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 하나...

홈페이지가 있을 때 '가족'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나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가족'에 대한 이야기인 양, '엄마, 아빠, 동생' 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그/녀들의 이름자를 하나씩 따서 글을 썼었다. 나름대로 '나의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은 욕심이었는데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게, '객관적'이라는 게, 어쩔 수 없는 한계, 혹은 쉽게 해명되지 않는 감정 같은 것들이 있다.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어떤 이유에서든... 게다가, 늘 고맙기만 한 사람들이라...

 

그냥 아빠와 동생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예전에 썼던 글 생각이 나서 주절주절...



자주 전화하시지 않는데 그렇게 아주 가끔 안부를 물어오신다. 2년쯤 전에 술을 좀 드시고 집에 들어왔다가 생각나서 전화해봤다던 통화가 기억나고 한달 전쯤 에이즈 토론회 잘했냐고 물어오셨던 통화가 기억나고, 그 정도다. 이번 전화는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생각났다시며 걸었단다. (도대체 어떤 드라마에 나처럼 착하고 이쁜 딸이 나오는 게야? !!! ^^;;)

추석연휴에 집에 다녀오면서 지금껏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꾸준히 말씀드렸지만 무슨 생각으로/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살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씀드려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때 생각했던 것들을 짧게 적었던 포스트) 그래서 생각해낸 것 중 하나가 '인권하루소식'을 보내드리는 거였다. forwarding하면서 내가 사는 이야기들을 함께 보내드리기로...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아빠는 더이상 보내지 마라는 답메일을 보내셨다. 조금 맘상하기는 했지만 자초지정을 들었던 편집장 언니도 그랬듯, '인권하루소식'이 그리 읽기 편한 글은 아니다.

그래도 말문을 그렇게 트고 나니 전화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에이즈 토론회도 그렇고 지난 주말에 있었던 보건의료인 반전평화총회도 그렇다. 아빠는 '주말에 한다던 뭐'를 잘했냐고 물어오셨다. 그렇게 시작되어 이리저리 번지다보니 의료시장 개방/영리법인/민간의료보험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왔고 아빠는 '딸이 좋은 일 하는 것 같아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통화하는 와중에 엄마는 옆에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들을 하셨다. 요지는 '어떻게 먹고살 꺼냐' '남들 하는 대로 살아라' 등이다.

 

아빠의 말에 으쓱하면서, 엄마의 말에 아쉬워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엄마의 지지를 더욱 바라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두 분의 반응의 차이에는 '남성' 과 '여성'의 차이에 의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남성'은 '대의'를 위해서라면 가족이나 '집안일' 혹은 생계와 같은 것들에는 조금 무심해도 괜찮다거나 오히려 그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훌륭한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된다. 하지만 '여성'은 누구보다도 먼저 가족과 '집안일'과 생계를 챙기게 되고 그것을 자신의 의무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남성' '위인'들은 하나같이, 집과 가족을 떠나 뜻을 이루고 그동안 집을 지키며 매달 생활비를 부쳤을 '여성'의 이야기는 한줄도 나오지 않는다. '여성' '위인'들은 하나같이, 남편을 하늘처럼 섬기거나 아예 혼자 산다. '류시스트라테'의 대사처럼 남성들은 '여자가 무슨 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거야?'라고 묻지만 전쟁에 들어갈 돈 걷느라고 돌리는 세금고지서와 영수증은 항상 여성이 챙긴다.

아빠는 내가 '좋은 일'을 하는지, '나쁜 일'을 하는지에 먼저 관심을 가지시는데 엄마는 내가 '돈이 되는 일'을 하는지,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하는지에 먼저 관심을 가지신다. 가끔은 그런 엄마의 말에 속상하기도 했는데 그게 '엄마'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개인적인 아쉬움은 거두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가장 가까이서 나를 지켜준 엄마.

몰래 아빠, 엄마에게 고맙단 인사드린다.

 

*** 동생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그런데 나도 알고보면 참 '남성'적인 인간형인갑다,

하는 이야기인데 다음에 써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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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5 14:12 2004/11/25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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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족, 이야기 둘...

    2004/11/29 13:34

    * 이 글은 미류님의 [가족? 이야기 하나...] 에 관련된 글입니다. 7년째 동거 중인 그녀는 나의 여동생이다. 직장에 다니고 있으나 무슨 일을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고-아마도 mobile service와 관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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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미 2004/11/25 15:2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공감이 가는군. 난 알고보면 '남성'의 역할과 사고를 가지게끔 키워진것 같은데...울 엄마도 일전에 얘기하신 것처럼 날 '아들'에서 나아가 '남편'으로 생각하고 키우셨다니...담 얘기 기대됨!

  2. 뎡야핑 2004/11/25 17:1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전쟁에서 여성의 이야기 왕동감. 저는 전쟁 중의 여성의 부엌생활에 대해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자료가 없다는 -_-ㅋ

  3. 미류 2004/11/26 00:4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해미// ^^ 낼 봄세! 기대까지 하심 부담스럽소.
    뎡야핑// 듣고보니 참 궁금해지는 주제군요~ 자료야 나타나라타나라타나타나라 얍! ^^;;

  4. 욘용 2004/11/29 23:2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희집은 아빠가 더더욱 '못인정'하는 분위기.
    내가 여성운동같은데 관심가지면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뭐, 그리고 아직 '딸아이'가
    자신으로부터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여기는데 불구하고
    자신의 뜻과 다른 일을 하니 보기가 불편하겠죠 뭐..ㅎㅎ
    좀 다른 상황이지만 해석은 뭔가 닿는 것이 있네요!

  5. 미류 2004/11/30 10:1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울집도 그랬어. 엄마는 내 얘기 잘 들어주셨고 아빠는 뭔소리냐, 그런 분위기였지. 근데 졸업하고 나서 조금씩 달라졌어. 엄마두 내가 '좋은일'한다고 생각하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