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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관련 여러 뉴스를 보며 눈물을 흘려댔었는데, 수많은 기사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팽목항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장례지도사들에 대한 글이었다. [단독] 정성스레 아이들 씻기는 그들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다시 읽으니까 눈물이 나네 참아야긔;
문화적 차이일 수도 있는데, 팔레스타인 쪽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잔인하게 도륙당한 사진들을, 울부짖으며, 봐달라고 얘기한다. 점령과 학살이 낳은 비극을 이야기하기 위해 죽은 몸들을 봐달라고 얘기한다. 이와 반대로 이스라엘이나 서구 사회에서는 죽은 이들이 생전에 행복했던, 웃고 있는 모습들로 이들을 기억한다. 아무도 잔인하게 살해당한 몸을 봐달라고 하지 않는다. 이런 점을 생각하며 가자에서 죽은 이들을 그들의 삶으로 기억하자는 사이트가 생겼다: humanizepalestine.com 요즘 만난 팔레스타인계 친구도 비슷한 얘길 했었다. 911때 죽은 사람들 죽은 몸을 봤느냐며.
우리도 비슷한 걸 하고 있다. 사실 내가 먼저 생각했는데< 막 이럼 ㅎ 바빠서 못 하고 있다가 선수를 뺏김...< 페북, 트윗 타임라인에서 살해당한 이들의 생전 모습이 가끔 올라오는 걸 보고 나도 맹그러야지 하고 있었다. 아직 내용이 많진 않지만: 가자 지구의 삶을 기억합니다. 원래 우리 운동의 몇 개 합의사항 중에 죽은 몸을 대상화하고, 죽은 몸으로 호소하지 않는다는 게 있다. 조각난 시신을 봐야 동의할 수 있는 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건데... 최근 아랍 커뮤니티에서 내장이 다 나온 사진을 크게 출력해서 집회에 참여한 걸 보고 아 이걸 문화적 차이로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원래는 본인들의 이야기라, 간절하게, 이래도 침묵할 거냐고, 정말 간절하게 보이는 거니까 본인들이 그러는 걸 막을 수 없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번 가자 침공으로 죽은 이들의 이름과 나이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데(계속 업데이트 됨), 신원미상이 굉장히 많다. 조각조각나서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일가족이 몰살당한 일도 굉장히 많다.
우리는 사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몇 명이 죽었다,고 쉽게 말해 왔지만, 이 죽은 이들을 숫자로 기억하지 말자고, 숫자로 얘기했을 때 지워지는 삶. 그 하나 하나의 삶이, 세계가 무너졌다고 그걸 기억하자고 얘기하고 있다. 위에 가자 지구의 삶을 기억한다는 게 그런 취지다. 지금은 죽은 이들의 이름을 새긴, 한 가방에 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캔버스 가방을 만들어서 팔아서 수익금을 가자지구 의료단체에 보내자고 기획하고 있다. 좋은 기획이다..
생각나서 주저리주저리해봤다. EBS 다큐 영화제 대응하고 있는데 많이 함께 해죠< 이거 글 중간에 디게 슬프다.. 이 글과 큰 관계 없어서 그것만 퍼와 봄 ㅇㅇ
팔레스타인에도 삶이 있습니다. 웃고, 외식을 하고, 학점을 고민하고,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그 일상에는 ‘당연함’이 빠져 있습니다. 그저 좋아서,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예술을 즐길 기회 없이, 예술이 온갖 문화제와 치유프로그램, 극복이나 저항의 수단일 수밖에 없던 삶을 산 팔레스타인 젊은 예술가들은 예술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려는 힘겨운 노력을 해야 합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아무리 떠들어봤자 비슷한 사람끼리 노는 거라는 건 이미 몇 년 전부터 얘기해왔지만 실제로 그렇다. 실제로(원문 기사 졸랭 길어서 안 읽었지만-_-). 하지만 소셜 미디어 덕에 이스라엘의 프로파간다에 대응하는 일이 빠르게 이뤄질 수 있긴 하다. 나름 '중립'이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스라엘이 거짓말 하면, 가자지구에서 바로 개수작 부리지 말라는 트윗이 쏟아진다. 할튼 할튼..
