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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행위 ‘부대 해체’보다 정치군인을 처벌하라

 

 

정치군인이 장악하는 한 우리의 젊은이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고통
 
임병도 | 2014-08-21 08:57:3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윤모 일병 가혹 행위 사망 사건 등으로 불거진 군대 내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해 육군참모총장이 '즉시 부대 해체'라는 초강수를 두겠다고 합니다.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은 9사단에서 가진 일선 지휘관들과의 병영문화 혁신 토론회에서 "이 시간 이후 반인권적이고 엽기적인 행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부대와 과거 사례라도 이를 은폐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 부대는 발견 즉시 소속부대 전부대원을 타 부대로 전출시키고 부대를 해체하는 특단의 조치를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단순한 경고로 보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조치입니다. 왜냐하면 전쟁 중에 부대가 해체되거나 국방계획으로 개편되는 경우는 있지만, 반인권 및 가혹행위 사례로 부대가 해체되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1


'부대 해체한다고 가혹행위가 사라질까?'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은 가혹행위가 발생하는 부대의 경우 소속부대 전부대원을 타 부대로 전출시키고 부대를 해체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현재 군대 내 가혹행위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순진하고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2011년 7월 4일 해병대 2사단 초소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김모상병은 '기수열외' 일명 따돌림,왕따 등으로 괴롭힘을 받았고, 이에 상황실 간이탄약고에서 K-2소총과 수류탄 1발을 탈취, 생활관에 들어가 병사들을 향해 총기를 발사했습니다. 

해병대의 기수열외는 계급과 상관없이 동료 병사들이 특정인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반인권적 행위입니다. 해병대뿐만 아니라 22사단 GOP 초소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도 임모병장이 따돌림을 받는 '계급열외' 취급 등을 받기도 했습니다. 

부대 내 기수열외나 왕따의 대상 중에는 전입해 온 병사가 많습니다. 다른 부대로 전출하는 경우는 보직 때문도 있지만, 대부분 관심병사 또는 사고를 쳐서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관심병사나 문제 사병이 오면 대부분의 병사들은 그를 투명인간 취급 내지는 상대를 하지 않고, 간부들도 거의 그냥 사고만 치지 말고 제대하라는 식으로 방치를 합니다. 그런 일이 계속 누적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심해지기도 합니다. 

 

 

 

군대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군대의 '병영 현대화'는 70%가량만 진행된 상황입니다. 특히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이 벌어진 28사단은 유독 시설이 열악했습니다. 그 이유는 2026년에 부대가 해체되기 때문입니다. 2

통상적으로 부대는 항상 침상과 보급품, 시설 등이 여유가 있지 않습니다. 정원 500명 부대에 10명의 병사만 전입와도 기존 병사들은 생활이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대급이나 연대급 병사가 사단 내 다른 부대로 모두 전출을 간다면 그 주변 부대들은 새로 온 병사들 때문에 내무반 생활이 비좁아지게 됩니다. 

좁은 내무반, 열악한 보급품 등의 문제가 지속되면 결국 병사 간의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이것은 구타와 가혹행위가 발생할 수 있는 원인이 됩니다. 

 

 

▲ 국방개혁 기본계획 2014~2030에 맞춘 부대개편 군수추진단 창설식 장면, 구타와 가혹행위 등으로 인한 부대해체 준비 작업과는 무관하다.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이 밝힌 군 가혹행위 근절을 위한 '부대 해체' 방침이 진짜라면, 최소한 부대 해체를 위한 군수 지원이나 인사 분야의 계획서를 각 부대별로 만들어 지휘관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합니다. 

언제라도 자기 부대가 조직적으로 해체될 수 있다고 생각해도 지휘관이 바뀔까 말까인데, 그저 말뿐인 '부대 해체'나 준비되지 않은 '부대 해체'는 오히려 병사들의 병영 생활을 더 힘들게 할 뿐입니다. 


' 여군 5명중 1명꼴 성적 괴롭힘 당해' 3

군대 내에서 구타와 함께 계속 증가하는 사고가 성추행이나 성폭행입니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는 폐쇄적인 군 조직문화로 인해 피해자들만 지속해서 고통받으며, 가해자는 처벌을 받지 않는 인권 사각지대가 되고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와 군 인권센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여군 100명 대상 설문 응답자 중 19%가 성적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여군 5명 중 1명꼴로 성적 괴롭힘을 당한 셈이지만, 국방부의 주장처럼 군대 내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더 강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여군 대상 성범죄 실형 선고율을 보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기껏 기소해봤자 집행유예 대지는 감봉과 견책에 불과했습니다. 

민간인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높아지고 예방책이 나오는 것과 다르게 군대의 인권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미약할까요?

군대는 계급이 깡패이기 때문입니다.

 

 

 

여성 부사관 100명이 밝힌 성폭력 가해자의 계급을 보면 영관급 장교가 42.5%로 가장 많습니다. 영관급 장교는 대부분 부대의 지휘관입니다. 지휘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부대 내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거나(35.3%) 가해자나 부대 선임 상관에 의한 보복(23.5%), 피해자 전출(17.7%)의 불이익을 받습니다. 4

이러다 보니 부대에서 여군이나 일반 병사가 성폭력이나 성추행을 당해도 외부에 알릴 수가 없습니다. 그저 폐쇄된 공간에서 지속적인 성폭력과 성추행을 받다가 자살 내지(19%)는 분노 폭발(15.6%)로 이어집니다. 


' 처벌받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정치군인' 

대한민국 군대가 인권이 나아지기보다 더 망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체벌 자체보다도,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이 군에 들어가 바뀐 환경에서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는 MB의 주장이 맞을까요? 5

박사 학위를 받고 아무리 똑똑해도 군대에 입대하면 그 사람은 이등병이 됩니다. 조직 문화 속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제대로 펼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상명하복'의 군대 조직에서 개인의 생각,부대의 방향과 병사 간의 문화는 지휘관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말은 군대 가혹행위나 폭력,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한민국 지휘관들이 바뀌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군대 지휘관들은 왜 바뀌지 않을까요? 이들 대부분이 일본군 출신 장군들에 의해 교육받은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초대부터 21대까지 한국 육군참모총장들은 대부분 일본군 출신입니다. 이들이 일본 제국주의 군대 문화에서 장교가 됐고, 그 문화가 고스란히 후대까지 전해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자위대와 한국군의 가혹행위 사진을 보면 비슷한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도 한국군에는 일본 군사 문화의 잔재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

일본군 출신들은 해방 후 조선에서 여전히 정치군인으로 자신의 출세를 위해 병사들의 희생을 강요했고, 그 문화가 이어져 대한민국 장군들이나 지휘관들은 가혹행위나 성폭력 등의 인권 문제가 발생해도 여전히 은폐하며 자신의 승진과 출세에 방해되지 않을까만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관진 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실장은 탁월한 정치군인입니다. 그가 국방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시기 '2011년 강화도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2012년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사이버사령부 대선개입','2014년 북한 무인기','윤일병 구타 가혹 사망','22사단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국방부 장관으로 그 책임을 물어 해임되고도 남을 사건이 터졌지만, 그는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 실장으로 옮겼습니다. 

그가 진정한 군인이었다면, 스스로 책임을 지고 물러났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권력의 중심부에 들어갔습니다. 2011년 강화도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 김관진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3년이 지난 2014년 22사단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처벌받지 않는 정치군인이 대한민국 군대를 장악하고 있는 한, 우리의 젊은이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서로가 고통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1. 전투경찰 등의 중대 병력이 해체되는 경우는 있었다.
2. 28사단은 윤모일병 사건이 아니라 부대 재편 계획에 따라 해체되는 부대이다. 
3. 세계일보와 새정치민주연합전국여성위원회,인권센터 자료
4. 여군 100명, 병사 200명 대상 설문조사와 통계자료를 근거로한 '군 성폭력 실대 보고서'에 나온 수치
5.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직후의 발언
6. '군 지휘부는 폭력으로 군대기강을 다스린거야,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을 납득시키는 방법으로는 폭력이 제일 쉽지.'-가리야 데츠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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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7시간, 그 기괴함에 대하여

등록 : 2014.08.20 18:43수정 : 2014.08.2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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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오바마 하루 일과, 누구와 언제 시분도 낱낱이 공개
세월호 당일 박 대통령의 감춰진 행적과 침묵 참사 불러
대통령 행적은 국민 알권리…책임 소재 차원에서 밝혀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연설 말미에 ‘의로운’ 희생자 이름을 거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4.5.19 청와대 사진기자단

 

[편집국에서]

 

 

“8월10일. <오전> 야마나시현 나루사와무라의 별장에서 보냄. <오후> 12시46분 야마나시현 후지카와구치코마치의 이탈리아 요리점 ‘리체타’, 모친 요코상, 비서관과 식사. 2시3분 별장. 오후 6시34분 야마나시현 중국요리점 ‘호궁’(湖宮), 친구들과 식사. 8시59분 별장.” “8월11일. <오전> 별장에서 보냄. <오후> 2시59분 도쿄 도미가야 자택. 5시58분 중의원 제1의원회관 치과진료실에서 치료. 6시48분 도쿄 요쓰야의 불고기집 ‘류게쓰엔’, 지지통신의 가토 기요타카 해설위원, 정치 저널리스트 스에노부 요시마사, 다카하시 요이치 전 내각참사관과 식사. 9시14분 자택.”

 

<아사히신문> 4면에 실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10일(일)·11일(월) 행적이다. 총리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뭘 했는지 실명으로 분 단위까지 적시돼 있다. 어머니와 식사, 치과 치료, 몇몇 언론사 간부와 식사 등이 모두 공개 대상이다. ‘총리의 하루’는 일본의 주요 일간지에 날마다 실리는데, <교도통신> <지지통신> 담당 기자가 직접 관찰한 사실과 총리실에서 밝힌 내용을 토대로 작성한다.

 

4월16일 아침,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물밑으로 가라앉은 여객선에서 탈출한 승객들을 해양경찰 등이 구조하고 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세월호가 침몰한 4월16일,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의 진상은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그 뒤 살아 돌아온 세월호 승객이 단 한명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껏 청와대·새누리당이 밝힌 내용은 앞뒤가 맞지 않아 오히려 의혹을 키우고 있다. 국회 세월호 국정조사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조원진 의원은 정호성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청문회에 부르자는 야당 요구에 “대통령의 사생활을 얘기하겠다는 것 아니냐”(7월30일)더니, “대통령은 기침해서 취침할 때까지가 근무시간이며 사생활이란 없다”(8월13일)고 말을 바꿨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문제”(8월1일)란다. 총리 일정을 분 단위까지 밝히는 일본 신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정을 5분 단위까지 공개하는 백악관은 뭔가?

 

조원진 의원은 세월호 침몰 당일 오전 10시 첫 보고 이후 오후 5시15분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타날 때까지 모두 18차례 보고가 이뤄졌다고 13일 말했다.(애초 청와대가 국회에 밝힌 ‘서면·유선 보고 24회’와 상충한다.) 내용을 뜯어보면 더 이상하다.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한 건 오전 10시15분과 10시30분 두차례뿐이다. 그 뒤론 무반응이다. 대책회의도 없었다. 이렇게 304명의 목숨이 걸린 6시간45분이 대통령의 침묵 속에 속절없이 흘러갔다. 기괴하다. 그러곤 대통령은 그날 오후 5시15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와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견하거나 구조하기가 힘이 듭니까”라고 물었다. 생뚱맞다.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김기춘 비서실장 등 청와대 쪽은 그 ‘7시간’ 동안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에 계셨다”는 말만 되뇌고 있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중요한 건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대응했는지다. 국민 304명이 수장될 절체절명의 순간에 대통령이 챙겨야 할 다른 중대사가 도대체 뭔가? 청와대 참모들이 언제 무엇을 어떻게 보고했는지, 그에 따라 대통령은 어떤 판단을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했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책임 소재를 정확하게 가려 대참사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세간에 떠도는 입에 담기 민망한 소문엔 관심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7시간의 진실’을 알 권리가 있고, 대통령과 청와대는 밝힐 의무가 있다.

 

이제훈 사회정책부장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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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앞잡이 조중동” 언론인·이상호, 세월호 동조단식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8/21 14:28
  • 수정일
    2014/08/21 14:2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박근혜 앞잡이 조중동” 언론인·이상호, 세월호 동조단식
김종철 동아투위원장 “朴, 정권 안보에만”…이상호 기자 “언론, 사람 살리기 위해 존재”
 
입력 : 2014-08-21  11:53:04   노출 : 2014.08.21  13:44:53
김도연 기자 | riverskim@mediatoday.co.kr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단식 농성이 21일로 39일째 접어들면서 언론인들의 동조단식으로까지 확산됐다. 

언론시민단체 관계자 50여 명은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 단식 농성장에서 열린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언론단체 동조단식 기자회견’에서 “폭주하는 여당, 제 구실 못하는 야당, 침묵하는 대통령, 권력 앞잡이가 된 보수언론을 규탄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21일부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동조단식에 돌입했다. 하루씩 각 단체가 돌아가며 단식에 참여할 예정이다.

