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의 서정시

브레히트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시대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이야기했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브레히트

 

나도안다, 행복한 자만이

사랑받고 있음을 그의 음성은

듣기 좋고, 그의 얼굴은 잘 생겼다.

 

마당의 구부러진 나무가

토질 나쁜 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은 으례 나무를

못생겼다 욕한다.

 

해협의 산뜻한 보우트와 즐거운 돛단배들이

내게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무엇보다도

어부들의 찢어진 어망이 눈에 띌 뿐이다.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꼬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내게 거의 오만처럼 생각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나의 가슴속에서 다투고 있다.

그러나 바로 두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1939년)

 

 

---------------------------------------------------

해협-스웨덴과 덴마크 사이의 해협

엉터리 화가-히틀러를 지칭  

 

 

나 또한 이 시대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많이 좋아졌겠지만, 국가의 폭력은 훨씬 세련되어가고 있지만,

사람들 밥먹고 살기는 좋아졌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인 것은 확실하다.

 

물과 햇볕을 먹고 벼가 자랄 평택 땅에서

피와 기름을 먹는 무기가 자랄것이고,

인간세상의 온갖 지저분한 것들을 낮은곳으로 모아서 정화하던 새만금 갯벌은

인간들의 더 많은 쓰레기 배출장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른다.

 

서정시란 모름지기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음에서 나올진대,

이 세상 어디를 봐도 아름답고 평화로울 수 없는 이 땅에서

이 세상 어디를 봐도 슬프고 아프고  분노스러운 이 땅에서

서정시를 쓰는 것은 사치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정시를 쓰고, 읽고, 노래하고 싶다.

서정시는 아마도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마음이다.

시대가 그 마음을 억누르게 하더라도

인간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면 그 마음을 기억해낼수 있다면

우리모두는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전혀 서정시가 아니지만

우리네들 살아가는 모습은 마치 김남주의 성난 시와도 닮아 있지만,

김남주의 시가 담고 있는 내면의 서정성처럼 ,

슬프고 아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서정시의 아름다움이 숨어있다.

 

그리고 나는 그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이 시인의 일이고

그 아름다움을 살아가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름다움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탕발림이 아니라

세상의 고통을 없애고 은폐하고 왜곡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농촌의 고된삶을 외면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는 서정시가 아니라

농사꾼들의 가늘게 휜 허리를 보며 그 삶의 아픔을 그저 가만히 어루만지고

함께 울면서 미소짓는 것이다.

 

힘들고 지치고 상처받는 싸움의 와중에서,

다치고 아프고 죽어가는 거대한 폭력과의 싸움의 와중에서,

그래서 나는 서정시를 읽고 쓰고 노래하고 싶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적에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서 나는 나의 운동이 서정시였으면 좋겠다.

지금 눈앞의 적보다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의 모습이 나는 더욱 궁금하고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더욱 재미있고 그 모습을 지금 살아가는 것이 더욱 흥미롭기 때문이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의 서정시는 아프고 슬프고 아름다운 우리의 희망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아마도 이런 시가 바로 내가 쓰고 읽고 노래하고 싶은 서정시가 아닐까 한다.

 

 

 



물 따라 나도 가면서                            -김남주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건듯건듯 동풍이 불어 새봄을 맞이했으니

졸졸졸 시내로 흘러 조약돌을 적시고

겨우내 낀 개구쟁이의 발때를 벗기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오뉴월 뙤약볕에 가뭄의 농부를 만났으니

돌돌돌 도랑으로 흘러 농부의 애간장을 녹이고

타는 들녘 벼포기를 적시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동산에 반달이 떳으니 낼 모레가 추석이라

넘실넘실 개여울로 흘러 달빛을 머금고

물레방아를 돌려 떡방아를 찧으러 가지

 

흘러 흘러서 물은 어디로 가나

물 따라 나도 가면서 물에게 물어본다

봄 따라 여름 가고 가을도 깊었으니

나도 이제 깊은 강 잔잔하게 흘러

어디 따듯한 포구로 겨울잠을 자러 가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