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우원식 국회의장, 쿠팡과 미 의원들 겨냥 “한국민에게 예의 갖춰라”

위성락 안보실장, ‘쿠팡문제-안보협상 분리 입장’ 따라 “미국과 논의 중”

  • 기자명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6.04.24 12:27
  •  
  •  수정 2026.04.24 13:16
  •  
  •  댓글 1
 
 
23일 국회 사무처 직원들을 격려하는 우원식 의장. [사진-국회 사무처]
23일 국회 사무처 직원들을 격려하는 우원식 의장. [사진-국회 사무처]

“그건 명백한 내정간섭입니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다른 나라에 대해서 이런저런 의견이 있으면 편지 보내는 건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나라의 법률이나 그 나라의 근본 기관에 대해서 건드리는 건 안 되거든요.”

24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한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일으킨 쿠팡과 김범석을 감싸고 돌면서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미국 공화당 소속 일부 의원들을 향해 이같이 일갈했다. 

우 의장은 “지금 이거는 대규모 정보개인정보 유출도 있고, 그다음에 알고리즘 조작 의혹도 있고요. 이건 우리 명백한 현행법을 위반하는 것”이라며 “그런 걸 한 걸 가지고 의원들이 한국대사한테 무슨 미국 기업들에 대한 편파적인 조치다 얘기하는 거는 우리가 갖고 있는 법률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리”라고 질타했다.

“만약에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서 그런 일을 했으면 미국에서 가만히 있을 것이냐”라고 물었다.

우 의원장은 “쿠팡에도 한 말씀해 드리면 지금 하고 있는 태도는 대한민국에서 와서 기업을 하고 돈을 벌면 대한민국의 법률을 지키고, 그걸 이행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조치에 따라야 될 거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지금 쿠팡이 하고 있는 건 한국에서 돈은 마음대로 벌고 싶고, 한국의 법률과 국민정서는 나는 무시하고 싶다 이런 태도 아닌가”면서 “쿠팡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예의를 갖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미국 하원의원들은 우리나라 법률의 조치에 대해서 내정간섭하지 마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의 베트남 국빈방문을 수행 중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3일 오후 “쿠팡은 기업의 문제”인데 “한미 간의 안보 협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쿠팡의 문제는 법적 절차대로 진행을 하고, 안보 협상은 안보 협상대로 진전을 해야 된다라는 입장으로 미국하고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화당) 의원들이 보낸 서한도 저희가 주목해서 보았다. 그 문제는 또 그 문제대로 의원들과 접촉하여 설명도 하고 이해를 제공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전에도 서한을 보낸 의원들이 있었는데 다 설명했었다”며 “앞으로도 계속 그런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노동자·농민·빈민 단체 등의 상설연대투쟁체인 전국민중행동은 22일 논평을 통해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한 거액의 부당이득 혐의자 방시혁과 국민 개인정보 유출 혐의를 받는 김범석을 지키기 위해 미국 정부가 직접 수사기관과 외교 라인을 압박하고 나선 것은 명백한 국권 침탈이자 외교적 결례”라고 규탄했다.

“최근 방한한 마이클 디솜브리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쿠팡 김범석 의장에 대한 출국금지나 체포가 없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며, 이를 지키지 않을 시 ‘핵추진잠수함 도입’ 등 한미 안보 협의(JFS)를 중단할 수 있다고 협박했다”면서 “범죄자를 지키기 위해 국가 안보 사안을 거래 조건으로 내건 것은 트럼프식 ‘거래 외교’의 추악한 민낯”이라고 질타했다.

전국민중행동은 또한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방시혁 하이브 의장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1년 4개월에 걸친 수사의 정당한 결과”인데 “주한 미국 대사관은 수사기관에 직접 서한을 보내 ‘BTS 월드투어’와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를 구실로 출국금지 해제를 압박했다”며 “이는 방시혁이 그간 미국 이타카 홀딩스 인수 등 대규모 대미 투자를 단행하고, 미국 정가에 공들여온 로비의 결과인가”라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동영 겨냥한 정부관계자의 황당 '언플'... 이 대통령, 어찌할 건가

[정욱식의 진짜안보] 정부 내 '3불' 강해질까 우려... 전화위복 계기로 만들어야

26.04.24 19:51ㅣ최종 업데이트 26.04.24 19:51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20일 오후 외부 일정을 마친 뒤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도착, 미국과 정보공유가 일부 제한된 것과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

​

이재명 정부의 통일외교안보팀에 '불협화음'이 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조선(북한)과의 관계 개선과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통일부의 노선과 한미동맹 및 일본과의 협력, 그리고 비핵화 원칙 유지에 방점을 찍어온 안보실·외교부 사이에 이견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

구체적으로는 한미연합훈련, 대북제재, 비무장지대(DMZ) 법안, 비핵화 문제, 한반도 평화특사 등을 놓고 다른 입장이 드러나곤 했다. 언론에선 이를 '자주파와 동맹파의 갈등'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상기한 사안 하나하나가 예민하고도 복합한 문제들이어서 이견이 존재한다는 걸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

하지만 정동영 장관의 '구성 우라늄 농축 시설' 발언과 이를 빌미로 삼아 미국이 대북 정보 제공 제한 조치를 취했다는 논란은 깊은 우려를 자아낸다. 정부 내에서 이견 존중과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부 관계자"가 언론 플레이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 내에서 '3불(불편·불만·불신)'이 강해지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

두 가지 특이점

​

▲<한겨레>가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보도한 4월 20일 자 기사한겨레 PDF

​

이러한 진단은 익명의 "정부 관계자"가 <동아일보>, <한겨레>, <경향신문> 등을 상대로 흘린 내용을 종합해 보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두 가지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

하나는 미국이 4〜5개의 사안을 가지고 한국에 항의했다고 하는데, 익명의 "정부 관계자"는 유독 정 장관의 발언만 언론을 통해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미국은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이 지난 2월 서해상 미·중 전투기 대치 사건에 관해 한국군 당국에 '사과'했다는 언론 보도, 유엔군사령부가 독점하는 비무장지대 출입 승인권을 통일부가 일부 관리하도록 하는 '디엠제트법', 미·중 전투기 대치 사건과 관련해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주한미군에 항의한 점 등도 문제 삼았다. 그런데도 미국이 마지막에 언급했다는 정 장관의 발언만 "여권 고위 관계자"나 "정부 관계자"의 입을 통해 언론에 집중 부각되고 있다.

​

또 하나는 미국이 정보 제공을 제한했다는 소식이 정부 관계자를 통해 신속하게 공개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미국은 한국에 제공한 정보가 자신의 동의 없이 언론에 유출된 것을 두고 한국 정부에 항의하면서 정보 제공을 줄인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정보 제공 제한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적은 거의 없거나 한참 지난 뒤에나 알려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정부 관계자가 이러한 내용을 언론에 알렸다.

​

정부 관계자의 언론 플레이는 20일에 보도된 <한겨레>에 "정 장관이 밝힌 정보는 아주 민감하고 큰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려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다"라고 말한 대목에서 절정에 달했다. 정 장관이 문제를 일으켰고 자신이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기 때문이다.

​

그런데 "정 장관이 밝힌 정보는 아주 민감하고 큰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10년 전에 미국의 싱크탱크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는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최근 정보에 따르면 초기 원심분리기 연구개발 시설이 영변 핵시설 단지로부터 45km 떨어진 방현 비행장이나 그 인근에 위치했다는 것을 암시한다"라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선 구성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방현 비행장은 구성에 있다. 이러한 내용은 국내외 여러 언론을 통해서도 보도되었다. 정 장관은 이렇게 공개된 내용을 근거로 구성을 언급한 것이다.

​

사정이 이렇다면, 미국과 긴밀하게 소통해 온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항의에 이러한 내용을 제대로 설명했어야 했다. 정 장관은 '미국이 제공한 조선의 핵시설 정보나 첩보를 보고받은 바가 없기에 정보 유출이 아니라 이미 알려진 내용을 언급한 것'이라고 미국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해야 했다. 그런데 정부 관계자는 언론 플레이에 나서고 있다.

​

물론 정 장관의 구성 발언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는 있다. 한미 정부가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적으로 거론해 온 지역은 영변과 강선인데, 정 장관이 현직 고위 관료 신분으로 구성까지 언급하면 한미공조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정부 내 소통을 통해 구성을 거론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해야 했다.

​

정 장관은지난해 7월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구성과 강선 등 네 군데 우라늄 시설에서 고농축 우라늄을 이미 추출해서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나"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의 발언처럼 이게 "아주 민감하고 큰 것"이었다면, 정 장관이 3월 6일에 또다시 언급하기 전에 이를 조율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의 항의를 접하고 화들짝 놀란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전문성과 정부 내 소통 부족을 자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은?

​

▲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3일 하노이 총리실에서 열린 레 민 흥 베트남 총리와의 면담에서 발언하고 있다.청와대 제공

​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이던 20일에 소셜미디어 엑스(X)에 "'(정 장관이) 미국이 알려준 기밀을 누설'했음을 전제한 모든 주장과 행동은 잘못"이라며,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봐야겠다"라고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했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이 어떤 조치가 취해질지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일차적으로는 조선의 핵 관련 공개 발언의 범위와 수위에 대한 정부 내 명확한 가이드라인 수립이 필요해 보인다. 또 정부 내 이견과 갈등을 '외부화'하는 언행을 엄격히 금지하고 정부 관계자들이 충분히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사태로 '3불(불편·불만·불신)'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신뢰 회복·구축을 이룰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도록 이 대통령의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

덧붙이는 글 필자 정욱식은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입니다.

#구성 #정동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주 강진군수 후보 차영수, 재판 청탁 3천만원 수수 의혹

중학교 동창 판사 동원해 항소심 재판장 로비 시도 의혹

2021년 피해자 K씨 "현금 3천만원 건넸다" 증언

​

"비밀계좌 입금하면 판사가 체크카드로 꺼내 쓴다" 설명 들어

​

로비 실패 뒤 자녀 결혼식 축의금으로 3천만원 반환

​

168억 대출 사기 유죄에도 감점 없이 민주당 공천

2026-04-24 07:23:25

 

6·3 지방선거 민주당 강진군수 후보 차영수씨가 2021년 한 항소심 재판 청탁 대가로 3천만원을 받고 현직 판사들을 동원한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을 제기한 피해자 K씨에 따르면 로비 라인에는 차씨의 강진중학교 동창인 사법연수원 26기 판사와 같은 연수원 26기 광주고법 판사가 거론된다. 차씨는 취재진의 확인 요구에 의혹 전반을 부인했다. 다만 차씨가 K씨에게 설명했다는 해당 판사 부인의 직책 등 일부 정보는 사실과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차영수 관련 재판 청탁 로비 흐름도(피해자 K씨 등 관련자 증언과 녹취를 토대로 구성)

​

재판 청탁 의뢰와 3천만원 전달

​

K씨는 아버지의 항소심을 앞두고 지인인 사법 브로커 오모씨를 통해 차씨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K씨는 차씨가 "내가 잘 아는 판사가 있다"며 재판장에 대한 로비 가능성을 호언했다고 증언했다. K씨 진술에 따르면 그는 2021년 강진에 있는 차씨의 단독주택을 찾아가 과자 박스에 담은 현금 3천만원을 직접 건넸다.

​

K씨는 이때 차씨가 박스를 열어보고 "띠지가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돈다발의 띠지가 있으면 자금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며칠 뒤 같은 액수의 돈이 돌아왔는데 신권이 아니었다는 게 K씨 설명이다. "제가 가져간 돈은 은행에서 뽑은 새 돈이었는데 돌아온 돈은 새 돈이 아니었다." K씨는 다시 돈뭉치를 고무줄로 묶어 3천만원을 마련해 이번에는 차씨의 자택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건넸다고 한다.

​

연수원 26기 동창 판사 거론된 로비 라인

​

차씨가 K씨에게 내세웠다는 카드는 크게 두 갈래였다. 한쪽은 차씨 자신의 강진중학교 동창인 이모 전 지원장을 통한 재판장 공략이다. 이 전 지원장은 사법연수원 26기로 수도권 모 법원 지원장을 지낸 뒤 현재 한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로 있다. 문제의 재판장 역시 연수원 26기 동기다. 다른 한쪽은 같은 26기인 광주고법 김모 판사를 통한 별도 라인이라는 게 K씨 주장이다.