21일 박태순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공동대표의 단식을 시작으로, 이날 기자회견을 함께 연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기술인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방송독립포럼, 새언론포럼,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광장,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PD연합회(가나다 순) 등의 언론단체 관계자들이 향후 조를 나누어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동조단식 농성에 참여한다.

   
▲ 언론시민단체 관계자 50여 명은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농성장에서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언론단체 동조단식 기자회견’을 열고 “폭주하는 여당, 제 구실 못하는 야당, 침묵하는 대통령, 권력 앞잡이가 된 보수언론을 규탄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 김도연 기자)
 

이 자리에 함께 한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은 “위정자들은 낮은 자세로 사회적 약자를 되돌아보던 교황의 가르침을 깨달아야 한다”며 “언론이 왜곡하고 있지만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진상조사위 구성과 철저한 재발방지대책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김영오씨가 단식을 중단할 것을 부탁하며 “모든 사람들이 나서서야 할 때”라며 “이 싸움은 이제 속도가 아닌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 제정을 위해 우리는 하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김영오씨가 40일 가까운 단식을 했는데 이 정권은 그를 막으며 되레 무력으로 막아섰다”며 “국민의 생명 보호에는 무관심하고 정권 안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 조중동은 경제 위기를 운운하며 국면을 전환하려 한다”며 “그러나 국가적 위기를 졸속으로 벗어날 수 없는 법”이라고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이 끝난 뒤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조중동의 ‘유가족 책임론’ 프레임은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라며 “국민 여론 다수는 진상규명을 원하고 있다. 만약 또 이런 사태가 일어난다면 그때 조중동은 뭐라 하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보수 언론은 자꾸만 민생을 이야기하는데 국민의 생명보다 더 중한 민생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는 “특별법은 단순한 ‘법’이 아니다”라며 “우리가 인간의 삶을 살 수 있을지 결정하는 분기점에 세월호 특별법이 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세월호 특별법은 국민 요구하는 새로운 질서”라며 “눈 뜨고 생떼같은 아이들을 잃어야 했던 대한민국이다. 이제는 생명의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은 그런 의미”라고 밝혔다.

   
▲ 21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 유가족 동조단식 농성장에 앉아 있는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왼쪽)과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 (사진 = 김도연 기자)
 

전규찬 언론연대 대표는 “앞으로 언론은 유가족과 이를 연대하는 단체들을 ‘색깔론’으로 몰아세울 것”이라며 “이런 왜곡 여론을 차단하고 올바른 여론 형성에 기여해야 하는 것이 공영방송이다. 그러나 세월호 130여 일 동안 과연 공영방송이 무엇을 했느냐”고 반문했다. 전 대표는 “정권에 장악된 공영방송에 제대로 된 책임을 묻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오늘의 기자회견은 한국 언론의 참담함을 고하고 규탄하기 위한 자리”라고 덧붙였다.

조승호 YTN 해직기자는 “현재 YTN은 보도와 관련해 말씀드리기 어려울 정도로 참담한 상태”라며 “내부 컨트롤타워가 보도의 공정성 관련해서 전혀 역할을 못하고 있다. 오로지 자기 정치적 목적을 이루려는 듯 여론을 왜곡하고 현장 기자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기자는 “그러나 국민들이 내부에서 정말 열심히 싸우고 있는 기자들이 있다는 사실만은 알아주시길 바라겠다”며 “조금 더 여건이 나아진다면 YTN는 다시 국민께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세월호 특별법 논의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여야는 또 한 번 ‘밀실야합’을 저질렀다”며 “보수언론이 유가족과 야당 ‘강경파’가 합의안 타결을 막았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규탄하기 위해 광화문 단식 농성장에 들어갈 것이다.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관철되는 그날까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 동조단식에 참여한 이상호 전 MBC 기자(고발뉴스 기자)가 21일 서울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한편, 이상호 전 MBC 기자(고발뉴스 기자)도 이날 동조단식 농성에 참여했다. 이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기본적으로 언론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며 “김영오씨 단식을 보면서 보도하는 것 이외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마침 언론단체에서 동조단식을 시작했다. 특히 김종철 동아투위 선배님이 단식에 참여하시는 걸 보고 용기를 얻었다”며 “아이들의 부모님들마저 잃게 될까봐 걱정이다. 처음 팽목항을 가던 심정으로 참석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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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미협, '나는 우리다-내안의 세월호展' 개막

민미협, '나는 우리다-내안의 세월호展' 개막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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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8.20  19: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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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 서울지회(회장 김운기)가 주최하는 '제 5회 우리시대 리얼리즘展' '나는 우리다-내안의 세월호展'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에서 개막됐다. 전시회는 이날부터 오는 31일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사진제공-민미협 서울지회]

(사)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 서울지회(회장 김윤기)가 주최하는 '제 5회 우리시대 리얼리즘展' '나는 우리다-내안의 세월호展'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 분관에서 개막됐다.

전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재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이 가족들의 합의로 거부당한 이날, 광화문 광장에서 38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김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는 지팡이에 의지해 청와대로 향했으나 끝내 경찰에 가로막혔다.

이들이 내민 손을 청와대는 외면했고 여당은 짓밟았으며, 야당은 뿌리쳤다.

   
▲ 김윤기 지회장은 개막사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드리고 이날 유가족들의 합의로 거부된 여야 합의의 세월호 특별법도 유가족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돼 제정되기를 바란다"며 100여 점의 작품을 발표해 준 80여 명의 참여작가에게 짧은 인사를 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미협 서울지회는 통곡과 비탄이 온 나라에 가득한 4월 16일 이후의 날들을 "타인의 불행을 궁휼할 줄 아는 이타심, 인류애와 같은 도덕심이 생겨날 수 없도록, 필요치 않도록 만들어진 이 세계의 비참"을 전시했다.

작가들은 전시의 주제인 '나는 우리다'를 통해 "이런 각자도생의 야만상태의 개인들이 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국가 정체(政體)가 더 무거운 유죄평결을 받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증주의와 죄형법정주의라는 이름으로 "일상이라는 탈을 쓴 악, 평범한 악"의 형태로 나타난 국가는 기소당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아는 작가들은 "예술은 국가를 기소할 수 있고, 기소해야 한다"는 기치를 앞세워 심판에 나섰다.

더불어 대상을 정복하고 상대를 타자화하고 그 자리를 자만심으로 채운 '나'를 내려 놓고 우리의 실존적 삶의 터전이자 이를 통해 모든 존재들의 삶이 공유되고 있음을 깨닫는 터전인 대지위에서 모든 잡스러운 미학을 반성하자고 촉구했다.

   
▲ 왼쪽부터 김윤기 민미협 서울지회장, 박진화 민미협 회장, 김정헌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전시를 주최한 김윤기 지회장은 개막사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드리고 이날 유가족들의 합의로 거부된 여야 합의의 세월호 특별법도 유가족들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돼 제정되기를 바란다"며 100여 점의 작품을 발표해 준 80여 명의 참여작가에게 짧은 인사를 전했다.

박진화 회장은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이 주제를 거리에서 하는 전시가 아니라 정상적인 미술관에서 하는 전시회로 꾸며볼 필요를 강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상징적으로 녹아 들어있는 참 어려운 화두인데,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여서 어떻게든 전시회를 하게 된 것은 큰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어려운 화두임에도 민미협의 많은 작가들이 참가해 이 넓은 전시장을 가득 채워 주었다. 이 큰 의미가 어떻게 발전되고 심화될 것인지는 여러 작가들이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 할 일일 것"이라며, "많은 분들이 미술관을 들러 작품을 감상하면서 함께 고민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시를 후원한 김정헌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은 정년퇴직을 한 후배를 만난 고은 시인이 "요즘 젊은 것들이 나이는 많아"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요즘 젊은 것들이 그림은 잘 그려"라며 전시회에 참가한 작가들을 격려했다.

김정헌 이사장은 "지난 1980년대부터 우리 사회 현실을 화폭에 담아온 것이 민미협의 굳건한 전통이었고 이번 전시회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그건 참 대단한 일"이라면서도 "작가로서의 상상력, 망상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밝혔다.

'나는 우리다' 전시회는 이날부터 오는 31일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 오석훈 작, 떠나가는 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김태순 작, 가족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나종회 작, 추락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김연이 작, 나비렐리 자유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도지성 작, 팽목항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박용빈 작, 절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이동주 작, 헌화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현용안 작, 거짓말로 오염된 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김영진 작,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김보중 작, 가까운 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송창 작, 인간의 탑(people tower)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박은태 작, 왼쪽부터 팽목항의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이기홍 작, 바람-붉은대숲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강기욱 작, 슬픔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잊지 말아요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손영익 작, 기우는 저울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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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무자비한 선제타격 정당" 경고

 
북, 무자비한 선제타격 정당" 경고
 
"침략의 근거지 불바다 잿더미" 강조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4/08/21 [09:27]  최종편집: ⓒ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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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은 한미 합동 군사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을 선전 포고라며 북이 결심하면 미국은 붋다 잿더미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조선이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북침 핵 전쟁 선전포고라며 강력 반발하며 경고를 이어 가고 있는 가운데 훈련 4일째인 21일에도 "선제타격은 정당한 권리"라며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연합뉴스는 21일 조선로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의 '무자비한 선제타격은 정정당당한 권리"라는 제목의 논평을 인용 "미제와 남조선 괴뢰호전광들의 핵 선제타격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대응은 그에 앞선 무자비한 선제타격이며 그 것이야말로 가장 올바른 선택"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로동신문 논평은 "도발자들은 얻어맞아도 할 소리가 없다"며 "일단 우리가 때리면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은 구실 없이 얻어맞아야 하며 우리가 결심하면 침략의 본거지들은 불바다가 되고 잿더미가 돼야 한다"고 경고성 메시지를 남겨 북의 행동이 개시 될지에 세계의 눈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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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 “새누리당과 직접 대화하고 싶다”

등록 : 2014.08.20 11:06수정 : 2014.08.2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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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의 분노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유가족들이 7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농성장에서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은 가족과 국민의 요구를 명백하게 거부한 합의”라며 비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특별법 여야 재합의 다시 난관 부딪혀
“꾸준히 요청했지만 한번도 받아들이지 않아”

세월호 특별법 관련 여야 재합의가 또다시 난관에 부딪힌 가운데 유가족들이 집권여당인 새누리당과의 ‘직접 대화’를 다시 한번 요구하고 나섰다.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20일 <와이티엔>(YTN) 라디오에 나와 “저희는 여전히 앞으로도 계속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장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저희가 그보다 앞서서 요청을 드리고 원하는 것은 특별법을 만들기 위한 논의 과정에, 특히 저희가 여당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전날 여야 원내대표는 특검후보추천위원회의 국회 몫 위원 4명 가운데 여당 몫 2명을 세월호 참사 유족과 야당의 사전 동의를 받아 추천하기로 재합의했으나, 가족들은 이를 거부한 상태에서 여당과의 직접 대화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유 대변인은 “(여당과 유가족 간) 서로에 대한 신뢰가 확보가 되어야만,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간에 진심을 가지고 서로 대화를 하고 받아들일지 말지를 얘기할 수 있다”며 “(지금은) 그런 게 없으니까 마치 저희는 끝까지 이것만 주장을 하고, 여당은 무조건 안 된다는 식으로만 비쳐지니까 국민들이 보시기에 좀 답답하실 수 있다”고 만남을 원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 대변인은 “지속적으로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채널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여당에) 요청을 해왔는데 한 번도 받아들여준 적이 없다”며 여당에 섭섭함을 토로했다.

 

대책위가 여당과 직접 대화하려는 건 돌파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기력한 야당에 대한 실망이 크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대책위는 주로 야당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해 논의해왔으나 지난 7일 여야 간 첫 번째 협상 과정에 야당이 유가족을 배제하면서 관계가 멀어졌다. 그 뒤 대책위는 과거 “특검추천권을 야당에 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 김무성 대표에 사실상 마지막 기대를 걸어왔다. 이후 지난 18일, 19일 이틀간 대책위와 김무성 대표가 만났으나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유 대변인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만남 당시) 김 대표는 특검 추천과 관련해 가족들이 생각하는 내용을 주면 그걸 저희들이 한 번 고민해서 반영을 해보겠다고 강력히 권유했다”며 “(특검 추천과) 관련해서라고 그러면 최소한도 이 정도는 돼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야 서로 진정성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느냐라고 말씀드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이후 여야 원내대표 간 재협상에서 유가족의 뜻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책위가 다시 한번 여당과의 대화를 강조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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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가면극에 속아야만 하는 국민

 
[주장] ‘정치를 아는 정치인들의 집단’ 야당 건설을 주장한다
 
임두만 | 2014-08-20 09:34:36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정치가 우리의 삶을 주관하는 것인데 우리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가면극 배우들에게 삶을 맡기고 산다. 어느 누구라고 할 것이 없다. 우리가 기대했던 사람도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도 다 같다. 나는 오늘 이런 현실 앞에 다시 절망한다.

