꽃보다 더 노랑어리연꽃다운 노랑어리연꽃이 단정하게 들어있었다. 중년의 한 부부가 다가오더니 여기서 초등학교를 나왔는데 이런 곳이 있는 줄은 이제서야 알았다며 쉬어갔다. 곳자왈을 헤쳐 다시 길로 나왔고 들고다니던 소설책을 펼쳤다. 끝에서 몇 장 남지 않은 곳에 노랑어리연꽃이 나왔다. 연못에서 소설까지 오는 동안 노랑어리연꽃의 노랑은 빛을 충분히 잃었다. 그런데도 종잇장을 더욱 먹어삼키고 싶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핑계를 대자면 없지는 않다. 마음에 드는 것이 딱히 걸려들지 않을 뿐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종이의 냄새가 코와 입으로 들어가 구불구불 소장과 대장을 지나쳤다. 제주도는 삼복이 아니라 음력 6월 20일 한번 닭을 먹는다며 토종닭을 요리하는 집에 엄마가 데리고 갔다. 제주도는 가난해서 그렇다지만 결국 배가 부른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에서 넘어오는 트림은 종이 냄새가 났다. 노랑어리연꽃을 먹어치운 종이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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