​

K씨는 차씨로부터 이 전 지원장 부부가 진도 솔비치에 내려온다는 정보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차씨의 지시에 따라 전복과 과일 등을 사 솔비치 카운터에 맡기며 이 전 지원장 부인 앞으로 메모를 적어뒀다고 밝혔다. K씨는 "이 전 지원장 부인이 보건소 사무관이라고 차씨에게 들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당시 이 전 지원장의 부인은 영등포구 보건소장이었다. 이 전 지원장 부인이 해당 선물을 수령했거나 그 의미를 인지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

주심 판사 라인은 광주 지역 최모 변호사가 담당한 것으로 K씨는 설명했다. 정식 변호사 선임계는 제출하지 않은 이른바 비공식 변호사다. K씨는 최씨에게도 1500만원을 건넸다고 증언했다.

​

"비밀계좌 입금하면 판사가 체크카드로 쓴다"…자금 세탁 설명

​

뉴탐사가 확보한 사법 브로커 오씨와 K씨의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K씨는 차씨로부터 자금 세탁 방식까지 들었다고 증언했다. "차씨가 자기가 쓰는 돈이 아니라고 했다. 판사들끼리만 아는 비밀 계좌가 있고 거기 입금하면 판사가 체크카드로 돈을 빼서 쓴다고 했다."

​

차씨가 돈뭉치 띠지에 민감했던 배경 설명이다. 신권이나 띠지가 남은 돈은 일련번호 추적이 가능해 계좌 입금에 부담이 된다. 다만 이러한 비밀 계좌의 실제 존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차씨가 실제로 그런 계좌를 운용했는지, 또는 K씨에게 설명만 그렇게 한 것인지는 수사 영역이다.

​

로비 실패…재판장 "형이 억울합니까"

​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아버지의 항소심 형량은 1심보다 늘었다. K씨는 재판장이 선고 후 K씨 아버지에게 "형이 억울합니까"라고 되물었다고 증언했다. K씨는 이후 차씨에게 여러 차례 항의했지만 차씨는 연락을 피했다고 한다.

​

K씨에 따르면 2022년 무렵 3천만원이 돌아왔다. 차씨는 K씨에게 돈을 돌려주며 "자녀 결혼식 축의금으로 마련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그 시기에 차씨 자녀의 결혼식이 있었던 사실은 강진 지역에서 확인됐다.

​

K씨는 뉴탐사 인터뷰에서 "저는 이 사건이 묻혔으면 했지만, 이런 사람이 군수가 된다면 나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 같아 응했다"고 말했다.

​

차씨의 전면 부인, 엇갈리는 진술

​

뉴탐사가 현장에서 만난 차씨는 의혹 전반을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차씨는 처음에는 K씨를 모른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목포 커피숍에서 한두 번 봤다"고 말을 바꿨다. 강진 자택에서 돈을 받았다는 K씨 진술에 대해서는 "강진에서 본 적 없다"고 했고, 띠지 요구 사실도 "띠지가 뭔지도 모른다"며 부인했다.

​

동창 이 전 지원장과 관련해선 "명절 때 한두 번 만나는 친구일 뿐"이라고 했다. 뉴탐사가 이 전 지원장에게 직접 통화로 확인한 결과, 이 전 지원장 역시 K씨를 모른다며 해당 사건 관여 가능성을 부인했다. 다만 "차씨는 중학교 친구"이며 "시골 친구들과 수시로 통화한다"고 밝혔다.

​

168억 대출 사기·입시 부정 해명과 판결문의 괴리

​

차씨는 168억원대 은행 대출 사기 사건과 관련해 "그 회사 대표이사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건 고등법원 판결문에는 차씨가 "대표이사로 재직하며 분양 계약 체결을 동원한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대학원 입시 부정에 대해서는 "오픈북 시험이었다"고 해명했지만, 1991년 1월 25일자 경향신문은 해당 사건을 "조 교수가 시험 문제를 유출해 차영수씨에게 9문제를 알려준 부정행위"로 보도했다. 현직 공직 후보가 확정 판결문과 당대 언론 보도에 남아 있는 사실관계를 부인하는 것이어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논란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

감점 없이 통과한 민주당 공천

​

차씨는 168억 대출 사기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경선에서 감점 없이 통과했다. 반면 같은 경선에 나섰던 30대 청년 후보 김보미씨에게는 15%의 감점이 부여됐다. 차씨는 근소한 차이로 경선을 통과했다.

​

뉴탐사가 확인한 사법 브로커 의혹은 민주당 공천 검증 과정에서 다뤄지지 않은 사안이다. 민주당 감찰부단장은 장인재씨다. 사법 개혁을 주요 과제로 내건 민주당이 검증 체계의 구멍을 그대로 둔 채 기초자치단체장 후보를 확정한 셈이 됐다.

​

강진군의 연 예산 규모는 8천억원에서 1조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Copyright ⓒ 시민언론뉴탐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국 진보정당운동과 동병상련인 캐나다의 생태사회주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6/04/24 09:48
  • 수정일
    2026/04/24 09:4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장석준 칼럼] 생태사회주의를 선택한 캐나다 신민주당, '도약'할 수 있을까?

장석준 배곳 산현재 기획위원 | 기사입력 2026.04.24. 08:26:16

​

캐나다는 특히 정치와 관련해 한국 언론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는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현 캐나다 총리(마크 카니)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도 적지 않고, 캐나다 사회 분위기가 대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

역설적이게도, 미국 트럼프 정부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가 이웃나라 캐나다와 멕시코에 말도 안 되는 협박을 계속하는 탓에 두 나라 국민들이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또한 트럼프 정부가 스스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렵사리 구축한 질서를 깨고 있는 상황이어서, '미국이 이를 버린다면 캐나다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재건에 나서야 한다'는 카니 총리의 발언이 세계인의 박수를 받고 있다.

​

그런데 이런 소식을 전하는 한국 언론은 카니 총리가 이끄는 현 자유당(Liberal Party) 정부를 흔히 '진보'라 소개한다. 오랫동안 더불어민주당을 '진보'라 불러온 한국식 관행을 다른 나라들의 보다 보편적인 정치 지형에 별 고민 없이 적용한 결과다. 하지만 이런 관성은 많은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우선 20세기 후반 내내 캐나다 우파를 대표한 정당의 이름부터가 '진보보수당(Progresive Conservative Party)'이었다(현재는 '보수당'으로 개명). 그야말로 21세기 한국인의 정치적 상식을 '조롱'하는 듯한 작명이다.

​

이 정도는 웃고 넘어갈 만한 문제라 하더라도 또 다른,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자유당 왼쪽에 실은 캐나다의 진짜 '진보' 세력들의 지지를 받는 주요 정당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 NDP)'이 그 당이다. 이 당도 이름이 묘하게 이웃나라의 민주당을 연상시키지만, 엄연히 미국 민주당보다는 유럽 사회민주당들에 더 가까운 정당이다. 비록 최근 연방 하원(343석) 의석이 7석으로 쪼그라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캐나다 노총의 지지를 받으며 매니토바 주에서 주정부를 이끄는 저력 있는 정당이다.

​

의석이 급감한 작년 4월 총선 이후 위기에 빠져 있던 신민주당은 3월 29일 위니펙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아비 루이스(1967년생)를 새 대표로 선출했다. 신민주당은 대표 선거에서 즉석결선투표제(Instant-Runoff Voting, 유권자가 각 후보에 대해 선호 순위를 매기고, 이를 바탕으로 결선투표를 따로 치를 필요 없이 과반 득표 당선자를 정하는 투표제도)를 실시한다. 하지만 루이스는 굳이 2차 집계를 할 필요 없이 1차 집계에서 56.02% 득표를 기록하며 나머지 네 명의 후보를 커다란 표차로 따돌렸다.

​

그런데 이러한 압도적 지지만큼이나 많은 이목을 끈 것은 루이스의 정강, 정책이었다. 루이스는 2015년에 발표된 생태사회주의 성향의 정책문서 '도약 선언(Leap Manifesto)'의 공동 제안자 중 한 사람이고, 이번 대표 경선에서도 도약 선언의 내용을 당의 새 노선으로 제시했다. 즉, 루이스가 10년 넘게 외쳐온 생태사회주의 노선이 신민주당 10만 당원(대표 선거 투표율은 70.55%) 중 과반의 지지를 받으며 채택된 것이다.

​

'도약 선언'

​

캐나다의 작가이자 사회운동가 나오미 클라인의 2019년 저작 <미래가 불타고 있다: 기후 재앙 대 그린 뉴딜>(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2021)을 읽은 이라면, 도약 선언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밝히듯이, 클라인은 도약 선언의 공저자까지는 아니어도 이 문서의 탄생에 기여한 산파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신민주당의 새 대표 루이스는 다름 아닌 클라인의 배우자다. 두 사람이 함께 도약 선언을 기획했고, 이 문서가 신민주당의 공식 노선이 되도록 압박하는 캠페인에도 함께 나섰다.

​

도약 선언이 나오게 된 직접적 배경은 2010년대 중반 앨버타 주의 오일샌드 채굴 피해 급증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격화였다. 앨버타 주에서는 이미 1950년대부터 프래킹(수압) 공법을 통해 모래와 뒤섞여 있는 원유를 추출해왔다. 그런데 2010년대부터 미국이 점토층에서 추출한 셰일오일 산유량을 늘리자 캐나다의 오일샌드 산유량도 나란히 증가했다. 고비용으로 천덕꾸러기 취급 당하던 오일샌드 채굴이 화석 연료 자본주의의 장기지속 덕분에 수지맞는 장사로 떠올랐다.

​

프래킹 공법의 남용은 즉각적으로 재난을 초래했다.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났고, 수질 오염도 심해졌다. 지층이 약해져 인공 지진이 빈발했다. 더구나 산유량이 늘어나자 대아시아 수출을 위해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 원유 수송 파이프라인이 새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 파이프라인은 선주민 거주지를 통과했고, 이에 맞서 선주민 공동체의 저항운동이 시작됐다.

​

캐나다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백인 이주민들(영국계든 프랑스계든)이 아메리카 선주민의 삶의 터전을 짓밟으며 건설한 나라다. 20세기에 들어서 뒤늦게나마 이런 식민주의의 역사를 반성하고 선주민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시작됐고, 이는 캐나다 진보-좌파의 핵심 과제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2010년대에 불거진 파이프라인 건설 논란은 이 노력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원점을 맴돌고 있음을 증명했다. 화석 연료 자본주의라는 지상명령 앞에서 선주민 인권은 다시 한 번 짓밟혔다.

​

도약 선언은 선주민 공동체가 시작한 파이프라인 건설 반대운동에 공감한 다양한 인물들, 단체들이 함께 모여 나눈 토론의 결과였다. 루이스와 클라인 부부 그리고 이들의 동지인 언론인 마틴 루카스가 토론 결과를 문서로 정리하여 신민주당을 비롯한 정당들을 압박하자고 처음 제안하기는 했으나, 도약 선언 자체는 선주민운동가, 노동운동가, 기후정의운동가 등의 공동 저작이었다.

​

'지구와 서로에 대한 돌봄에 바탕을 둔 캐나다를 만들자는 요청'이라는 부제를 단 도약 선언은 선주민이 겪는 난개발 문제가 결국 화석 연료 자본주의에 속박돼 있는 모든 캐나다 시민의 절박한 현안임을 확인하며 시작한다. 도약 선언은 난마처럼 얽힌 이 문제가 어중간한 타협책으로는 풀릴 수 없으며, 오직 기후급변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체제로 과감히 나아가고 그 과정에서 사회 체제 전반을 바꿔나가는 '도약'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

'도약'의 구체적인 방향은 최근 생태사회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전환'의 내용과 일치한다. 2050년까지 '100% 청정에너지 경제'로 전환한다는 목표 아래, 화석 연료 인프라, 그러니까 오일샌드 증산이나 파이프라인 증설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대신 지역사회가 소유와 운영의 주체가 되는 재생에너지 중심 체제를 구축하고, 대중교통 체계를 발전시켜 승용차 중심 교통양식을 바꿔야 한다. 기존 탄소집약산업 종사자들이 안정적으로 새 일자리로 이동하도록 국가가 재교육과 일자리 보장, 공공 투자에 나서야 한다.