애초 세월호 관련 건은 야당이 여당과 정치적으로 협상할 대상이 아니었다. 이 건은 당연히 책임이 있는 정부와 여당이 피해자인 유가족이나 국민에게 굴복했어야 한다. 즉 야당의 행태는 이 문제에 대해 여당에게 끌려 다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야당은 자신들의 실력이 여당을 압도하지 못하면서도 이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욕심을 부렸다. 이 건으로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했던 것이다.

정치적 술수가 능란한 여당이 이를 놓칠 이유가 없다. 이 같은 야당의 속셈을 파악, 자신들이 키를 쥐고 자유자재로 농락했다. 뒤늦게 자신들의 현실을 파악한 야당은 이제 유가족 눈치보랴 국민 눈치보랴 여당에 끌려다니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랴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그러다가 ‘정국안정’ ‘민생현안’ 이런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덜컥 합의라는 것을 해줬다.

여기서 게임은 끝났다. 합의했는데 그 합의안을 깨면 깨는 쪽이 논리적으로 약자가 된다. 정당의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의 직접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막중한 자리다. 즉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의사를 대변하라고 위임한 자리다. 따라서 원내대표의 원내전략은 소속의원 전체의 의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원내대표가 상대당 원내대표와 정치적 합의를 하고 합의안에 서명했다. 그런데 이 합의안을 소속의원들이 추인해주지 않고 비토했다. 그렇다면 원내대표는 소속의원들에게 위임받은 정치행위를 비토당한 것이 된다.

이 경우 원내대표직을 사퇴해야 옳다. “당신들이 위임을 해놓고 거부하면 앞으로 어떤 정치행위를 할 수 있는가?”라는 말과 함께 사퇴해야 한다. 그래서 통상 의원총회의 추인이 필요한 사안은 먼저 합의안에 서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잠정합의라고 해놓고 그 잠정합의안에 대해 의총 추인을 받는 절차를 거친다.

그런데 박영선 원내대표는 덜컥 합의안에 먼저 서명을 해버렸다. 서명을 했다는 것은 의총 추인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교섭단체 원내대표의 합의서명이 있으면 그것으로 국회는 의사진행을 해야 한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소속의원들은 자신들의 대표가 서명한 안을 비토해버렸다.

이게 박영선이 아마추어이며 새정치연합이 오합지졸들이라는 결정적 이유다. 특히 박영선은 자신이 합의하고 서명한 안이 당에서 비토 되었다고 또다시 자신이 나서서 재협상 운운하며 협상대표로 나섰다. 그렇다면 그를 상대하는 상대당 원내대표는 그럼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합의문에 서명까지 했어도 비토를 당하는데 다시 합의해도 또 그쪽에서 비토하연 깨질 합의 그거 뭐하러 하는가?”라는 심리가 당연하다. 그러니 박영선은 당에서는 “다시하겠소” 상대에겐 “나 좀 봐주쇼”의 입장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진행된 세월호 특별법 협상의 핵심이다.

그러니 이완구는 고자세에서 여기까지가 마지노선이란 선을 긋고 생색을 냈다. 때문에 박영선은 더 받아 낼 것이 없었다. 결국 애초 유가족들이 냈던 법안에 있던 진상조사위의 수사권 기소권은 말도 꺼낼 수 없었으며 특검안으로 후퇴했다. 그리고 그 특검추천위원회 위원 배분이라는 우습지도 않은 내용이 쟁점이 되어버렸다.

오늘(19일) 합의했다는 ‘여당 추천위원 2명을 유가족과 야당이 합의한 사람’이라는 내용, 참 거론하기조차 부끄럽다. 특검추천위원회 위원은 7명, 이중 법무부가 1명, 대법원이 1명 대한변협이 1명 국회가 4명이다. 이중 2명을 여당이 추천하고 그 여당추천 인사를 유가족이나 야당이 합의하는 인사라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당연직이 법무차관이다. 대법원은 당연직이 법원행정처 차장이다. 대한변협은 당연직이 변협회장이다. 그리고 남은 4명을 여야 각 2명씩 추천하는데 2명의 여당 추천인사가 들어간다. 비록 야당이나 유가족이 합의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으나 여당이 막무가내면 한없이 비토할 수 없다. 비토가 잦아질수록 특검 구성만 늦어질 뿐이므로 야당은 끌려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안은 원천적으로 합의라고 말도 할 수 없는 내용이다. 결국 이완구가 박영선의 체면치례를 위해 양보하는 척만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 야당은 퇴로가 없다. 유가족도 마찬가지다. 유가족이 갑이 아니라 을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유가족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결될 방안은 없다. 결국 오늘 합의한 내용대로 법은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 특검추천위원회가 특별검사 후보를 2명 추천하면, 이 가운데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는 현행 상설특검법 조항에 따라 대통령은 자신의 입맛에 그나마 맞는 인사를 특별검사로 임명할 것이다. 이런 특검추천위의 구성이라면 2명의 특검 후보는 여야가 각각 선호하는 한 명씩을 골라 추천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특검은 바로 활동하여 세월호 진상을 밝히고 잘못한 사람들을 찾아 죄를 물을 수 있는가? 천만에다.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진상조사위가 활동에 들어가더라도 특검 임명까지는 하세월이다. 여야 합의안에 따르면, 특검은 세월호 진상조사위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수사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진상조사위의 활동이 끝나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여당 입장을 보면 진상조사위가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결국 이래저래 시간을 보내다가 내년 쯤 애매한 결과를 내놓고, 이 애매한 결과에 따라 특검 추천위의 추천을 받은 인사를 대통령이 특검으로 임명하면 특검은 그때서야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가 언제쯤일까? 내 생각에는 빨라야 내년 상반기다. 그러면 이 성질 급한 우리 국민들의 뇌리에서 세월호는 잊혀진지 오래다. 결국 특검의 수사결과가 어떻든 이 사건의 책임자들이 입는 피해는 최소화 되고 피해자들은 가슴에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앙금을 안고 울분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런 가면극, 우리는 지금 이런 가면극 속에서 산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이런 정치권의 가면극을 종식시키려는 합의가 필요하다. 그것은 현재 모든 술수에서 야당을 압도하는 여당에게 당하지 않는 정치세력을 창출해야 하는 합의다. 아무런 힘도 대책도 술수도 작전도 없는 현재의 야당 정치권, 언제 투쟁하고 언제 타협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야당, 그러면서도 무슨 문제만 생기면 그 문제에 편승,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하는 얍삽한 야당, 이들을 우리의 대변자로 둘 수 없다.

술수가 능란한 여당의 가면극을 가면극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야당이 필요하다. 같이 가면극을 공연하는 야당이 아니라 그 가면극을 거부하는 야당이 필요하다. 그 수가 지금처럼 다수 가 아니어도 좋다. 소수라도 ‘정치’를 아는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이번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방방 뛰는 이들이 대안인가? 아니다. 그들이 더 심각한 가면극의 배우들이다. 그들이라면 지금 여당을 굴복시키고 유가족이 원하는 안을 받아낼 수 있다고? 없는 줄 알면서 자기만 돋보이려는 더 두꺼운 가면을 착용한 자들이다.

이미 진 게임은 판을 접을 줄도 아는 사람, 그래서 다음의 게임에서 이기려고 준비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대안이다. 진 게임에서 졌다고 방방 뛰면 체력만 더 소모된다. 그리 되면 다음 게임의 준비도 부실하다. 그러니 매번 게임마다 지는 것이다. 지금 야당의 강경파라는 치들의 짓이 그렇다. 이들에게 야당 정치권을 맡기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같은 모습만 목격할 것이다. 나는 그래서 다시 한 번 ‘정치를 아는 정치인들의 집단’ 야당 건설을 주장한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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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은 왜 여야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나

유족들은 왜 여야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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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 끝에 여야가 도출한 세월호특별법 합의안이 유족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여야가 재협상을 벌였음에도 유족들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세월호특별법은 당분간 계속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유족들이 이번 여야 합의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여전히 남아있는 쟁점을 Q&A로 정리했다.

Q : 유족들이 밝힌 반대 이유는?

A :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19일 여야 합의안이 발표된 직후 성명을 내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 여·야 합의안 관련하여 세월호 유가족 반대한다.

– 가족의 반대는 국회 추천 4명중 2명 추천권이 여전히 여당이기 때문이다.

– 김무성 당대표에게 오전 가족대책위가 요구했다 1. 내곡동특검 처럼 야당 추천한다 2. 국회 추천 4명 모두를 야당이 추천한다. 3. 국회 추천 4인을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추천하라고 제시했다

하지만, 여야 합의안은 이 모든것이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세월호 유가족은 재협상을 요구한다. (가족대책위 입장발표, 8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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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유가족들이 19일 국회 본청 앞에서 이날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에 대해 "반대한다"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Q : 여당 추천몫을 받아들일 수 없다?

A : 유족들은 새누리당이 2명을 추천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가족대책위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가족이 2명 추천한다면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여당이 추천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의혹 관련 특검(2012)에 야당이 추천권을 행사한 전례를 제시했다. (머니투데이 the300, 8월19일)

 
 

전명선 가족대책위 부위원장은 "여당 추천 2인에 대해 야당과 유가족 동의를 받겠다고 했는데 우리가 거부하면 여당은 계속 재추천할 것"이라며 "이처럼 거부와 재추천이 반복되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히 여당 추천 인사를 유가족들이 거부할 경우 '진상규명을 유가족들이 오히려 막고 있다'는 식의 여론몰이에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뉴스 8월19일)

 
 

 

Q : '여당 추천'과 '야당 추천'은 뭔가? 뭐가 다른가?

A : 이번에 나온 합의안은 지난 7일 여야가 내놓은 합의안 중 '특별검사 추천' 부분을 수정한 것이다. 특검과는 별도로 설치될 진상조사위원회는 기존 여야 합의대로 구성된다. 여기에 유족들이 요구해왔던 수사권과 기소권에 대한 언급은 빠져있다. 이 부분은 여전히 변한 게 없다.

그렇다면 '여당 추천'과 '야당 추천'은 뭘까?

당초 합의문에 따르면, 여야는 특검 추천은 관련법의 절차에 따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유족들은 "수사권은 양보할 수 없다더니 수사권은 물론 특검추천권까지 포기해버렸다"며 새정치연합을 강하게 비판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 결국 새정치연합은 재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유족들이 '야당 추천'을 주장하는 건 왜일까?

특검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특별검사를 선정해야 한다. 특별검사 후보자는 관련법에 따라 국회에 설치하는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추천위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2명의 특별검사 후보자를 선정해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대통령은 2인의 후보자 중 1명을 최종 임명한다.

후보자추천위원회는 위원장과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 중 국회에서 추천할 수 있는 건 4명이다. 나머지 3명의 위원은 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대한변호사협회장이 각각 맡는다.

그동안 유족들은 세월호 진상을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는 특별검사 후보자가 선정되는 과정에서 유족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유족들의 요구가 실현되려면 추천위 구성 단계에서부터 유족들의 의사가 반영되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추천위의 절반인 국회 추천몫을 확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유족들이 여당을 불신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추천몫을 모두 야당에게 넘기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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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유족들은 왜 여당을 불신하나?

A : 전례가 있다. 세월호 국정조사다. 새누리당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 남재준 전 국정원장,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 길환영 전 KBS 사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하자는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자 유족들은 이를 '국정조사 무력화 시도'로 규정하고 새누리당을 규탄했다.

전례를 보았을 때, 새누리당은 시간을 끌다가 국민의 감시와 관심이 소홀해진 틈을 타 증인 채택을 무산시키고 결국 국정조사를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중략)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세월호 국정조사마저도 이중플레이와 버티기로 무력화시키려는 새누리당을 강력히 규탄한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5월27일)

 
 

국정조사가 진행 중이던 7월에도 새누리당의 '보이콧'과 거듭되는 막말, 무성의한 태도를 문제삼았다.

새누리당 국정조사 보이콧은 국정조사를 파행과 정쟁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으로, 정치 혐오에 기대어 세월호 국정조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돌리고, 결국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가로막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의 국정조사 보이콧을 강력히 규탄한다.

(중략)

어제 국정조사 위원들의 무성의한 행태가 드러나 물의를 빚자, 심재철 위원장은 유족과 가족 변호사를 제외한 일반인의 방청을 금지해 유족과 국민대책회의가 구성한 모니터링단의 활동을 가로막았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7월2일)

 
 

새누리당 소속인 심재철 세월호 특위위원장은 세월호특별법 반대 카톡을 보냈다는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Q : 유족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야당이 4명을 모두 추천하는 게 가능한가?

A : 이 부분은 여야의 세월호특별법 협상에서 핵심 쟁점 중 하나였다.

