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현 민주평화당 부산시당 위원장 “어떤 사람?”
-YS 3당합당 때부터 패권과 야합정치 배격하며 소신 행보
솔로몬은 다윗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부린 꼼수는 ‘우리아’를 총알받이로 내세운 일이었다. 최전선의 맨 앞줄에 세워 적의 맹폭이 퍼부어지는 순간 죽을 수밖에 없도록 함정을 판 것이다.
다윗의 암계(暗計)는 성공하여 그들 사이에는 사랑의 결실로서 금쪽같은 첫아들이 태어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들이 죽었다. 신벌(神罰)이고 천벌(天罰)이었다. “하느님 왜, 왜 저를 버리십니까?” 다윗은 식음을 전폐하고 하느님을 원망하며 부르짖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우리아를 죽게 한 것에 대한 부도덕성을 질타하는 음성뿐이었다. 다윗은 그제야 통절한 반성을 하며 심기일전 하는 사람이 된다. 후에 밧세바에서 얻은 두 번째 아들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이라는 명예와 부귀영화를 약속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축복에는 반드시 책임과 의무가 뒤따르는 법이다. 그 축복은 흠결 없이 처신할 경우 유효한 것이었다. 솔로몬이 한때는 잘 나갔지만 그가 죽자 나라는 반쪽 나고 만다. 그의 교만과 방탕도 문제였지만, 아내로 삼은 이방 여인들의 꾐에 넘어가 나라의 정체성과 기강을 문란케 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우리의 정치와 정당사도 마찬가지다. 영광과 오욕,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 1945년 이후 시작된 정당의 역사가 어언 73년 가까이 되는 동안 수많은 정당이 명멸하긴 했지만 그래도 보수독재 대 민주진보 계열의 흐름으로 크게 나뉘어 왔다. 이 균형을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는 식으로 깨버린 당사자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고 그 결과가 3당 합당이었다.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기본 명제를 깡그리 무시하는 폭거였다.
김영삼은 집권에 성공하자 ‘구국의 결단’이었다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자신의 행위를 두고 자화자찬과 정당화에 골몰했다. 하지만 성공의 훈김은 짧은 대신 그에게서 배태되는 독소는 두고두고 한국정치의 고질병이 되고 있다. 김영삼의 아류(亞流)들이 출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3당 합당을 결행한 김영삼이나 중도개혁정당을 주장하던 안철수가 표심을 배신하며 당을 쪼개면서까지 보수합당을 밀어붙인 점이나 도긴개긴이요 오십보백보다.
이들이 배준현의 정치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민주평화당 배준현 부산시당 위원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배 위원장은 김영삼의 3당 합당을 불의하다고 보았고, 친노친문들의 패권이 싫어 2015년도 2월 박지원과 문재인의 당대표 선거에서 18개 지역위원장 중 유일하게 박지원 쪽을 거들었다. 이번에 또 잦은 말 바꾸기와 당을 사당처럼 운영하는 안철수의 바른미래당을 건너뛰고 민주평화당을 선택하게 된다.
누구는 같은 지역 출신이라서, 누구는 동일 계보라서, 또 누구는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서 조석변개하듯이 이말 저말 갈아타는 모양새였지만 배준현 민주평화당 부산시당위원장은 대의명분이 어느 쪽에 있는지, 정치도의를 실현하며 가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며 판단을 한 결과였다.
배 최고위원의 부모님은 경남 창녕이고 배준현도 오리지널 경상도 사나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희생했던가? 민주세력의 거목으로만 알았던 “그 김영삼이 하루아침에 군사정권세력과 손을 잡다니!” 20대 초반의 청년은 고민 끝에 95년 국민회의를 창당할 때부터 김대중에게 힘을 보탰다. 대학생위원회의 정책위원으로 활동하며 97년도 대선 때도 맹활약을 하였다. 대학원생이었던 27세 때 부산광역시 의원에 첫 출마를 시도하면서 고배도 마셨고, 18%의 지지율로 만족해야 했다.
“제 소신대로 하겠습니다” “이노무 아야 군사독재든 수구보수든 여당을 지지하면 우리가 알아서 키워줄낀데 니 왜 그라나?” 전자는 사람들에게 배 최고위원이 한 대답이었다. 부산대에서 정치외교학과를 나왔고 동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그 후 접고 부산대 학생처에서 교직원으로 근무를 했다. 별일이 없는 한 평생 다닐 수 있는 직장이었다.
하지만 노무현 캠프에 몸을 담은 것을 계기로 다시 정계로 복귀한다. 나이가 젊으니 한번만 양보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정직한 처신을 한 대가로 따돌림을 당했고, 계파에 몸을 담지 않아 공천에서 배재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민주당에서는 패권세력이 태동하고 있었다. 그게 싫어서 당대표 선거에서 문재인과 박지원이 겨룰 때 부산시당 위원장들 중 유일하게 박지원을 지지했던 거다. 이 선택이 올무가 되었다. 남구청장에 출마하려던 계획이 무산된다. 지방선거에서 공천 장난에 희생양이 된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던가 보다.
국민의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만히만 있어도 자리보존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뭐하자는 정치인가. 의원 2/3가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문을 걸어 잠그는 것도 모자라 보초병을 세워 반대표를 던질 만한 사람들은 들어오지도 못하게 밀실투표를 하는 것이 정치도의인가 말이다. 차마 수구보수세력과 야합하러 따라갈 순 없었다. 유승민과 안철수의 바미당에 말이다. 이상이 배준현 부산광역시당 위원장의 정치이력이다.
이번 부산시당 창당에 어려움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당연히 어렵고 힘든 상황이 뒤따랐으니까. 배 최고위원이 모집한 2천여 명의 당원명부도 바미당 차지가 되었다. 배준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후원 받아 마련한 집기도 다 내주고 빈손으로 나앉았다. 바람부는 모래밭에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할 판이다. 6명의 지역위원장과 구청장 예비후보 2명과 시의원 후보 3명이 전부다. 이들과 함께 3월30일 부산시도당을 창당했다. 배 최고위원이 500명의 당원 모집을 했고, 그 나머지는 지역위원장들이 겨우 채워 창당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
2천여 당원명부는 비록 없지만 500여 명을 모으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워낙 올곧게 한길을 걸어왔고, 어렵고 힘들지만 뚝심과 소신으로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배 위원장은 말한다. “때로는 외롭지만 많이 외롭진 않다”고. 시대가 변하고 있다. “민주평화당은 이제 막 교섭단체도 이뤘고, 정통민주세력이요 평화세력이라는 자부심이 크다. 이세상은 누가 뭐라 해도 전쟁 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도 곧 있을 예정이다. 우리 민주평화당이야말로 이 모든 정체성을 가진 유일한 정당이다.”라며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할 것”이라 힘주어 말한다. 배준현의 마이 웨이인 샘이다.
이런 뚝심과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물렀다. 진정한 나라사랑에서 오는 거라는 대답이다. 부산출신이라서 그런지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해양산업이 악화일로다. 해양산업을 살려내고 국가해양전략을 통합적으로 수립하기 위해서 청와대에 국가해양비서관 제도를 신설하고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해양전략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한다. 지역과 국가발전전략에 대한 비전제시와 남북문제에 대한 식견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배준현 최고위원, 그의 길은 부산 앞바다의 무역선처럼 거침없는 항해를 약속하는 결기로 가득 차 보였다.
*글쓴이/박정례 선임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