​

그리고 이런 사업들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법인세와 부유세를 강화하고, 누진적 탄소세를 실시하며, 국방비를 삭감해야 한다. 또한 이에 반발할 기득권 세력에 맞서기 위해 각 지역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타운미팅을 개최해 여론을 모아야 하며, 승자독식선거제도 혁파를 포함한 정치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

도약 선언의 이런 내용은 당연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보수당은 반발했고, 자유당은 무시했으며, 신민주당 안에서는 논쟁이 벌어졌다. 신민주당이 무시하지 못할 진보-좌파의 숱한 저명인사들, 가령 철학자 찰스 테일러, 영화배우 도널드 서덜랜드, 레이첼 맥아담스, 엘리엇 페이지, 음악가 닐 영, 레너드 코헨, 앨라니스 모리셋 등이 선언문의 공동 서명자로 합류했지만, 신민주당의 앨버타 주 당조직은 격렬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캐나다의 텍사스'라 불리는 앨버타 주민들의 오일샌드 개발 찬성 여론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2015~16년에 도약 선언을 신민주당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시키려던 노력은 끝내 실패했다. 그러고 나서 10년만에 루이스는 같은 입장을 내세우는 후보로서 신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섰다. 그 동안 루이스는 보수당과 자유당의 당세가 강력한 지역구('험지')에 연거푸 도전하고 고배를 마시면서(득표율은 20%를 넘었으나 양대 정당 후보들에 이은 3위를 기록) 당내 입지를 다졌다. 이렇게 어느덧 언론인, 사회운동가에서 전업 정치가가 된 루이스는 도약 선언을 그대로 이은 그린뉴딜 계획, 공공서비스 확대, 공공주택 100만 호 공급, 팔레스타인과의 연대, AI 데이터센터 건설 유예, 1% 초부자세 등을 공약하며 대표 선거에 뛰어들었다.

​

사실 루이스는 신민주당 안에서는 '금수저'라 할만하다. 할아버지 데이비드 루이스는 토미 더글러스와 함께 1961년에 신민주당을 창당한 주역 중 한 사람이고

​

1971~75년에는 당 대표를 역임했다. 아버지 스티븐 루이스 또한 신민주당의 주된 기반 중 한 곳인 온타리오 주에서 주당 대표를 맡았던 인물이다. 급진적 이념, 정책에도 불구하고 루이스가 처음부터 유력 후보로 인정받은 데는 이런 가족적 배경이 한몫했다. 그러나 당내 일각의 극심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압승을 거둔 것은 이런 요인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10년 동안 끈질기게 지속된 '도약' 운동의 성과임을 부정할 수 없다.

​

한국 진보정당운동과 동병상련인 신민주당은 과연 '도약'할 수 있을까?

​

신민주당이 1961년에 창당했다고 하지만, 전신인 '협동공화연맹(Co-operative Commonwealth Federation, CCF)'의 창당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32년이다. 미국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민주당 정부가 사회당(SPA)의 정책을 뉴딜로 대폭 수용하고 노동조합들의 지지를 독차지함으로써 독자 좌파정당의 성장이 차단된 바로 그 시점에 캐나다에서는 CCF가 출범하고 원내에 진출함으로써 좌파대중정당이 존립할 여지가 마련됐다. 이웃한 두 나라의 이후 역사와 사회 성격이 갈라지는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

하지만 좌파대중정당이 존속할 최소한의 기반이 마련됐다 뿐이지, 성장하기 좋은 환경까지는 아니었다. 영국 하원처럼 100% 소선거구제를 지금까지 유지하는 캐나다에서는 협동공화연맹-신민주당이 기성 양대 정당, 즉 자유당과 보수당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집권가능정당으로 인정받을 만큼 의석을 불리기 쉽지 않았다. 이 점에서 캐나다의 정치 지형은, 노동당이 일찍부터 발전한 오스트레일리아나 노동당이 자유당의 지위를 대체한 영국, 뉴질랜드보다는 오랫동안 양대 우파정당 사이에 노동당이 끼어 있던 아일랜드에 더 가까웠다.

​

다만, 신민주당은 연방 하원에서는 만년 소수정당이더라도 주정부 수준에서는 빈번히 집권하는 등 풀뿌리 토대가 탄탄했다. 무엇보다 캐나다 노동조합운동의 지지가 큰 힘이 되었고, 여기에 일부 주에서 상당수 농민들의 지지가 더해진 결과였다. 그런데 지금 신민주당에서는 이러한 지역 토대의 일부가 대표 선거에서 확인된 전국적 당심(黨心)과 충돌하고 있다. 한때 신민주당 주정부를 탄생시켰던 앨버타 주, 새스캐처원 주의 당조직이 루이스의 노선을 따르지 못하겠다고 공언한다.

​

이런 점에서 루이스 대표가 이끌 신민주당의 미래는 장밋빛과는 거리가 멀다. 트럼프가 촉발한 카니 돌풍 때문에 평소 총선에서 거두던 의석 수준(20-30석)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7석)을 받고 그래서 원내 공식정당 지위(우리로 치면, 원내교섭단체)를 잃어버린 당을 추스르는 것부터가 엄청난 도전 과제다. 더 현실적으로는, 이 과정에서 쌓인 막대한 부채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게다가 가까운 시일 안에 소선거구제가 개혁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조건에서 일부 지역조직의 반발은 절대 다수 당원의 지지를 받은(다른 대표 후보들을 1순위로 지지한 당원들도 2순위 지지 후보로는 대부분 루이스를 선택했다) 신임 대표에게조차 넘기 힘든 장애물이 될 것이다.

​

진퇴양난이다. 그러나 탈출구는 어쩌면 루이스가 강조해온 '도약'이라는 키워드에 있을지 모른다. 아직 비례대표제를 갖추지 못했다고 하여 정치 개혁부터 성사시킨 뒤에 다음 과제에 나서겠다고 할 수도 없고, 자유당의 꽁무니만 밟다가 선거에서 자유당의 대체재로 선택해달라고 할 수도 없다. 가장 미래적인 과제를 앞장서서 제기함으로써 오래도록 쌓이고 쌓인 숙제들도 동시에 풀어나가는 접근법을 취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대응, 돌봄사회 전환, 디지털 광풍에 대한 개입 등과 복지 확대, 정치 개혁을 마치 동전의 양쪽 면인 것처럼 함께 추진해야 한다. 말하자면 ‘도약’이다.

​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정치 제도나 정치 지형 등에서 한국의 진보정당운동은 캐나다 신민주당과 동병상련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더 아비 루이스의 '새로운' 신민주당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18일 국회에서 열린 4월 임시국회 제6차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관 표결에 앞서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석준 배곳 산현재 기획위원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설] 이재명 대통령을 무시하는 주한미군사령관, 당장 전작권 환수해야

  • 기자명 데스크
  •  
  •  승인 2026.04.24 07:59
  •  
  •  댓글 0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22일(현지시각) 미 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과 관련해 답변하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22일(현지시각) 미 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과 관련해 답변하고 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감히 전작권 환수에 딴지를 걸고 나섰다. 브런슨 사령관은 22일(현지시각) 미 하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정치적 편의주의가 조건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면서 2029년 3월에 가서 전작권 환수 조건이 마련됐는지 따져보겠다는 거다.

지가 뭔데? 우리 군이 전작권을 행사할 능력이 되는지 안 되는지 평가하겠다는 건가. 마치 우리 전작권이 본래 자기 것인 양 시혜를 베푸는 주인행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일 방한한 미 상원 의원단에게 “전작권 환수를 통해 우리 자체적으로 동북아의 안전과 평화를 지켜야겠다”고 밝혔다.

우리 국민도 이 대통령과 뜻이 같다. 지난 20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 10명 중에 7명(69.3%)은 전작권을 조속히 환수해야 한다고 답했다.

주권자 국민과 군 통수권자 대통령이 전작권을 행사하겠다고 했으면 그만이지, 왜 주권국가의 군사작전권을 미군 사령관이 준다만다 떠드는가 말이다.

전작권은 '조건'을 충족해야 돌려받는 선물이 아니다. 본래 주인인 우리 군이 당연히 행사해야 할 천부적 권리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대한민국이 전시 상황에서 제 나라 군대를 스스로 지휘하지 못한다는 것은 국제적 웃음거리이자 주권국가로서의 수치다.

 

지휘권 없는 군대가 무슨 대한민국 국군인가. 최고 명령권자가 미군사령관인 우리 군을 미군이라 불러도 어찌 항변할 수 있겠나.

더구나 미국은 이란을 불법 침략한 전범국이다. 전쟁범죄를 저지른 침략군의 지휘를 계속 받다가는 우리 국군도 언젠가는 침략전쟁에 동원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를 “중국 앞에 떠 있는 항공모함”에 비유한 바 있는 브런슨 사령관은 이번에도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시야를 서쪽으로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주한미군기지를 대중국 전쟁의 전초기지로 사용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최근 군국주의 부활을 노린 일본이 미국의 사주 아래 제1도련선에서 전쟁 불씨를 지피고 있다. 이런 작금의 정세는 전작권 환수를 한시도 늦출 수 없다고 웅변한다. 국민의 생명과 국가 주권은 결코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당장 전작권을 환수하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쌀국수 맛본 이 대통령 “실패 없다더니 사실이더라”···베트남 하노이 밤거리 깜짝 등장

수정 2026.04.24 08:20

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3일(현지시간) 저녁 베트남 하노이 도심 거리 산책 도중 상점에 들어가 베트남 전통 모자인 ‘논라’를 착용해보고 있다. 이 대통령 인스타그램

​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부인 김혜경 여사와 함께 베트남 하노이의 시내에서 식사한 뒤 “베트남에서는 어느 식당에 들어가도 실패하지 않는다던데, 그 말이 사실이더라. 덕분에 맛있는 저녁 식사를 즐기고 간다”고 말했다.

​

이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하노이의 저녁은 참으로 아름다웠다”며 “호안끼엠 호수와 구시가지 골목을 걸으며 베트남 국민 여러분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격식 있는 일정이 아닌 일상의 공간에서 마주할 수 있어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3일(현지시간) 저녁 베트남 하노이 도심의 한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이 대통령 인스타그램

​

이 대통령은 이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도 마음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며 “건네주신 환한 미소와 인사를 오래도록 기억하겠다. 앞으로도 우리 두 나라가 깊은 우정과 신뢰를 쌓아가며 활발히 교류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

이날 이 대통령을 마주친 현지 주민들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거나 “웰컴 투 베트남”이라고 외치며 이 대통령 부부를 맞이했다고 안귀령 청와대 부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이 대통령 부부도 베트남어로 ‘안녕하세요’를 뜻하는 “신짜오”로 화답했다.

베트남을 국빈 방문중인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3일(현지시간) 저녁 베트남 하노이 도심 거리를 산책하고 있다. 이 대통령 인스타그램

​

이 대통령은 거리에서 판매하는 돼지고기 꼬치구이와 사탕수수 음료를 즉석에서 맛을 봤고, 두리안을 구매해 동행한 참모들과 나눠 먹기도 했다고 안 부대변인은 소개했다. 이후 이 대통령 부부는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쌀국수와 볶음밥으로 저녁 식사를 한 뒤 일정을 마무리했다.

​

안 부대변인은 “이번 방문은 격식 있는 공식 일정을 벗어나 베트남 국민의 삶 속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마련한 것”이라며 “양국 국민 간 정서적 유대를 깊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 '오만한 힘 과시' 베트남,이란 전쟁은 이란성 쌍둥이

이길주 뉴욕통신원

kiljyi@gmail.com

다른 기사 보기

​

'적은 악마, 미국은 구원자' 성전으로 미화 똑같아

​

폭격을 역사의 한 수단으로 설정한 두 전쟁

​

"석기시대" 발언은 히틀러의 인종 청소 닮아

​

삶과 죽음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극한 교만

​

'힘의 오만'이 불러온 베트남 패전 교훈 새겨야

도널드 트림프 미국 대통령과 각료들이 지난해 3월 26일(현지시간) 제2기 첫 백악관 각료 회의를 시작하기 전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는 최근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하고 자신을 구원자로 제시하는 이미지를 SNS에 올리기도 했다. 이 전쟁을 성전화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2025.3.26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며칠 후면 두 달이 된다. 지금은 잠정 휴전 합의에 따라 미국, 이스라엘의 폭격과 이란의 드론, 미사일 반격이 공식적으로는 중단된 상태다. 언제 또 군사 행동이 재개될지 모른다. 양측 모두 전쟁으로 지치고 중단의 필요를 느끼고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이 날선 공방을 주고받고 있으며, 휴전 협상 의제인 이란의 핵 정책에 대해서도 진전이 없어 보인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세력 헤즈볼라와의 휴전 합의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

이란 전쟁의 피해와 비용은 엄청나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4월 중순 현재 이란인 약 3500명이 사망했다. 이중 383명의 어린이가 생명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의 공격과 침공을 당한 레바논에서는 약 2500명이 사망했고 12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어린이 희생자 수는 약 2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 피해는 13~15명, 이스라엘은 약 30명의 민간인과 군인이 사망하는 피해를 보았다.