바로 이 규정이 세월호 특별법 협상의 핵심 쟁점이자 마지막 관문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여당 몫 중 1명을 양보해 3명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반면 새누리당은 법과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여야는 양당 원내대표가 막판 타결을 시도할 때까지 여러 잠정안을 두고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유가족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가 특검후보 추천위원 구성과 관련해 10명의 후보군을 추천하면 이 가운데 여야가 한 명씩을 지워나가며 4명을 추리는 방식도 한때 검토된 것으로 전해졌다. (CBS노컷뉴스 8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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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회'를 마친 시민들이 종각역 인근 종로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이 '법과 원칙'을 언급하는 것에도 근거는 있다. 지난 6월부터 시행된 국회규칙에 따르면, 국회추천몫 4명은 여야가 각각 2명씩 추천하도록 되어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유족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야가 이번 재협상에서 "국회에서 추천하는 4명 중 여당 2인의 경우 야당과 세월호 사건 유가족의 사전동의를 받아서 선정하여야 한다"고 합의한 건 나름의 고육지책, 또는 묘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원칙적으로 유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국회가 위원을 추천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그러나 야당과 유족이 사전에 동의한 인물이라고 해도 특검후보 추천 과정에서 유족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 개연성도 있다. 여당과 사전 조율을 거친 '객관적인' 인사로 하여금 결정까지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시 말해 유족의 입장이 반영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까지 담보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유명무실한 합의라는 것이다. (CBS노컷뉴스, 8월19일)

 
 

 

Q : 이미 국정조사도 했는데 꼭 특검을 해야 하나?

A : '국정조사도 했고, 밝혀질 건 다 밝혀진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 게 사실이다. 유족들의 생각은 다르다. 국정조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오히려 특검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는 것.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정부의 비협조, 새누리당 소속 위원들과 위원장의 태업, 짧은 시간 이뤄지는 국정조사 제도 자체의 한계 등으로 인해, 일부 위원들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국정조사 기관보고는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충분한 수사권 등 없이 짧은 기간 진행되는 국정조사로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국정조사를 뛰어넘는 특별한 권한을 가진 특별위원회와 특별법의 필요하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위원회 7월11일)

 
 

세월호 국정조사의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는 게 유족들의 판단이다. 실제로 기관보고에 증인으로 참석한 장관들은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해 유족들을 분노케 했다.

과제는 또 있다. '컨트롤 타워' 부재와 부실대응 논란을 일으킨 청와대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도 밝혀져야 하고, 이와 관련해 제기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의혹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엇보다 유족들은 애초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세월호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정조사로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에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국정조사로는 일부 진상을 밝힐 수 있지만 참사의 책임자에 대한 법적 행정적 처벌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근본적인 재발방지대책도 3개월 시한부 국정조사로는 만들기 어렵습니다. 성역없는 조사와 진상규명을 위해서는 국가특별위원회를 만들어 1년 이상 충분히 조사해야 합니다.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세월호특별법 Q&A')

 
 

 

Q : 앞으로 세월호특별법은 어떻게 되나?

A : 유족들이 입장을 번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유족들은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과 불신을 드러냈다.

유족들은 새정치민주연합에도 불만을 드러냈다. 대책위 관계자는 “야당으로부터 협상안에 대한 설명은 들었지만 유족들이 동의한 적은 없다”며 “유가족들은 진상조사위가 특검추천위원 후보들을 추천하는 방안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족들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야 합의 바로 직전에야 합의 내용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한겨레 8월19일)

 
 

한겨레에 따르면, 광화문에서 37일째 단식 중인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도 단식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극적인 계기가 없다면 세월호특별법은 앞으로도 당분간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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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세월호 유가족 재협상 요구에 "못한다"

유민 아빠 만나 "우리가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

곽재훈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8.20 11:08:07

 
 
 
 
세월호특별법 관련 여야 원내대표 재합의가 유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힌 가운데, 협상의 한 당사자인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겸 비대위원장이 38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유족 김영오 씨를 찾아가 만났다. 김 씨는 단원고 2학년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다. 
 
박 원내대표는 20일 오전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오늘 아침, 광화문에서 38일째 단식하고 있는 '유민 아빠'를 만나고 왔다"며 "'저희들이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 유민 아빠가 건강을 회복해야 우리도 힘이 난다'고 말씀드렸다"고 대화 내용을 전했다. 
 
박 원내대표는 자신이 김 씨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유민 아빠를 만나 주면, 유민 아빠가 대통령을 뵙고 말씀 들어보고 단식을 중단하겠다고 한다'고 당 회의에 가서 발언하겠다"고 했다며 이에 대해 김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이제 박 대통령도 유민 아빠를 만나 세월호 참사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박 대통령에 대해 "유민 아빠를 꼭 만나 달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김 씨를 비롯한 유족은 박 원내대표에게 싸늘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세월호 유족들은 전날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박 원내대표가 공동 발표한 재합의안 내용에 대해 공식 반대 입장을 밝혔었다. 
 
박 원내대표는 유가족들의 반응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다. 유가족의 마음을 다 담지는 못했잖느냐"며 "그걸 '우리가 이렇게 했으니 이걸로 단식을 그만둬 달라' 말씀드릴 순 없다. 그 마음은 이해해 드려야 한다"고 하면서도, 유가족들의 '재재협상' 요구에 대해서는 "그건 못한다고 말씀드렸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20일 오전 광화문에서 38일째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유족 김영오 씨를 찾아가 대화하고 있다. 가운데는 전날부터 김 씨와 함께 농성을 시작한 문재인 의원. 문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 계정에 "저는 단식에 들어간다"며 "김영오 님을 비롯한 유족들의 단식 중단을 간곡하게 호소한다. 제가 대신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연합뉴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20일 오전 광화문에서 38일째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유족 김영오 씨를 찾아가 대화하고 있다. 가운데는 전날부터 김 씨와 함께 농성을 시작한 문재인 의원. 문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 계정에 "저는 단식에 들어간다"며 "김영오 님을 비롯한 유족들의 단식 중단을 간곡하게 호소한다. 제가 대신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연합뉴스

박 원대대표와 야당 지도부는 유가족 설득에 새누리당도 나서야 한다고 여당을 압박했다. 유가족 설득이 왜 야당만의 일이냐는 것. 박 원내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여야) 합의가 완료되기까지는 아직 거쳐야 할 과정이 남아 있다. 유족과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일"이라며 "이 일에 있어서는 여당인 새누리당도 성의있는 노력과 보다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이 그동안 새정치연합을 의지하고 우리를 비판하는 일 모두 감사히 생각한다"면서 "그런데 유가족이 그동안 새누리당을 찾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새누리당은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소속 이석현 국회부의장도 이날 당 회의에 참석해 "어제의 여야 합의안을 가지고 유족들과 진지한 대화를 통해 인식을 공유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면서 "그런데 왜 새누리당은 합의안을 가지고 유족의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안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 부의장은 "진상규명에 앞장서야 할 여권이 왜 남의 일처럼 뒷짐지고 있나"라며 "정치는 곧 대화이고, 대화는 진정성이 생명이다. 당장 오늘 새누리당 지도부가 유족을 찾아가 진솔한 대화를 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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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즈에 <세월호> 참사 전면광고

뉴욕타임즈에 <세월호> 참사 전면광고
 
미주동포 학부모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두 번째 광고
 
민족통신 노길남 기자 
기사입력: 2014/08/20 [06:48]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뉴욕타임즈에 실린 미주동포들의 두 번째 <세월호> 진실 알리기 전면광고.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 인터넷 검색

 

 

▲  한국의 민주주의도 <세월호>와 함께 침몰시켰는가?   ©민족통신 페이스북

 

▲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을 위한 뉴욕 교포들의 가만히 있지 않는 외침이 들리는 듯 하다. 한국의 '검은티행동'을 연상케하는 의상을 입은 교민     ©민족통신 페이스북

 

▲ 뉴욕 동포들의 시위현장     ©민족통신 페이스북

 

 

[뉴욕=민족통신] '세월호 참사'에 대한 박근혜 정권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뉴욕타임스 전면광고가 지난 5월에 이어 8월17일 또다시 뉴욕타임스 전면광고로 게재돼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7일자 뉴욕타임스 A섹션 13면에 전면광고로 게재된 이 광고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제목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을 사고로 잃는 것은 최악의 악몽이다. 수백명의 한국인들에게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글발이 담겨있다. 그리고 ‘단식투쟁하는 희생자가족’, ‘부패와 태만과 규제완화’, ‘변화를 가져올 특별법’ 등의 소제목이 있고, “사고 원인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철저한 조사를 해달라는 유가족의 요청에 대해 박근혜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귀를 닫았고 그릇된 소문으로 대중 여론을 조종했다”면서 “유가족들은 진실을 찾기 위해 국회앞에서 노숙하며 한달이 넘게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재미동포사회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박근혜정권을 규탄하는 시위는 주로 동포사회 학부모들(아줌마들)이 중심이 되어 미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왔고, 이러한 촛불모임은 다른 나라들 촛불시위로 전파되기도 했다.

 

이번 광고는 “세월호의 침몰은 탐욕과 부패, 정부의 무능이 빚은 인간이 만든 참사다. 소환권과 기소권이 부여된 독립된 조사위원회만이 자유와 정의가 넘치고 안전하고 민주적인 한국을 재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라며 세월호특별법을 지지하는 온라인서명운동(www.sewoltruth.com)에 동참해 줄 것도 당부하고 있어 이 운동은 장기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동포아줌마들은 그 동안 '박근혜 퇴진' 구호도 함께 외쳐 왔다.

 

재미동포 아줌마들은 지난 첫 광고모금에서도 열흘만에 목표액을 초과하는 10만달러를 거둬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를 게재한바 있다. 이번에도 온라인 모금으로 성금한 자금으로 전면광고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주동포들은 뉴욕타임스에 17일자 전면 광고가 게재된 같은 날 오후5시, 뉴욕타임스 건물(맨하탄)앞에서 시위도 진행했다. 60여명의 동포들은 ‘세월호를 잊지 않는 사람들 모임(세사모)’ 주최로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진행하면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지나가는 미국시민들을 대상으로 한국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에 연대하여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관련 홈페지 www.sewoltruth.com / 문의연락 sewoltruth.c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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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대형 거북, 6가지 소리로 소통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8/19 19:18
  • 수정일
    2014/08/19 19:1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아마존 대형 거북, 6가지 소리로 소통

조홍섭 2014. 08. 18
조회수 3803 추천수 0
 

아마존 대형 민물거북…이동, 둥지 짓기, 부화 중 새끼와도 활발히 소통

집단 번식 때 행동통일해 포식 위험 줄이고 번식지 정보 교환 기능 추정

 

C. Ferrara_Wildlife Conservation Society.jpg» '말하는 거북'으로 밝혀진 왕아마존강거북. 사진=카밀라 페라라, 야생보전협회

 

거북은 단단한 껍질에 기대어 장수하는 동물이다. 홀로 생활하며 어딘가 과묵한 느낌을 준다. 무리를 짓는 새나 포유동물처럼 활발하게 소통을 하는 동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통념을 뒤집는 발견이 나왔다. 아마존강 유역에 널리 분포하는 왕아마존강거북이 무리 사이에서 활발히 소리를 내며 의사소통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카밀라 페라라 야생보전협회(WCS) 브라질 지부 거북 전문가 등 연구진은 파충류학 저널인 <허피톨로지카>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2009~2011년 동안, 이 거북의 이동과 산란지에서 녹음한 소리를 분석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tu1.jpg» 우기에 강변에 모여 집단으로 번식하는 왕아마존강거북. 사진=열대림연구소(IFT)

 

왕아마존강거북은 우기에 홍수로 숲이 물에 잠기면 서식지를 떠나 강둑에 모여 집단으로 산란을 한다. 어미는 강변에서 새끼가 태어나길 기다렸다가 알에서 깨어난 새끼를 데리고 다시 물에 잠긴 숲으로 돌아간다.
 

연구진은 이들이 내는 소리를 이동 과정, 산란을 하러 강변에 모여 해바라기 하는 기간, 밤에 모래를 파 둥지를 짓는 과정, 알을 낳고 강변에서 기다릴 때, 태어난 새끼와 만날 때 등으로 나눠 녹음해 분석했다. 그 결과 이 강 거북은 6가지 다른 소리를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페라라 박사는 “거북은 매우 독특한 소리를 낸다. 그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이들의 행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파충류의 사회적 행동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라고 야생보전협회의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이 거북은 강물을 따라 산란지로 이동할 때 낮은 주파수의 소리를 냈다. 먼 거리에 있는 개체들이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또 번식지에서 거북이 내는 고주파 소리는 얕은 물과 공기에서 잘 전파된다.
 

tu2.jpg» 부화하는 왕아마존강거북. 새끼는 알속에서부터 소리를 내 일시에 알에서 깨어나도록 시기를 조정한다. 사진=열대림연구소(IFT)

 

암컷들은 어떤 곳에 둥지를 틀까 결정할 때 가장 다양한 소리를 냈다. 또 새끼는 알에서 부화해 나오기 전부터 소리를 냈는데, 이는 새끼가 부화해 나오는 시간을 통일시키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런 새끼의 소리에 대해 어미도 소리로 응답했다. 이는 새끼를 물가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또 연구과정에서 거북 어미와 새끼는 2달 이상 함께 다닌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 어미와 새끼 사이의 소리 녹음)
 

논문은 왕아마존강거북의 이런 사회적 행동이 포식자에게 잡아먹힐 가능성을 줄이고 둥지를 트는 암컷 사이의 정보 교환 기능을 지닌다고 짐작했다. 또 소리는 거북이 집단 산란할 때 행동을 통일하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덧붙였다.
 

