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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티벳 영화제 : 환생을 찾아서

이스라엘 감독이 만든 티베트 승려들의 이야기. 티베트와 티벳 불교에 뻑 가서 만든 영화구나.

 

티벳 불교에 대해 쥐똥만큼도 몰랐는데 조금 알게 됐다. 달라이 라마만 환생하는 게 아니라 높은 스님들도 환생하는구나(물론 누구나 환생할 것이다). 이 스님이 죽자 스님의 환생을 찾아 그의 제자가 여행을 하고, 환생한 스님을 찾아내어 스님이 자기를 길러줬 듯, 자기도 그 스님을 기른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너무너무너무너무 어렵다. 그래서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일단은 감독(등 스탭)이라는 외부자의 시선이 하나 있다. 찍을 때 한 겹, 편집할 때 한 겹 덧씌워진다.1 나는 보통은 편집된 부분을 생각하며 다큐를 본다. 이러면 나라는 외부자의 시선이 또 한 겹 떳씌워져 뭐야 이거... 이러고 있다<

 

서구(식) 감독이 동양을 찍었을 때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너무 쉽고, 너무 그것에 촛점을 맞추는 것도 뭐랄까 촌스럽달까.. 올바른 시야라기보단 다른 해석/감상을 제약하는 것 같다(나에게) 그런데 나는 항상 그런 긴장을 가지고 영화를 본다, 서쪽에서 동쪽을 찍을 때 말이지... 삐딱하게 보는 거다, 일단은. 그만둬 이러지마..ㅜㅜ 

 

그렇다고 자기 얘기/만을 찍어야 한다는 건 결코 아니다. 여튼<


 

 

열흘 전에 여기까지 적고 계속 안 썼네..

 

이거 내용은 말하자면 나는 싫어하는 편인데, 종교적인 내용은 대체로 싫다. 싫다기보다.. 뭐랄까 관심없다; 그래 이거다 관심이 없다. 그래서... 스승의 환생을 찾아내는 그 신비한 과정이 물론 너무나 놀라웠지만 근데 그냥......<

 

너무나 어린 아이가 자신이 전생의 스승임을 자임하는데, 생전의 염주에 집착을 보이고, 생전에 자기가 쓰던 물건을 다 알아맞추고, 자기가 명상하던 곳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고.. 환생의 과정에서 모든 걸 기억하진 못하지만 여러 가지 포인트를 기억한다는 게 신기하다. 

 

또 이걸 보면서, 도저히 연기를 시켰을 수는 없을 것 같고(애기가 너무 어림) 어떤 세뇌의 과정이 직접적이지 않아도 주위 사람들의 바램으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건가.. 헛갈렸다; 이게 진짜라면 너무 신기하고 가짜래도 너무 신기하다. 여튼 진짜가짜같은 건 나같은 천박한; 인간이나 생각하는 거고, 엄마/아빠랑 정말 헤어지는 게 너무 슬펐다. 나같으면 눈물 콧물 다 토하며< 오버해서 슬퍼할텐데, 한 번 뒤돌아 보지 않고 떠나는 부모의 담백한 슬픔이 백배 다가왔다(스님은 절에 살고 부모는 시골집에)

 

끝나고 라오스의 어린 승려들에게 푹 빠진 다다와 환생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환생이란 게 인간의 시간에 매여 있다는 점에서 이상하다고 나는 말했다. 현생의 내가 미래에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니라 과거에도 태어나고 현재와 겹쳐서 어딘가에서 어린이로, 노인으로 살 수도 있고.. 뭐 이래야 초월적으로 딱 환생이다, 싶지 말이다...

 

프리티벳 영화제는 대성황 을 이루었는데 마치 나의 일처럼 기뻤다. ㅋㅋ 내년에도 잘 되길.. 올해는 이거 한 편 봤는데 내년에는 나도 좀더 결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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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론 다큐에 찍힌 사람들도 카메라 앞에 노출된 자신이라는 한 겹이 더 있을테지만 그런 건 불편한 사람을 만나도 일상다반사로 생기는 거에다 밑도 끝도 없어서 보통은 제외함텍스트로 돌아가기

리얼킥 지붕킥

 

 

하이킥의 훈훈한< 결말이 화제가 되는 가운데 당일 뭐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암튼 한밤중에 다운받아 본 본인은 헤어지는 에피소드에서 눈물을 철철 흘리다가 누가 죽을까를 가만 예상해 보았다. 그땐 못 봤지만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유미의 폭사;ㅁ;를 전해듣고 사람 죽이겠구나< 싶었다.

 

피디가 뭘 말하고 싶었든 간에 나는 결말이 참 좋았다. 앞에 빵꾸똥꾸 혜리랑 4살까지 소화 가능한 신신애양의 처절한 이별의 세레나데에 눈물을 철철 흘리고 나서 끝장나는 결말을 보니 약간 충격이 덜 했음.

 

그래도 충격적이었는데, 내가 항상 하던 생각이랑 너무 똑같아서.. 그러니까 누구나 자기 인생의 스토리가 있고, 그 디테일이 있는데, 누구나 어떤 어떤 과정에 있었는데, 근데 어이없이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는다. 인생에 결말을 맞을 만한, 어떤 단락이 지어지는 시기도 아닌데, 희망이 싹트던 사람이든 삶이 막막한 사람이든 죽음을 맞이할 만하지 않은 순간에 자신의 결정/의사와 무관하게 무차별적으로 죽음의 대상이 되고 만다.

 

나는 이 점이 몹시 부조리하면서도 가장 현대 사회스럽지 아니한가... 라며 실은 현대 사회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죽음의 대표적인 방식 아닌가. 항상 교통사고가 놀랍고 끔찍한 것이다. 

 

<즐거운 인생>이란 영화에서 불륜과 자식 문제로 고통받던(?) 중간계급 남주인공은 지지부진하던 인생에 한 단계 결정을 하고 실행하려는 순간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이런 게 참 좋다. 무자비하고, 맥락없는, 부조리한 죽음. 왜 그 때여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는 죽음. 이게 바로 자본주의적 죽음이다!라는 느낌. 그니까 자본주의를 가장 명징하게 드러낸다기보단, 자본주의에서만 이런 식의 죽음이 있다는... 증명할 수도 없는 소릴 하고 자빠졌네 ㅋㅋ

 

이거 쓰다가 내가 즐거운 인생 영화평 썼던 거 봤는데 읽다가 도저히 못 읽겠어서 포기했다...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이런 레포트를 읽어야 했던 강사 불쌍하다 ;ㅁ; 그래도 에이 줬었지 후후후< 그분 덕분에 프랑스 영화에 취미가 생겼었는데, 요 몇 년간은 본 게 없넹...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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