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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어느새 100일이 지났다.

내가 출소하기 하루전 태어난 아기가 백일이라니까...

문득 작년 7월 중순, 출소를 백일 앞뒀을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100일이 정말 길게도 느껴지고 그래도 빨리 지나가버렸고

암튼 세월의 길이에 대한 감각이 살아있었는데

출소 후 100일동안은 아무런 가늠이 안된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출소 후의 생활이 순탄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미 나보다 먼저 감옥생활을 했던 병역거부자들이

출소후에 많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름 많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출소하게 되었고

그리고 100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내가 생각했던거 이상으로 쉽지않은것 같다.

 

어쩌면 그 안에서 느끼는 단절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나에게 많은 관심과 미안한 마음과 그리움 등

나로써는 고마운 감정들을 가지고 있었고 편지와 면회등으로 표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것은 나에 대한 감정 더하기 내 처지에 대한

감정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럴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그래도 당장

아쉬운 마음에 지푸라기도 잡고 싶었었다.

 

역시나 예상했던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진정 어려운것은 그 안에서의 생활보다

출소이후의 생활인것 같다. 어쩔 수 없이 강제로 단절된 시공간에서 느꼈던

단절감보다 출소후에 느끼는 감정들이 더욱 견디기 힘든 감정이다.

나는, 내 몸은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왔는데, 하지만 내 감정은 마음은

한 가운데가 훵하니 비어버린, 1년 2개월을 세월만큼 텅 비어버린 채였다.

사람들은 나를 반겨주고 출소를 축하해줬다.

그리고 나는, 내 마음은, 내 감정은 여전히 단절되었고 텅 비어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모두들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이미 지나가버린 일상들을 되살릴수도

새롭게 만들어진 일상도 없는 처지였다. 그리고 다시 일상을 만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철저히 나 혼자의 몫이었다.

그건 다 각오한 일이었다. 내 발로 걸어들어간 감옥이었다.

이미 앞선 병역거부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구속생활과 출소후의 생활까지도

나름의 각오가 되어있었다. 인간은 결국엔 누구나 혼자이며 삶의 어떤 부분은

반드시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래도 인간세상 살아온 깜냥으로

내가 아무리 준비를 해도, 아무리 예상을 해도 그 이상의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고 그 이상의 감정에 내가 강하게 휩쌓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내 병역거부가 추호도 부끄럽거나 후회스럽지는 않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백번이고 천번이고 또 병역거부 할거지만

감옥생활이 그다지 힘들거나 견디기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1년 2개월동안 감옥에 있어야만 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아무것도 부정하지는 않지만

내가 감옥에 갇혀 있어야만 했던것을, 이 속절없는 단절의 세월을

그 세월을 넘어서는 감정의 절벽들을, 이럴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인정하고 싶지 않다. 피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거나 혹은 맞서 싸우거나 할 수 없다.

 

다시 100일이 지나면 그래서 더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다면

그렇다면 달라질 수 있을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니 돌아올 필요는 없겠지만,

지금처럼 지난 1년2개월동안 처럼 소심하고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감정들을 다 제껴버릴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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