왕아마존강거북은 길이가 80㎝까지 자라는 대형 민물 거북으로 아마존강 유역에만 서식하는데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놓여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amila Rudge Ferrara et.al., Sound Communication and Social Behavior in an Amazonian River Turtle (Podocnemis expansa), Herpetologica 70(2):149-156. 2014. doi:http://dx.doi.org/10.1655/HERPETOLOGICA-D-13-00050R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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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 개고생 아비들, 호로자식 한국 후손들

 
 
[손석춘 칼럼] 명량으로 지킨 나라 100여년간 말아먹은 호로자식들
 
입력 : 2014-08-18  15:47:58   노출 : 2014.08.19  17:16:38
 
손석춘 언론인 | 2020gil@hanmail.net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 한 걸 후손들이 알까모르것네.”
“모르면 호로 자식이제.”


관객 신기록을 날마다 경신하고 있는 영화 ‘명량’에서 가장 화제를 불러온 대사입니다. 어느 비평가는 감독의 ‘노골적 의도’가 보인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더군요. 이형은 어떠셨는지요. 저는 김한민 감독 쪽입니다. 물론, 의도는 보이지요. 하지만 의도 없는 영화 대사가 있기나 한 걸까요. 저에겐 이 부박한 시대에 그 투박한 정직함이 드문 미덕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그 대목을 평가하는 이유는 2014년을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호로자식’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아비도 모르는 자식’ 소리 들을 만큼 싹수없는 인간은 어느 때, 어느 곳이든 적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대화는 우리의 무뎌진 역사의식, 둔감한 사회의식을 단숨에 깨워줍니다. 

이순신. 

세계 해전사에서 그와 견줄 이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명장입니다. 영화 ‘명량’은 장군으로서 이순신만이 아니라 인간 이순신을 그려내는 데도 돋보였지요. 

물론, 이순신의 성취는 혼자만의 업적은 아닙니다. 장군을 도운 숱한 민중이 있었지요. 실제로 명량이 ‘울돌목’으로 불릴 만큼 바닷물 흐름이 빠른 곳임을 이순신에게 가르쳐준 이도 그곳에 터 잡고 오랜 세월 자자손손 이어온 어부였습니다. 이순신이 진격할 때 그 아래서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내 전함의 노를 저은 격군도 민중이었지요. ‘개고생’은 ‘어려운 일이나 고비가 닥쳐 톡톡히 겪는 고생’을 이르는 순우리말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바닷물에 산채로 수장됐을까요. 바로 그렇게 우리 선인들은, ‘개고생 아비들’은, 왜적을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강연 때마다 젊은이들에게 툭 던져온 질문이지만, 이순신을 낳은 조선의 해군은 그로부터 300여 년 뒤 정작 나라가 망할 때 무엇을 했던가요? 이순신과 그를 중심으로 뭉친 ‘개고생 아비들’이 애면글면 지켜낸 조선은 결국 다시 온 왜적에게 ‘정규 전쟁’도 없이 식민지로 전락했습니다. 

불편하겠지만 우리 진실을 마주합시다. ‘호로자식’들 아닐까요. 물론, 1890년대와 1900년대를 살아간 모든 이를 그렇게 ‘정죄’한다면, 그야말로 ‘호로자식’이겠지요. 골골샅샅에서 일어난 의병들이 있었으니까요. 문제는 바로 그 의병들을 살천스레 ‘비도’로 몰아친 자들입니다. 누구일까요. 무너져가는 조선왕조의 한 귀퉁이에서 ‘단물’을 빨아먹고 있던 권문세가들이고, 그들을 대변한 언론인들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독립신문이 의병을 ‘의병’으로 보도하지 않았지요. 독립신문은 의병을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무리’라는 뜻의 ‘비도’로 기사화했습니다. ‘비도 7놈을 죽였다’는 따위로 서슴없이 ‘놈’으로 몰아친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바로 그 신문의 창간기념일이 지금 우리가 기념하는 ‘신문의 날’입니다. 

이형. 생각해봅시다. 과연 이순신은 상상이라도 했을까요. 그가 온 몸으로 지켜낸 나라가 300여 년 뒤 바로 그 적들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을. 그것도 모자라 다시 분단된 채 남과 북이 300만 명을 서로 죽이는 전쟁을 벌일 사실을. 휴전 뒤에도 내내 적대시해오는 꼴불견을. 그나마 남쪽은 다시 동서로 나누어 명량의 개고생 한 후손들을 암암리에 차별하는 오늘을. 장군이 민중과 더불어 눈부시게 승전한 울돌목 바다 바로 옆에서 폭우는 물론 바람조차 불지 않던 청명한 날에 수백 여 명의 청소년들이 떼죽음을 당한 사실을. 그 진상을 규명하자는 일에 권력이 언구럭부리며 유족들을 조롱하는 오늘을. 

소리를 내어 우는 바다 길목, 울돌목. 명량의 그 바닷소리에서 2014년 오늘, 영화 명량이 1500만 명을 돌파하는 지금, 이순신의 피울음, 장군의 통곡을 듣는 까닭입니다. 

참으로 못난 후손들이지요. ‘아비도 모르는 자식들’이라는 1590년대 어느 민중의 ‘예언’이 적중해온 셈입니다.

이형. 명장의 심장이 멎은 뒤 400여년이 흘렀습니다. 나라가 동강 난 이 꼴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순신을 죽였던가요. 자신들의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려고 숱한 인재를 질시하고 모함해온 역사의 귀결이 아닐까요. 아니,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이념과 지역, 세대 차이를 떠나 모든 영역에 걸쳐 ‘이순신’을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라가 기우는 소리,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소리, 자살하는 비정규직·실직자들의 최후 소리, 저 육중한 진보세력이 ‘소리 없이 무너지는 소리’들은 또 어떤가요. 그 또한 울돌목의 피울음 아닐까요. 
 
   
▲ 손석춘 언론인
 
더구나 일본의 아베 정권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국립 서울대의 교수들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앞장서서 전파하는 나라에 우리 ‘후손’으로 살고 있습니다. 

청천하늘 잔별처럼 많았을 개고생 민중의 통곡을 담아 꾹꾹 눌러 다시 쓰는 까닭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 한 걸 후손들이 알까모르것네.”
“모르면 호로 자식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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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37일째' 김영오씨를 살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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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식 36일째,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모습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광장에서 단식중인 단원고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모습. 왼쪽이 단식 첫날인 7월 14일, 오른쪽은 단식 36일째인 지난 8월 18일 오후의 모습이다.
ⓒ 권우성/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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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37일째인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을 중지 시키는 것이다. 세월호희생자실종자생존자가족대책위 그리고 법률대리인인 대한변협 변호사들이 먼저 설득해야 한다. 세월호참사범국민대책회위의 입장도 궁금하다.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 광화문 현장에 있는 의사도 의학적 소견을 바탕으로 즉시 김영오씨의 강제 입원을 결정해야 한다. 

물론 여야가 수사권·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 특별법 통과에 합의하는 순간 김영오씨의 단식이 끝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재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김영오씨가, 또 다른 유가족이 국회에 가서 법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여야 간에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한 물밑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른바 '특검추천권'을 둘러싸고 국회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여야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취임한 이래 단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해 '식물국회'라는 오명에 빠져 있다. 또 지금 본회의를 소집하지 않으면 단원고 3학년생을 수혜자로 하는 대학입시특례법안도 시기를 상실해 더 이상 소용이 없다고 한다. 

'특검추천권' 문제만 정리되면 아무 문제 없는 걸까

세간에 알려진 대로 만일 특검법에 따른 '특검추천권'과 관련해 야당이 특검 후보를 한 명 더 추천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면, 세월호 특별법은 아무 문제 없이 일사천리로 통과되는 것인가. 그렇게 되면 그것이 유가족과 국민들이 청원했던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특별법에 근접하는 것이라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는 것인가. 

장담할 수 없다. 솔직히 특검법에 따른 특검추천권을 야당이 행사한다고 해서 유가족이 동의할지에 대해 자신할 수 없다. 꼭 야당이 행사하는 것이 옳다거나, 국민들이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확신도 없다. 그런데도 여야 협상은 마치 특검추천권이 핵심 쟁점인 것처럼 전해지고 있다.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물론 협상은 어렵다.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협상의 전략도 필요하고, 기술도 필요하다. 때로는 명분을 가지고 책상을 내리치거나, 뒤집을 수도 있어야 한다. 때로는 협상에 힘을 보태줄 우군을 움직이는 지혜도 필요하고, 인내력도 필요하고, 돌파력도 필요하다. 국회의원 의석수가 많다고 꼭 주도권을 쥐는 것도 아니고, 또 적다고 꼭 자신의 의견을 관철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어느 한 편이 힘의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면 협상은 좀처럼 성립되지 않는다. 힘과 힘, 논리와 논리의 순간적인 변화를 누가 더 빨리 장악하고, 최대한 유리한 지점에서 협상을 마무리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협상의 예술이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과 관련해서는 첫째도 유가족 의사, 둘째도 유가족 의사, 셋째도 유가족 의사임을 존중하는 게 옳다. 협상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라는 이야기다.

잘못 꿰어진 협상의 첫 단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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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당 이완구,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사진은 지난 7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세월호 특별법 처리 등을 논의하기 위한 여야 원내대표 정례회동을 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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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집단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과 관련해 유가족보다 더 철저한 이해관계를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협상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 여당이야 그렇다 치고 왜 야당은 처음부터 유가족 대표가 참여하는 3자협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의 전략적 판단 실책, 그리고 의원총회에서의 부결 등도 바로 협상의 구조를 잘못 짠 데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새정치연합 국회의원들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혔다거나 또 어떤 대안을 제시했는지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 협상의 구조, 협상안의 설계 등에서의 심각한 오류를 그대로 두고 '특검추천권'이라는 곁다리만 긁고 있는 한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대의정치의 양대 축인 여야가 유가족과 국민의 대의를 배제해 버린 '대의정치의 위기'를 현실로 인정하고 협상의 구조를 새로 설계해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의 내용 중 '특검추천권'은 극히 일부의 쟁점에 불과하다. 현실적으로도 특검법에 따른 특검추천권보다도 진상규명위원회에 수사권을 보장하는 특별법이 훨씬 더 철저한 진상규명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수사권을 포기하는 대신 야당이 특검추천권을 갖는다고 해서 수사권·기소권이 보장되는 진상규명특별법을 주장해온 유가족이 동의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김영오씨를 살리고, 세월호 특별법을 살리는 길

그런 상황에서 유가족을 배제한 또 한 번의 여야 협상이 또다시 유가족의 염원을 배신하는 결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더 이상 특검을 여당이 추천하느냐 야당이 추천하느냐는 문제로 국회를 공전 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완구·박영선 원내대표는 '특검추천권'에 매달릴 게 아니라 우선 여야·유가족대표 3자협상으로 유가족이 동의할 때까지 세월호 특별법 제정 협상을 하겠다는 원칙에만 합의하라. 그리고 세월호가족대책위, 범국민대책회의 등은 이를 계기로 김영오씨의 단식을 중지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비록 늦었지만 여야·유가족대표 3자협상으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의 과정을 세월호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 가족들의 치유 과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로써는 그것이 김영오씨를 살리고, 세월호 특별법을 살리고, 또 교착 국면에 빠진 국회를 정상화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택수 변호사는 민변 세월호특위 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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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핵개발사 다시 쓰기와 ‘최후 결전 ’ 예견

 
한호석의 개벽예감 <126>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8/19 [01:20]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1> 이 사진은 평안북도 녕변군 핵시설단지에 있는 흑연감속로 시설의 일부를 오래 전에 촬영한 것이다. 요즈음 녕변핵시설단지를 촬영한 위성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 미국은 쉬쉬하면서 안절부절하지 못하지만, 녕변핵시설단지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크게 확장되고 일신되어 왕왕 돌아가고 있다. 거기서 무기급 핵물질이 얼마나 생산되는지 외부에서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원래 북은 1961년에 녕변핵시설단지 공사에 착공하였고, 같은 해 9월 11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된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에서 북의 핵무기개발을 담당한 1세대 핵과학자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인 도상록 교수는 "조선이 원자력분야에서 실험과 개발을 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놀랍게도, 북은 이미 1960년대 후반에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핵보유국이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북의 핵개발사는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 자주민보

  

 

1960년대 후반 북은 이미 핵보유국이었다

 

분단 40년을 맞은 1985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수령님대에 핵개발을 완성하려고 한다. 이것은 나의 단호한 결심이다. 우리는 핵개발로 조국통일을 시작하고, 핵으로 조국통일을 총화하려 한다.” 이 인용문은 1985년 당시 평안북도 녕변핵시설단지 우리늄정련공장 기동예술선전대에서 작가 겸 연출가로 일하면서 ‘핵으로 조국통일의 대문을 열자’라는 제목의 합창시를 창작했다는 탈북자가 2004년 2월 28일 <미래한국> 기자와 대담한 기사에 들어있다. <사진 1>


북의 기동예술선전대 작가가 어떻게 북측 최고영도자의 대외비발언에 대해 알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북의 작가들이 북측 최고영도자의 사상과 의도를 인민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은 최고영도자의 지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위의 인용문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위의 인용문에 담긴 깊은 뜻을 알려면 북의 핵무기 개발에 관한 심층정보가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핵탄을 만들려면 고폭실험을 실시해야 하는데, 북이 고폭실험을 실시한 때는 언제였을까? <연합뉴스> 2013년 2월 12일 보도에 따르면, 북이 고폭실험을 실시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후반부터라고 한다. 북이 1980년대 후반에 고폭실험을 실시한 것은 그 무렵에 이미 핵탄을 만들어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소련 국가안보위원회(KGB) 의장 블라디미르 크루취코프(Vladimir Kyuchkov)가 1990년 7월에 진행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제28차 회의에 제출한 보고서 ‘#363-k’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보고서에서 북이 “첫 원자폭발장치(first atomic explosive device)를 완성하였다”고 언급하였다. 


