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대주주가 과반을 쥔 보통결의 안건에선 기관들이 힘을 모아봐야 소용없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무엇보다 법이 바뀌었다. 올봄 '상법 우회' 안건들이 노린 곳이 바로 보통결의 영역이었다. 집중투표제와 분리선출 감사위원은 이사 선임이라는 보통결의 안에 대주주 혼자 정할 수 없는 자리를 만든 제도다. 기업들은 정관을 바꿔 그 자리를 줄이려 했다.
줄일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 개정 전까지 집중투표제는 정관 한 줄로 배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는 법적 의무다. 기업들이 이사 정원을 줄이는 우회로를 택한 것도 집중투표제를 아예 막을 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리는 기관의 표가 힘을 쓸 수 있는 곳이다. 올봄 정관 변경 표결에서 갈렸던 기관들의 선택은 집중투표제가 본격 적용되는 내년 정기 주총의 이사 선임 표결에서 다시 시험대에 오른다.
제도도 협력을 늘리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10년 만에 개정된 스튜어드십 코드는 여러 기관이 함께 기업과 대화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공동관여' 원칙을 처음 넣었다.
국민연금도 위탁운용사 평가 방식을 바꾼다. 국민연금은 기금 일부를 직접 굴리고 나머지는 외부 운용사에 맡긴다. 그동안은 책임투자 관련 보고서만 내면 100점 만점에 가점 2점을 줬다. 이제는 이 가점을 없애고 운용사가 실제로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했는지 따져 본배점에 반영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올해 10~11월 국내 주식 위탁운용사 27곳을 직접 점검하고, 2027년 1월부터 평가에 적용할 계획이다.
5% 룰과 소통, 남은 숙제
하지만 국민연금이 다른 기관과 공동관여에 나서려 해도 자본시장법의 '5% 룰(대량보유 보고 의무)'이 걸림돌이다. 상장사 지분을 5% 이상 가지면 5일 안에 보유 목적 등을 금융당국과 거래소에 보고해야 한다. 여러 기관이 뜻을 모았다가 '공동보유자'로 묶이면 지분을 합쳐 보고해야 한다. 어기면 의결권이 제한되고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업계에선 "다른 기관에 의견을 물어보러 가는 것 자체가 대량보유 규제에 걸릴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회에서 개선 논의가 시작됐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기관투자자가 특정 안건을 두고 일시적으로 의견을 나누거나 협의하는 경우 공동보유로 보지 않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국민연금의 소통 방식도 숙제다. <오마이뉴스>가 연 자산운용업계 좌담회에서 한 참석자는 "국민연금이 시장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려면 명확한 판단 기준부터 제시해야 한다"며 "지금은 반대 사유도 모호하고 찬성 사유는 아예 밝히지 않아 국민연금을 따라가려 해도 어렵다"고 했다.
김윤 의원은 "반대 안건 대부분이 가결되는 현실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주주가치 보호를 위해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사유를 더 자세히 공시할 필요가 있다"며 "공동관여 활성화를 위한 5% 룰 개선을 포함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