​

전쟁의 경제적 비용은 정확한 계산이 어렵다.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은 현재까지 전쟁을 위해 300억~500억 달러를 군사비용으로 지출한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쟁 비용이 1조 달러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한다.

​

이번 전쟁이 끝난다 해도 세계 경제는 오랫동안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물가 상승은 이미 당면한 문제이고, 앞으로 장기 불황이 덮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경제 성장률을 지난 1월 3.3%에서 4월 중순 3.1%로 하향 조정했다. 만약 이란 사태가 지속된다면 성장률은 2~2.5%로 더 내려앉을 가능성이 있다. 불안한 경제 상황의 피해는 저소득층에 집중된다. 전쟁이 나면 가난한 가정의 자식이 전장에서 싸우고 부모는 뒤에 남아 가계부와 싸운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형국이다.

​

돌아보면 이란 사태가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었다. 이란은 미국에 분명 불편한(uncomfortable) 상대였다. 하지만 고통을 주는(painful) 나라는 아니었다. 이 둘은 다르다. 외교에서 불편한 상황은 두 국가가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고 갈등의 소지가 있지만 서로에게 존재적 위협은 아니다. 소화가 잘 안돼 몸이 불편하다고 할 일을 못하지는 않는다. 고통은 다르다. 통증은 일상의 기능을 저해한다.

​

이란은 미국에 그냥 불편한 상대였다. 핵무기 개발, 석유 수출을 통한 중국과의 밀착, 반이스라엘 무장단체 지원 등은 불안 요소였지만 미국의 헤게모니를 막고 저해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협상과 설득의 공간이 있었다는 뜻이다.

​

줄다리기가 팽팽했지만, 협상으로도 해결할 수 있었던 미국과 이란의 핵을 둘러싼 마찰이 왜 전쟁까지 불러왔나? 갑자기 이란이 미국에 불편함을 넘어 통증을 안기는 존재로 변했다. 따라서 치유책도 압력과 봉쇄에서 폭격으로 바뀌었다. 이 변화의 근저에는 ‘힘의 오만'(Arrogance of Power)이 있다.

​

미국이 베트남전쟁의 수렁으로 깊이 빠져들던 1966년, 아칸소주 출신 제이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외교위원장)이 베트남 전쟁의 원인을 분석하는 책을 발간했다. 책 제목이 바로 ‘힘의 오만’이다.

 

'힘의 오만'의 저자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의 생전 모습 (IMDB.com)

“’힘의 오만’이란 국가들이 다른 국가보다 더 크고, 더 낫고,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심리적 욕구를 말한다. 이러한 욕구에는…무력이 우월성의 궁극적인 증거라는 가정이 내포되어 있다. 즉, 한 국가가 더 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더 나은 국민, 더 나은 제도, 더 나은 원칙, 그리고 일반적으로 더 나은 문명을 갖고 있음을 증명한다는 생각이다.”

​

풀브라이트는 “미국이 전례 없는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과 다른 국가 간 힘의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힘의 오만에 빠져든다고 보았다. 이때 오만한 힘에서 비롯된 군사 행동은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책임과 사명으로 미화된다.

​

트럼프를 지배한 힘의 오만은 단순한 군사력에 있지 않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을 통해 신성함을 보았다. 풀브라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역사에 반복해서 나타난 의식 구조이고 행동 양식이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다량의 네이팜탄(소이탄)을 투하했다. 태워서 없애고 죽이는 네이팜탄 공격은 마을과 사람들을 광범위하고 강한 불길에 휩싸이게 한다. 미국의 한 공군 지휘관은 이런 공격으로 베트남을 석기 시대로 되돌리겠다고 공언했다. (Public Domain)

“우리 (미국) 역사를 통틀어 두 가지 흐름이 불안정한 공존 관계를 이어왔다. 하나는 지배적인 흐름인 ‘민주적 인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비록 그 비중은 작으나 끈질기게 지속되어 온 ‘배타적 청교도주의’이다.” 미국이 “민주적 인본주의”를 견지했을 때는 “상황이 그럭저럭 순조롭게 돌아가거나 당면한 문제가 명확하고, 한정적이며,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일 때”였다. 이 경우 “이성과 절제가 우위를 점하는 경향이 있었다.”

​

하지만 “어떤 사건이나 여론 주도자가 대중을 격앙된 감정 상태로 몰아넣을 때면, 우리의 청교도적 정신이 불쑥 튀어나와 (미국이) 가혹하고 분노에 찬 도덕주의라는 왜곡된 프리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란과 싸우는 미국과 트럼프의 생각과 행동이 바로 이렇다.

​

가혹하고 분노에 찬 ”청교도적 도덕주의"는 마녀사냥 같은 극단적인 내부 통제와 원주민 학살이란 팽창주의로 나타났다. 마녀는 신성한 신앙 공동체를 파괴하는 악이고, 토지를 생산수단, 부의 척도로 간주하지 않는 원주민은 청교도 공동체의 번영과 발전을 저해하는 방해 요소가 되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무력은 성전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1630년대 청교도 정착민들이 지금의 코네티컷주에서 피쿼트 원주민을 상대로 벌인 전쟁을 묘사한 19세기 판화. 청교도들의 압도적인 힘과 승리를 표현하고 있다.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은 이런 역사와 사고가 '힘의 오만'으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Public Domain)

청교도들이 마녀를 사냥하고 원주민과 전쟁하며 그랬듯이 트럼프는 이란 전쟁에서 절대적 선과 압도적 힘의 우위를 믿었다. 그는 미국의 군사행동에 힘입어 이란인들이 압제의 상징으로 채색된 이란의 신정 체계에 반기를 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빗나갔다.

​

또한 이란의 비대칭 군사력을 “활과 창”으로 무장한 원주민 수준으로 깔봤다. 체계적인 분업과도 같았던 이스라엘과 미국의 폭격으로 이란을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란은 부서졌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의 지적대로 진정한 이란의 능력과 위협은 핵탄두가 아니라 지리적 위치(geography)에서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라지지 않는 한 외부 압박과 공격에 대한 이란의 투쟁성과 능력 또한 없어지지 않는다.

 

공격 첫 날인 2월 28일, 폭격을 당한 이란의 도시들이다. 트럼프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폭격으로 이란을 무릎 꿇릴 것을 자신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이란을 "석기 시대로 돌리겠다"고 극언에 가까운 경고를 날렸지만 이란은 아직 전쟁을 포기할 태세가 아니다. (알자지라)

그래서 나온 답이 트럼프의 “석기시대” 발언이다. 그는 이란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들이 마땅히 있어야 할 석기 시대로 되돌려 보낼 것”이라며 문명의 종말을 경고했다. 단순화하면 인류 지도에서 없애주겠다는 뜻이다.

​

한 민족을 완전히 파괴해 문명사와 결별시키겠다고 위협한 인물은 아돌프 히틀러 이후 처음이다. 히틀러 사고 체계의 핵심인 우수 민족(지배자 민족) 독일에 꼭 필요한 “생존 공간(lebensraum)”도 같은 맥락이다.

​

독일이 침략해 차지할 땅을 역사의 실수 때문에 열등 민족이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공간을 비워야 한다. 잘못 형성된 민족 공간을 원점으로 돌리고 그곳에서 게르만 민족의 찬란한 역사를 펼친다는 논리였다. 히틀러는 폴란드를 시작으로 러시아에 이르는 땅을 독일화하기 위해 극도로 파괴적인 전쟁을 벌였다. 인종 청소 전쟁이라고도 한다.

​

트럼프의 석기시대 발언도 이란의 민족성이 사라진 공간에 미국 문명을 옮겨 심겠다는 사고를 반영했다. 그는 대규모 공습을 앞두고 “오늘 밤, 하나의 문명 전체가 소멸할 것이며 다시는 되살아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로써 기존 통치 체제가 무너졌으니 "이전과는 다르고, 더 현명하며, 덜 급진적인 사고를 지닌 이들이 주도권을 쥐게 되었으니, 어쩌면 혁명적일 만큼 놀라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라며 기대감을 높였다. 트럼프도 히틀러처럼 문명의 소멸을 역사의 전환이며 진보로 보았다.

 

트럼프는 이란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날 것을 자신하면서 전쟁 후에 이란은 물론 세계 공동체가 새로운 역사를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아돌프 히틀러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이 우수 민족 독일이 다스리는 새로운 세상을 불러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Publid Domain)

문명의 소멸과 부활은 절대자 창조주의 권능을 떠올리게 하는 언어이다. 히틀러가 이 언어에 능했다. 유대인 차별과 학살 정책에 대해서 “오늘 나는 전능하신 창조주의 뜻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믿는다. 유대인들을 배척함으로써, 나는 주님의 대업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까지 했다. 이 대업을 예수가 시작했으나 끝내지 못했다며, 그러나 “나 아돌프 히틀러가 완성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

1939년 9월 3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틀 후 히틀러는 세계대전의 불가피성을 호소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에도 신이 등장한다. “자신을 돕기로 굳게 다짐한 사람(민족)에게 언제나 자비를 베풀어 오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땅을 우수 민족 독일의 "생활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의 열등 민족을 다스리면 인류 역사가 새롭게 쓰일 것이라는 히틀러의 망상으로 동부 전선에서 독일군은 사람들을 살육하고 집을 불태웠다. (Publid Domain)

트럼프는 이란과의 전쟁 초기부터 신앙을 끌어들였다. 전쟁의 성전화를 위해서였다. 이란 폭격 개시 일주일 뒤인 3월 초 백악관에 모인 종교 지도자들은 트럼프를 둘러싸고 합심해 기도했다.

 

이란에 대한 폭격이 시작된 일주일 뒤 백악관에 모인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를 위해 안수 기도를 하고 있다. 백악관 제공

고통과 파괴,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의 질서를 극복하고 화해와 평화가 이 땅에 이루어지길 간구하는 부활절을 앞두고 트럼프는 또 기독교 지도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이들도 트럼프와 미국, 전쟁을 위해 기도했다. 기도로 힘을 얻었는지 그는 부활절을 맞아 이란에 위협을 날렸다. 곧 “발전소의 날이자 다리의 날 -- 이 모든 ([공격 목표가) 하나로 어우러진 특별한 날”을 맞이할 것이라며 민간의 고통을 극대화할 폭격 대상을 콕 집어 경고했다.

​

최근에는 트럼프의 이란 전쟁 신성화 캠페인에 성직자들을 넘어 예수가 직접 등장했다. 그는 예수와 연계된 두 개의 이미지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트루스소셜 갈무리

예수가 왼팔을 트럼프의 왼쪽 어깨에, 오른손은 오른쪽 가슴에 대고 그를 축복하는 모습이다. 뒷배경에 빛을 발하는 성조기가 있다. 구약 이사야서 41장 10, 11절을 떠올리게 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

다음 이미지는 앞엣것보다 먼저 트루스소셜에 올린 것이다. 한 발짝 더 나갔다. 예수 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수준을 넘어 트럼프는 예수가 되었다. 얼굴만 다를 뿐 예수를 연상케 하는 이미지의 트럼프는 왕권을 상징하는 보주(십자가가 달린 구슬)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을 병자의 이마에 손을 얹은 채 치유의 기도를 하고 있다. 평범한 미국인들을 상징하는 이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다. 뒤에는 성조기, 미국의 상징 독수리, 자유의 여신상과 전투기, 참전 병사들의 모습이 형상화됐다. 그가 구세주로 격상했다. 논란이 일자 두 사진 모두 SNS에서 내려졌다.

 

트럼프는 최근 병자를 치유하는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이미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란과의 전쟁을 성전으로 포장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도널드 트럼프 트루스소셜 갈무리

전쟁을 성전, 또 자신을 구원자로 채색하려는 트럼프는 교황 레오 14세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레오 14세가 힘의 오만과 같은 맥락인 “전능의 망상” 때문에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하자 트럼프는 신앙 지도자로서 교황의 능력을 문제 삼았다. 이란이 핵무기를 가져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교황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트럼프는 “좋은 교황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쏘아붙였다.