당시 소련 국가안보위원회 의장이 보고서에서 언급한 북의 ‘첫 핵폭발장치’는 핵탄미사일 탄두부에 장착하는 핵탄두(nuclear warhead)가 아니라, 초기형태의 핵탄이었다. 초기형태의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하는 고도의 기술을 개발해야 핵탄두를 만들게 되는데, 북은 언제 핵탄두를 완성하였을까?


미국의 조선인민군 연구가인 조셉 버뮤디즈(Joseph S. Bermudez)는 ‘제인스정보평론(Jane's Intelligence Review)’ 1999년 7월호에 실린 글에서 북이 1993년 10월 20일 평안남도 평원군 석암리 염소골에서 핵탄두 기폭장치를 실험하였다고 한다. 또한 <아전스 프랑스 프레스(AFP)> 1994년 2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고위관리 블라디미르 쿠마체프(Vladimir Kumachev)는 북이 핵탄두를 보유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하였다고 한다. 이런 정보를 종합해보면, 북은 1993년부터 1994년 사이에 소형화, 경량화된 핵탄두를 개발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고위관리가 북의 핵탄두 보유사실을 언급한 때로부터 5년이 지난 1999년 당시 파키스탄 핵개발을 지휘한 총책임자였던 압둔 카디르 칸(Abdul Q. Khan)이 방북하였을 때, 북은 그에게 핵탄두 실물까지 보여주며 핵탄두 설계기술을 전수해주었다. 이에 관해서는 <워싱턴 포스트> 2009년 12월 28일부에 실린 칸의 회고담에서 알 수 있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당시 북을 방문 중이던 칸이 평양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산 중의 지하시설을 방문하였을 때, 북측 관계자들은 그에게 “완성된 핵탄두(finished nuclear warheads)” 세 발의 부품들이 담긴 상자를 보여주면서 그 핵탄두들은 한 시간 안에 미사일 탄두부에 장착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자리에서 북측 관계자들은 칸에게 핵탄두 설계법에 관해 설명해주면서 핵탄두 핵심부품들이 들어있는 상자 6개를 더 보여주었고, 핵탄두 한 발에 설치되는 “64개의 뇌관/기폭장치들”이 들어있는 또 다른 상자 6개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다른 공업제품들과 마찬가지로, 핵탄두도 제조기술수준에 따라 저급핵탄두로부터 고급핵탄두에 이르기까지 차등으로 분류되는데, 1999년에 북이 칸에게 실물을 보여준 핵탄두는 어느 등급이었을까?


어느 나라에서나 핵개발은 국가기밀사항에 속하므로, 북의 핵개발과정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는 알 수 없지만, 외부인으로서 북의 핵탄에 관한 정보를 가장 자세히,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압둘 카디르 칸의 회고담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2011년 9월 15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팍스 뉴스(Fox News)> 온라인판에 칸의 ‘자백서(Confession)’ 전문이 실렸는데, 그 ‘자백서’에 따르면, 북은 칸 자신과 미르자 박사(Dr. Mirza)에게 파키스탄 핵탄보다 기술적으로 더 진보한 “완벽한(perfect)” 핵탄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에서 핵개발을 이끄는 최고 수준의 핵과학자들이 북의 핵탄을 직접 관찰하고 그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자기들이 만든 핵탄과 비교하여 북의 핵탄이 완벽하다고 평가했으니, 북의 핵탄제조기술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위에 열거한 정보를 살펴보면, 북은 핵무기 개발을 시작하였던 1985년으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에 완벽한 기술로 제조된 핵탄두를 다량 보유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북이 핵개발에 착수한 때로부터 불과 10년 남짓한 기간에 숱한 과학기술적 난제를 해결하고 ‘완벽한 핵탄두’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칸의 ‘자백서’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자백서’에는 칸이 파키스탄 핵기술자들에게 핵개발기술을 전수해준 북의 핵공학기술진 대표자와 여러 차례 만나 협의하는 장면이 서술되었는데, 칸은 그 대표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강 장령(Gen. Kang)”이라고만 적었다. <워싱턴 포스트> 2011년 7월 6일 보도기사에 따르면, 칸이 만난 그 장령은 강태연(Kang Tae Yun) 소장이다. (Yun은 윤으로도 읽을 수 있으므로 강태윤일 수도 있다.) ‘자백서’ 원문의 그 대목을 인용하면 이렇다. “강 장령의 상관에 따르면, 북은 코리아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에 러시아로부터 플루토늄 200kg과 핵무기 설계도를 받아 핵무기 몇 발(a few weapons)을 제작하였다.”


위의 인용문이 들어있는 문맥을 앞뒤로 읽어보면, 강태연 소장의 상관이 칸을 직접 만나 위와 같은 사실을 말한 것은 아니고, 강태연 소장이 자기 상관으로부터 들은 사실을 칸에게 말해준 것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북과 파키스탄은 핵개발부문에서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북은 파키스탄 핵과학자들을 초청하여 핵탄두 실물을 보여주고 핵탄두제조기술과 미사일제조기술을 전수해주었고, 파키스탄은 자기 영토에서 북이 비공개핵실험을 실시하도록 허용하였을 만큼 서로 협조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파키스탄에 파견된 북의 핵공학기술진 대표자와 파키스탄 핵개발 총책임자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핵관련 비밀정보를 교환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북이 1955년경에 소련으로부터 무기급 플루토늄 200kg과 핵무기 설계도를 받아 핵탄을 만들었다는 위의 인용문은 사실로 보인다. 무기급 핵물질과 핵무기 설계도를 다른 나라에 넘겨주는 핵기술지원에는 비밀합의 체결절차가 따르는 법인데, 1955년경 북과 소련도 그런 내용의 비밀합의를 체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중국이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였던 시기에 그 사업을 지휘한 네룽전(聶榮臻) 중국인민해방군 원수가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소련측과 ‘새로운 무기 및 군사기술장비 생산과 종합적인 원자력산업 발전에 관한 합의’를 채택한 때는 1957년 10월이었다. 이 비밀합의를 채택함으로써 중국은 핵무기 개발을 추진할 수 있었다.


1957년부터 소련의 핵기술지원을 받으며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중국이 22킬로톤급 핵탄을 터뜨린, 자국의 첫 핵실험을 실시한 때가 1964년 10월 16일이었는데, 중국보다 조금 앞선 1955년경부터 소련의 핵기술지원을 받으며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북도 1960년대 중반에 핵탄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중반 북에서 핵탄을 만들었던 핵전문가들은 1956년부터 소련의 모스크바공학물리연구소, 바우만고등기술대학, 모스크바에너지연구소에서 각각 공부하고, 두브나(Dubna)와 오브닌스크(Obninsk)에 있는 핵과학연구시설들에서 현장실습까지 마친 300여 명 이상의 우수한 북측 1세대 핵과학자들이었다. 조셉 버뮤디즈가 ‘제인스정보평론’ 1994년 2월호에 실린 글 ‘북코리아의 핵기반시설(North Korea's Nuclear Infrastructure)’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이 함경북도 길주군에 ‘원자무기훈련소’를 설치한 때는 1958년 1월이었는데, 그 때 벌써 핵탄사용훈련을 실시하였다니 놀라운 일이다.


주목하는 것은, 1955년경 소련으로부터 무기급 플루토늄 200kg과 핵무기 설계도를 입수한 북이 그것을 가지고 핵탄을 얼마나 많이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미국의 핵전문가들은 북이 녕변핵시설단지에서 추출한 무기급 플루토늄 40kg으로 핵탄 약 10발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는데, 그런 계산범에 따르면 북은 이미 1960년대 후반에 핵탄 약 50발을 보유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1960년대 후반 북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 핵보유국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북의 핵개발사는 고쳐 쓰여야 한다.


1997년 뉴욕에서 출판된, 미국의 역사학자 부르스 커밍스(Bruce Cumings)의 책 ‘코리아의 양지 바른 곳(Korea's Place in the Sun)’에 따르면, 1957년 8월 백악관은 ‘국가안보문서 5702/2호’에서 미국 핵무기를 남측에 배치하는 조치를 결정하였으며, 1995년 뉴욕에서 출판된, 미국의 분석가 마이클 마자(Michael J. Mazaar)의 책 ‘북코리아와 핵탄(North Korea and the Bomb)’에 따르면, 미국은 1958년 초부터 남측에 핵포탄, 핵탑재미사일, 핵폭탄, 핵지뢰를 배치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미국의 집중적인 핵위협과 핵공갈에 맞서 북이 자체 기술로 제작한 핵탄 약 50발을 보유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리고 1969년 미국군 정찰기 격추사건이 일어났을 때, 만일 미국이 북에게 핵공격을 감행했더라면, 북도 주한미국군기지들과 주일미국군기지들을 핵보복공격으로 파괴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북이 1960년대 후반에 소련의 기술지원으로 제조한 핵탄 약 50발은 북이 1999년에 칸에게 보여준 소형화, 경량화된 핵탄두가 아니라 1950년대 핵기술로 만든 크고 무거운 핵탄이었다. 2001년 11월 1일 미국의 분석가 대니얼 핑크스턴(Daniel A. Pinkston)이 청취한 탈북자의 진술에 따르면, 김일성 주석은 1966년 또는 1967년에 미사일 탄두부에 장착할 핵탄두를 개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미국의 분석가들인 로벗 노리스(Robert S. Norris), 윌리엄 아킨(William N. Arkin), 월리엄 버(William Burr)가 공동집필하여 ‘원자과학자휘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1999년 11월/12월 합본호에 발표한 ‘그것이 있었던 곳(Where They Were)’이라는 제목의 논문에 따르면, 1967년 중반 미국은 핵탄 약 3,200발을 태평양지역에 배비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약 2,600발은 남측과 오키나와에 배비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미국이 압도적인 핵무력으로 대북핵공격을 노리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미국으로부터 그처럼 집중적인 핵위협과 핵공갈을 받던 북이 그에 맞서 1960년대 후반에 이미 핵탄개발에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기존 핵탄을 소형화, 경량화한 핵탄두개발을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분단 40년을 맞은 1985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는 핵개발로 조국통일을 시작하려 한다”는 “단호한 결심”을 표명하면서 언급한 핵개발은 1950년대 핵기술로 오래 전에 만들었던 핵탄과 다른, 새로운 핵기술로 신형 핵탄을 개발한다는 뜻이었고, 그런 신형 핵탄을 만들어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는다는 뜻이었다. 북은 이미 1960년대 후반에 핵보유국이었으므로, 1985년으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에 완벽한 기술로 제조된 신형 핵탄두를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사진 2> 이 사진은 파키스탄 펀잡(Punjap)주의 카후타(Kahuta)에 있는 핵연구단지인 칸연구소 정문을 촬영한 것이다. 그 곳의 지명을 따서 카후타연구소라고도 불린다. 바로 이 곳에서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 총책임자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국책사업을 지휘하였고, 바로 이 곳에서 파키스탄 핵과학자들은 1993년과 1994년 사이에 북이 파견한 핵공학기술진으로부터 핵탄두제조기술과 미사일제조기술을 전수받았다. 중국과 같은 시기에 핵개발에 착수한 북은 다른 핵보유국에게 관련기술을 전수해줄 만큼 세계적인 기술수준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1990년대에 미국의 감시를 따돌리고 북으로부터 핵탄두제조기술과 미사일제조기술을 전수받아 파키스탄의 핵무력을 증강시킨 압둘 칸은 미국의 미움을 받고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가택연금을 당했고, 당시 핵무력 증강의 군부책임자였던 무샤라프도 나중에 미국의 미움을 받고 대통령직에서 쫓겨나 반역죄로 법정에 끌려나갔다.     © 자주민보

 

 

파키스탄 핵기술자들을 현지에서 가르친 북의 핵공학기술진 

 

1950년대 중반부터 오랜 기간 극비로 추진되었던 북의 핵개발에 관해 정보를 거의 갖지 못한 국제사회는, 녕변핵시설단지에 건설한 흑연감속로를 가동하여 추출한 무기급 핵물질로 플루토늄핵탄 약 10발을 만든 북이 언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우라늄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를 만들었고, 그 원심분리기를 설치한 우라늄농축시설을 녕변핵시설단지에 건설하여 현재 가동하는 중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정보부족에 빚어낸 착오다. 국제사회가 알지 못하는 것은, 북이 처음부터 두 종류의 핵탄을 동시에 만들기 위한 핵무기 개발에 달라붙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두 종류의 핵탄이란 우라늄핵탄과 플루토늄핵탄이다.


