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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점매수냐, 등가교환이냐…아, 결혼 어렵다

수정 2026.10.19 06:54

③ 404 : 사랑 낫 파운드

부동산, 학벌 등 각종 결혼 계급도가 빼곡히 적힌 영수증에 결혼식 부케가 휘감겨 있다. 권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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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손익계산서와 함께 온다. “직업이 좋거나 집안에 돈이 많거나”(이수현·34·가명), “돈은 없어도 학벌이 좋으니 저점매수”(김경호·32·가명)하는 식으로. 결혼을 떠올리는 청년들의 머릿속엔 덧셈과 뺄셈이 빠르게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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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는 집이 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6억2469만원(KB부동산). 10년 새 10억원이 올랐다. ‘착실히 일해 집 사라’는 약속은 완벽히 깨졌다. 두 사람의 월급을 더하고, 대출 한도는 최대치로, 부모 자산까지 ‘영끌’할 때야 겨우 계산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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뺄셈으로 가득 찬 계산서를 든 청년들에게 결혼은 불확실한 미래 그 자체. 끝없이 유예하거나 가장 먼저 포기할 것이 됐다. 경향신문이 만난 청년 100명 중 결혼 가능성을 확신하는 이는 23명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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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계급의 완성

경향신문 80주년 창간기획 <춘추정병시대> 1회 장르만 청년 1면에 실린 첫번째 청년생존매뉴얼. 웹툰 <저궤도인간>의 조은영 작가가 기자들의 취재일지를 토대로 청년이 세상에 스며들기 위해 지켜야할 지침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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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직장인 신우연(32·가명)은 3년 만난 연인과 서로의 패를 공개했다. 우연의 부모가 지원하기로 한 돈은 3억원. 상대가 마련할 수 있는 돈은 그 반의 반에도 못 미쳤다. “이 결혼을 하면 엄마한테 미안하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둘의 결혼은 끝내 불발됐다. 회계법인에 다니는 이수현도 부모에게 3억원은 받고 싶다. 2년마다 이삿짐을 싸는 삶은 상상하기도 싫다. 그래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자”던 남자는 최악이었다. 3억원. 수현은 그게 가능한 사람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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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수현이 동시에 말한 ‘3억원’이란 수치는 공교롭다. 양가로부터 최소 3억원을 물려받고, 두 사람이 모은 돈에 대출까지 끌어모으면 10억원대 아파트를 살 수 있다. 그러면 서울 강북의 외벽 페인트칠이 헤진 구축 아파트에 겨우 가닿는다. 어떤 청년들에겐 부모에게 받는 3억원이 계산의 출발점이자, 생존 커트라인이다. 이마저 무너지면 서울에서 영영 밀려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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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레 계산서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부모다. 김연정(29·가명)이 남자친구와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양가 부친들이 따로 만나기 시작했다. 사업하는 아버지와 연구소 다니는 아버지의 만남은 두세 차례 더 이어졌다. 결론은 빠르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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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시댁, 혼수는 우리 부모님께서.” 연정의 결혼은 그렇게 술술 풀렸다. 결혼은 두 사람의 결합이지만, 두 집안이 뛰어드는 공동 사업이기도 했다. 교육, 입시, 주거 등 생애주기 전반을 부모의 자장 안에 머물러온 청년들에게 결혼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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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필수지만 사랑만으론 부족한 시대. 결혼이 계급을 완성한다. 맞벌이 신혼부부 비율도, 부부 합산 연소득 1억원 이상 신혼부부도 증가세다. 증여·상속을 통한 주택 매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청년에게 허락된 삶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출발선 격차는 이미 아득하다. 지난해 청년 가구 순자산 상위 20%(평균 9억3022만원)와 하위 20%(2301만원)의 격차는 40배에 달했다. 월급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차이. 결혼은 그 격차에 쐐기를 박는다. 최근 정부가 ‘결혼 페널티’를 없애고, 결혼 건수도 늘고 있지만 의미 있는 변화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부모에게 기댈 수 없는 청년들은 계산서를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이들에게 결혼은 답을 내리지 못하는 숙제다. 이슬(27)은 동거 중인 남자친구와 “돈만 있으면 바로” 결혼하고 싶지만, “1000만원 정도의 스몰웨딩” 비용조차 아직 없다. 양가 모두 보탤 형편은 아니다. 김지수(33)는 바뀌지 않는 학자금 대출 잔액이, 김태훈(31·가명)은 사업 실패로 남은 채무가, 최윤정(34·가명)은 소상공인 대출이 발목을 잡는다. 청년 100명 중 49명은 결혼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 밖에 21명은 결혼을 원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 유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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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받을 게 없는 청년들의 바람은 오히려 소박하다. 짐만 되지 않기를. 하지만 이들이 물려받는 건 종종 빚이다. 배달 라이더 박진우(33·가명)는 11년째 하루 12~14시간을 달린다. 그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아버지 빚을 갚는 데 들어갔다. 결혼하려면 안정적인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오토바이 정비를 따로 배우고 있지만, 그 일도 “박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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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영(24·가명)의 집에는 새빨간 압류 딱지가 나붙었다. 이혼한 어머니는 돈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해결을 부탁한다. “왜 저렇게밖에 못 살았지.” 부모를 보며 생각한다. 그럴수록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은 커지지만, 오늘도 “집안 문제가 가장 큰 문제”다. 청년 100명 중 11명은 부모의 빚이나 어려워진 집안 형편을 떠안았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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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격차 앞에 청년들은 체념하는 쪽을 택한다. ‘나보다 노력하지 않았는데 집안이 부유하다는 이유로 사회적 지위·소득 등이 나은 것은 정당한가’를 청년들에게 물었을 때, 47명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13명도 개인의 “운” 또는 “복”이라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22명은 “부모 노력의 결과”라며 정당하다고 했다. 잘 알려진 청년들의 날카로운 공정감각에도 불구하고, 출발선이 다른 문제만큼은 논외가 된다. 더 나아가 부모의 노력, 자산 축적을 개인 능력의 연장선으로 여기기도 한다. 부당하다고 지적한 사람은 11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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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특권의 탄생