베트남 전쟁 때도 미국을 신성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1965년 5월 미 해병대 3500명이 남베트남 다낭에 상륙했다. 베트남이 미국의 전쟁이 되는 순간이었다.

​

한 달 전 린든 존슨 대통령은 워싱턴 D.C. 인근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 홉킨스 대학을 찾아 베트남 전쟁에 대해 연설했다. 연설의 결론 부분에서 존슨은 구약 성서 신명기 30장 19절을 인용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

사백 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지도자 모세는 양자택일을 요구했다. 여호와를 믿고 따라 생명과 복을 얻을 것인가 그의 뜻을 어겨 사망과 저주의 길을 갈 것인가? 하늘과 땅을, 증인을 선 절체절명의 선택이었다. 모세는 물론 이스라엘 민족이 복되게 사는 길을 택하라 했다. 존슨에게 베트남 전쟁은 “파괴할 것인가, 건설할 것인가. 죽일 것인가, 도울 것인가. 미워할 것인가, 이해할 것인가”의 선택일 따름이었다.

​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민족해방전선이 어떤 쪽을 택하든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규모”의 파괴 또는 건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했다. 존슨에게 미국의 선택은 "선한, 생명의 길"이었다. 그렇게 해서 전장에서의 적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적, 그리고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적들을 싸워 물리칠 것이라고 했다.

​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민족해방전선은 존슨이 권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은 베트남을 마치 석기 시대로 돌리려는 듯 맹폭을 가했다. 그는 “평화의 수호자들은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굳건히 견뎌낼 것이며…기필코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성경에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했다. 이렇게 베트남 비극도 미국은 신성한 전쟁으로 포장했다.

 

1975년 4월 베트남 패망 당시 헬리콥터를 바다에 내버리는 미군. 미국은 자유 독립 국가 남베트남을 지킨다는 신성한 전쟁 목표를 내세웠지만 전쟁은 큰 아픔과 치욕을 안겨주었다. (Public Domain)

결과는 참담했다. 연인원 약 300만 명을 베트남에 보냈고 이 중 거의 6만 명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부상자는 30만이다. 요즘 가치로 약 1조 달러를 베트남에 뿌렸다. 1975년 4월 베트남은 패망했다. 전혀 성스럽지 못한 결과였다.

​

그리고 반 세기가 흘렀는데도 미국은 그 교훈으로부터 배우지 못해 이란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주한미군기지 철수는 선택이 아닌 필수!”...미 대사관 앞 촛불문화제

 

김영란 기자 | 기사입력 2026/04/22 [21:50]

  •  
  •  
  •  
  •  
  •  
  •  
  •  
  •  
  •  
 

  © 김영란 기자

 

“이란전쟁을 통해 미국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는 몇 가지가 있다. 미국은 깡패 양아치 국가라는 것, 미군기지가 전쟁의 화근, 타격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 미국의 군사력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는 것이다.” 

 

22일 오후 7시 광화문 미 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파병강요 전쟁화근 주한미군기지 철수 촛불문화제’의 사회자인 김세동 서울촛불행동 공동대표가 이같이 말했다.

 

이날 ‘파병강요 전쟁화근 주한미군기지 철수 긴급행동’(긴급행동)이 개최한 촛불문화제에 약 100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김 공동대표는 “최근 일본 자위대 군함이 대만해협을 통과했다. 미국·필리핀이 주도하는 다국적 연합훈련 ‘발리카탄’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프리덤 플래그라는 한미연합 대규모 공중훈련이 지금도 광주 공군기지에서 진행되고 있다”라며 “미국이 (이란) 다음으로 물색하고 있는 전쟁지가 어디겠는가? 북한, 중국, 러시아가 다 동북아에 있다”라고 말해, 동북아지역의 정세가 심상치 않음을 암시했다.

 

이어 “전시작전권 환수, 주한미군기지 철수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 김세동 공동대표  © 김영란 기자

 

참가자들이 “파병강요, 전쟁화근 주한미군기지 철수하라!”, “전쟁을 부르는 한미연합훈련 전면 중단하라!”라고 힘차게 외쳤다.

 

윤민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은 “이란이 미국의 불법 침공에 맞서 주변 친미국가의 미군기지를 폭격했듯이, 전 세계 곳곳에 자리 잡은 미군기지는 결국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라며 “이번 (미국의) 파병 강요 사태와 이란의 미군기지 폭격을 보며 우리는 미국이 우리에게 전쟁 피바람을 불러올 뿐이지 우리의 안보와 주권을 지켜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이런 미국과 완전히, 반드시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에서 전쟁과 학살을 일으키고 이제는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조차 처리 못 해 쩔쩔매는 미국의 모습을 보니 미 제국주의의 처참한 몰락이 온몸으로 느껴진다”라며 “아름다운 우리 땅 한반도에서 하루빨리 주한미군기지를 뽑아버리고 안전하고, 깨끗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향해 나아가자”라고 호소했다.

 

정성희 자주연합 집행위원장은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구성 핵시설’을 언급한 것에 대해 미국이 대북 정보를 일부 제한하는 행태를 “주권에 대한 공개적인 도전”, “한국의 입과 정책을 통제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이 이란전쟁에서 이기고 있는가? 패배하고 있다. 중동에 있는 미군기지가 박살 나고 있다. 이란의 미사일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중동에 있는 미군기지로 날아갔다. 이제는 더 이상 중동에 (미군이) 주둔하기도 어렵게 됐다”라며 “한반도의 주한미군기지도 다르지 않다. 중국, 러시아, 북한 미사일의 1차 타격 대상이 어디인가. 평택, 오산, 군산 등의 미군기지이다. 주권자의 힘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자”라고 호소했다.

 

  © 김영란 기자

 

김은희 ‘용산 미군기지 온전히 되찾기 주민모임’ 대표는 “용산 미군기지는 아직도 다 반환되지 않았다. 미국은 대중국 압박 전략에 따라 용산 미군기지를 반환하는 대신 평택에 미군기지를 확장했다. 그런데 2008년까지 용산 미군기지를 반환하겠다는 협약은 2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지켜지지 않았으며 이제 겨우 30%만 반환되었다”라며 “주한미군은 평택 미군기지도, 용산 미군기지도 사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미군은 남산에 있는 주한미군 통신기지 캠프 모스를 일부 반환하기로 했다. 그런데 지금 얼마만큼 반환되었는지, 언제 반환이 완료되는지 알 수 없다”라며 “만일 미국이 대중국 전쟁을 일으키면 캠프 모스 같은 미군의 통신기지는 제1의 타격 대상으로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한봄 청년촛불행동 대표는 “이란전쟁 중 처참하게 폭격당한 중동지역의 미군기지 사진들을 봤다. 미군기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곧 폭격의 과녁으로 되는 것”이라며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면 중동의 처참하게 파괴된 미군기지의 모습이 곧 우리 한반도의 내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로 자주국방을 실현해야 한다. 전작권 환수가 되면 한미연합사령관은 이제 더 이상 미군이 아닌 우리 군이 맡게 된다. 또 주한미군의 지휘를 받을 필요가 없어지고 미군 주둔의 명분도 사라진다. 주한미군의 지휘 아래 원치 않는 전쟁에 휘말릴 위험도 끊어낼 수 있는 것”이라며 “전작권 환수하고 한반도와 그 인근의 방위를 한국이 맡으면 미군은 자신들의 본토인 아메리카나 지키러 가면 된다. 그리고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주한미군기지 자체를 철거해 버려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한편 긴급행동에는 국민주권당, 도쿄민주실천연대, 독일함부르크촛불행동, 동행풍물패, 미국 내정간섭 반대 대학생 운동본부, 미주양심수후원회, 민족작가연합, 민중민주당, 사)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 사)평화어머니회, 시민인권위원회, 용산미군기지온전히되찾기주민모임, 자민통위, 재미노동자투쟁연대, 전북민주동우회, 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 촛불행동, 통일중매꾼, 평화이음, 프랑스민족의집, 한강하구평화센터,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한국중립화추진시민연대, 한민족유럽연대 등 24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도 단체들이 더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긴급행동은 29일 오후 7시 같은 장소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한다.

 

  © 김영란 기자

 

▲ 윤민 회원(왼쪽), 정성희 집행위원장.  © 김영란 기자

 

▲ 김은희 대표(왼쪽), 김한봄 대표.  © 김영란 기자

 

▲ 가수 동백 씨가 「소리 질러요」, 「이젠 나가」, 「행복의 나라로」를 불렀다.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 김영란 기자

 

  © 박대윤

 

  © 김영란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속보] 올해 1분기 한국 GDP 전 분기 역성장 벗어나 1.7% 성장

[속보] 올해 1분기 한국 GDP 전 분기 역성장 벗어나 1.7% 성장

허환주 기자 | 기사입력 2026.04.23. 08:07:06

​

올해 1분기 한국의 GDP가 전 분기 역성장에서 벗어나 1.7% 성장했다.

​

2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1.7% 성장했다.

​

지난해 4분기 -0.2%를 기록했던 성장률이 한 분기 만에 플러스로 돌아선 것이다.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3.6%였다.

​

ⓒ연합뉴스

​

허환주 기자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란 "미, 혼자 전쟁 탈출 못해"…대치 장기화 예고

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다른 기사 보기

​

  • 국제

  • 입력 2026.04.22 17:30

  • 수정 2026.04.22 17:44

  • 댓글 2

트럼프 "휴전 무기 연장, 해상봉쇄는 계속"

​

이란 "휴전연장 인정 안해…국익따라 행동"

​

미국 해상 봉쇄, 이란은 호르무즈 봉쇄 지속

​

이란, 미국 기습 공격 위한 시간 벌기용 의심

​

이스라엘 전쟁 지속, 미군만 철수 가능성도

​

이란 대통령, 중세 민족시인 기도문 올려

​

미·이스라엘과의 전쟁 '몽골 침략'에 비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주 휴전' 기한을 목전에 둔 21일(현지시간) 돌연 휴전을 무기한 연장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이란은 일방적 선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이에 따라 이른 시일 안에 양국 간 2차 종전 회담 개최는 어렵고,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교착상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와 함께 이란 선박에 대한 미국의 해상봉쇄에 이란이 다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맞서면서 군사 충돌이 재연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19일 이란 테헤란의 한 광장에서 한 이란 남성이 호르무즈 해협을 상징하며 페르시아어로 '영원히 이란의 손에'라고 적힌 대형 광고판 앞을 지나가며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이고 있다. 2026. 04. 19 [EPA=연합뉴스]

트럼프 "휴전 무기 연장, 해상봉쇄 계속"

이란 "인정 못해…국익 따라 행동할 것"

​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동부시간으로 오후 4시 9분쯤 본인의 트루스소셜에 올린 '대통령 성명"을 통해 "그들(이란)의 안이 제시되고 논의가 이렇든 저렇든 결론이 날 때까지 휴전을 연장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군에 해상봉쇄를 지속하고 그 밖의 모든 면에서 대응할 준비와 역량을 유지하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휴전 무기 연장의 구실로 이란 내부의 강·온 분열과 중재국 파키스탄의 요청을 내세웠지만, 그다지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

4시간 반 뒤 또 글을 올렸다. 트럼프는 이란이 즉각적 해상봉쇄 해제를 원한다는 보고를 받았다면서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이란과 절대 합의를 이룰 수가 없다. 우리가 남은 그들의 나라를 날려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의 지도자를 포함해!"라고 썼다. 이란을 '석기 시대'로 돌려놓겠다고 위협한 대로 이란의 핵심 인프라 초토화 작전에 들어가기는 리스크가 너무 크고, 이란을 압박할 수단도 마땅치 않은 만큼 해상봉쇄 카드는 접지 않겠다는 계산을 했음 직하다.

​

이에 이란 국영방송은 22일 트럼프의 휴전 연장을 인정하지 않고 국익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를 대변하는 타스님 통신은 22일 다양한 내부 소식통들을 인용해 이란은 휴전 연장을 요청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 미 동부시간으로 오후 4시 9분쯤 본인의 트루스소셜에 올린 '대통령 성명"을 통해 "그들(이란)의 안이 제시되고 논의가 이렇든 저렇든 결론이 날 때까지 휴전을 연장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군에 해상봉쇄를 지속하고 그 밖의 모든 면에서 대응할 준비와 역량을 유지하라고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2026. 04. 21 [트럼프 트루스소셜 계정 캡처] 시민언론 민들레

이란, 기습 공격을 위한 시간 벌기용 의심

이스라엘 전쟁 지속, 미군 철수 가능성도

​

그러면서 휴전 무기한 연기 결정의 '함의'를 풀이했다. 첫째는 트럼프가 전쟁 기간에 모든 가능한 시나리오를 실행했지만, 전쟁을 통해 얻을 건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됐고, 이제 전쟁 탈출을 최선으로 여기고 있다고 봤다. 타스님은 "트럼프는 전쟁에서 졌다"고 주장했다.