북은 2009년 6월 13일에 발표한 외무성 성명에서 우라늄농축이 시험단계에 들어섰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북측 외무성이 그 성명을 발표한 시점보다 조금 앞선 2009년 5월 초순 미국 국가정보국장실(ODNI)은 미국 연방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이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다고 보는 미국 정보기관 일부인사들의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북의 우라늄농축은 그런 공식발표내용과 달리 아주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미래한국> 2006년 10월 21일부에 실린 탈북자의 회고담에 따르면, 그가 1985년 8월 인민군에서 제대하여 기동예술선전대에서 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던 시기에 작품창작을 위해 열람하였던 핵개발과 관련된 대외비문건들 가운데는 “북의 핵개발에서 가장 큰 성과가 우라늄농축기를 주체화한 것”이라는 김일성 주석의 평가가 들어있는 문건도 있었다고 한다. 위와 같은 회고담은 북이 이미 1985년 이전에 우라늄농축 원심분리기를 자체 기술로 제작하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북은 1985년 이전에 언제쯤 우라늄농축 원심분리기를 만들었을까? 이에 대해 정확히 말해주는 자료는 찾을 길 없지만, 북이 1962년 1월 소련으로부터 받은, 고농축우라늄을 원료로 쓰는 2메가와트급 실험용 원자로를 녕변핵시설단지에 설치하는 작업을 끝마친 때가 1965년 6월 중순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북은 1967년 이후 그 우라늄원자로의 성능을 4메가와트급으로, 8메가와트급으로 차츰 강화시켜나갔는데, 이것은 북이 이미 1960년대 후반에 우라늄농축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처럼 1960년대 후반에 우라늄농축기술을 보유하였던 북은 그 기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1990년대 중반에 기존 우라늄핵탄보다 기술적으로 더 발전된 신형 우라늄핵탄을 제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해서는 아래와 같은 정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압둘 카디르 칸의 ‘자백서’에 따르면, 1993년부터 1994년까지 기간 중 어느 시점에 북이 파키스탄에 파견한 핵공학기술진이 파키스탄 핵연구단지에 머물렀는데, 북의 핵공학기술진은 그곳에서 원심분리기와 그 부품들을 제작, 조립하는 파키스탄 핵기술자들을 “가르쳤다(instruct)”는 것이다. <사진 2>


당시 파키스탄의 우라늄농축기술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파키스탄 핵기술자들은 이전에 P-1 원심분리기를 자체로 제작하였던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신형 P-2 원심분리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북이 파견한 핵공학기술진이 그처럼 높은 수준의 우라늄농축기술을 가진 파키스탄 핵기술자들을 현지에서 가르쳤다면, 이미 그 무렵 북의 우라늄농축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워싱턴 포스트> 2009년 12월 28일 보도기사와 압둘 카디르 칸의 ‘자백서’ 내용을 종합하면, 1993년부터 1994년까지 기간 중 어느 시점에 북이 파견한 핵공학기술진은 파키스탄이 만든 P-1 원심분리기 20기와 P-2 원심분리기 4기를 달라고 요청하여 귀국할 때 가져갔다고 한다.


이런 사실에 주목한 미국의 분석가들은 북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농축기술을 전수받고 나서 우라늄농축을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지만, 그런 추정은 빗나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위에서 언급한 칸의 ‘자백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백서’에 따르면, 당시 파키스탄에 파견된 북의 핵공학기술진은 무기급 핵물질을 만드는 고농축우라늄 생산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고농축우라늄 생산설비 설계도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파키스탄이 만든 원심분리기만 귀국할 때 가져갔다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고농축우라늄 생산기술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은 북의 핵공학기술진이 귀국할 때 이상하게도 원심분리기만 가져간 것은, 북이 자체로 만든 원심분리기 성능을 개량하여 경수로에 들어가는 저농축우라늄을 생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북의 핵공학기술진이 파키스탄 원심분리기를 가져가기 훨씬 전에 북은 이미 독자적으로 원심분리기를 만들었고, 농축우라늄을 생산하였으며, 고농축우라늄을 가지고 우라늄핵탄도 만들었다.


미국의 분석가인 데이빗 올브라이트(David Albright)는 2010년 10월 19일 미국 워싱턴 디씨에서 진행된 토론회에서 압둘 카디르 칸과 은밀히 핵거래를 해오다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에 포섭된 스위스 기술자 프리드릭 티너(Friedrich Tinner)와 그의 두 아들이 2004년 5월 스위스에서 사법당국에 체포되었을 때, 스위스 당국자들은 그 피체자들의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에서 아주 정교하게 작성된 신형 핵탄 설계도를 발견하였는데, 그 설계도가 어느 나라에서 작성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신형 핵탄 설계도는 1999년에 방북한 칸에게 북이 실물로 보여준 바로 그 핵탄의 설계도인 것이다. 북으로부터 신형 핵탄 설계도를 받은 칸은 자기의 핵거래 대상자인 티너에게 그것을 넘겨주었다가 스위스 사법당국에게 압수당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이 파키스탄에게 제공한 신형 핵탄 설계도가 우라늄핵탄 설계도라는 사실이다. 1998년 5월 30일 북이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사막 핵실험장에서 비공개핵실험을 실시할 때 사용한 핵탄은 플루토늄핵탄이었는데, 파키스탄에게는 우라늄핵탄설계기술을 전수해준 것이다. 북은 그 동안 우라늄핵탄만 만들어온 파키스탄에게 더욱 발전된 우라늄핵탄설계기술을 전수해주었던 것이다. 

 

 

핵개발로 통일의 전환국면 열어놓으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상은 절반 정도 실현되었다 

 

이 글의 첫머리에 인용한 대외비발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반도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북측 언론매체들은 북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미국의 핵위협과 핵공갈에 맞설 강력한 억제력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핵무기를 가져야 했다는 대응적 핵개발론을 거론해오고 있지만, 이미 30여 년 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반도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였다는 사실을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북의 핵무력이 미국의 핵위협과 핵공갈에 맞서는 억제력이라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그런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위의 인용문에서 명백히 밝힌 것처럼 북의 핵무력이 한반도 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공세력이라는 사실이다. 북이 핵무력을 보유하게 된 근본목적이 한반도 통일 실현이라는 점에서, 북의 핵무력은 러시아나 중국의 핵억제력과 성격을 달리 하는 핵공세력인 것이다. 


그렇다면 핵공세력을 갖게 된 북은 그 힘을 가지고 한반도 통일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려고 하였을까?


이 글의 첫머리에 인용된 것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85년에 핵무기 개발과 관련하여 언급한 비공개발언에는 “우리는 핵개발로 조국통일을 시작하고, 핵으로 조국통일을 총화하려 한다”는 내용이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는 핵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하려 한다”고 말했다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지만, “우리는 핵개발로 조국통일을 시작하고, 핵으로 조국통일을 총화하려 한다”는 말은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의미심장한 뜻을 지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개발로 조국통일을 시작한다”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은 북의 핵개발이 두 가지 근본적인 정세변화를 일으켜 한반도 정세가 통일실현단계에 들어서게 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말하는 두 가지 근본적인 정세변화 가운데 첫 번째 정세변화는, 미국이 다른 핵보유국에 대해 감히 전쟁을 도발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북이 핵개발로 미국의 대북전쟁도발의지를 꺾어놓는 변화를 뜻한다.  


그러나 북의 핵개발은 미국의 대북전쟁도발의지를 억제할 수는 있었으나 완전히 꺾어놓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미국은 자기의 핵무력만 믿고, 대북핵전쟁연습을 지속적으로 감행해오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은 북의 핵무력이 자기를 멸망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정보를 파악한 뒤에도, 그런 사실을 극구 숨기는 한편, 북의 핵무력을 속으로 두려워하면서도 겉으로는 얕보는 척하는 기만술을 펼치고 있다. 핵대국의 체면을 유지하여야 자기의 추종국들을 거느릴 수 있는 궁색한 처지에서 미국은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사진 3> 이 역사적인 사진은 2000년 10월 23일 오후 3시 7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머물던 평양의 백화원초대소에서 그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회담은 중간에 10분 휴식시간을 두고 세 시간 동안이나 진행되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그 회담에서 "두 나라 사이에서 논쟁이 없이, 모든 게 다 잘 되었습니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특사로 2010년 10월 10일 백악관을 방문한 조명록 차수가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회담한 것에 대해 사의를 표하였다. 당시 10월 12일 평양과 워싱턴 디씨에서 각각 발표된 조선-미국 공동성명에 미국 대통령의 방북일정이 명기될 만큼 북미관계는 격동적 전환국면에 도달해 있었다. 만일 미국 내부의 방해세력들이 클린턴의 방북을 극력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클린턴 대통령에게 요구한 북미담판이 2000년 말에 성사되었을 것이고, 지금 우리는 6.15 공동선언이 실현된 전혀 다른 세상에 살게 되었을지 모른다.     © 자주민보


위에서 말한 두 가지 근본적인 정세변화 가운데 두 번째 변화는 북미핵협상을 추진하는 것이다. 북은 자기가 핵개발을 추진하는 경우, 핵확산금지를 가장 중대한 과업으로 여기는 미국이 북의 핵개발에 크게 자극을 받아 대북핵협상에 응할 것이고, 일단 미국이 북미핵협상에 응하면 그 협상기회를 이용하여 미국을 북미담판까지 끌어갈 수 있으리라고 예견하였던 것이다. <사진 3>  
그러나 북의 핵개발이 북을 상대조차 하지 않던 미국을 북미핵협상으로 끌어내는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였으나 북미담판까지 끌어내지는 못하였다. 북이 요구하는 북미담판에 끌려나가는 것은 북에게 정치적으로 굴복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 미국은 북미담판을 요구한 북의 초강경한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속 없는 각종 다자회담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북미핵협상을 끊임없이 공전시키다가 결국 9.19 공동성명마저 외면하고 말았던 것이다.


원래 북은 미국과 맞붙은 ‘최후 결전’에서 승리하여야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판단은 일제식민지강점기에 이룩된 반제민족해방운동의 오랜 전통을 지닌 북에서 ‘움직일 수 없는 진리’로 인정되었다. 그런 까닭에 지난 시기 북은 미국과 전쟁을 하지 않고 북미담판으로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시기 미국과 전쟁을 하지 않고 ‘최후 담판’에서 승리하여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북이 미국을 북미핵협상에 끌어내고 ‘최후 담판’에로 끌어가려고 하였던 정책전환의 배경에는 급격한 정세변화가 놓여있었다. 1990년대에 북에 휘몰아쳤던 세계사회주의진영 붕괴의 파장과 북의 건국 이래 가장 혹심하였던 ‘고난의 행군’과 ‘사회주의강행군’의 연속적인 시련이 그것이다. 그처럼 극도로 불리한 정세 속에서 북의 핵무력이 수행해야 하였던 당면목표는 북에서 말하는 ‘사회주의수호전’의 승리였고, ‘사회주의수호전’에서 승리할 때까지 북은 대미협상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2006년 10월 9일 북이 실시한 제1차 지하핵실험은 북이 ‘사회주의수호전’을 승리적으로 결속하였기 때문에 대미협상기조를 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음을 말해주는 사변이었다.


위에 서술한 내용을 종합하면, 핵개발로 한반도 통일의 전환국면을 열어놓으려고 하였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상은 절반 정도 실현되었고, 나머지 절반을 가득 채워 한반도 통일위업을 완성하는 것은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북이 추진해온 제1방도와 제2방도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이 글의 첫머리에 인용한 대외비발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으로 조국통일을 총화하려 한다”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은 북이 핵무력으로 한반도 통일의 실현과정을 마무리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북에서 나온, 통일방도에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분석하면, 북이 두 가지 통일방도를 추진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추진해온 두 가지 조국통일방도들 가운데서 제1방도는 미국과 맞붙은 ‘최후 결전’에서 승리한 뒤에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남측 정권과 공동으로 그 선언을 전면 이행함으로써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들이 추진해온 두 가지 조국통일방도들 가운데서 제2방도는 북이 ‘최후 결전’까지 가지 않고 북미담판에서 승리하여 주한미국군을 철군시킨 뒤에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남측 정권과 공동으로 그 선언을 전면 이행함으로써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이다.


