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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남자들_정희진/펌글

여성학자 정희진씨의 임상수감독 영화<그때 그 사람들>읽기~

 

잼나는 글이라서 그냥 한번 긁어와 보았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 (참 나... 놀구들 자빠졌네) 은 직업에 맞는 실랄한

감성적 글쓰기였다면 이 글은 여성학자로서의 시각이 잘 보여진다.

법원의 영화삭제명령에 대해 정희진씨만큼 명쾌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찬찬히 다시 한번 읽어보련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조만간에 보긴 해야겠지?


씨네21에서 이미지퍼옴

 

<그때 그 남자들>

정희진/서강대 강사
 


<그 때 그 사람들>을 보고 나서, 왜 박지만씨 진영이 이 영화에 분노하며 재판까지 벌였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박정희 역의 배우 송재호는 독재자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영화에서 박정희는 유머스럽고, 낭만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인자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봐도 “명예를 훼손한” 흔적이 없다. 이 영화가 보수 세력의 화를 부른 실제 이유는, “역사 왜곡”이나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 ‘여자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의 ‘치적’이라는 경제 발전 주장은, “유신이 아니라 노동자, 농민이 이룬 것”이라고 쉽게 반박할 수 있다. 그래서 섹스 문제는 그를 평가하는 키워드가 된다. 사람들은 대통령의 섹스를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정당성과 도덕성의 징표로 이해한다. 물론, ‘영웅은 호색이지만’, 그것은 들키지 않았을 때 얘기다. 남녀 간의 일대일 섹스를 원칙으로 하는 가족주의 규범이 강력한 한국사회에서, 최소 100여명의 여성이 대통령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는 역사는 사람들에게 역겨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악당을 죽인’ 김재규는 의인이나 영웅이 되지 못하고 다시 부하에게 잡혀 신문을 받는다. 자기가 죽인 상관과 똑같은 신세가 되는 것이다. 임상수 감독은 이 영화를 보수와 진보, 독재와 저항, 여야 대립 등 기존 남성 정치학을 뛰어 넘어, 남성 문화를 비판하는 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에서 남성은 말하는 주체가 아니라 평가받는(조롱받는) 인식의 대상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박지만씨의 소송과 이에 동의하는 법원의 일부 장면 삭제 판결은, 보수 세력의 무지와 단견이 영화 예술의 가능성을 어떻게 제한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남을 것 같다. 영화가 비판하는 것은, 박정희 체제만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남성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 때 그 사람들’은 한국사회를 거울 앞에 세우는 매우 성찰적이고 성숙한 영화다. 이 영화를 10·26 사태를 재현한 ‘정치 영화’로만 보면 ‘그 때 그 사람들’은 과거로 사라졌지만, 남성성을 문제시하는 ‘젠더(성별) 영화’로 지평을 확대한다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당대의 텍스트다. 영화의 인물들은 ‘박정희 편’, ‘김재규 편’ 할 것 없이, 모두 쓸데없이 거칠고 요란스런 전투적 태도를 반복한다. 감독도 말했듯이, 이들은 “남자로서 한 몫 보려는 자들”로 “남자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친다. 영화에서 남자들은 ‘완벽한’ 의사소통을 한다. 여기서의 소통은 명령을 하고, 명령을 따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원래 이런 종류의 소통은 군대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유신 파시즘은 사회 전체를 그렇게 만들었다. 영화 속 남자들은 죽음을 담보로 하는 상사의 허무맹랑한 명령을 저항 없이 따른다. 이러한 의사소통 체계에서, 사유하는 인간은 총살감이다. 박정희 정권이 실제로 그렇게 하지 않았던가.

 

한국 현대사에서 차지철이나 장세동 같은 인물은 일상적 파시즘과 구조적 파시즘의 연결 고리다. ‘대통령보다 힘센 경호실장’은 과거 청와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사장보다 무서운 수위’, ‘시어머니보다 더한 시누이’ 때문에 고통받고 분노한다. 말할 것도 없이, 차지철의 권력은 박정희로부터 나온다. 그렇다면, 박정희의 권력은? 그것은 신(God)으로 부터 나온다. 유신은 국민이 아니라 신을 대리했다. 그들은 “나는 하나님이 직접 만드셨고, 국민은 내 갈비뼈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 사회 일각의 ‘박정희 향수’는, “제발, 갈비뼈에 불과한 우리를 화끈하게 지배해 주세요”라는 유아기로의 퇴행에 다름 아니다.

 

여성은 권력을 가진 남성의 동산(動産)에 불과하다는 믿음, 명령과 복종에 의한 ‘완벽한 의사소통’에의 갈망,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는 기득권층... 이거, 유신 시절만의 이야기일까. 이 영화에 대한 보수 세력의 불편한 심기는 자화상을 마주한 우리를 대변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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