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취적인 자기개발과 창발(創發) 성으로 앞서 나간 공직생활 32년
-기초단체의원 당선은 자발적인 지지자들이 준 선물의 결과
세월의 빠르기는 쏜살과 같다. 어떤 수단으로든 잡을 수도 없다. 그러니 현명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와 시간을 선용하게 된다.
시간이란 얼핏 생각하면 만인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 같지만 갖가지 이유에 따라서 다르고, 활용 능력 면에서도 천태만상의 결과로 나타난다. 높은 학력과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했으면서도 취직은커녕 정작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뜻을 이루지 못해서 갖가지 안타까운 늪에 빠지는 일이 벌어진다. 이에 비해서 화려한 스펙 하나 없이도 공무원 시험에 두 번씩이나 합격하고, 30년 이상 공직에 머물면서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명예롭게 복무한 사람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지역민들의 부름을 받아서 기초단체의원으로까지 진출한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노원구 의회 김용우 구의원이다.
김용우 의원을 만난 것은 지난 월요일이었다. “최근까지 공직에 있다가 구의원이 된 사람으로서 특출 난 점이 많다.”는 평이 뒤따르는 인물이었다. 그럴수록 필자는 김 의원에 대한 평가가 근무의 품질을 두고 하는 말인지 오랜 기간 출근부에 도장 잘 찍은 햇수를 두고 하는 말인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용우 이분 여느 공무원들과 차별 점은 무엇일까.’ “구의회에 들어오기 직전까지는 노원구청에서 어르신 복지과장으로 재직했고요. 그 전에는 서울시청에서 건설본부와 시정개발담당관실, 전산전자계산부서 등 다양한 곳에서 일했습니다. 2000년도에 노원구로 자원하여 옮기에 됐습니다. 집사람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였지요. 밤늦게까지 근무가 이어지는 때가 많아서 근무처가 집과 가까운 곳이라면 학업에 열중해야할 아이들에게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서울생활, 중.고 검정고시를 거쳐 입지를 세우다
부산에서 학교에 다니던 어릴 적부터 공부라면 남들에게 뒤지지 않았던 김 의원이었다. 이런 김용우에게 “너라면 혼자 힘으로도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거다”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따라서 검정고시로 방향을 틀게 된다. 김 의원은 고입과 대입검정고시를 거쳐서 방통대에 입학을 했다. 전공은 행정학이었다.
그에게서 풍기는 이미지도 무척 특이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은발과 함께 조화를 이뤄서 도시풍의 세련된 인상을 준다. 오랜 시간 단단하게 체화된 성실한 노력과 실력은 우수한 공무원으로 성장하는 자산이 될 수 있었다. 즉 지식정보와 같은 앞선 학문의 습득에 부지런하게 대응한 결과였고, 독서와 음악 감상 취미는 부드럽고 유연한 인격 형성에 선 기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강직하고도 정직했기에 공직자로서의 자부심이 남달라서 현대판 청백리로 손색이 없는 이미지를 굳힐 수 있었다.
공직자의 자부심은 실력, 청렴, 강직한 원칙에서!
그는 말했다. “제가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식욕구라 할까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데 부지런한 성격이었습니다. 이런 점이 공직생활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동작구청으로 발령이 났을 때였어요. 8주간의 전산교육과정이 있을 때 지체 없이 신청했지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2달 동안 신바람 나게 전산교육을 받았습니다.” 전산교육을 받고나자마자 시(市)에서는 7명의 전산요원을 선발하더라는 것이다. 그길로 시정개발 담당관실에서 근무하는 요원이 되어 사무자동화에 성과를 내는 주역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사무자동화와의 인연은 2009년도 국정에 적용된 ‘민원제도의 혁명-일꾼시스템(구술자 전자민원시스템)을 창안하고 구축하는 성과를 이룬다. 사람들이 주민센터에 와서 전입신고를 할 때 공란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것을 보며 이 시스템을 구상하게 됐다. 민원 담당직원이 자기 모터에서 행안부에 구축된 주민 망을 불러와서 필요한 정보를 채워 넣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구술전자민원양식은 판란드 헬싱키에서 GCD(세계각국의 시장,구청장 모임)에서 ‘콜럼부스의 달걀과 같다.’는 소리를 들으며 그린(Green) 아이템으로 선정됐고, 행안부 민원편의 제공사례에 대한 평가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연천 물난리 때도 큰 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직책과 관련하여 공무원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만한 사항이 더 있다면 아울러서 말씀해주십시오.