​

둘째는 겉으론 휴전 연장을 선언했지만, 트럼프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기만책'을 쓰는 만큼, 미국과 이스라엘이 군사 공격을 재개할 수 있고, 현재 이란 당국은 그럴 가능성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이란 협상단장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회의장의 한 참모는 21일 X를 통해 "트럼프의 휴전 연장은 분명 기습 공격을 위한 시간 벌기용 계책"이라면서 미국의 해상봉쇄에 "군사적 대응"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타스님에 따르면, 지난 2주의 휴전 기간 전쟁 재개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전력을 재배치했으며, 다시 군사 공격을 받을 때 미리 정해둔 미국과 이스라엘 목표물을 즉각 타격할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아랍뉴스에 따르면, 마지드 무사비 IRGC 항공우주군 사령관은 "남부의 이웃들이 적이 이란을 공격하는 데 자국의 시설 사용을 허용한다면 중동의 석유 생산은 끝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

셋째는 미국은 전쟁에서 철수하는 대신, 이스라엘이 레바논 휴전을 깨면서 전쟁을 계속할 가능성도 예상했다. 이에 타스님은 "(이란은) 이전에 이미 이스라엘은 계속 싸우게 두고, 미국이 혼자 전쟁에서 탈출할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고 강조했다.

 

21일 이란 테헤란 엥겔라브 광장에서 열린 정부 협상팀 지지 집회 도중 '코람샤르-4(Khorramshahr-4)'로 확인된 미사일이 전시되어 있다. 2026. 04. 21 [UPI=연합뉴스]

이란 "미국, 전쟁서 일방적 도망 못가"

해상봉쇄-호르무즈 봉쇄 대치 장기화?

​

넷째론 이란은 미국의 해상봉쇄가 지속되는 한 호르무즈 봉쇄를 유지하고, 필요하다면 무력으로 해상봉쇄를 부술 가능성도 거론했다. 끝으로 휴전 무기한 연장과 해상봉쇄는 미국이 이란을 전쟁에 계속 묶어 둠으로써 경제적 질식과 정치적 분열을 노리고 있다고 풀이했다. 이에 타스님은 현 상황은 이란이 "호르무즈를 통제"한다는 점에서 작년 6월 '12일 전쟁' 이후의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면서 "미국이 전쟁의 그늘이 계속되길 원한다면, 호르무즈는 완전히 폐쇄된 채로 남을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

이란 외무부는 21일 성명을 통해 미국의 이란 상선 공격을 "미국 테러리스트 군대의 불법적이고 야만적 행위"라면서 강력히 규탄하고 선박과 선원, 승무원과 그 가족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하는 한편,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응을 호소했다. 아라그치 외무장관도 X를 통해 "이란의 항구 봉쇄는 전쟁 행위이고 휴전 위반이다. 상선을 공격하고 선원들을 인질로 삼는 건 훨씬 더 큰 위반이다"라면서 "이란은 (해상봉쇄의) 제약을 무력화하는 방법, 이란의 이익을 지키는 방법, 협박에 저항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했고, 갈리바프 의장은 "그들은 전쟁을 팔아서 뭘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22일, 필리핀 마닐라 소재 미국 대사관으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열린 집회 도중, 시위대들이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풍자 이미지를 들고 있다.. 2026. 04. 22 [EPA=연합뉴스]

트럼프, 48시간 통첩 이후 4차례 유보

텔레그래프 "모든 게 완전히 엉망진창"

​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함께 '2·28 불법 선제공격'을 개시하고 3월 21일 '48시간 안에' 호르무즈를 개방하지 않으면 이란 발전소를 초토화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던졌으나, 이틀 후 이란과 협상 중이라면서 닷새간 유예, 뒤이어 열흘 유예와 2주 휴전, 그리고 이날 휴전 연장까지 포함하면 모두 네 번 '유보'했다. 애초에 전쟁의 명확한 목표와 전략, 상대에 대한 면밀한 전력 분석 없이 이스라엘의 '꼬드김'에 빠져 참전했다가 출구전략을 못 찾고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더구나 미 의회의 승인 없는 전쟁 수행 가능 기간이 4월 말로 끝나는 것도 부담이다.

​

하루가 멀다고 뒤바뀌는 트럼프의 메시지는 상대인 이란과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 내에서조차 극심한 '트럼프 피로'를 촉발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텔레그래프는 이날 트럼프와 가까운 관계자를 인용해 "행정부 내 누구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계획이 무엇인지, 심지어 지금 우리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다"며 "모든 것이 완전히 엉망진창이고, 책임 소재도 완전히 불분명하다"고 보도했다. 뭣보다 트럼프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협상 관련 메시지를 연신 쏟아내면서 최측근 참모들조차 손 쓸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

실제로 이날 트럼프는 휴전 무기한 연장 선언을 하기 직전만 해도 미 CNBC 방송 전화 인터뷰를 통해 휴전 연장에 "그러고 싶지 않다"면서 합의 불발 시 "폭격할 걸로 예상하고, 그 게 더 낫다고 본다...미군은 당장 출격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6일 이란 테헤란에서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파키스탄 군 총사령관 아심 무니르 원수와 만나고 있다. 2026. 04. 16 파키스탄 군 홍보처 제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을 참혹했던 중세 '몽골 침략'에 비유

이란 대통령, 중세 민족시인 기도문 올려

​

한편, '2주 휴전' 기한 만료를 목전에 두고 이처럼 트럼프가 합의 불발 시 '폭격'을 위협한 그 시각에 이란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X에 중세 때 페르시아 민족시인 사디 시라지의 글을 실어 눈길을 끌었다. 21일은 그를 기념하는 '사디의 날'이었다.

​

"파르스 땅은 세월의 풍파에도 슬픔을 알지 못하네,

그대와 같은 신의 그림자(정의로운 통치자)'가 그 머리 위를 지켜주고 있으니.

오 주여, 파르스의 땅을 재앙의 바람으로부터 지켜주소서,

이 땅이 있는 한 바람이 머무는 한 영원토록 그러하소서."

​

이 내용은 참혹한 몽골의 침략과 학살, 폐허 속에서 방랑 끝에 고향 파르스로 돌아온 사디가 몽골군이 바그다드를 함락했던 1258년 완성한 굴리스탄(Gulistan‧장미원)의 서문에 있는 기도문이다. (제미나이 번역) 미국과 전쟁 중인 점을 고려할 때 페제시키안은 이 글을 인용함으로써 지금의 '트럼프 미국'을 한때 이슬람 문명과 페르시아 문명을 붕괴 직전으로 몰아넣은 몽골과 같은 '재앙'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단독]‘나프타 대란’으로 누가 웃나 봤더니…전쟁 직후 미국산 수입액 57배 급증

수정 2026.04.23 06:30

중동 전쟁 장기화로 나프타 등 원료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일 인천 서구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종량제 봉투 제조 공장에서 종량제 봉투가 생산되고 있다. 연합뉴스

​

미국·이란 전쟁으로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인 ‘나프타’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미국산 나프타 수입액이 1년전보다 50배 넘게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

한국무역협회의 22일 수출입통계를 보면 미·이란 전쟁 직후인 올해 3월 아랍에미리트·카타르·쿠웨이트·이라크·바레인·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산유국으로부터의 나프타 수입액은 총 5억2287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9억406만달러)에 비해 42% 감소했다.

​

이들 6개국은 걸프만 안쪽에 위치해 있어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영향을 직격으로 받는다. 특히 한국이 나프타를 가장 많이 들여오는 아랍에미리트에서의 수입액은 지난해 3월 4억457만달러에서 올해 3월 1억7178만달러로 57.5% 감소했다. 이라크(-83%), 쿠웨이트(-48.1%), 사우디아라비아(-38.5%) 등도 두자릿수 이상의 감소폭을 보였다.

​

전체 나프타 수입액 대비 이들 6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월 59.0%에서 올해 3월 39.1%로 20%포인트 가까이 줄었다.

​

그 빈자리를 채운 건 미국 등 비중동산 나프타로,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미국이었다. 미국산 나프타 수입액은 지난해 3월 108만달러에서 올해 3월 6245만달러로 무려 57배 급증했다. 이에 따라 올해 1분기(1월~3월) 전체 나프타 수입액에서 미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8%로, 지난해 1분기의 0.51% 대비 15배 증가했다.

​

미국 정유사들은 셰일 가스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콘덴세이트’에서 나프타를 대량으로 추출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달 나프타 수출량은 1500만 배럴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

석유가 나지 않는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미국 등 비중동산 나프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은 나프타의 45%를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다. 일본 또한 미국으로부터의 나프타 수입을 부쩍 늘려 하루 약 6만1000배럴을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12월 이후 최고치다.

​

미국산 이외에도 그리스로부터의 수입액은 지난해 3월 4446만달러에서 올해 3월 1억3049만달러로 3배 가까이 늘었고 페루산 수입액 역시 790만달러에서 2048만달러로 2.5배 늘었다. 중동 국가이지만 인도양과 접해 있어 호르무즈 해협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오만산 수입액도 28.5% 늘었다.

​

나프타 이외에도 미국에서 들여오는 원유도 늘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3월 미국산 원유 수입은 전년 대비 75.8% 늘어난 13억7804만달러를 기록했다. 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원유 생산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전쟁에도 각종 석유제품 판매로 이익을 얻고 있는 셈이다.

​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중동산 외에 공급망 다변화를 하려는 움직임이 워낙 활발한 상황”이라며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프타 조달이 어려운 상황이라서 장기 계약이 아닌 그때그때 현장에 나와 있는 물건을 당겨 오는 스팟(spot·현물) 거래 중심으로 물량을 확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반도체가 떠받친 한국, 정작 반도체는 '헬륨'에 달렸다

한은 "나프타 한 달 만에 68% 폭등", 4년 만에 최대 폭… KIET 시나리오 '11.8% 생산비 상승' 현실화

자원안보 특별법 본문에 '핵심광물'만 적혀… 반도체 공정 필수 가스는 누락

국책연구기관·국회예산정책처·중앙은행·외국 금융기관까지 4곳이 서로 다른 각도로 같은 경고

2026-04-22 15:17:36
 

삼성전자가 4월 7일 1분기 영업이익 57조원을 발표하며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SK하이닉스는 4월 23일 1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증권가는 32조~40조원 영업이익을 예상한다. 두 회사 1분기 합산만 100조원에 근접한다. 21일 코스피는 2.72% 올라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22일 장중에는 6,400선을 돌파하며 또 신기록을 썼다. 반도체가 중동 전쟁 여파 속에서도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같은 날인 22일 오전, 한국은행은 3월 생산자물가지수를 발표했다. 전월 대비 1.6% 상승. 2022년 4월 이후 4년 만에 가장 큰 폭이다. 그 안에 더 눈에 띄는 수치가 있다. 나프타 가격이 한 달 만에 68.0% 올랐다. 경유는 20.8%, 석탄·석유제품은 31.9%, 화학제품은 6.7% 상승했다. 나프타는 석유화학 밸류체인의 최상류 원료다. 플라스틱·비닐·페트병·전선 피복·비료의 출발점이다. 한국은 나프타 수입의 82.8%를 중동에 의존한다. 호르무즈 해협이 불안해지자 가격이 먼저 움직였다. 생산자물가는 통상 2~3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한 달 만에 68%, 업계에는 이미 경고음

 

이달 초 한국전력이 연 전선 수급 대책회의에서 LS전선과 대한전선은 주요 제품 생산 차질 가능성을 전달했다. 나프타 수급 불안이 실물 공급망으로 이어지는 첫 신호다. 4월 들어 브렌트유는 배럴당 95달러 수준으로 3월 말 112달러 고점 대비 15% 내렸다. 이란 종전 협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3월 통계에 박힌 나프타 68%는 이미 일어난 일이다. 2~3개월 뒤 시민의 지갑으로 온다.

