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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 그럴까? 영국 켄트 대학의 사회학 교수 프랭크 퓨레디는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에서 이 시대를 ‘무교양주의’의 시대라 말한다. 무교양주의란 무엇인가? 교양이 부족하고 물질적이고 진부한 것에만 관심을 갖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알고 있는 교양이라는 것이 오늘날에는 없다는 것이다. 대중이 더욱 지적으로 변화되어가고 있다고 믿어지는 오늘날 저자의 말은 다소 의아스럽게 여겨진다. 또한 엘리트주의의 소산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한다. 저자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 테다. 그럼에도 저자는 작정한 듯 쓴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오늘날 대중이 누리고 있는 것이, 그리고 믿고 있는 지적이고 교양이라고 하는 것들이 해수욕장의 모래성처럼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지적하고 있다. 먼저 저자는 ‘지식인의 실종’을 이야기한다. 오늘날에도 엄연히 지식인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지식인의 실종을 언급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저자는 과감하게 뉴스프로그램에 나와서 전문분야를 설명하고, 문화상대주의에 입각해 대중에게 아부하는 이들은 진정한 지식인이 아니라고 피력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식인은 단순한 전문가가 아니라 광범위한 관심 영역을 토대로 당대의 주요한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전망을 제시하는 사람인데 그런 이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지식인이 실종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자는 특히 ‘지식인의 가치 하락’과 ‘문화상대주의’, 그리고 ‘대중의 바보 만들기’등을 그 이유로 진단하고 있다. 먼저 지식인의 가치 하락은 지식인이 엘리트주의자라고 비판받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실 요즘 엘리트라는 단어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쓰이는데 ‘학벌’이라는 단어와 마찬가지로 참뜻은 사회에 꼭 필요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급진좌파들의 비판과 함께 지식인들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된다. 더군다나 ‘네 의견도 옳고, 내 의견도 옳다’는 일종의 상대주의가 광범위하게 퍼지지는 것도 이런 현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상대주의라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토론’과 ‘논쟁’에서 더 좋은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합의점을 찾아야 할 때 상대주의만이 능사가 아닌데 현대로 오면서 상대주의는 그 영역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지식인이 어느 것에 대하여 솔직한 주장을 꺼냈다고 해보자. 그럼 첫 번째로 직면하는 문제는 엘리트적인 생각이라는 비판이다. 이런 경우 대중은 지식인이 무엇을 이야기했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엘리트라고 공격받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 더군다나 상대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지식인의 주장도 맞지만 반대 의견도 맞다는 논리가 나오고 지식인이 그것을 비판한다. 그러면 지식인은 그 태도로 인해 근현대적인 엘리트주의자라고 다시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옳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모습들은 자주 등장했고 결국 이런 문화들은 복합적으로 지식인의 실종을 야기했고 소위 요즘의 지식인들은 전문 분야에서 대중이 알아들기 쉽게 설명해주는 역할에 만족하게 된 것이다. 지식인의 실종과 무교양의 시대가 오게 된 데는 대학의 질적 하락도 한 몫 했다. 저자의 이 주장은 최근에 논쟁을 일으켰던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와 비슷하다. 예전의 대학생과 오늘의 대학생에 대한 의미가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나듯이 요즘은 대학은 더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명목으로 질적 수준을 대폭 낮추었다. 저자는 그것을 강하게 비판하는데 특히 대학이 대학 고유의 특성을 버리고 기업들을 위한 취업양성소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어 오늘날의 문화를 만드는데 일조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대중이 지적인 문화를 누리고 있다고 믿게 하는 것도 실상은 대중을 ‘우민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마치 대중을 어린아이 다루듯 하여 무조건 참가하게 하고 무조건 관심 갖게 하여 자신이 진정으로 참가하고 있다고 믿게 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오히려 저자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지 않은 채, 교육 및 문호활동과 제도에 대중의 광범위한 참여만을 유도하는 것이 진정으로 대중을 위한 것이냐고 반문하며 그것은 ‘사기극’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것은 도서관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다 하여,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고 각종 오락 시설들을 들여놓아 사람들이 다시 찾아왔을 때 그것이 진정으로 도서관의 문화를 누리는 것이냐고 묻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여 책을 보는 이들이 늘었으면 모를까, 오히려 책을 읽는 이들은 줄어들었을 때 그것은 도서관의 본질적인 역할은 명백히 추락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요즘은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의 숫자만을 중요시하여 도서관의 본질적인 역할을 아예 외면하고 있다는 것과 같다. 이러한 저자의 말들은 교육의 기회가 확장되고 문화가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시대에 분명히 역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오늘날이 무교양의 시대라고 한다. 그렇기에 ‘문화전쟁’을 벌이자고 한다. 대중들이 진정으로 ‘황금시대’를 누리기 위해서는 문화전쟁으로 지적이고 문화적인 삶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주장은 과격하다. 오늘날 대중이 믿고 있던 이 세계의 기본적인 틀을 파괴하고 새롭게 건설하자고 하는 그것은 분명 과격한 것이다. 그러나 과격하다하여 피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더 대중의 교양과 문화를 위한 것이라면 더 반겨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이렇게까지 쓴 소리를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누가 있었던가? 그래서 저자의 주장이 반갑다. 그래서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의 물음이 반갑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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