그나저나 팔레스타인을 휴머나이즈하자는 사이트에 여성이 너무 없어서... -_- 여성은 특별히 더 알아봐 달라고 팔레스타인 친구에게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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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아 - 할머니. 76세(1938년생)
현재 라말라의 잘라존 난민 캠프 거주 (UN에 난민 등록증 있음).
류마티스 질환이 있어서 한 달에 한 번 예루살렘 병원에 다닌다.
지금은 이스라엘 땅이 된 하이파에 살다가 나크바(=팔레스타인 말로 “대재앙”. 이스라엘 건국 때를 말함) 때 난민 캠프로 이주함.
아이들이 다섯 명(아들 셋, 딸 둘) 있고 아들 하나는 감옥에 있었고(2011년 수감자 교환 때 풀려남), 하나는 1차 인티파다(1987년) 때 죽었음. 감옥에서 나온 자식 이외 나머지 자식들은 다 난민촌 바깥에서 산다.
1948년 나크바 때 열 살. 다행히 부모님과 다른 7형제들 모두 살아남아 라말라까지 피난을 왔지만 전재산을 잃고 난민촌에서 어렵게 자랐다.
스무살이 되면서 하이파에서 함께 피난온 집안의 아들과 난민촌에서 결혼. 남편은 이스라엘에 가서 일하며 자본금을 모아 라말라 시내에 작은 책방을 차림.
1967년 점령 때 29살이었다. 당시 남편은 다른 청년들과 전쟁을 반대하는 정치 활동을 조직하다 이스라엘군에 살해됨.
1987년 1차 인티파다 때 49살. 적극적으로 거리로 뛰어나와 인티파다에 참여했다. 이스라엘군에 대항해 시위를 하고, 군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을 숨겨주고 치료도 해 줬다. 당시 큰 아들도 가게를 닫고(상가철시) 자기 아들(손자)와 거리를 뛰었는데, 큰아들과 손자가 이스라엘군의 총탄에 쓰러졌고, 가장 어린 아들 하나는 감옥에 끌려가 최근까지 감옥에 있다가 2011년 수감자 교환 협정 때 풀려나옴. 이 막내 아들이랑 현재 같이 살고 있다.
인티파다 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평화 협정(오슬로 협정)을 시작했고, 하이파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오히려 좌절된다. 팔레스타인은 자치 정부를 세운다는데, 왠일인지 자유롭게 다니던 곳에 갈 수 없고, 특히 '아부 디스'로 시집 간 딸이랑은 2006년 5월 고립장벽이 세워진 뒤부터 10년 가까이 만나질 못 하고 있다.
딸과 손녀는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허가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노구를 이끌고 혼자 다니고 있는데, 너무 힘들다. 딸과 손녀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때까지 같이 있어주지만 예루살렘까지는 혼자 와야 한다.
아들이 감옥에 있는 동안 수감자 가족들과 함께 단체를 꾸려 활동. 아들은 감옥에서 나왔지만 여전히 집회 등에는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몸이 더 안 좋아져서 그마저도 자주는 못 나가지만.
저 염병할 놈들. 병원 가겠다고 하는데.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병 고치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아니지. 아니야. 나는 고향 땅에 돌아가 볼 거야. 하이파를 밟아볼 거라고. 그러니까 살아야지,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도, 우리 신랑도 밟아보지 못한 땅을 내가 밟아 봐야지. 인샬라.
우리 신랑, 우리 난민촌에서 제일 잘생긴 청년이었어. 그래서 우리집에 청혼하러 왔을 때 얼마나 기뻤다고. 얼마나 잘 생겼는지 몰라.. 가난해도 성실하게 일해서, 루카스 거리에 책 가게도 내고 그랬다고. 그랬는데.. 이스라엘 군인 놈들이 이렇게 쳐들어 와서, 그래서 거리를 나다니고.. 그때 싸운다고.. 이스라엘 군인 놈들이랑 싸우다가 죽었지, 알라 이르하모, 젊은 나이에.. 서른 살도 안 됐었어, 불쌍하지 불쌍해.