 

산업연구원(KIET)은 3월에 보고서를 두 번 냈다. 사흘 간격이다. 3월 16일 「미국-이란 전쟁의 리스크 확산과 한국에 미치는 영향」 1차 분석에서는 유가 10% 상승 시 제조업 평균 생산비가 0.71% 오른다고 제시했다. 석유제품 산업은 6.30%, 화학제품은 1.59% 올랐다. 3월 19일 「미국-이란 충돌과 호르무즈 리스크」 심화 보고서에서는 한국은행 산업연관표를 기반으로 한 균형가격모형을 써서 3단계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최악의 3단계, 호르무즈 봉쇄가 3개월 이상 이어질 경우 유가는 배럴당 150~180달러, 극단적으로 200달러까지 오른다. 이때 제조업 생산비는 11.8% 상승한다. KIET는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위기는 그동안 반복돼 온 구조적 리스크"라고 적시했다.

 

반도체가 달린 하나의 가스, 카타르 65%

 

관세청과 한국무역협회의 공식 수입통계를 보면 중동 의존도가 눈에 띄는 품목이 네 가지다. 나프타 82.8%, 원유 약 70%, 무수암모니아 약 43%, 그리고 헬륨이다. 헬륨만 구조가 다르다. 중동 전체가 아니라 카타르 한 나라에 65%가 몰려 있다. 나머지는 미국 27%, 러시아 6%, 중국 2%다.

 

헬륨은 반도체 공정의 필수재다. 웨이퍼에 회로를 새길 때 극도의 정밀성이 요구되는데, 온도가 조금만 올라도 회로가 틀어진다. 헬륨이 공정을 냉각한다. 반도체 내부의 미세 누설 검사에도 헬륨이 쓰인다. 분자가 작아 미세한 틈도 빠져나간다. 대체재가 없다.

 

헬륨은 별도 공장에서 뽑는 자원이 아니다. 천연가스를 액체로 만드는 LNG 공정의 부산물로 나온다. 세계 최대 LNG 수출국인 카타르가 세계 최대 헬륨 공급국이 된 이유다. LNG가 멈추면 헬륨도 멈춘다. 구조적으로 묶여 있다.

 

3월 24일 카타르에너지는 LNG 장기공급 불가항력을 공식 선언했다. 로이터가 보도했다. 불가항력은 전쟁 같은 외부 요인으로 계약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공식 방어막이다. 손해배상 책임도 면제된다. 수출 배가 뜨지 않으면 저장고가 찬다. 저장고가 차면 액화 공정을 멈춰야 한다. 그러면 부산물인 헬륨도 연쇄 중단된다. 21일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며칠 내 이란 하르그섬 원유 저장고가 가득 찬다"며 "이란 유정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고 공식 성명을 냈다. '경제적 분노 작전(Operation Economic Fury)'의 일환이다. 다른 나라, 다른 이유, 같은 구조다.

 

2022년 네온가스 대란 때는 중국과 미국으로 다변화해 극복했다. 지금 헬륨에는 갈 곳이 없다. 2021년 미국이 대중국 견제를 이유로 전략자원 헬륨 수출을 축소했다. 러시아는 전쟁국이다. 중국은 소량이다. 결국 카타르다.

 

석유엔 플랜, 가스엔 공개된 플랜이 없다

 

이재명 정부는 석유 분야에 빠르게 움직였다. 3월 13일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3월 17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필요하면 자동차 5부제, 10부제 등 수요 절감 대책을 조기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3월 31일 추경 발표 당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KBS 인터뷰에서 "나프타 플랜 A, B, C 3가지 대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공정 가스에 대해서는 4월 현재까지 공식 대책이나 관련 간담회 기록이 공개되지 않았다. 산업부, 기획예산처, 정책브리핑 자료에도 없다. 김 장관이 석유·나프타에 대해 "플랜 A, B, C"를 언급한 수준의 공개 발언이 헬륨·특수가스 분야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정부가 3월 31일 발표한 추경 26조2000억원 가운데 '산업 피해 최소화와 공급망 안정'은 2조6000억원이다. 정책브리핑 공식 자료를 보면 공급망 안정 항목에 나프타 수급 안정 5000억원, 석유 비축 확대 2000억원이 적혀 있다. 그 뒤로 희토류 재자원화 시설 확충, 요소 수입선 다변화가 이어진다. 품목 이름이 명시된 건 나프타·석유·희토류·요소 네 가지다. 헬륨이나 반도체 공정 가스는 없다.

 

국회에 제출된 세입세출예산명세서(547쪽)를 보면 정부 인포그래픽에 없는 사업이 하나 더 있다. '소부장공급망안정종합지원' 6084억원이다. 산업통상부 성과계획서에 따르면 이 사업은 6개 과제로 구성된다. 수입처 다변화, 공급망 정보 분석, 컨설팅, 고위험 경제안보품목 국내생산 촉진, 중소·중견 투자, 글로벌 매칭이다. '고위험 경제안보품목'의 구체적 품목 리스트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6084억원 중 반도체 공정 가스에 얼마가 배정됐는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법 본문에 가스류는 없다

 

한국에는 2025년 2월 제정된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이 있다. 공급망 위기 시 무엇을 지킬지 정한 법이다. 산업통상부 성과계획서에 법의 적용 대상이 명시돼 있다. "이차전지·반도체·항공 분야 공급망 안정화에 필요한 핵심광물 확보 및 국내외 핵심광물 생산기반 확충 지원. 리튬·니켈·타이타늄·텅스텐 등." 여기서 법이 보호하는 건 '핵심광물'이다. 리튬·니켈·타이타늄·텅스텐 같은 이차전지 관련 광물이다. 헬륨·네온·크립톤은 광물이 아니다. 가스다. 자원안보 특별법 본문의 보호 대상에서 구조적으로 빠져 있다.

 

정부는 소부장 특별법이나 하위 시행령으로 가스류를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자원안보 특별법 본문에 명시되지 않으면 위기 대응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분산된 법망보다 법 본문 명시가 예산 배정을 안정적으로 보장한다. 국가자원안보 특별법은 이차전지 공급망 보호를 중심으로 설계됐고, 가스류는 처음부터 대상에서 제외됐다.

 

국회예산정책처(NABO)의 2026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 분석보고서(741쪽)에도 사각지대가 확인된다. 보고서에서 '이란' '호르무즈' '카타르'는 20회 이상 등장한다. 반면 '헬륨' '네온' '크립톤' '특수가스' '희귀가스'는 0회다. 국회 독립 기관의 공식 분석 보고서에서도 반도체 공정 가스 리스크가 한 줄도 다뤄지지 않았다.

 

4기관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NABO는 이번 추경의 재원 구조에 대해 "반도체 업종의 역사적 호황이라는 특수한 경기 요인에 기인한 법인세로, 일시적·비반복적 성격의 재원"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추경 26조2000억원 중 초과세수는 25조2000억원이고, 그중 법인세 증가분은 14조8000억원으로 전체 재원의 59%를 차지한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3월 31일 "반도체 경기 호황과 증시 호조에 기댄 재원"이라고 밝혔다.

 

2023년에는 세수 결손이 56조4000억원에 달했다. 직전까지 반도체 호황이었다. NABO는 당시 원인으로 "반도체 가격 하락과 수입 원자재 수급 불안"을 지목했다. 그해 지방교부세 불용액은 7조1700억원이었다. 2024년에도 2조500억원이 불용됐다. 중앙 세수가 흔들리자 도로·복지·지역 사업이 지연되거나 취소됐다. 반도체가 흔들리면 지방 사업이 함께 흔들린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4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공급 충격"이라는 표현을 썼다. 같은 날 외국 민간 금융기관 ING는 한국 경제 분석 보고서에서 "현재 정부의 에너지 보조금이 지금처럼 강력하게 유지되기 어렵다. 비용이 크고 효과도 줄어든다. 정부 재정 지원은 장기간 지속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에너지와 IT 제품의 누적된 물가 압력이 몇 달 뒤 광범위한 인플레이션으로 가시화될 것"이라고 썼다. KIET는 3월에 두 번, NABO는 4월 초, 한은과 ING는 4월 10일. 네 곳의 독립 기관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한국 반도체의 역사적 호황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그 반도체 공정이 헬륨 하나에 달려 있고, 그 헬륨의 65%가 카타르에 몰려 있으며, 카타르는 3월 24일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자원안보 특별법 본문에는 가스류가 명시되지 않았고, 추경 세부 예산 중 반도체 공정 가스 배정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2023년 세수 결손 56조원의 기억은 3년을 지나지 않았다.

Copyright ⓒ 시민언론뉴탐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트럼프, 휴전 사실상 무기한 연장…이란 공격 일시 보류

김원철기자

  • 수정 2026-04-22 08:12

“이란 정부 심각하게 분열된 상태

파키스탄, 이란 지도부가 단일한 협상안

마련할 때까지 공격 보류해 달라고 요청

협상 결론 이를 때까지 휴전 연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이보가인(ibogaine) 연구 확대를 장려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을 일시 보류하고 휴전을 사실상 무기한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성명에서 이란 정부가 “심각하게 분열된 상태”라며 이란에 대한 공격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그는 “파키스탄의 아심 무니르 육군 원수와 셰바즈 샤리프 총리로부터, 이란 지도부가 단일한 협상안을 마련할 때까지 공격을 보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따라 미군에 대해 기존 군사 작전 중 공격은 중단하되, 해상 봉쇄는 유지하고 전반적인 대비 태세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이 통일된 제안을 제출하고 협상이 어떤 방식으로든 결론에 이를 때까지 휴전을 연장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선언은 ‘2주 휴전’ 만료 전날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이란과의 2주 휴전이 미 동부시간 기준으로 22일 저녁까지라고 밝힌 바 있다.

​

이번 결정은 휴전 종료 시한을 앞두고 협상 교착이 이어지는 가운데,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한 중재 노력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미국은 봉쇄를 유지하며 군사적 압박을 지속하는 ‘투트랙 전략’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으로 보인다.

​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연장에 감사를 표하며, “협상 타결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소셜미디어 엑스에 올린 글에서 “양국이 휴전을 계속 준수하고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릴 예정인 2차 회담에서 분쟁을 영구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한 포괄적인 ‘평화 협정’을 체결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밝혔다.

​

이번 휴전 연장으로 미·이란 간 협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지만, 이란이 실제로 단일 협상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 미국이 요구하는 조건을 수용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

이란은 트럼프의 휴전 연장을 평가절하했다. 이란 협상 대표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의 고문인 마흐디 모하마디는 소셜미디어에 “트럼프의 휴전 연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패배한 쪽이 조건을 정할 수는 없다”고 적었다. 이란 국영방송도 이날 이란이 미국의 휴전 연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이란의 국익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

워싱턴/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법은 3개월 보장했지만...아이는 하루도 머물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 자리는 있는데 왜 아이들은 시설로 가나

26.04.22 06:50ㅣ최종 업데이트 26.04.22 06:50

▲베이비박스 내부 모습. 김지영

​

2012년 8월 6일 새벽, 입양 절차에 출생 등록을 강제한 개정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다음 날이었다. 베이비박스 문이 열렸다. 강보에 싸인 아이가 있었다. 쪽지에는 법 시행에 따른 출생 등록을 할 수 없었다고 적혀 있었다. 거기 함께 써진 이름은 민수(가명)였다.

​

절차에 따라 경찰과 구청에 동시 신고했다. 구청 보고를 받은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아동일시보호소에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일시보호소에서 3개월 동안 머물 법적 권리가 있었다. 소장 권한으로 한 번 더 연장하면 최장 6개월까지 가능했다.

​

법에 따르면 그 기간 동안 지자체는 보호자를 찾는 15일간의 공고 기간을 거친 후 성본창설을 법원을 통해 완료한다. 동시에 아동복지심의위원회(현 사례결정위원회)를 열어 아동복리에 가장 적합한 보호조치를 결정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과 헤이그협약에 따르면 해당 아동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결론은 입양이나 위탁 등의 가정형 보호다.

​

시설보호는 가장 최후의, 어쩔 수 없는 결론이어야 한다. 심지어는 해외 입양까지 고려한 끝의 보호조치가 시설이다. 3개월이면 이 모든 법적·행정적 절차를 마무리하는 데 충분한 기간이다.

​

하지만 민수가 일시보호소에 머문 기간은 24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민수는 곧바로 장기양육시설로 인계되었다. 해당 시설장은 곧 민수의 법적 후견인이 되었다. 민수에 대한 모든 보호 권한과 권리는 국가에서 민간으로 이첩되었다. 공적 책임은 이로써 간단하게 종결되었다.

