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글전형
분류없음 2016/07/27 01:37
이선옥 작가가 어떤 양반이고 어떤 글들을 썼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심지어 나는 처음에 페이스북 피드에서 이 글의 글쓴이 이름을 봤을 때 공선옥 작가를 떠올렸고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비로소 공선옥 작가가 쓴 글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으니까.
"메갈리안 해고 논란? 이건 여성혐오의 문제가 아닙니다" 라는 제목에 "선택적 정의와 진보의 가치… 극단주의자들이 우리의 신념을 대표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부제를 단 이 글에 대해 하나하나 해부하는 짓은 하지 않으려 한다. 인신공격이나 여타 불필요한 감정소모/ 시간낭비를 동반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 논리적 정합성이나 개요구성, 주어를 적절히 활용하는 상식적인 글쓰기 등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글은 영 아니다. 아니, 내 스타일이 전혀 아니라고 해야겠다. 이선옥 작가는 글을 잘 쓰는 것으로 알려진 것 같은데, 그러니까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계실텐데 아마도 이 글은 급하게 쓰신 모양이거나 전공분야가 아닌 것 같다. 그럴만한 이유, 꼭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련다.
한마디로 말해 이 글은 -슬프게도- 아주 간단히 논파당할 수 있는 글이다.
"당사자인 여성 성우는 입장문을 통해 넥슨사와는 계약금을 받았고 잘 해결되었으며 부당해고가 아니라고 밝혔으나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갑을관계에서 벌어지는 부당해고로 이 사안을 규정하기는 어렵다."
"당사자 역시 부당해고가 아니며 그렇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갑질 때문에 해고당한 약자 프레임에 익숙한 진보진영은 관성을 반복한다."
"해고는 살인이다" 라는 말이 있다. 문법적으로야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읽는 이의 당파성에 따라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는 말이다. 아마도 이선옥 작가는 "해고는 살인이다" 라는 말에 동의하는 당파성을 띨 것 같다. 나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아주 많은 이들이 - 이선옥 작가의 이 문제적 글에서 표현되는 많은 "대중" 이 반대편에 서 있다. 기업하는 사람, 부자들, 1%의 사람들만 "해고는 해고일 뿐이다"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정리해고, 조기퇴직 등을 기업하는 사람들은, "대중" 들은 "구조조정", "경영합리화" 등으로 표현한다. 김자연 성우의 케이스가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말은 그래서 웃긴다. 고약하다. 하지만 - 말인즉슨 부당해고가 아니긴 아니다. 정부와 자본이 정한 룰에 따르면 김자연 성우는 부당해고를 다툴 수 있는 영역에 있지 않다. 특수고용노동자, 자영업자, 일용직노동자 정도 되려나. 그때그때 수요에 따라 일감을 받고 일하고 노임을 받으니 말이다.
자, 정리해고. 희망퇴직... 구조조정이 절실한 회사가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했고 그래서 노동자들을 해고했으며 해고위로금을 지급했다. 노동자들이 원하는대로 퇴직신청을 받아 희망퇴직시켰고 합당한 보상금도 지급하기로 했다.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직의 경우 일할 때마다 주기로 한 돈을 약속대로 다 지급했다. 문제 있나? 필요하면 쓰고 쓴만큼 돈줬는데 거기에 위로금까지 올려줬는데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법대로 다 했는데 왜 떼를 쓰나.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해온 이선옥 작가의 스탠스는 김자연 성우의 계약해지 건에서 대번 휘청한다. 큐 (Cue) 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성적대상화를 반대하는 페미니스트가 성적대상화의 전형으로 욕먹는 게임의 성우로 참여 (...)". 혐의를 억지로 두자면 그렇다는 거다.
천정환 씨가 최근 사태에 대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선옥 작가가 선호하는 "차분하고 냉정한 분석과 합리적" 인 글쓰기를 볼 수 있다. 더구나 불편부당하기까지 하니 적극 추천하고 싶다.
* 이선옥 작가가 본인의 저 글을 통해 상정한 독자 (타겟층) 는 진보정당-노동운동하는 부류, 특히 김자연 성우 계약해지의 부당성을 알린 그룹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일베리안들과 오늘의유머 (오유리안) 들이 더 좋아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메갈은 표현의 막무가내를 없애면 상식 (몰카찍지 마세요, 성폭력하지 마세요, 데이트폭력하지 마세요, 여자를 사람으로 봐주세요) 이 되지만 일베는 그 표현을 걷어내면 오유가 된다" 는 말이 있다. 이선옥 작가의 이 글이 어느 당파성에 복무하게 될는지 답이 너무 뻔해 지켜보는 것조차 재미가 없다.
*독자층을, 타겟을 분명히 상정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면 그 타겟에 충실해 글을 쓰면 되는데 타겟층을 벗어난 사람들에게까지 호소하고 사랑받으려다보니 망한 글이 되어버렸다. 아니면... 정의당 류의 진보정당이 그만큼 널럴하다는 방증인가?
* 유상무 사례, A B 두 사람이 싸우는 사례. 이선옥 작가는 정말 이렇게 생각하는 건가? 흠좀무
* 모르긴 몰라도 이선옥 작가는 성서비스 판매 여성의 노동자성에 대해선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 같다. 구글링해봤는데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라도 알 수 있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