불쌍한 걸로 따지면 우리 애들도 불쌍했지 아빠도 없이.. 아니, 이스라엘 놈들이랑 싸우다가 죽어서, 그래도 영웅의 자식들이라고, 없이 자라지는 않았어. 애들이 아빠 없어도 하나같이 착하고 성실했는데. 애들이 다 잘 컸어. 첫째는 죽었지. 그때, 그 인티파다 때 말야. 나도 싸웠었어. 너나 할 것 없이 다같이 싸웠었어. 근데 첫째는 총에 맞아 죽었지, 그때 많이 죽었어.. 손자도 죽고... 알라 이르함홈, 이 아이들이 신의 품속에서 편히 쉬길.
우리 막내아들은 최근에 돌아왔어. 그때 형 죽는 자리에서 끌려가서 감옥에서 이렇게 오래 있었는데 이제 돌아왔어. 지금 나랑 같이 살아. 이제 장가 보내면 내 할 일은 다 했어. 오십은 안 됐는데 나이 많아도 얘가 딱 지 아빠를 택해서 잘 생겼어. 우리 동네에서 영웅이야. 이제 장가 들고 자리잡고 살아야지.
그때 인티파다 끝나고는 이제 하이파로 돌아가는 줄 알았어. 애들한테도 다 얘기했었어, 하이파로 돌아가자고. 텔레비전에서 매일 나왔어, 평화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저기 오슬로인가 하는 데서 아부 암마르가 평화 협정한다고, 그래서 나는 이제 돌아가는 줄 알았어. 그런데 지금도 난민촌에 살고 있어. 신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거다. 알라후 아크바르, 신께서 우리를 하이파로 인도해 주실지어다.
우리 애들이 참 착해. 우리 딸이 나 여기 병원 가라고 항상 버스 정류장에 데려다 주고 마중나오고 그래. 우리 딸이 예루살렘에 들어갈 허가증을 못 받아서 항상 나 혼자 다니는 거야. 우리 애들 안 그래, 정말 착해. 다녀와야지, 다리 나아서 돌아가야지, 고향 땅에 돌아가야지. 우리 애들 우리 증손주들까지 다 데리고 돌아가야지.
이렇게 준비해갖고 알리아 할머니가 되어 연극을 했다.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설명해 봤는데, 그리고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봤는데 새로운 경험이었다. 정보의 양은 적어도, 어떤 식의 다른 전달력이 있구나 하고.. 좀더 구체화된 역사랄까. 그런 걸 전달하는 내가 느꼈다 -ㅁ-;; ㅎㅎ
나란 알리아 할머니 열연중
이건 10월에 있을 진짜 연극 전에 몸풀기? 겸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야기 나누는 자리 겸 마련했었는데 최근 가자지구가... 상황이 이렇게 되기 전에 준비했던 거고, 그리고 실은 7월이 국제사법재판소 고립장벽 불법판결 10주년 되는지라, 고립장벽 규탄으로 준비했던 건데.. 고립장벽 얘기는 별로 못 했다. 연극을 보면 궁금한 게 많을 것 같으니 우리가 강의를 하는 것보다 사람들 질문을 받는 게 좋겠다고 연출 다다녀가 제안했는데 과연 적절한 질문이 많이 쏟아져서 질문답변만으로 할 만한 얘기 다 나와서 좋았는데 개인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역사...를 훑지는 못해서 아쉬웠지만 그렇게 좔좔 말한다고 어차피 기억하긴 힘드니까.. 암튼 해야 할 얘긴 다 하기도 했곰.
이것저것 참 하고 싶은 얘기가 항상 많으니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나<)? 사실이다 배고팜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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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찢긴 삶은 누구라도 돌아보아야 한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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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으로서 어디 후기도 못 남겨 미안합니다; 공연 후 질문 받겠다 했을 때 몇초 정적이 흘러 제가 얼른 손 들었던 건데 완전 기우였어요. 질문들도 모두 좋았고요, 연극의 진지함 덕분에 이스라엘에도 검문 명분이 있는 것 아니냐, 왜 한국에서 연대해 줘야 하느냐하는 질문까지도 솔직하고 진중한 토로로 다가왔습니다. 무엇보다 돌아가며 뭐든지 다~~ 답하는 활동가들의 내공에 감탄했구요...ㅎㅎ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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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훌륭해...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