​

민수가 시설에서 사는 동안 국가는 그 아이를 다시 찾지 않았다. 아이의 보호조치가 옳았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른 보호조치의 가능성은 없는지 국가는 묻지 않았다. 국가가 한 일은 민수에게 할당된 보조금을 시설장을 통해 입금하는 일이 전부였다.

​

올해 15살 중학생인 민수는 지금도 시설에 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민수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이 나라 아동일시보호소의 실제 작동 방식이었다.

​

제도의 공백이 아이들 삶에 깊은 상흔

​

▲당사자의 알권리를 위해 만든 좋은 법이 현실에서는 공식적으로만 1500여 명의 유기아동을 양산했다.김지영

​

1961년 12월, 아동복리법이 제정됐다. 아동일시보호시설이 법정 시설로 처음 명시된 순간이다. 조사하고 판단하는 동안 보호받을 권리가 보장되는 곳. 설계 자체는 옳았다. 그러나 이후 60년 동안 시설 수는 2개에서 18개로 늘었지만 아직도 미설치 지자체가 남아 있고 설계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

민수가 베이비박스에 놓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2012년 입양특례법은 입양을 위한 출생 등록을 의무화했다. 신원 노출을 꺼리는 생모들에게 출생 등록은 또 다른 벽이었다. 법 시행 전부터 입양 현장에서는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법 동시 입법을 요구했다.

​

당사자의 알권리를 위한 출생 등록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법의 사각지대를 만들게 분명했다. 유기아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과는 2015년 253명, 베이비박스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2024년 7월, 보호출산법이 시행됐다. 그해 유기아동 수는 30명으로 급감했다. 직전년도인 2023년 유기아동 수는 88명이었다. 12년 전 만들어졌어야 할 법이었다. 그 사이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2000명 넘는 아이 중 1500여 명이 민수와 같은 전철을 밟았다. 제도의 공백이 아이들 삶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

아동복지법 시행규칙 제26조 제1항은 명확하다. 아동일시보호시설의 보호기간은 3개월 이내로 한다. 시설장이 특별한 사유를 인정할 경우 시장·군수·구청장의 승인을 받아 3개월 범위에서 1회 연장 가능하다. 최장 6개월. 이것이 법이 유기아동에게 약속한 시간이었다.

​

민수에게도 그 시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었다. 기간 동안 상담·건강검진·심리검사·가정환경 조사가 이루어져야 했다. 지금의 사례결정위원회인 아동복지심의위원회가 이 결과를 바탕으로 민수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보호조치를 결정해야 했다. 아동일시보호시설은 단순한 보호시설이 아니다. 판단의 관문이다. 이 관문이 작동하지 않으면 아이는 판단 없이 시설에 수용된다.

​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은 962명이었다. 감사원이 이 시기를 들여다봤을 때 나온 수치는 단 하나로 귀결된다. 시설보호 96.6%. 가정보호로 이어진 아이는 3.4%에 불과했다. 베이비박스 아이들의 보호기관인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아동일시보호소의 변명은 늘 '전문인력과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

10년 넘게 아이를 양육시설로 밀어내

​

▲정부는 위탁가정 우선보호로 방향을 잡았지만 위탁가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일시보호소의 역할이 아직은 필요한 시점이다.김지영

​

2015년 베이비박스 입소 최고점 당시 정원 100명 대비 현원 79명이었다. 그러나 이 수치에는 함정이 있다. 베이비박스 아동은 예외 없이 0세 신생아다. 전체 정원이 아니라 영유아실 침상과 24시간 전담 보육 인력이 기준이어야 한다.

​

큰 아이들의 방이 비어 있어도 영유아실은 늘 포화였다. 더 결정적인 것은 2021년이다. 학대 피해아동 즉각분리 제도가 도입돼 분리 수요가 법적으로 확대된 바로 그 해, 정원이 100명에서 70명으로 30% 축소됐다. 수요는 늘리고 공급은 줄였다.

​

서울아동복지센터는 아이를 받은 지 24시간도 안 되어 전국 각지의 양육시설로 밀어내는 강제 순환을 10년 넘게 반복했다. 사실상 방치였다. 구조적 원인은 있었다. 정원은 처음부터 부족했고, 시설에서 가정으로 돌아오는 재배치 경로가 법적으로 없었다. 그리고 단기 순환 인력이 아무 의문 없이 아이가 오면 비어 있는 시설에 전화해서 인계하는 전임자 방식을 반복했다.

​

감사원은 2019년 보건복지부에 통보했다. "입양 등 가정보호 우선의 원칙이 지켜지도록 절차와 기준을 마련하라." 베이비박스 최성기는 2013~2015년이었다. 감사는 5년이 지나서야 이뤄진 것이다. 복지부는 이에 대해 '가정보호 우선 원칙을 실질화하기 위한 업무 절차 개선과 기준 마련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했지만 7년 후인 지금까지 현장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뒷북 행정마저 선언에 그칠 뿐이었다.

​

서울의 문제가, 있어도 작동하지 않는 구조라면 지방은 층위가 다르다. 2024년 기준 전국 아동일시보호시설 20개소, 정원 691명이다. 그러나 현원은 248명, 정원 충족률은 35.9%에 불과하다. 17개 광역시도 중 세종 충북 충남 경남 4개 시도에는 전문 시설 자체가 없다.

​

미설치 지역에서 유기아동 또는 학대아동이 발생하면 경로는 단순해진다. 경찰 신고 → 지자체 인계 → 타 지역 시설 이송 또는 즉시 아동양육시설 배치. 판단의 공간이 없으니 판단도 없다. 상담·심리검사·가정환경 조사는 건너뛰어진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느냐가 아이의 첫 행선지를 결정한다.

​

일시보호시설이 감당해야 하는 수요는 두 종류다. 유기 등 비학대 보호대상아동의 일시보호 조치(2023년 308명)와 아동학대 피해아동의 가정 분리 보호다. 2024년 학대 가정 분리는 2292건으로 이 중 즉각 분리만 1575건이었다. 합치면 연간 2600건이 넘는다.

​

▲학대피해아동의 일시보호가 제도적으로 강화되었지만 장시양육시설 중심의 뿌리 깊은 보호관행으로 일시보호소의 역할이 제한적이다.김지영

​

2024년 정원 691명에 현원 248명. 충족률 35.9%다. 2022년 223명이던 정원은 691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실제 입소 아동은 248명에 그친다. 정원의 35.9%만 채워졌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아이들이 일시보호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장기 시설로 이송되거나 입소 직후 즉시 전원 되거나.

​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다. 일시보호소는 판단의 공간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자리가 없다는 변명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2024년 피해 아동 즉각 분리는 1575건으로 2022년(1153건)보다 422건 더 늘었다. 수요는 늘었고 정원도 늘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머물지 않는다.

​

시작부터 국가로부터 배제된 아이들

​

▲아동보호선진국은 일시보호 정책도 위탁가정 제도를 활용한다. 우리나라도 시설 중심에서 가정 중심의 보호제도로 방향을 틀었지만 기본적인 인프라 자체가 부실하다.김지영

​

긴급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어떻게 처음 맞이하느냐. 나라별 답은 극명하게 갈린다. 일본은 한국과 구조가 가장 유사하다. 아동상담소 내 부설 일시보호소(시설형)가 기본이고, 가정위탁 비율은 12%다. 일본의 아동학대 상담 건수는 33년 연속 증가세다. 시설 중심 구조가 문제를 풀지 못한다는 증거가 33년째 쌓이고 있다.

​

영국은 1946년부터 방향을 틀었다. 지금 영국의 긴급보호 1차 경로는 긴급 위탁가정이다. 호주는 전체 보호아동의 93.5%를 가정위탁으로 보호한다. 한국이 1961년 시설 체계를 법제화할 때, 영국은 이미 15년 전에 그 방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은 가정위탁 제도 활성화도 아직은 앞이 안 보이는 암담한 현실이다.

​

지금으로서는 일시보호소가 제 기능을 해야 그다음 단계가 열린다. 아동복지심의위원회는 위탁·입양·원가정 복귀·시설 입소 중 무엇이 이 아이에게 최선인지를 심의하는 기구였다. 위원회가 심의하려면 자료가 있어야 한다. 상담 기록, 심리검사 결과, 가정환경 조사 보고서. 이것은 일시보호소에서 체류 기간 동안 만들어진다. 아이가 하루 만에 나가면 자료도 없다. 심의위원회는 빈 서류를 앞에 두고 앉거나 아이가 지나간 자리에 도장만 찍었다.

​

일시보호소가 제 기능만 했더라도 달랐을 수 있었다. 3개월이라는 법적 시간 안에 상담이 이루어지고 심리검사가 진행됐다면. 아동복지심의위원회가 이 아이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보호조치를 심의할 수 있었다면. 민수는 충분한 기간 보호받으면서 그 결정을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는 민수를 시설로 보내고 방치했다. 시설보다 나은 보호 환경에 대한 고려는 아예 없었다.

​

민수 같은 아이들의 운명이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2012년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2024년 보호출산법 시행 이전까지, 그 12년 사이가 가장 불운한 시기였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2000명 넘는 아이들이 법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대부분은 시설로 떠넘겨졌다.

​

일시보호소가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결과였다.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아동일시보호소의 10년의 태만과 무능은 그곳을 거쳐 간 아이들의 삶으로 직결되었다. 자그마치 백 년을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인생이 시작부터 국가로부터 배제되었다.

​

그리고 지금, 일시보호소는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보호출산법 시행 이후 급감한 유기아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대·방임·가정위기로 긴급 보호가 필요한 모든 아동에게 이 구조는 수십 년째 같은 방식으로 실패하고 있다. 아동복지법 시행규칙 제26조 제1항의 3개월은 아이들의 권리였다. 그걸 단 하루 만에 박탈당했던 1500여 아이들의 삶은 지금 시설 안에 있다.

​

덧붙이는 글 [주요 출처]

아동복지법 시행규칙 제26조 제1항(보건복지부령)

보건복지부, '2024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 2025.8

보건복지부, '2024년 보호대상아동 현황보고'(2024.12.31. 기준), 2025

보건복지부, '2023년 보호대상아동 현황보고', 2024

보건복지부, '2023년 아동복지시설 현황'(2022.12.31. 기준)

감사원 2019년 감사결과(OhmyNews·한국일보 보도)

서울특별시아동복지센터 정원·현원(2014~2023) - 보건복지부·서울시 통계연보 기반

국가기록원, 아동복지 분야 주제검색 - 아동복리법(1961)·아동복지법 개정 경과

Borgen Project, 5 Facts About Japan's Foster Care System, 2022

Martin James Foundation, Exploring Foster Care: A Global Perspective, 2023

ISP Fostering(영국), Emergency Foster Care 운영 현황

UN General Assembly, Guidelines for the Alternative Care of Children (A/RES/64/142), 2009

#아동일시보호소 #서울시아동복지센터 #보호출산법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속보]경찰, CU 화물연대 사망 사고 탑차 운전자 구속영장 신청···‘살인’ 혐의

수정 2026.04.22 08:42

진주물류센터 앞 집회 현장서 조합원 3명 들이받아

경찰, ‘미필적 고의’ 판단···운전자 “고의 없었다”

‘화물연대 사망 조합원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촉구 결의대회’가 열린 지난 2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정촌면 BGF로지스 진주센터 주변에 전날 발생한 차 사고의 화물차가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집회에서 조합원들을 차로 쳐 숨지게 한 혐의(살인 등)로 40대 비조합원 남성 A씨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했다고 22일 밝혔다.

​

A씨는 지난 20일 오전 10시 32분쯤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 CU진주물류센터 앞 집회 현장 인근에서 2.5t 탑차를 몰고 화물연대 조합원 3명을 들이받은 혐의를 받는다.

​

이 사고로 50대 조합원 1명이 심정지 상태에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고, 또 다른 조합원 2명도 각각 중상과 경상을 입었다.

​

수사전담팀을 구성한 경찰은 A씨가 트럭을 운전 중 이를 막는 피해자들을 충격하고 정차없이 계속 진행해 사망이나 부상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

경찰은 사고 당시 A씨를 특수상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으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단해 살인 혐의로 변경해 적용했다.

​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현장이 혼란스러워 빨리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차를 몰았을 뿐, 고의로 다치게 할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

경찰은 사고 직구 A씨를 특수상해로 긴급체포한 뒤 관련자 조사, 영상 또는 전자정보 분석 등의 집중수사를 벌여 혐의를 입증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전국사회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