“건설 본부 관리과에 있을 때였습니다. 서울시서 보유하고 있던 ‘각종 중장비를 팔고 니스해서 쓰라’는 지시가 내렸는데 팔기는 쉽지만 재구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겠다 싶었지요.” 필요할 때 제때 빌릴 수 있을지,. 급한 사정을 알고 값을 제멋대로 값을 올리지나 않을지. 김 의원은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매각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고 득실을 따진 보고서를 제시하여 중장비 매각에 관한 부당성을 관철시켜냈다.
그해 여름 전국은 온통 물난리로 곤욕을 치렀다. 특히 경기도 연천시(市)는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는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물 폭탄을 맞아 시민들의 살림살이가 대책 없이 유실되는 상황이 분초 단위로 속보를 타고 전해지는 것을 들으면서 서울시에서는 보유하고 있던 중장비를 즉각 지원할 수 있었다.
서울시에서 노원구로 이관해야 하는 땅을 찾아온 일도 있었다. “내 재산이 아니니까.”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손 놓고 눈 감았더라면 영락없이 날아가고 말 땅을 말이다. 당시 시가로 104억 원짜리 땅인데 환수해온 그 부지에는 지금 월계아파트와 롯데캐슬아파트 그리고 월계 2동 어린이집이 들어서 있다. 뿐만이 아니다. 노원구청에서 일자리경제과 팀장으로 있을 때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생활임금도입을 적용하는 일을 했다. 근로자에게 인간다움 삶을 찾아주자는 취지에서 적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로서 관내 26개 기관에서 일하는 406명의 청소업무를 담당하는 분들에게 135만7천원을 이상을 지급하는 정책을 시행하게 했다.
2012년도에는 서울시가 공모 ‘취약계층 근로자를 위한 처우개선 책’을 위한 사업에 응모하여 ‘노동복지센터’를 유치하게 됐다. 노동복지센터는 현재 마들역 지하에 위치해 있는데 아르바이트생, 아파트경비원, 여성근로자 등 취약계층근로를 대상으로 법률교육과 인문학강좌와 부당처우개선에 대한 구제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밖에도 감정가가 10억 원 넘는 재산을 8억에 매각하라는 압력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그때도 김 의원은 누가 봐도 납득할만한 증거를 제시하며 헐값에 매각하라는 요구를 물리쳤다. 업무지식에 밝고 복무관이 투철한 청백리의 힘이 불의(不義) 앞에서 얼마나 큰 발휘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리스타트 김용우, 청백리 행정가에서 비전 제시하는 기초의원으로!
그나저나 공무원 때와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어떤 준비과정을 거쳐서 의원이 됐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에는 집행 부서였다면 지금은 감시자와 견인차 역할로 바뀌었다."며 기초의원이란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뿐 아니라 대안제시를 하는 입장이라고 정의했다.
구정회의록을 보면 창동 차량기지 개발에 관해서 미래산업 지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대학이 7개나 되는 노원구만의 특성을 잘 살려서 만약에 도봉면허시험장과 창동 차량기지가 외곽지대로 순조롭게 이전된다면 서울의 도심지에 남은 마지막 ‘기회의 땅’으로 활용해야 하며 국책사업으로서 광역개발을 하여 문화와 예술까지 유기적으로 결합한 첨단사업 군락지를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안 제시다.
김용우 의원은 여가가 날 때면 탁구를 치면서 이웃과 소통도 하고 건강을 돌본다. 그를 닮아서인지 자녀들도 김 의원이 그랬던 것처럼 독립심 강한 아이로 자라서 훌륭하게 성장했다. 이처럼 김용우 의원이 가정이든 공직이든 남다른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부인의 건강과 아이들의 학업을 위해서 본청에서 노원구로 옮겨온 전력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매사에 합리적이고도 진취적인 면모에서 나온 결단의 결과였다.
김용우 의원에게 보다 큰 기대를 걸어도 좋을 것 같다. 그는 이제 자신의 표만 의식하는 일개 구의원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국익을 위한 발전모델을 고민하며 제시하는 첨단 형 입안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보내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이다.
박정례/기자.르포작가.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