부동산, 학벌 등 각종 결혼 계급도가 적힌 영수증에 둘러싸인 반지와 부케. 권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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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은 결혼에서 끝나지 않는다. 출산과 육아, 자녀 교육까지 고려하면 따질 것은 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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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가에서 자란 적당한 모범생’. 컨설팅회사에 다니는 김소연(32·가명)이 세운 남편감의 첫 번째 조건이었다. 이것만 맞으면 “들으면 알 만한 학교” “코스피 상장사” 같은 조건은 얼추 따라왔다. 아이의 등하원과 교육까지 생각하면 상대 “부모의 학구열”도 빼놓을 수 없다. “걸어온 방향이 비슷해야 앞으로의 방향성이 같아”진다는 소연은 그런 남자와 만나 10개월 만에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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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를 나와 공기업에 입사한 오성진(29·가명)의 바람도 같다. 부모가 “하면 안 되는 것”을 가르친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일 것. 실업계고를 나와 ‘인서울 4년제’에 간 회사 동기는 “연애까지”만 가능할 뿐, 결혼 상대로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살아온 환경이 비슷해야 목표하는 지점이 비슷하다고 할까요.” 성진은 ‘서울에 집을 사서 아이를 키우자’는 목표를 가진 사람과 지난달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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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 잔액을 넘어 몸에 밴 취향과 목표, 삶의 태도까지 맞는 상대를 골라내는 일이 결혼의 일부가 됐다. 성장 궤적이 비슷해야 돈 쓰는 법도, 아이 키우는 법도 맞출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부모에게 받은 ‘문화적 경험’을 아이에게도 나눠주겠다는 일종의 설계도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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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어떤 경험을 시켜줄 수 있느냐를 두고 계산서는 끝없이 이어진다. 김혜수(33·가명)는 “키즈카페에서 생일잔치를 열어주지 못하면 아이는 친구를 사귈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며 “성수기에 현장학습을 가느냐 마느냐로 잘사는 집인지를 알아본다”고 말했다. 남들만큼 못해준다고 느낄 때 결혼에는 “실패”라는 이름이 붙는다. 임선혁(35·가명)은 아이의 10만원짜리 발레 수업도 부담이다. “사랑만으로 했다가 사랑마저 없어질 수 있는 게 결혼인 것 같아.”

높아진 벽 앞에 출산과 육아는 계산기를 두드릴수록 답이 나오지 않는 영역이다. 늦깎이 대학생 조준한(27)은 “오후 6시까지 봐주는 유치원을 찾는 일이나 늘 줄을 서야 하는 소아과를 보면 아이 키울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대기업 공장 3교대로 일하는 정의석(26)은 “평소 피로감을 많이 느끼는데 아기를 키울 수 있을지” 망설여진다. 청년 100명 중 29명은 아이를 낳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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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이냐, 커리어냐. 여성들은 더 고난도 밸런스게임을 맞닥뜨린다. 현장직으로 일하는 김효진(24)은 “임신하는 순간 일을 못 나가다 보니”, 아이를 낳으면 “다시 필드로 복귀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한지원(24·가명)의 주변에도 “아이 때문에 커리어 끊기는 경우”가 빈번하다.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지원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걸 직감한다. 청년 100명 중 20명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했다. 그중 13명이 여성이었다. 여성 응답자 3명 중 1명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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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육아에 계산서가 쌓이면서 가정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 이전 세대에게 가정은 밖에서 잘 풀리지 않아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다. 가족을 부양하거나 아이를 키우는 것이 삶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덧셈을 골몰하는 청년과 뺄셈만 남은 청년으로 나뉜 사회에서 가정은 더 이상 누구에게나 열린 곳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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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홀로 서울살이에 나선 김예은(26·가명)은 가정을 원한다. 서울이란 도시는 “외롭고 쓸쓸”하다. 하지만 일일이 따져보지 않아도 결혼이란 계산서의 무게에 짓눌린다. “기대하면 동시에 실망”할까 봐 생각조차 멈춘다. 최후의 보루마저 앗아간 사회에서 청년들은 어디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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