제1방도는 북미전쟁을 통한 통일방도라고 볼 수 있고, 제2방도는 북미담판을 통한 통일방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위에서 논한 것처럼, 핵확산금지를 가장 중대한 과업으로 여기는 미국은 북이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음을 뒤늦게 알고 크게 자극을 받아 다급한 김에 덜컥 대북핵협상에 응하기는 하였지만, 북이 요구하는 북미담판에 끌려나가는 것이 북에 대한 정치적 굴복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였기 때문에 북미담판을 요구하는 북의 압박에서 벗어나려고 실속 없는 각종 다자회담을 늘어놓으며 북미협상을 끊임없이 공전시키다가 결국 9.19 공동성명마저 외면하고 말았다. 따라서 북이 추진해오던 제2방도(북미담판을 통한 통일방도)는 더 이상 추진할 수 없게 되었다. 한반도 통일문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2009년 7월 16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났다”고 말한 것은 북미담판을 통한 통일방도를 더 이상 추진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하는 발언이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북이 추진할 통일방도는 미국과 맞붙은 ‘최후 결전’에서 승리한 뒤에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려는 남측 정권과 공동으로 그 선언을 전면 이행함으로써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제1방도밖에 남지 않게 되었음이 자명해진다. 


제1방도를 실현하려는 북이 세계 최대 핵대국인 미국과 맞붙은 ‘최후 결전’에서 승리하려면, 미국 수도권을 비롯한 미국 본토 전역을 각종 핵타격수단으로 타격할 수 있는 강력한 첨단핵무력을 가져야 하였다. 북이 수직갱발사식 대륙간탄도미사일과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전략잠수함이 수중에서 발사하는 핵타격미사일, 부분궤도폭격체계(FOBS), 전자기파(EMP)공격체계 같은 각종 핵타격수단을 가져야 미국 수도권을 비롯한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고, 그런 강력한 핵무력을 가져야 미국의 핵공격의지를 꺾어놓을 수 있는 것인데, 북이 이미 그런 첨단핵무력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전에 발표한 나의 글들에서 상세히 논증한 바 있다.


2012년 1월 1일 북에서는 새로운 최고영도자가 이끄는 ‘김정은 시대’가 개막되었는데, 한반도 통일문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김정은 시대’는 북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통일방도인 제1방도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과 ‘최후 결전’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북의 최고영도자로 추대된 김정은 제1위원장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에게 넘겨준 제1방도를 실현하기 위한 ‘최후 결전’을 2012년 10월부터 2013년 4월까지 기간에 실제로 단행하려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사진 4> 2012년 8월 2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참석한 선군절 경축연회가 열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경축연회 연설에서 '조국통일대전'이 임박하였음을 사상 처음 공식 언명하였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조선인민군은 발사명령, 돌격명령만 내리면 즉각 전 전선에 걸쳐 전면타격을 개시할 수 있는 준전시상태에 돌입하였다.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상황은 2013년 4월까지 지속되었다. 이처럼 긴박한 상황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에 추진하였던 제1방도와 제2방도 가운데 제2방도 추진과정이 미국의 거부로 중지된 가운데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제1방도를 강력히 추진하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에 '최후 결전'이 일어날 가능성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 자주민보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2년 8월 25일 선군절 경축연회에서 “지금 이 시각 나의 명령을 받은 영용한 인민군장병들은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의 무모한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전투진지를 차지하고 적들과의 판가리결전을 위한 최후돌격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최후 결전’을 단행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로부터 약 두 달 뒤에 조선인민군은 실제로 준전시태세에 돌입하였다. <사진 4>


이와 관련하여 남측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실을 알려준 것은 미국의 관영매체인 <자유아시아방송(RFA)>이었다. 2012년 11월 7일 그 방송의 보도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10월 20일경 사실상 준전시상태에 돌입하였고, 11월 3일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공동명의로 작성된 준전시상태에 관한 명령서가 북측 전역에 하달되었다고 한다.


당시 북에서 선포한 준전시상태는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인가? <동아일보> 2013년 8월 22일 보도에 따르면, 북은 2012년 8월 ‘준전시사업세칙’을 개정하였는데, 미국과 남측이 북의 최고존엄을 모독한 경우, 대북군사도발을 감행한 경우, 북의 최고이익을 침해한 경우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한다고 규정했다고 한다. 그런 규정에 따라 북은 ‘최후 결전’에 즉각 돌입할 수 있는 준전시상태를 2012년 11월 3일에 선포하였던 것이다.


만일 사태가 준전시상태보다 더 악화되는 경우 북은 즉각 전시상태로 넘어가게 되는데, 전시상태 선포에 관해서는 북이 2004년 4월에 제정하고 2012년 9월에 개정한 ‘전시사업세칙’에 밝혀져 있다.


그런데 당시 미국과 남측은 북이 2012년 10월 20일경 사실상 준전시상태에 돌입하였고, 11월 3일에는 준전시상태를 공식 선포하였다는 정보를 은폐하였기 때문에 남측 국민들은 알지 못하였으며, 더욱이 당시 대선열기에 휩싸인 남측 국민들의 눈에는 긴박한 군사상황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선열기에 휩싸인 남측 국민들이 긴박한 군사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것과는 대비적으로, 미국군과 한국군은 준전시상태에 돌입한 북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다급한 군사행동을 연이어 취하였다. 이를테면, 2014년 10월 24일 미국은 자국 잠수함들 가운데 가장 큰, 수중배수량 18,000t급 핵추진잠수함 오하이오호(USS Ohio)를 부산항에 급파하였고, 10월 26일부터 11월 2일까지 군산공군기지에서는 ‘맥스 썬더(Max Thunder)’라는 명칭의 한미공중연합훈련을 이전보다 더 강화하여 실시하였다. 11월 27일 청와대에서는 전군 지휘관회의가 진행되었고, 같은 날 합동참모본부에서는 전군 작전지휘관회의가 진행되었다. 12월 6일과 7일 미국은 남측 정부관리들을 참가시킨 가운데 ‘확장억제수단운용연습’이라는 명칭으로 한반도에서 핵전쟁준비태세를 점검하는 도상훈련(tabletop exercise)까지 실시하였다.


이와 같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상황은 2013년 4월까지 지속되었는데, 그 이후에도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상황이 사라진 것은 아니며, 일정한 잠복기를 거치고 있는 중이다.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에 전쟁위기상황이 어떻게 재발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2014년 8월 이후 북에게는 ‘최후 결전’을 단행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지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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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사라진 7시간’ 오바마는 몽땅 까발렸는데

 
‘박근혜 사라진 7시간’ 오바마는 몽땅 까발렸는데
 
세월호 참사 당일,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대통령의 직무유기
 
임병도 | 2014-08-18 08:53:5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던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수백 명의 목숨이 죽어가던 그 시간에 대통령으로서 그녀가 도대체 어떤 조치를 했는지에 대한 당연한 의혹 제기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에 대해 밝히라는 여론에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초별로 다 까발리는 게 온당하다고 보나요? 지구상에 어떻게 그런 나라가 있어요?"라며 격하게 반응했습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세상에 오바마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 몇시 어디에 있는 것까지 소상히 밝히라는 것이 온당한 주장인가요. 한 나라의 국가권수를.엄청난 얘기 아닙니까?"라며 갑자기 오바마 대통령을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행적을 까발리는 나라, 여기 있습니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오바마 대통령을 거론했으니 아이엠피터가 알려드리겠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그날 무엇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일정표입니다. 

백악관은 오전 10시를 시작으로 1시, 1시35분,20시30분, 3시10분.3시45분,5시45분,6시45분,7시20분까지 거의 시간대별로 오바마 대통령의 스케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청와대와 백악관이 공개하는 대통령 일정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던 4월 16일 그 주의 일정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4월 14일 오전 특성화고 현장 방문, 4월 15일 국무회의 4월 1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 4월 17일 세월호 사고 현장 방문, 4월 19일 4.19혁명 기념 4.19 묘지참배 일정만 공개되어 있습니다. 

이에 반해 백악관은 4월 14일 월요일부터 4월 18일 금요일까지 오바마 대통령이 누구와 미팅을 하고 회의를 하고 어떤 행사에 참석했는지 그 일정을 시간대별로 정확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달랑 한 개의 일정을 공개한 청와대와 시간대별로 주요 일정을 모두 공개한 백악관, 왜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에 자꾸 매달리는지 그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통령 동선까지도 공개하는 미국'

한국과 비교하면 미국은 대통령의 일정을 홈페이지 자체만으로 알 수 있도록 공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확히 어디서 무엇을 하고 하는지 그 장소와 동선까지 모두 공개한다는 점입니다.

 

 

 


7월 29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정을 보면 장소와 동선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북쪽 출입구 팜룸에서 출발한 오바마 대통령은 몇 시에 앤드류 공항을 출발하고 몇 시에 캔사스에 도착하는지 나와 있습니다. (4월 16일 일정에서도 백악관에 도착한 시간이 정확히 공개되어 있다.)

국가 안보라는 이유로 대통령의 동선을 절대 알려줄 수 없다는 한국과 다르게 미국은 대통령이 언제 백악관을 출발하고 언제 도착하는지 낱낱이 공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보다 더 중요하고 위험한 인물이라서 그럴까요?

미국 백악관은 언론에 공개할 수 없는 행사나 미팅이라도 그 일정을 공개하고 비공개라고 표기해놓습니다. 

언론에 공개되는 풀 기자단
 1의 경우도 어느 매체가 어떤 분야에서 취재했는지 상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백악관 안과 외부 행사에 동행 취재한 기자단의 소속 언론사를 밝힘으로 취재 공정성에 대한 판단을 국민이 하도록 공개해준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일정을 낱낱이 공개하다 보니 부작용도 있습니다.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 기간에 세계은행 김용 총재와 골프를 친 일정을 공개했습니다.

문제는 당시 미국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미주리주 흑인사망 소요 사태가 거세지고 있는 시점에서 아무리 휴가라도 골프를 친 사실에 대해 미국 국민과 언론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의 일정을 공개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동시에 대통령이 자신의 직무를 정확히 수행하고 있는지를 국민이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이런 면에서 한국 대통령은 아예 국민의 알 권리와 판단의 근거를 사전에 차단해버리고 있습니다. 


'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대통령의 직무유기'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에 대해 국민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청와대가 아니라 엉뚱하게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이 그날 대통령의 일정을 공개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보호하겠다고 내놓은 그날의 일정을 보면 더 이상합니다. 

가장 먼저 9시에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승무원이 배에서 탈출을 시작했다면 단순한 침수가 아닌 대형 참사가 예견될 수 있음을 알고 있는데도 청와대는 9시 24분 여객선 침수라는 최초 보고를 대통령에게 합니다. 늦은 감이 있으면서 초기 사태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오전 11시 19분 SBS는 '학생 전원구조'가 오보라는 사실을 보도합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오후 1시 13분 총 370명이 구조됐다는 보고를 합니다. 2시 50분 안보실은 유선 보고를 하는데, 대형 참사가 이미 확실시되는 상황인데도 단순히 유선으로 보고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상합니다. 

 

 

 

오후 3시 30분이 비서실의 서면보고가 있었던 후 약 2시간 후 박근혜 대통령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하여 "생존자를 빨리 구출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5시 15분까지 그녀가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내린 지시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날 박근혜 대통령 행적에 대한 의문입니다. 

최소한 청와대 벙커에서 사고 현장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면 괜찮겠지만, 오로지 유선으로 보고받다가 생뚱맞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질문만 던집니다.

 

 

 

동아일보와 신동아는 김기춘 비서실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 의혹 제기가 너무 답답하다'는 김 실장의 입장을 보도했습니다. 

핵심은 그날 청와대와 대통령은 왜 대형 참사 소식을 늦게 알았고 '학생 전원구조'가 오보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아무런 대책이 없었느냐는 점입니다. 

4월 16일 305명이 죽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보여준 지시와 행동은 도저히 대통령답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무려 7시간 동안 대통령이 사고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강력한 구조 지시 등을 내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지금 왜 국민이 그녀의 사라진 7시간을 알고 싶은지에 대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왜 잘못된 보고를 받았는지, 대형 참사가 예견된 상황에서 왜 직접 사고 정보를 파악하지 않고 제대로된 지시를 내리지 않았는지는 반드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특별법으로 규명해야 할 것입니다.

1. 모든 기자들이 대통령을 따라다닐 수 없기 때문에 일부 기자가 대통령과 밀착취재를 하고 그 기사를 언론사가 공유하는 시스템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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