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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와

언제부턴가 나는 투쟁가가 나올때 팔뚝질도 안하고 구호외칠때 소리도 안내는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게 뭐 잘했다는 건 아니고, 언제부턴가 그럴 기운이 안생겨 버렸다. 나의 그런 태도가 약간 분위기 깨는 것 같을 때도 있어서 사실 나 자신도 그런 마음이 불편하긴 하다.

 

얼마 전 레디앙에 한 대학생 독자가 '옳음을 추구한다면 플라톤을 읽어라'라는 글을 기고했던데, 제목부터가 별로 공감이 안되었다. (그래서 안 읽었다.) 무슨 옳음을 추구하길래 플라톤을 읽어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실 플라톤이 추구한 옳음이라는 것은 '탁월함'과 비슷한 의미의 것이 아닌가? 플라톤 뿐만이 아니라 그로 대표되는 서양 고전철학이 사실 '탁월함'의 세계를 추구했던 것이고...

 

모든 민중가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불려지는 노래들 중에 우리들의 '강함'을 이야기하고 '단단한' 연대를 노래하는 것들에서 나는 항상 공허함을 느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는 강하기 때문에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연대한다. 한없이 연약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그래서 요즘 '달로와'의 노래가 좋은가보다. 달로와는 노래패 우리나라 출신이다. 달로와는 우리나라에서의 노래와는 다르게 속삭이고 읊조린다. 그러나 달로와의 노래가 속삭이고 읊조리기 때문에 좋은 것은 아니다. 인간의 불안함과 연약함 그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내면에 대해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려는 태도에 끌리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강함과 투쟁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보다, 외면하기 쉬운 슬픔과 연약함을 직시하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섣부른 해석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뿌리> 달로와


이 푸른 잎을 제 진심이라 생각지 마소서
이 늘어진 가지를 제 기쁨이라 생각지 마소서
그대 눈에 마냥 푸른 빛 비추려고
그대 마음에 마냥 우거진 행복만을 비추려고
이렇게 흙빛으로 천갈래 만갈래 속이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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